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간단한 도구인 WASTE는 컴퓨터와 랜만 연결되어있다면 인터넷상에서 사설 ‘peer to peer’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WASTE가 불법적인 파일 공유를 공개적으로 하도록 제작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5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가상 보호 공간을 마련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수준의 암호화 방식을 적용해 인스턴트 메시지, 그룹 채팅, 파일 공유 등을 익명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오직 여기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네트워크 상에서 그 존재를 알고 있으며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이 가상 보호 공간 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새로운 회원은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 암호화키를 통한 인증 과정이 필요하다.
제작자(Nullsoft-AOL 타임워너 자회사)에 의해서 배척을 받기는 했지만 WASTE는 온라인상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waste.2mbit.com에서 미러 사이트 제공) 대부분의 윈도 버전에서 실행된다(본지 역시 AOL 타임워너 소유다).
WASTE가 돈을 벌어들이려는 기업을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용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디지털 방식으로 투명한 협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을 요구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이러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용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이것을 가만히 방치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올 해 말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WASTE와 매우 흡사한 ‘Threedegrees’라는 윈도 XP 기반의 프로그램을 출시할 예정이다(threedegrees.com). Threedegrees는 10명 까지 인스턴트 메시지, 애니메이션, 사진, 그리고 음악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소규모 사설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난달 출시된 베타 버전의 Threedegrees는 아이템을 그룹 아이콘에 끌어 위치시켜 구성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이미지를 끌어서 위치시키면 모든 그룹 구성원들의 화면에 이미지가 즉각 나타나며 음악 파일들은 구성원들의 재생 목록에 포함된다. 그러나 음악 공유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룹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이 재생하고 있는 음악의 복사본을 저장할 수 없다. 오디오 파일들은 사용자의 컴퓨터 사이에서 복사 되는 것이 아니라 스트림 방식으로 전송되기 때문이다. 즉,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스템 상의 활동을 불법적인 데이터 전송과는 아무 관련이 없도록 하게 한 것이다.
WASTE는 과거의 인터넷과 비슷하다. 도전적인 이 프로그램은 무료지만 한편으로는 투박하다. 따라서 사용자에 대한 배려도 부족한 편이다. 반면, Threegegrees는 마치 디즈니랜드와 같다. 깨끗하고 밝아 보이며 모두가 미소를 띠고 있고 사용하기에 편리하면서도 불법적인 요소가 없다(사용자의 양심이 올바르다면 이러한 기술을 적용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특정인의 개인 정보를 얻을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필요할 때 재빨리 숨을 수 있는 ‘은신처’가 아직 몇 개 더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 두는 게 좋지 않을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