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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를 로봇으로 착각한 사나이

덴버에서 개최된 과학 학술회의가 4일째를 맞는다. 긴 복도와 형광등, 소등된 강당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과학자들로 인해 마치 거대한 토끼굴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서 2월의 분주한 4일이 지나고 있다. 나흘간에 걸쳐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인류학과 동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와 발표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온다. 몰려든 취재진들이 4일 내내 발표 내용들을 이해하고 파리에 관한 기사를 써내느라 분주한 가운데 갑자기 큰 건수가 터졌다. 로봇 머리를 들고 다니는 남자를 눈여겨 볼 것. 이 학술회의의 스폰서인 미국 과학발전 협회 소속 취재진들은 로봇 머리 시연이 다음날 아침에 있을 예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불꺼진 또 다른 강의실에선 실제 생물의 형태와 기능을 모방해 보여주는 생물학적 지능형 로봇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이 진행중이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회색 머리칼을 한 미 NASA 제트 추진 연구소의 요셉 바코헨은 걷거나 날 수도 있고 기거나 점프할 수도 있는 곤충 로봇들과 다이빙하고 헤엄을 칠 수 있는 또다른 류의 로봇들처럼 머지 않아 실현될 기술들에 관해 열띤 설명을 하고 있다. MIT 미디어랩 소속의 신시아 브리질이 보여 주는 비디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스런 로봇인 아기 모습의 키스넷이 자기를 안고 있는 여자를 천진난만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브리질은 자신이 키스넷에게 감정을 주입한 방법과 이유에 관해 밝힌다.

마지막으로 달라스 소재 텍사스대학에서 인터랙티브 아트와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데이빗 핸슨의 차례가 왔다. 굵고 짙은 머리와 네모난 턱에 대도시 예술가 같은 옆 모습을 지닌 그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짐짓 침착한 척 움직이는 모습이 다소 어색해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이 친구가 머리를 든 사내였는데 오늘은 사용할 수 없어서 슬라이드들만 보여준다. 웃고 있는 우레탄 자화상, 앤디로이드라는 황갈색 로봇, 귀걸이를 달고 눈을 기워 맞춘 해적 로봇이 슬라이드에 등장한다. 이 로봇들은 모두 머리만 있지만 실제 머리와 아주 흡사해 보인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핸슨의 로봇 머리들이 독특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화제를 모았던 아시모, 그레이스, 키스멧 같은 인조인간들은 모두가 정교한 로봇들로 다재다능하고 총명하며 친근하다. 플라스틱 피부를 입힌 혼다의 아시모는 두 다리로 걷고 로봇 제작 공장에 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그레이스는 바퀴에 금속 부품들을 부착하고 꼭대기에 컴퓨터 모니터 얼굴을 단 180cm짜리 로봇으로 작년에 한 컨퍼런스에 직접 등록을 하고 제대로 방을 찾아가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몇 년 전 방송에 단골로 등장했던 키스멧은 사람들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아기처럼 관찰과 모방을 통해 배운다. 이런 로봇들을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외에도 간호사나 교사, 하인, 친구 용도로 설계된 로봇들도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재능에도 불구하고 결국 로봇일 뿐이다. 만화 같은 데 등장하면 어울릴 때도 있지만 이 로봇들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동작이 서투르고 부피가 크다.

하지만 핸슨의 머리는 다르다. 그 때문에 다음날 아침 10시 30분 정각에 기자들과 TV 카메라들이 방을 가득 메운채 핸슨의 최신형 고성능 모델을 취재하려 기다리고 있다. 33세의 핸슨이 걸어들어와 탁자 위에 뭔가를 설치한다. 뒤쪽이 없는 머리로 나무 판에 볼트로 고정되어 있지만 부드러운 살색의 폴리머 피부와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목구비, 높게 솟은 광대뼈와 크고 푸른 눈이 달린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핸슨은 이 얼굴을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하고 선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이 거의 없다. 다소 어색한 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두들 로봇 얼굴을 확인하느라 바빠서 그럴 새가 없다. 드디어 핸슨이 키를 몇 개 두드리자 얼굴이 움직인다.

좌우로 번갈아 살피고는 웃는가 했더니, 인상을 쓰고, 비웃는 표정을 짓다가는 불안한 듯 눈썹을 치켜세운다.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핸슨이 척척 대답한다. 로봇 얼굴에는 24개의 서보모터가 있어서 사람의 중요한 안면 근육 역할을 한다. 눈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사람들이 쳐다보는지 관찰하다가 새 소프트웨어를 통해 관찰자 모습을 흉내내도록 한다. 이름이 K봇인 이 로봇은 그의 연구실 조교인 크리스틴 넬슨을 모델로 삼아 제작됐다.

