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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ght flyer

나는 전쟁 중에 P-47 선더볼트와 F4U 코세어의 엔진이었던 R-2800래디얼 엔진의 거센 불연소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 비행기는 덜커덩 거리는 윙위 소리를 내며 공회전을 한 후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기장이 비행기를 활주로 끝에서 멈춘 후 이 거대한 프랫앤휘트니 엔진의 회전수를 높이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비행기는 덜컹거리면서 진동하기 시작했고 타이어는 미끄러졌다. 아버지는 ‘엔진소리를 점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범상치 않은 숙명론자의 의식처럼 이 금색줄무늬 슈퍼 엔진이 회전을 시작하자 ‘드드드드....드드드드드’하는 소리가 프로펠러에서 울려 퍼진다(비행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으리라). 그런 다음 콘베어는 빠른 육상선수가 달려가듯이 회오리와 같은 프로펠러 바람을 일으키며 활주로를 벗어나 버렸다.

5천 마력의 비행기로 경험했던 나의 첫 비행은 오빌 라이트가 불안한 항공기에 몸을 싣고 시도한 첫 번째 동력비행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지 반세기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쾌거로부터 50년이 지났건만 비행기는 여전히 시끄럽고 어설픈 과정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은 여전히 항공기 파일럿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바로 비행이 주는 기쁨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후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나에게는 팬암항공의 유명한 세계일주비행인 PAA 001편으로 다양한 비행구간을 담당했던 팬암 소속 707 수석조종사에 대한 기사를 쓰는 일이 주어졌다. 그는 도쿄에서 초밥을 먹고 랑군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잠시 짬을 내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둘러보고 로마에서 파티를 즐긴 다음 런던에 들러 본드 스트리트에서 구두를 맞추었다. 그는 뉴욕의 아이들와일드 공항(현 케네디 공항)에 도착해 버뮤다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그 당시만 해도 나는 항공기 조종사가 가진 매력을 체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사를 쓰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지난 날 포드의 한 광고가 문득 올랐다. 그 광고에는 자동차의 오버헤드 캐빈 조명 스위치와 그 스위치를 작동시키려고 내민 4선 금줄 소매의 손만 보여줬다. 그 금줄 소매는 선더버드를 운전하는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가 들어있었다. 신참 편집기자였던 나는 그 팬암기에 동승해 취재를 할 수가 없어 한 유명 사진기자가 대신 그 일을 맡았다. 하지만, 제트여행이 어떤 기분인지를 알 필요가 있었던 나는 버뮤다행 707편을 타고 금방 복귀했다. 나는 비행기에 오른 내내 11km에 아래로 펼쳐진 대서양을 두려움에 떨며 창밖으로 내다보았다.

오늘날 승객들은 폭 10열의 좌석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보거나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항공기의 윙하는 엔진소리와 안정된 이륙 시스템으로 인해 비행하는 기쁨은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비행에서 발견될 수 있는 기쁨은 존재한다. 이 기쁨을 발견하기 위해 에어버스는 잠시 제쳐두고 나의 친구 개리슨과 함께 비행을 해봤다.


개리슨은 그의 단발 엔진 멜모스(Melmoth) 2를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화이트맨 공항 12번 활주로로 이동시킨다. 멜모스의 날개는 식빵을 써는 칼처럼 폭이 좁고 길쭉하다. 이 날개는 커다란 유선형 동체를 하늘로 띄우기에는 너무 빈약해 보인다.

현재 운행 중인 항공기와는 달리 개리슨의 항공기는 앞쪽 좌석이 둘이고 뒤쪽에는 한 쌍의 후방시계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로 마치 인체공학적인 좌석공간을 마련한 플렉시글라스(Plexiglas)로 된 일광욕실처럼 보인다. 이러한 구조는 캐노피(canopy-조종실 위쪽의 투명한 덮개)가 적절한 에어포일 형태를 띠게 한다. 그 이유는 탑승자의 머리가 전부 중앙에 모이게 되기 때문이다.

