딜러 박사는 소아과 전문의이자 가정요법의로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완만한 경사지 구릉지역에 있는 월넛 크릭이라는 부유한 동네에서 주로 정신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치료하고 있다. 요즈음엔 딜러 박사의 고객 대부분이 자신과 자녀들에게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이하 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데, 행동성 질병인 ADHD는 주로 남자 아이들이 걸린다.
ADHD의 주요 치료제들 중 하나인 리탈린은 생산량이 1990년 이후 현재까지 700%나 증가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수업 시간 중에 알약을 먹어대는 일을 다소 줄여 준 콘세르타라는 약효가 긴 제품이 판매되면서 전문가들은 생산량이 급속히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실 작년에는 아데롤이라는 약품의 장기 조제 처방이 리탈린을 앞질러서 1996년 이후 거의 다섯 배나 증가했다.
이것은 큰 폭의 증가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 사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인의 3-7% 가량이 ADHD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치료제의 사용증가가 널리 퍼진 이 질병을 고쳐 보려는 치료 사례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딜러 박사는 1990년대 초반에 사람들이 보다 큰 사회적, 문화적 문제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으로 이 치료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줄어드는 교육 자료, 과밀학급, 그리고 시간에 쫓기는 부모들로 인해 치료제는 손쉬운 해결책이 되고 있다면서 딜러 박사는 약품이 주로 어린이들에게 처방이 되고 이 약품들의 장기적인 효과가 아직 연구된 바 없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3~5백만 명의 미국 어린이들이 ADHD로 진단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에는 2~4세 아이들이 20만 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딜러 박사는 1998년 출간된 자신의 저서「Running on Ritalin」을 통해 최초로 ADHD의 과잉진단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지만 거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견해를 기고했고 작년 가을 Salon.com에 연재한 시리즈로 전문언론인상도 받았다. 그러나 약물치료만으로는 ADHD에 걸린 아동의 행동이 장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발표와 예비조사의 결과가 나오자 이제서야 약물치료 아동 수의 급증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의사들은 미국 정신의학협회의 ‘성서’라 할 수 있는 정신장애 진단통계편람에 열거된 지침에 의거해 ADHD의 진단을 내린다. 이 지침에 의하면 장애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충동 장애, 복합장애의 3가지로 나뉜다.
조바심, 지나친 기어오르기, 뛰어 돌아다니기 등이 포함된 진단 항목에서 최소 6가지의 증상을 보이는 아이는 과잉행동증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부주의한’아이들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끝까지 듣지 않는 아이들이어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떤 아이가 얼마나 충동적이고 과잉행동을 하며 부주의해야 확실하게 ADHD라고 진단할 수 있을까? 어떤 아이든지 가끔씩은 나쁜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호르몬 불균형 같은 것은 실험할 수 있는 생물학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ADHD 진단은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ADHD의 과잉진단 실태에 대해 “ADHD로 의사의 진찰을 받은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진단서를 받아 나올 정도”라고 182센치미터의 호리호리한 체격에 희끗희끗한 머리를 빌 클린턴처럼 뒤로 빗어 넘긴 딜러 박사가 지적하고 있다. 박사는 활달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ADHD 과잉진단에 대해 말을 할 때면 흥분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까지 한다.
“다른 의사들에 비해 내가 약물치료를 덜 사용하는 지 여부는 모르겠다”며 “교사가 ADHD 증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아동들에게 나는 약물치료 대신 주로 가정과 학교에서의 행동치료로 대신한다”고 딜러 박사가 덧붙인다.