그런데 K봇은 대히트작이었다. 이 로봇 머리가 선을 보인 후 몇 주 동안 전세계 언론에서는 온통 이에 관한 얘기로 떠들썩했다. 핸슨에게는 공동 연구를 제안하는 과학자들과 보철 기구와 외과용 실습 도구 제작사들, 섹스 인형 제작사들로부터 이메일과 전화가 폭주했다. 로봇 부품, 소프트웨어 판매 및 신제품 소개 사이트인 Androidworld.com에서는 핸슨의 로봇을 22개 로봇 머리 프로젝트 리스트의 최상단에 올려 놓고는 이렇게 쓰고 있다. “와, 이 친구는 정말 세계 최고의 머리 제작자인걸요.”

33세의 텍사스 대학원생에게는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관심이었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져 버린다. 핸슨의 K봇은 잠깐 동안의 관심거리였을 뿐이었다. 전세계 로봇 연구가들중에서 왜 유독 핸슨만이 인간의 형태와 기능이 거의 같은 로봇 머리를 만들려고 하는지, 로봇 설계자들 사이에서 수십년간 유지되어 온 금기를 그가 왜 깨려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인간과 같은 로봇을 만들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데이빗 핸슨은 로봇 연구 분야에서 돈키호테 같은 존재다. 웹페이지에서 그는 자신을 로봇 조각가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80년대 후반에 2년간 덴튼 소재 노스 텍사스 대학에서 뚜렷한 목적없이 물리학을 전공했었는데, 이곳에서 친구들과 4일간 요란한 파티를 열기 위해 열대 식물들과 앵무새들, 개구리들과 강물이 흐르는 “열대 낙원”으로 자신의 아파트를 개조하려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했었다고 말한다. “광란의 파티였죠”라고 그가 말한다. 이런 일에 빠져 강의를 밥먹듯 빼먹었다. 결국 학점에 문제가 생기면서 장학금이 끊어져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런데 1992년 그는 미국내 일류 예술학교인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 입학허가를 받았다.

이 학교에서 핸슨은 최초의 진흙 욕탕을 만들어 교수들과 관계가 소원해졌는데, 이 엄청난 시설에서 예술계 후원자들은 젤라틴 성분의 해초 추출물 안에서 미끄러지거나 기고, 헤엄쳐 돌아다니기도 했다. 10대시절 외톨이로 잘 어울리지 못했던 핸슨은 그림그리기와 공상과학 소설에 푹 빠져 필립 딕이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들을 탐독했었는데 이곳에서는 어느 정도 그의 두 가지 열정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그는 근처의 브라운 대학에서 인공지능 강의를 수강한 후 1995년 “인조 인체 실험”에 관한 독자적인 연구 프로젝트에 몰두해 수축가능한 1.5m짜리 버팀대에 달린 원격조종 로봇 머리를 만들어냈다. 핸슨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이 로봇 머리는 바퀴로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원격조종을 통해 사람들과 잡담을 했다. “로봇을 총명하고 지각있는 존재로 만들려는 생각이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어요”라고 그가 말한다.

졸업 후 6년간 미술가로 일을 한 핸슨은 마지막에 LA 디즈니 사에 근무하면서 테마공원 캐릭터를 조각하고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며 애니메트로닉스 전문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2000년에 그는 바코헨이 첨단재료에 관한 컨퍼런스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당시 바코헨은 제트추진 연구소에서 미 항공우주국 로봇에 사용할 인공 근육용 전도성 폴리머를 개발중이었다. 이에 영감을 받은 핸슨은 바코헨에게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고, 바코헨은 이 재능있고 적극적인 월트디즈니 미술가에게 기회를 주어보기로 하고는 서로 연결된 인공 근육들을 통해 로봇을 작동시키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집필해달라고 요청했다.

2002년 초 바코헨은 텍사스 대학 대학원생이던 이 젊은 조수의 재능을 다시 한 번 이용했다. 바코헨은 미 항공우주국의 고위층들을 대상으로 점차 부각되고 있는 로봇 기술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중이었는데, 뭔가 눈길을 끌만한 게 필요하다고 느끼고는 핸슨에게 인간 두개골의 플라스틱 모델을 보낸 다음 1주 내로 머리를 만들도록 했다.