개리슨은 신중하게 출력을 높이면서 잠깐 동안 중심선을 유지한다. 콘티넨털의 200마력 터보차저는 들끓어 오르다가 이내 가라앉는다, 그리고 개리슨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다. 오일압력을 힐끔 쳐다보곤 75노트로 회전시킨 뒤 앞바퀴를 들어올린다. 앞바퀴를 접어 올리자 알루미늄 토크튜브가 오른쪽에 탑승한 내 오른쪽 발목 옆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튜브 위에는 손으로 쓴 ‘앞바퀴를 접어 올린다’라는 문구가 돌아가면서 적혀져 있다.

자세히 말하기 힘들지만 여하튼 상승비행이 시작된다. 수직속도지시계의 눈금은 최대 분속 2천피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멜모스 2는 쌍발엔진 추적기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마치 비치 더치스(Beech Dutchess)가 닷지 바이퍼에 밀려난 구식 카마로처럼 말이다. 우리의 섬유유리 시트 셀은 패드를 덧대지 않았다. 개리슨은 조그마한 장식용 쿠션에 앉았고 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버블 랩 시트 위에 자리를 잡았다. 조종석도 훤히 다 들여다보이고 비행기의 강화 플라스틱 구조도 그렇다. 어느 순간 플랩 작동 기계장치가 통과하게 될 작은 영역을 통해 저 아래의 지상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마치 구형 폭스바겐의 레이스 장식 바닥을 통해 도로를 내려다 본 것처럼 말이다.

멜모스 2에는 ‘실험기’라는 개리슨이 손수 만든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멜로스 2는 아직 작업공정을 거치고 있는 미완성 항공기로 개리슨과 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험비행이란 명목으로 비행을 하고 있다. “시험비행이 항공기 제작 과정 중 가장 지루한 부분이죠. 모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번에 20시간 이상 테스트하고 점검을 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종이 위에다가 항체선도를 메모할 때죠. 그 때만큼은 모든 가능성과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개리슨은 말한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설계하고 제작하고 다시 설계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반복해 온 개리슨에게는 아마도 지루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35년간 친구로 지냈고 저널리스트이자 항공저술가로 존경해 온 한 남자의 창작품을 타고 하늘을 비행하는 나에겐 박진감이 넘치는 일이다.

1982년 개리슨은 LA의 한 뒷골목에 있는 조그마한 차고에서 멜모스 2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차고는 너무 좁고 낡은 판자건물이어서 자동차에 탄 승객들은 차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려야만 했을 정도다.
개리슨은 친구인 플라스틱 항공기 개척자 버트 루탄의 도움을 받아 탄소섬유강화복합소재 처리기법인 ‘laying up’과 ‘vacuum-bagging’이란 기법을 배웠다. 이 처리과정에서 수지를 적신 판을 날개패널이나 동체패널로 성형하는 주형틀에 맞추어 넣게 되는데 전체 조립품은 커다란 자루 안에 밀봉된다. 진공펌프가 그 자루에서 공기를 다 빨아내면 레이업이 탄탄하게 되고 남아도는 수지는 빠져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항공기 패널들이 만들어진다.

개리슨은 멜모스 2를 제작할 때 리벳을 단 전형적인 알루미늄 판을 쓰는 대신 탄소강화복합소재를 사용했지만 무게를 거의 줄이지는 못했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제작기간도 상당히 늘어났다. 개리슨은 “늘 뭔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실수는 복합소재 안에 숨어있죠. 반면 금속이라면 뭔가가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복합소재로 제작할 경우에는 모든 모형비행기 제작자에게 친숙한 전통적인 직선형 격벽, 보강재, 그리고 세로대로 만들지 않고 바람이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선형으로 만들 수가 있다.
이러한 유선형은 어떠한 모양으로 해야 할까? 이것은 항공기 제작자에겐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개리슨은 로프츠맨(Loftsman)이라 불리는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냈고 파트너와 함께 퍼스널 시뮬레이션 웍스(PSW:Personal Simulation Works)라 불리는 전산유체역학(CFD)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다.