딜러 박사는 최소한 3시간 동안은 아동과 대화한 다음 진단을 내리고 교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실생활에서의 아동의 행동에 대해서도 파악한다. 하지만 의사들마다 환자를 진단하는 데 할애하는 시간이 천차만별인데 이는 공식지침이 없기 때문이다. 버지니아주 의사들 대상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의사들이 진단을 내리는 데는 평균 1시간 22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스위스 바셀에 있는 노바티스 제약회사에서 생산되는 리탈린은 카페인이나 코카인과 관계있는 중추신경 자극제인 메틸페니테이트를 가리키는 상표명이다. 그 외에 아데롤, 콘세르타, 덱시드린과 같은 자극성 약품들도 ADHD의 치료제로 처방되고 있다. 이런 약품들은 부작용으로 불면증과 식욕감퇴가 따르지만 몇 시간 후면 약효가 시작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뇌속에서 메틸페니테이트는 도파민과 작용하는데, 이 생화학 물질은 여러 감각중에서 특히 쾌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감각정보가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신경세포로부터 세포들 사이의 시냅스로 도파민이 분비되고, 도파민은 감각정보를 인접한 신경세포에 전달한다. 감각정보 전달이 완료되면 신경세포들은 분비된 도파민을 다시 흡수한다. 리탈린은 이런 도파민의 재흡수를 느려지게 한다. (다른 흥분제들도 방식은 다르지만 도파민 양의 조절 작용을 한다) 이런 과정이 어떻게 과잉행동을 막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흥분제는 ADHD 환자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도 사용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점이 문제가 된다. “ADHD 진단이 남용되고 있다. 약물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평소 지루하고 어렵다는 일에까지 집중력이 높아지게 된다. 실적위주의 미국문화가 이런 재앙을 낳고 있다”고 딜러 박사는 주장한다.
테일러 가족의 예를 들어보자. 케이트 테일러와 마이크 테일러(가명) 부부는 각각 8세, 11세, 13세인 세 명의 아이가 있다. 복용량은 다르지만 온가족이 모두 리탈린을 복용하고 있다. 이미 이 아이들은 UCLA의 의사들로부터 ADHD라는 진단을 받았고, 가족들이 딜러 박사에게 온 것은 "확인"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인 마이크는 소방관이고, 어머니인 케이트는 전업 주부이다. 딜러 박사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일가족은 모두 금발머리에 맑은 눈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 가족같아 보인다. 세 자녀 모두 1년 넘게 재택 교육을 받아왔고, 공부를 잘 하는 편으로 첫째와 둘째는 지역 단과대학에 다니고 있다.
열한 살짜리 둘째의 리탈린 복용량은 하루 3회로 가족내에서 가장 많은 양이다. 진찰 과정에서 딜러 박사는 둘째가 저녁에 리탈린을 복용할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케이트는 아이의 약품 복용 중단을 꺼리는 듯 했다. 이 아이는 수영을 상당히 잘 하는데 이 약품이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딜러 박사는 1950년대에 나온 연구사례를 들어 흥분제가 지구력을 높이는 데 약간의 도움은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구력이 최고 수준에 못 미친다고 해서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케이트는 관심은 보였지만 저녁 복용을 중단하자는 얘기에는 난감해했다.
“둘째 애만이 ADHD증상이 있다”고 딜러 박사는 주장한다. “이 아이는 약물치료를 받지 않으면 상당히 충동적이고 과잉행동을 보인다.” 딜러 박사는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아이가 재학중에 우수한 지능지수를 보여주었다고 기록했다. 딜러 박사는 약물치료에 앞서 부모가 자녀들을 지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딜러 박사는 자신이 상담하는 ADHD 관련 가족들 중 90%가 부모의 자녀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테일러 가족의 경우에는 딜러 박사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행동 치료를 통해 부모를 지도했다.