2002년 4월 두개골을 받은 날 저녁 핸슨은 콤파스 한 쌍을 들고 달라스의 익스포지션 파크라는 지역의 창고거리에 있는 유명한 술집을 찾아갔다. 술집 안을 재빨리 훑어본 그는 우연히 알게 된 갸날프고 푸른 눈에 갈색 피부를 한 크리스틴 넬슨이 한 남자와 잡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와는 지나다가 한두 번 우연히 마주쳐 서로 웃음을 건넨 적이 있었다. 결국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는 “두개골 크기를 재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핸슨이 이런 식으로 물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2월에 학술회의가 시작되고 K봇이 모습을 드러낼 무렵 핸슨의 로봇 모델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결과를 가져왔다. 핸슨과 넬슨이 약혼을 한 것이다. 당연히 이들의 “재미있는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둘은 그날 저녁 일을 회상하면서 서로 한 마디씩 덧붙인다. 핸슨은 자신이 넬슨에게 두개골 크기를 재도 되냐고 물었다고 말하지만 넬슨은 좀 다르게 들었다고 기억한다. “핸슨은 저한테 ‘당신을 로봇으로 만들어도 되나요?’라고 물었어요.”

핸슨이 넬슨을 로봇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로봇을 그녀로 만들 수 있을까? 시도라도 해 봐야 하는 걸까? 핸슨과 넬슨이 술집에서 모험에 도전하기 한 달 전 그는 과거의 로봇 연구 결과들에 비춰볼 때 이같은 시도가 절대 허용이 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데이빗 핸슨은 로봇의 외모를 크리스틴 넬슨과 너무 흡사하게 만들면 안되었다. 그럴 경우 이상 곡선상의 특이 현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마사히로 모리라는 한 일본의 로봇과학자가 로봇 설계와 인간 심리학간의 상호 영향에 관해 상당한 영향을 미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x축을 인간과의 유사한 정도로, y축을 감성적 반응으로 정하고 실제 살아있는 것 같은 인조인간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모리의 핵심 연구 결과이다.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감성적 반응도도 당연히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특정 시점이 되면 실제 인간과 똑같아지는 게 부끄러운 듯 곡선이 아래로 꺾이면서 중립선인 x축을 뚫고 내려가 음의 값을 갖다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며 인간과 100% 같은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모리의 특이 곡선(Uncanny Valley)상에 나타나는 이 틈은 사람과 흡사하지만 약간 다른 것들을 사람들이 섬뜩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괴물 같은 존재가 이에 해당한다.

키즈멧을 만든 브리질은 다른 많은 동료들처럼 이 연구 결과로부터 영감과 주의해야 할 시사점을 얻었다. 키즈멧의 부드러운 표정과 아기같은 푸른 눈은 이 로봇을 모리 곡선상의 첫 번 째 봉우리에 가능한 한 가깝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만 분명 로봇에 불과한 키즈멧이 이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은 없다. 기계와 잘 지내려면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브리질은 말한다. 좀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 얼굴 모양의 로봇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진짜같은 얼굴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두 배는 더 섬뜩할 것”이다.

핸슨이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고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것은 바로 브리질이었다. 2002년 초 한 컨퍼런스에서 그녀와 만난 핸슨은 로봇 머리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인간 얼굴을 복제하는 데 대해 절대 반대하는 것 같았어요”라고 그가 말한다. “전 내심 존경하던 인물이 제 생각과 정반대되는 견해를 갖고 있어서 다소 언짢기는 했지만 동시에 반감도 느꼈어요. 그러다 뭔가 제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쾌감이 느껴졌죠.”



핸슨이 바코헨을 위해 만든 최초의 머리 로봇인 앤디로이드는 사실 초보적 수준의 모델이다. 서보 모터가 네 개에 불과해 몇 안 되는 표정들이 다소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일단 이 모델 제작이 끝나자 핸슨은 곧바로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실물같은 로봇 제작에 돌입했다. 그는 그레이의 해부학을 꼼꼼히 읽고 의학 웹사이트들을 밤낮으로 뒤지고 다니면서 눈썹을 끌어 올려 앞이마에 주름이 생기게 하는 근육으로부터 입 양끝을 끌어당겨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근육에 이르기까지 주요 안면 근육에 관한 온갖 정보들을 기록했다.

그는 수천 개의 얼굴 표정들을 분류해 어떤 안면 근육들이 작용해 각각의 표정을 만들어내는지 규정한 심리학자 폴 에크만의 연구 결과도 검토했다. 그는 특정한 근육과 힘줄, 인대들이 얼굴의 여러 부위를 움직이게 하는 방식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 형태와 모양, 이목구비의 비율과 안면 윤곽을 연구했다. 여러 시간 동안 거울 앞에 서서 인상을 쓰며 관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어 플라스틱 모형과 재료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면서 얼굴 안쪽에 24개의 서보모터와 2개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피부에 고정할 고정장치와 나일론 낚시끈들을 장착했다. 그리고 머리에 전선을 연결하고 이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을 짜 넣었다.

