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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레이싱

플로리다주 포트 월튼 비치의 싱그러운 어느 봄날 오후. 수온도 적당하고 풍속도 12노트로 불어 항해하기엔 딱 좋은 날씨다. 게다가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 하지만 마크 치스넬과 필자가 막상 ‘바이메어 재벌린 2’(Bimare Javelin 2)를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를 향해 밀어 넣을 때는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치스넬은 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치스넬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렸던 ‘2003 OneWorld Challenge America’ 컵을 수상한 팀의 일원이었는데도 말이다. 치스넬은 경주용 요트에 대한 책을 7권이나 저술한데다 월드 챔피언십에서 세 차례나 레이스를 펼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용의주도하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재벌린 2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경주용 요트가 아니다. 이 배는 하이테크 기술이 결집된 경주용 보트로 전장 18피트, 전폭 8피트에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이물, 탄소 섬유 재질의 방향타와 대거보드, 높이 33피트에 탄소 섬유 재질의 회전식 윙 마스트를 갖추고 있는 배다. 이 요트는 순수한 경주용으로 제작된 것으로서 요트 소유주에 따르면 거의 물리학적 한계 속도인 36노트의 항속을 자랑한다고 한다.

또 어디에 내놓아도 스피드에 대해서는 손색이 전혀 없으며 최고의 다중 선체 기술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경주용 요트의 새 물결을 선도하고 있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치스넬과 필자는 지금 이 멋진 재벌린 2를 타고 워렐 1000 레이스에 도전하려 한다. 워렐 1000. 마이애미비치에서 버지니아비치까지 장장 1천여 마일에 달하는 바닷길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종의 죽음의 레이스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경주를 대비하기 위해 사전 답사 차 이곳 포트 월튼 비치로 왔다.

마침내 치스넬이 키 손잡이를 움켜쥔다. 필자는 트래피즈(trapeze)에 몸을 끼우면서 메인시트를 꽉 죄었다. 잠시 후 재벌린은 살짝 흔들리는 것 같더니 이내 터보차저를 장착한 포르쉐처럼 질주하기 시작한다. 필자는 풍상측 선체에 두 다리를 단단히 지지하고 서 있다가 한쪽 발을 슬쩍 파도 위에 걸쳐놓으면서 나머지 체중도 거의 수면에 닿다시피 하여 요트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대로 있으면 배가 뒤집힐 것이기 때문이다.

“긴장 풀어!” 치스넬이 고함을 지른다. 필자는 힘을 주어 움켜쥐고 있던 가장 큰 돛대에서 손을 뗀다. 그러자 보트의 속력이 줄기 시작하면서 선체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이 모든 동작은 사실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다시 치스넬이 고함친다. “바람을 잘 살펴보고 풍향을 잘 예측하란 말야. 장비 파워를 꺼야 하잖아.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문제가 생겨!”.

1905년 당시 대서양 항해 횡단 기록은 12일 하고도 4시간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는 백만장자 모험가인 스티브 포셋이 전장 125피트짜리 요트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을 타고 1905년에 세워졌던 기록의 거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시간으로 대서양을 횡단했다. 즉, 가벼운 재질로 된 2~3개 정도의 좁은 선체로 나누어진 요트가 선체가 하나뿐인 큰 요트보다 항해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물론 빠른 속도로 항해할수록 요트는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이는 속도가 빠를수록 선체가 받는 맞바람이 좁은 선체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가 오히려 가속력이 붙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겉보기 바람(apparent wind)”의 효과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요트로 손꼽히는 다중 선체 요트를 설계하는 파리 소재의 회사를 소유한 마크 반 피터헴은 ”겉보기 바람을 이용하면 보트 속력을 실제 풍속보다 최대 1.7배까지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치스넬에 따르면, 빠른 속도로 항해할수록 보트에 더 많은 응력이 가해지며, 특히 이물 중 한 곳이 고속으로 파도와 맞부딪칠 때 더욱 많은 응력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런 응력을 견디려면 보트의 강도가 엄청나게 높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려면 중량이 무거워지고 따라서 빨리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탄소 섬유와 노멕스 하니콤 재질로 보트를 제작하면 유리 섬유나 목재와 같은 전통적인 재료로 제작된 보트에 비해 경도가 월등히 높으면서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엔지니어들은 가장 큰 돛에서부터 각각의 작은 돛이나 로프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 요소에 가해지는 응력 부하를 컴퓨터로 계산해 구성 요소를 훨씬 더 두텁게 깎아내 제작하고 있다. 이와 함께 풍상측으로 자동으로 마스트를 기울여주는 유압식 램과 같은 장치를 추가시킨다. “이런 설계 기법을 통해 10년 전에 비해 돛에 바람이 닿는 면적을 20% 늘리면서도 중량은 20% 더 가벼운 보트를 만들 수 있다”고 반 피터헴은 말한다.

하지만 배의 중량을 줄이고 강도를 높일수록 고속 항해와 플리핑(flipping) 간의 라인은 더욱 얇아진다. 치스넬과 필자가 삼각돛을 활짝 펴 가장 빠른 항해 속도를 내다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우리는 트래피즈 위에서 수면 바로 위를 스치듯 지나며 보트에 매달려 있는 상태가 되는데, 풍상측 선체가 거의 파도 바로 위에 걸치듯이 된다. 갑자기 강풍이 불어 필자는 삼각돛을 풀었다. 그러자 보트의 속력이 빠르게 줄면서 풍하측 선체가 바다에 스칠 듯이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질주하고, 보트가 이물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자세를 똑바로 유지하면서 빠른 속도로 나아가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치스넬과 필자는 서로 얘기를 나눌 수조차 없었다.

3시간 정도 지난 후, 항해는 좀더 순조로워졌지만 입은 바짝 타 들어갔고 아랫배에 힘을 하도 주었더니 마치 딱딱한 고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11일간의 워렐 레이스에서 줄곧 망망대해에서 항해할 것을 떠올리면서 이 정도 고통쯤이야 하고 생각하려 해보지만 정말 불가능해 보인다. 치스넬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생각해볼 때 1천 마일의 항해는 정말 미친 짓이라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치스넬은 이 시험 항해를 마치고 해변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이렇게 말했다. “모르지. 우리가 1년쯤 연습하면 해낼 수 있을지도”.

후기: 2003 워렐 1000 레이스는 이 대회 후원자의 태만과 의무 불이행으로 결국 대회 시작 6주 전 전격 취소되었다. 치스넬과 필자는 백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2004년 대회의 출전을 교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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