일정 기간 딜러 박사는 아이들을 돕는 데서 벗어나 치료의 촛점을 테일러 부부의 결혼 생활에 맞추었다. 딜러 박사의 말에 따르면 행동치료 후 아이들은 어느 정도 호전되었지만 테일러 부부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약물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리탈린은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 아동들의 행동장애 치유에 사용되어 왔지만, 기존 연구들에서는 아동 관찰 기간이 불과 몇 주 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ADHD 증상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한 것들이었다. 현재까지 규모와 기간 면에서 최고였던 연구는 1999년에 발표된 것으로 14개월간 진행된 이 연구로 ADHD 증상을 완화하는 데는 행동요법보다 약물치료가 더 효과가 있음이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여러 연구자들이 이 자료를 재평가해 약물치료와 행동요법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약물치료만 하는 것보다 효과적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이러한 치료가 초래할 수 있는 좀 더 미묘한 부정적 영향, 즉, 어떤 아이들이 놀이 상대를 찾기 보다는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는 현상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주목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약물치료는 수 년간 받게 될 경우 아이의 자긍심과 기타 행동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매사추세츠 대학의 신경학자이자 탁월한 ADHD 전문가인 러셀 버클리 박사는 일부 ADHD 과잉진단 사례나 경미한 부작용을 보이는 어른과 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격리된 환자들이라면서 딜러 박사를 비판한다.
그는 “ADHD에 관해서는 상당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연구 결과도 효과가 크고 실제 생물학적인 기반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딜러 박사는 우발적 사례들을 과학적인 자료로 해석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ADHD가 전염병이라고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가령 사무실의 비서가 수정액의 냄새를 맡는 경우는 늘 볼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사무실의 모든 사람에게 수정액 냄새를 맡는 질병이 퍼져있다고는 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ADHD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약물치료가 ADHD 아동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연구한 장기적인 연구의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오클레어 소재 위스콘신 대학교 인간개발연구소의 윌리엄 프랭컨버그와 크리스틴 캐넌은 1999년 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연구보고서에서 IQ를 비롯한 다른 여러 특징이 비슷한 정상적인 아동 13명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ADHD 아동 13명에 대해 표준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지난 4년간 ADHD 아동의 학업성취도가 서서히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버클리 같은 전문가들은 ADHD를 둘러싼 부정적인 의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딜러 박사의 ADHD의 과잉진단 주장에 대해 버클리 교수는 “그 사람은 개업의에 불과하다. 굳이 충고를 한다면 ‘우리에게 데이터를 보여달라’는 것 밖에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딜러 박사는 이런 데 유연하게 대응하는 법을 알고 있다. 책을 출판할 당시 자기가 공격의 대상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ADHD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을 묵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미국사회의 문화도 ADHD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라고 딜러 박사는 생각한다. 전세계 아이들이 소비하는 흥분제의 거의 80%를 미국과 캐나다 아이들이 소비한다. 유럽에서의 ADHD 확산도 미국에서와 비슷한 양상이지만 약물치료를 쉽게 선택하지는 못한다. 버클리 박사는 그 이유를 “서유럽인들도 대다수 미국인들처럼 잘못된 행동은 부모의 탓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만, 딜러 박사의 설명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일관성 없는 미국문화”에 대해 분석하면서 “독립심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학교에서는 순종을 강조한다. 상처받기 쉽고 변덕스러운 4-14세 남자애들에게 이런 이중성은 매우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이런 점에 대해 고통스러워 한다”고 주장한다.
버클리 박사조차도 이런 미국문화의 이중성 때문에 미국인들이 약물치료를 택하게 된다는 점을 마지못해 인정한다. “사람들에게 많은 요구를 할수록 그 요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장애가 있는지 여부가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책을 읽어 보라고 하기 전에는 그 사람에게 독서 장애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문제가 될 만한 요인은 늘 우리 주위에 상존하지만 문화에 따른 특정한 요구가 없으면 결코 특정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딜러 박사는 “미국의 문화는 해결의 문화”라고 하면서, “나도 이 문화 속에서 내 역할인 약물 치료를 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내가 학교 시스템이나 문화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동들에게 위험하고 해로운 요인과 가치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나도 결국 공범이 되고 말 것이다. 결국 ADHD 문제는 우리 자녀가 어떤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가로 귀착된다”고 딜러 박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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