고달픈 작업의 연속이었다. 정확하고 사실적인 표정을 만들기 위해 핸슨은 서보 모터와 피부에 고정된 낚시줄의 위치를 수없이 바꾸어 보았다. 초기 로봇 머리의 우레탄 피부는 너무 딱딱하고 무거워 서보모터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는 프러버(F’rubber)라는 새로운 폴리머를 발명했었다. 그와 넬슨은 프러버의 공식을 완성하기 위해 새로 이사한 헐리우드의 아파트 욕실에서 재료들을 970가지 방식으로 배합하며 실험한 끝에 탄성과 유연성, 특히 안정성이 탁월한 폴리머를 만들어냈다. K봇이 2월에 선보이기 한 달 전 핸슨은 일주일간 하루에 서너 시간씩 한 철물점에서 로봇의 목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놋쇠 파이프 부품들을 조립하며 보냈다. 점원들은 모두 그에게 괜찮냐고 묻곤 했다. 마침내 핸슨은 모형조립품점과 철물점에서 사온 부품들에 400달러를 들여 K봇을 만들었는데, 이 돈은 학자금대출로 지불했다.

핸슨의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살아있는 모습의 로봇 얼굴을 만드는 것이 단순히 그럴듯한 얼굴 윤곽과 사실적인 얼굴 표정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래서 작년 말 그는 K봇의 두뇌 제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그는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인식하는 최신 컴퓨터 시각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아이매틱이라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회사를 찾아냈다. 핸슨은 이 회사의 공동설립자이자 수석 기술 연구원인 하트멋 네벤을 찾아 이 소프트웨어 베타 버전을 얻었다. 그런 다음 한 과학 컨퍼런스에서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조첸 트리에쉬를 소개받았다. 캘리포니아대 샌디애고 분교의 인지과학자인 그는 로봇 두뇌를 이용해 시각과 초보적인 사교술을 통제하는 정신 과정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 대학에는 사교적인 로봇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술을 연구중이던 자비에르 무블란도 있었다. 핸슨은 매일 기차로 왕복 여섯 시간씩 걸리면서 헐리우드와 이 대학 사이를 오갔다.

올해 봄 어느날 핸슨과 필자는 무블란의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실을 방문했는데, 햇볕이 잘 드는 이 방에는 책들과 예술품, 사람과 컴퓨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블란은 핸슨에게 로봇 머리를 한 개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놓고 이 머리에 사교 기술을 주입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 기계 인식 연구소 공동 소장을 맡고 있는 인지과학자 메리언 바트렛과 함께 어린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애니메이션 형태의 교사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아이는 화면의 텍스트를 읽는다. 아이가 텍스트를 못 읽어 풀이 죽으면 이 소프트웨어 교사는 즉각 반응하게 된다. 이 가상 교사는 아이가 읽는 이야기에 알맞은 표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무블란은 핸슨이 만든 머리들중 하나에 이 교사 역할 프로그램을 주입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볼 계획이다. “컴퓨터로 합성된 얼굴에 비해 3차원적으로 구현된 로봇 얼굴에 사람들이 더 강한 반응을 보일지가 의문”이라고 핸슨은 말한다.

자신이 만든 인간 모습의 로봇 머리가 이렇게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고무된 핸슨은 K봇을 “사교적 로봇용 얼굴”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로봇 엔지니어들에게 “도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그는 이상 곡선 현상에 대해 수긍하지 못한다. 이것은 가능성보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우리가 인간과 너무 흡사한 로봇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뿐 실제 살아있는 듯한 로봇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제작은 반드시 착수해볼 만한 과제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사실적인 머리를 통해서만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적응성 시각과 자연어 처리 및 기타 다양한 로봇의 능력들을 결합해 “통합적 인조인간 로봇”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핸슨은 말한다.

로봇과 같은 얼굴 로봇의 도움으로 심리학자들은 정확히 얼굴의 어느 부위 움직임이 두려움과 슬픔, 분노와 기쁨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달하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비디오 클립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치켜 올린 눈썹이나 찌푸린 미간 등의 표정을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지 관찰을 통해 이같은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밴더빌트 대학의 심리학자 크레이그 스미스는 말한다.

