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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in the Shallow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미국의 차세대 잠수함 버지니아호는 기존의 잠수함들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그 중 하나가 “잠망경을 올려라”는 명령이 필요 없다는 것. 이유는 간단하다. 버지니아호에는 잠망경이 없기 때문이다. 이 21세기형 잠수함의 함장은 인간의 육안보다 훨씬 해상도가 높은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바깥 세상을 빤히 내다보게 된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함정에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장착되어 있고, 거의 소음이 없는 운항 시스템과 수직으로 발사할 수 있는 크루즈 미사일, 기술 갱신이 용이한 기계 구조물들로 채워져 있다. 물론 맡게 될 임무도 예전과는 다르다. 심해를 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을 거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 북동부 로드 아일랜드 소재의 미 해군기지 퀀셋 포인트의 한 조선소에 놓여 있는 버지니아의 현재 모습은 아쉽게도 쇳덩어리 몇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쇳조각(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잠수함의 각 부위들)이 제대로 끼워맞춰지려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각 조각의 크기가 3층 건물만한 이 거대한 원통형 부위들이야 말로 탈냉전 시대의 잠수함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보여주는 가시적 증거물들이다.

미 해군 잠수함의 설계자들은 현재 러시아에서 건조되고 있는 세베로드빈스크호와 같은 10,000톤급의 최첨단 핵잠수함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국지적 충돌이 늘고 있는 현 세계 정세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 새로운 종류의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버지니아가 러시아 북부 해안의 얼음바다를 뚫고 나갈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잠수함들이 주로 소련의 잠수함들을 찾기 위해 대양을 휘젓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21세기 들어 미 해군은 근해를 떠다니는 유령이라 할 만한 기습용 잠수함들을 개발하고 있다. 탄도탄을 장착한 18,750톤짜리 트라이덴트 급의 잠수함들이 주로 공해의 푸른 바다를 순찰하는 데 비해, 이 잠수함들의 작전은 주로 해안과 대륙의 모래톱 사이에 위치한 갈색 바다에서 이루어진다.

2004년에 선을 보일 버지니아호의 임무는 이전의 습격용 잠수함들보다 훨씬 중무장한 상태로 육지에서의 전쟁 상황에 대한 억제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정보 수집을 위한 온갖 종류의 전자 감지기가 버지니아호에 장착된다.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12대의 수직 발사관을 포함한 막강한 화력을 갖추고 있고, 그 안에 마련된 보조 잠수정에 6인으로 구성된 SEAL 특공대를 태워 작전지역에 급파할 수도 있다. 수직으로 발사되는 크루즈 미사일은 얕은 바다에서의 발포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적으로서는 해상의 함포에서 발사된 것보다 이렇게 물속에서 육지를 향해 발사된 미사일에 대처할 시간이 더 줄어들게 된다.

토마호크 미사일이 격추되는 것을 막으려면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버지니아호 개발을 맡고 있는 미 해군 소속 폴 E. 설리반 대위는 말한다.
미 해군측에선 버지니아호 급의 잠수함을 30여 대 진수시킬 계획을 갖고 있어서 숫자상으로만 본다면 버지니아호급 잠수함들이 곧 21세기의 바다 속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버지니아호가 지금까지 개발된 것 중 최고의 특수 임무용 잠수함이라고 할 수는 없다. 크기나 화력, 속도, 잠수 심도 능력 등을 종합할 때 그 명성은 1997년에 건조된 시울프호에게 돌아가야 한다.