CFD는 동체가 공기를 통과할 때 동체위의 공기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를 분석하여 동체 각 부분에 양력, 항력, 마찰, 압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수치로 알려준다. PSW가 지닌 장점은 테스트되고 있는 형태에 대한 정보를 단순한 수치로 된 차트가 아닌 흐르는 바람의 방향과 힘을 생생한 색조로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날 라이트 플라이어(Wright Flyer)라고 불리는 실험기를 만든 윌버와 오빌 라이트 형제가 만일 로프츠맨이나 PSW를 보았다면 깜짝 놀라면서도 개리슨의 실험정신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라이트 형제는 세계 최초의 설계자겸 자가제작자였으나 오늘날에는 이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항공기 자가제작자가 있다. 대부분(2인승 세쿼이아 팔코를 제작했을 때의 나를 포함해서)은 키트를 조립한다. 조립에 필요한 매뉴얼이 동봉된 여러 상자의 부품상자로 구성된 그런 키트 말이다. 좀더 야심 찬 자가제작자들은 사전 시험을 거친 설계 제작도를 가지고 자기 스스로 조립해 제작한다. 마지막으로 소수의 엘리트들은 그들 자신의 항공기를 구상하고 설계하고 제작까지 도맡아 한다. 개리슨은 마지막 엘리트 그룹에 속해 있다. 멜모스 2는 개리슨이 두 번째로 제작한 항공기다.

본질적으로 다르게 제작된 개리슨의 2인승 항공기인 멜모스 1은 1970년대 내내 비행을 했다. 비행거리는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했으며 단 한번의 급유로 태평양을 횡단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멜모스 1은 LA에서 출발해 칠레 북단까지 비행을 했다. 이러한 성능은 공장에서 제작된 세스나, 파이퍼, 또는 비치와 같은 항공기의 성능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멜모스 1은 어느 날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세스나가 LA 남쪽 오렌지카운티 공항에서 돌진해 회전하는 멜모스 1의 프로펠러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제가 만든 것은 모두 파괴되어 버렸죠. 하지만 제가 구입한 것들(엔진, 항공전자장치, 각종 부품과 장비들)은 멀쩡했습니다” 하버드대 영문학 학사만을 가진 개리슨이 이 사고 후 남은 것들을 가지고 공학적 재능을 발휘해 만든 것이 바로 멜모스 2다. ‘공기역학전문가, 스트레스 분석가, 구조기술자, 소프트웨어 설계자, 로프츠맨 설계자 및 제작자, 테스트 파일럿’ . 개리슨에게 따라붙은 이 모든 이름은 그가 독학으로 터득한 것이다. 라이트 형제처럼 말이다.

LA 북쪽의 샌 가브리엘 산맥 상공을 멜모스 2를 타고 날던 개리슨이 급선회를 몇 차례 하고 나자 저 아래 멀지 않은 곳에 황량한 언덕이 스쳐 지나고 있었다. 멜모스 2가 선회경사비행을 할 때, 문득 1960년대에 비행훈련을 받을 때 비행이 끝나고 나면 어깨가 수시고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옆쪽으로 쏠리거나 떨어지는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버티고자 했기 때문이다. 플렉시글래스와 알루미늄 표피로 되어 있는 경량항공기에 초보자가 탑승한 경우 얇은 동체외피 때문에 이러한 쏠림이나 낙하 느낌은 초보자를 압도해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이내 사라지고 ‘세상’을 기울이고 회전시키며 지평선을 뒤집어버리고 자연 질서를 위 아래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조종사의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일부 조종사들은 공중비행과 같은 빠른 속도에서 얼굴이 이지러질 정도의 급선회나 급강하를 즐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발레와 같이 완만하고 느리고 여유로운 연속회전이나 강하비행을 즐긴다.

비행 조종사가 누릴 수 있는 비슷한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레이싱카나 모터사이클이나 수상활주정(hydroplane)은 없다. 말하자면 지구가 멈춘 듯해 보이는 높이까지 나를 데려가거나(내가 손수 만든 비행기로 6.4km 높이까지 올라갔다) 지평선이 굽어지기 시작하는 높이(예전에 공동조종을 했던 리어제트 31을 타고 16km까지 올라갔다)까지 데려갈 수 있는 개인비행기 말이다. 나는 비행기 바퀴가 풀밭에 스칠 정도로 저공비행을 한 적도 있다. 농약살포기 조종사와 함께 커다란 구형 스티어맨 항공기를 타고 전선줄 아래로 비행을 해보기도 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옆을 지나치기도 했다. 조종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찔한 게임 중 하나는 구름 사이를 스릴 있게 지나는 것이다.