하지만 배우들조차도 정확한 표정 조절이 힘들기 때문에 실험 결과의 정확도가 떨어지는데다 애니메이션화된 캐릭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현실감이 너무 부족하다. 정확한 얼굴 표정 연출이 가능한 인조 머리는 여러 가지 얼굴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어서 이를 이용해 3차원, 실시간으로 특정 안면 근육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스미스는 말한다. 이렇게 되면 “다윈 이래로 수수께끼였던” 미스테리를 풀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무블란의 연구소를 방문한 날 오후 늦게 핸슨과 트리에쉬가 한 캠퍼스 커피샵 안마당에 앉아 있는데 시원한 산들바람이 상록수들을 스치며 불었다. 두 사람은 핸슨의 얼굴 로봇에 관한 과학 논문을 쓰려고 했지만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 곡선의 최후 단계에 도달하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쓰면 어떨까요?”라고 핸슨이 제안했다. 트리에쉬는 긴 다리를 쭉 뻗으며 핸슨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멋진 생각인데요.”

곧 두 사람은 트리에쉬의 회의실로 가서는 화이트보드에 이상 곡선을 그렸다. 핸슨은 이상 곡선의 골짜기 부분을 가리켰다. “모리는 ‘여기까지 가시오. 더 이상 가면 안 되요.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더 이상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경고했죠”라고 그가 말했다. 트리에쉬는 미간을 찌푸렸다. 현실감을 한 축으로만 나타내서는 안된다고 핸슨이 말을 이었다. 현실감은 모양과 타이밍, 움직임과 행동에 좌우되기 때문이죠. 이 개념은 “실제로는 사이비 과학에 속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진짜 과학인 것처럼 다룬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정설로 여겨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상곡선은 어쨌든 이론에 불과하다. “이 이론이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증거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고 인간과 로봇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카네기멜론 대학 심리학자 사라 키에슬러는 말한다. 그녀는 이를 두고 확고한 신념은 있으나 과학적 증거는 거의 없는 “신학적” 논쟁이라고 하면서, 특히 인조 얼굴의 경우 온갖 논쟁들이 난무한다고 밝히며 “말하는 머리로 직접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2001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한 주요 논문에서 블루밍턴 소재 인디애나 대학의 올라프 스폰스를 비롯한 여섯 명의 저명한 로봇학자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스스로 학습을 하는 새로운 종류의 로봇을 묘사했다. 스폰스가 만든 다윈 V를 포함한 이 로봇들은 휴대형 몸체와 센서들이 있어 사람처럼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학습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발달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어서 세상에 관해 배워야 할 것들을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다. 자신의 로봇을 이와 유사한 원리로 프로그램하는 트리에쉬의 말처럼 “이제 로봇을 아이처럼 키우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인간처럼 지능이 있고 독립적인 로봇을 기르려면 최소한 몇십 년은 더 있어야 하겠지만 이에 관한 연구는 이미 시작됐다.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이나 걷는 로봇,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로봇 연구들이 상당 부분 진척돼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적인 인조인간은 신의 영역입니다”라고 스폰스는 말한다. 이상곡선의 제일 끝 지점에 해당하는 로봇들은 사실적이고 감정 표현이 가능한 얼굴을 갖추어 로봇 두뇌 개발자들이 훨씬 지능적인 로봇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로봇을 사람 다루듯 하게 된다. 사람이 자라서 로봇 얼굴을 하게 되는 셈이다.

2002년도 저서 ‘살과 기계’에서 저명한 MIT 로봇학자인 로드니 브룩스는 키스멧 개발을 지켜보고는 “인공 피조물을 만들려는 인간의 오랜 염원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고 썼다. 사람들이 이 로봇들과 맺는 관계는 이전 기계들과의 관계와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그는 시사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로봇 혁명이 우리 사회의 근본 성격을 변화시킬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지난 봄 선선하고 화창한 어느날 핸슨, 넬슨과 필자는 가파른 그리피스 공원을 기다시피 오르내렸는데 가까운 언덕에 거대한 간판 Hollywood가 얹혀 있었고 LA의 스모그 위로 연푸른 하늘이 보였다. 우리는 언덕 위에서 쉬었는데, 그곳에서는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인간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핸슨이 말했는데, 이를 짐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만약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기계화하면 사람들은 기계처럼 느끼게 될 거예요”라고 그가 말했다. 아마도 이 점이 바로 인간과 흡사한 로봇을 만드는 데 반대하는 진짜 이유, 즉 이상곡선의 최종 단계까지 모험을 하길 꺼리는 이유일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언제쯤 이 모험이 실현될까? 지난 2월의 과학 학술발표회에서 누군가가 핸슨에게 최종 목표가 뭐냐고 물었다. 인정많은 로봇, 즉 친구라고 그가 대답했다. 최종 목표는 이런 로봇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댄 퍼버는 일리노이주 어바나에 사는 자유기고가로 과학 분야 통신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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