얼음을 깨며 운항할 수 있는 시울프호는 자매 잠수함인 코넥티컷호 및 지미 카터호와 함께 약 110m 길이에 지름 12m의 선체, 9,100톤의 배수량을 자랑하는 잠수함이다. 이 잠수함들의 잠수 심도와 속도에 대한 자료는 미해군측이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610m 깊이까지 잠수할 수 있고, 물 속에서 30노트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버지니아호는 길이가 115m로 더 길지만, 선체 지름은 10.4m로 더 작다. 버지니아에 장착된 어뢰 발사관 수는 네 개로 시울프호의 여덟 개의 절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같은 약점은 수직 미사일 발사관으로 상쇄되고 있다. 또 버지니아호는 어뢰 발사관을 통해 애초 수뢰 설치 및 탐지를 위해 개발된 무인 잠수정을 발사시킬 수도 있다.

버지니아호가 시울프호에 비해 속도도 느리고 잠수 깊이도 얕다는 점은 미 해군도 인정하고 있지만 그런 결점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될 것 없다는 것이 군당국의 주장이다. “버지니아호의 설계를 시작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부분은 시울프보다 비용이 덜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몇 가지 특징을 갖추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었다”고 설리반 대위는 설명한다.

그는 시울프 프로그램에도 책임자로 참여했었다. 우리는 양보를 할 부분과 해서는 안될 부분을 가리기 위해 잠수함의 임무분석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시울프처럼 깊이 잠수하는 능력이 전술적으로 볼 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재빨리 이동해서 가만히 숨죽인 채 감지기를 열어 동정을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이와 관련, 구체적인 숫자들은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한 정통한 정보통에 의하면 버지니아호의 속도는 24-27노트, 잠수 능력은 520m 정도라고 한다.

시울프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당 23억달러나 하는 엄청난 비용이었다. 이에 비해 버지니아호는 최초 모델이 20억달러 정도이다. 이 비용은 이후 갈수록 줄어들어 다섯 번째 배가 나올 때 쯤이면 한 척당 16억 달러 정도 하리라는 것이 미 해군의 예상이다. 지금까지 건조 허가를 받은 것은 고작 네 척으로 퀀셋 포인트에 소재한 일렉트릭 보트사와 버지니아에 소재한 뉴포트 뉴스사가 건조를 맡고 있다. 네 번째 잠수함은 2008년 경에나 나올 예정이다.



미 해군의 주장에 따르면 버지니아호급의 선박을 건조하는 비용이 덜 드는 이유는 건조 과정에 변화를 주고 기존의 상업용 기술을 가져다 쓰기 때문이라고 일렉트릭 보트사의 부사장이자 버지니아 프로그램의 책임을 맡고 있는 프레드 해리스는 말한다.
이와는 달리 버지니아호의 건조 기술자들은 각 부위를 짜맞추는 조립식 방법을 개발해 내었다.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만든 잠수함 부위들을 하나로 모아 붙이는 방식이다. 통제실이나 어뢰실과 같은 각각의 부위를 따로 만든 후, 시험을 거쳐 한 대의 완전한 잠수함이 되도록 끼워 맞춘다는 것이다. 각 구성 단위가 선체에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충격 흡수 능력도 뛰어나다. 이런 작업 과정이 보다 쉬워진 것은 컴퓨터에 의한 설계 덕인데, 이런 작업에 컴퓨터를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단위 구조물을 짜맞추는 방식은 버지니아호의 건조 작업에 신축성을 부여함으로써, 현재는 물론 미래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어뢰실에 보관하는 어뢰들을 옮김으로써 6명으로 구성되는 SEAL 특공대를 위한 침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이들 특공대는 55톤 크기의 보조 어뢰정을 타고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는데, 그 속도는 대략 125노트 정도가 될 전망이다. 이 새 보조 어뢰정은 2000년 2월에 건조될 계획이다.