시계비행규칙(VFR)에 따르면 불법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적운층을 지나 갈수도 있는 계기비행규칙에 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멀리서 보면 구름은 위풍당당한 ‘괴물’처럼 보이지만 근접할수록 한낱 부질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구름을 지나다 보면 비행기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조종사가 감지할 수 있다. 소용돌이치는 수증기 덩어리가 날개 끝을 시속 320km 이상으로 지나칠 때 말이다. 하얀 구름 속에서는 날개를 담그고 지나가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게르트루드 스타인이 말한 대로 ‘구름 속엔 아무것도 없다’.

개리슨은 항공기를 숭배하는 광신자가 아니라 실용주의자다. 이 점은 라이트 형제와 잘 통한다. 개리슨은 열렬한 애호가들이 자조적으로 일컫는 것처럼 하늘에 ‘구멍’을 내는데 매력을 느끼는 조종사의 탐닉 때문에 비행기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무의미하게 이 공항에서 저 공항으로 300달러짜리 햄버거를 먹기 위해 비행기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물론 항공기 연료와 제반 운행비용을 포함했을 경우의 햄버거 가격이다). 다만 개리슨은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 위한 단순한 이유로 비행기를 설계하고 제작하기 시작했다.

멜모스 1은 2인승으로 개리슨과 그의 아내 낸시 솔터를 위한 자리였다. 멜모스 2는 22살의 아들 니콜라스와 15살의 딸인 릴리가 동승해도 충분할 만큼 좌석공간이 넓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비행의 기쁨은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지각 있는 사람들은 수제 항공기에 대해 보다 신중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아들은 처음 비행을 경험하고 매우 큰 영향을 받았었죠”라고 개리슨은 말한다. “제 생각엔 아마도 그 비행으로 인해 아버지가 망상에 사로잡힌 괴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거예요”. 분명한 것은 니콜라스의 기억에는 멜모스 2가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개리슨이 자신의 아마추어 솜씨로 만든 검증되지 않은 자작 비행기를 타고 비행할 만큼 대담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의 아내인 솔터는 두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단발엔진인 멜모스 1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비행 도중 내내 책을 읽었다고 한다.

태평양 상공에선 12시간 동안이나 잠에 빠졌다고 한다. 남아메리카의 빽빽한 밀림 상공에선 한 때 그녀가 낙하산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그 때는 개리슨이 길을 잃어버렸고 연료도 바닥이 날 상황이었다. 이렇게 용감한 여성은 확실히 멜모스 2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 개리슨의 아들과 딸은 여유로운 뒷좌석이 제격이다.

해거름에 그림자가 길게 동쪽으로 드리워지자 우리는 산개한 구름 속을 완만하고 부드럽게 하강하면서 서둘러 화이트맨으로 되돌아 왔다. 멜모스 2는 아직 항해등이 장착되어 있지 않다. ‘터보용 종방향 저항시험’에서 ‘진동하는 댐퍼의 누수 수리’에 이르는 약 51개 품목에 이르는 개리슨의 실시예정사항목록에서도 한참 뒤에 있기 때문이다.

석양을 가르며 개리슨이 부드러운 착륙을 위해 활주로 밖에서 잠시 머뭇거리자 주 바퀴타이어가 끽끽대는 소리를 냈다.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해 개리슨의 격납고로 돌아오자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자신의 격납고 밖에 서있던 다른 조종사들은 한 개인의 창의력과 불굴의 의지가 결집된 ‘특별한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트 형제가 1세기 전에 실현했던 것이 여기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멜모스 2는 한 사람의 구상과 설계, 제작, 조종까지 도맡아 일궈낸 아름다운 비행기였다.

Man & Machine 칼럼니스트인 스테판 윌킨슨은 사출좌석을 비롯, 탈출기술에 관해 지난 달 커버스토리를 집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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