SEAL 보조 잠수정은 버지니아호의 등에 얹혀진 상태로 다니게 된다. 모선의 전망탑이 기존의 잠수함보다 훨씬 앞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얹어 놓을 공간이 충분하다. 선미에 달린 여섯 개의 수평타와 더불어 이런 형태는 잠수함을 회전시킬 때 별도의 통제수단을 갖게 해준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버지니아호는 그 길이에도 불구하고 얕은 물에서도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조타수 및 부조타수는 기존의 조종간 대신에 조이스틱 형태의 조종간을 사용하여 잠수함을 조종하게 된다. 이 조이스틱은 현재 자동차에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데 컴퓨터와 통제되는 전자조종장치에 연결되어 있다. 그 외에도 터치 스크린식 화면을 통해 다른 조종 기능에 접근할 수도 있다.

조타수들은 대기업의 컴퓨터실처럼 꾸며진 조종간에 자리를 잡는다. 과거에는 잠망경의 위치에 따라 통제실의 위치가 정해졌지만, 잠망경이 없어진 지금에 와서는 통제실을 보다 넓은 아래층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광섬유 포토닉스 마스트라는 화상 시스템에는 칼라, 흑백, 적외선의 3개 모드가 있다. 수중음파 탐지기 담당자는 과거에는 별도의 작동실을 차지하고 있어야 했지만, 지금은 통제실에 함께 위치함으로써 다른 대원들과 보다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급속히 발전하는 컴퓨터 기술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버지니아호는 로스앤젤레스호 및 시울프호 급 잠수함 65척을 합친 것보다도 컴퓨터의 성능이 더 뛰어나다. 이런 엄청난 컴퓨터 성능을 가장 잘 이용한 것은 자동적으로 센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신형 전자 차트이다. 이 차트는 해저 목표물의 방위나 방향은 물론 관련 거리까지도 도면에 나타낸다.

음파는 다양한 수온층을 뚫고 나아가는 동안 변하기 때문에 기존의 잠수함에서는 목표물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 새로운 성능은 특히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쓸모가 있다. 쉽게 들키고 마는 디젤 잠수함의 소음을 통행량이 많은 바다 위 선박들의 소음이나 해저의 반향음을 이용해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잠수함의 앞부분 아래쪽과 전망탑에 달린 별도의 감지기 덕택에 버지니아호의 탐지 능력은 배가되었다. 이 별도의 감지기는 잠수함의 측면에 달린 어레이 안테나와 뒤에 끌고 다니는 또 다른 어레이 안테나와의 상호보조를 통해 컴퓨터가 삼각측량으로 목표물의 거리를 측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GPS 항해 위성 및 잠수함에 설치된 항해 시스템이 위치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컴퓨터 자동화 덕택에 134명에 이르는 선원들 중 경계업무에 할당되는 인원의 비율은 크게 줄었다. 게다가 컴퓨터를 이용해서 의사전달 내용을 디지털 기술로 압축시켜 자동 전송을 아주 짧은 신호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 해군은 이런 대화가 없는 서비스를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필요한 네트워크 중심의 함대와 통합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잠수함에 사용될 신기술 중에는 요크 에어컨 시스템과 여과막이 달린 역삼투 장치도 포함되어 있다. 듀퐁사가 만든 이 역삼투 장치는 바닷물을 이용해 하루 4,000갤런의 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된 신기술 중에서도 추진 시스템은 버지니아호에서 가장 베일에 싸인 부분이다. 원자로의 크기는 시울프호에 쓰인 것보다 25% 정도 작고, 부속품 수는 물론 소음도 적다. 이 원자로 역시 잠수함의 수명(약 33년)에 맞춰 설계되었다. 다른 잠수함들은 대개 원자로에 원료를 재주입하는 과정이 한 번은 필요한데, 여기에는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든다.

“신속하면서도 소리없이 움직이기 위한 핵심 기술은 프로펠러에 있다”고 설리반 대위는 말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미 해군은 입을 굳게 봉하고 있다. 적대감으로 가득한 바다에서 적에게 들키지 않고 작전을 펼치는 것이 잠수함의 주된 임무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보수집 능력과 힘을 동시에 갖춘 USS 버지니아호야말로 예전의 어떤 잠수함보다도 해변에 더 바짝 다가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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