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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 삼성종합기술연구원장

정부가 과학기술 미래상을 제시하는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에 오는 2012년까지 5조원을 투입키로 하는 등 과학기술 관계부처의 세부 실행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번 대형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키 위해서는 정부의 수행의지와 더불어 민간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최대 민간 연구진을 이끌고있는 삼성종합기술연구원 손욱 원장을 통해 이번 사업 진행에 대한 견해와 국내 과학기술계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 정부 주도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에 대한 원장님의 견해는.
“차세대 성장동력을 성공시키려면 3요소가 필요 합니다. 즉 3P(Product:제품, Process: 시스템, People:인력)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 세 가지 중에서 지금 우리는 겨우 제품만 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시스템과 인력, 즉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여기서 프로세스는 시스템, 클러스터를 의미하며, 피플은 과학기술 인력에서부터 기업, 산업협회 등이 모두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 이번 사업에서의 민간기업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 지요.
“기업이야말로 한 국가의 역량(인재, 기술)을 고객 가치창출로 이어지게 하는 유일한 주체이고 국부 창출의 동력 입니다. 차세대 성장동력에 관한 정책의 성패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기업(집단)스스로가 성장동력을 형성하여 국부창출로 결실 맺게 할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이지요.
선진국의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시급한 것은 ‘경쟁력 있는 산학연 시스템(클러스터)’을 갖추는 겁니다. 70~80년대는 개별 기업에 의한 성장이었다면, 21세기는 산업별, 지역별 조합이나 협회가 중심이 되는 기업 협의체에 의한 성장 견인의 시대입니다.
클러스터의 실질적인 운영주체는 기업협의체, 곧 협회나 조합이 담당해야 합니다. 기업협의체가 먼저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해당 산업니즈를 발굴, 선정, 발신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토대로 정책주체인 정부, 연구개발 주체인 출연연/대학, 인재양성 주체인 대학이 한 방향으로 전략 일체화되는 클러스터 형성이야말로 성장동력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 대다수 국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체제 개편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70~80년대와 달리 지금의 민간연구역량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민간은 산업분야에 따라 세계 1등 기술, 제품으로 세계기업과 경쟁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출연연구기관은 70~80년대에 담당해 왔던 기능, 역할에 안주하고 있지않나 자성해 볼 필요가 있으며,‘경쟁력 있는 국가 출연연 재창출’이라는 각오로 과학기술 관련 출연연의 체제개편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부 출연연의 바람직한 개편방향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시지요.
“다음 3가지의 방향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술개발은 정부 출연연이 담당하되, 내부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연구소로 거듭나야 합니다. 공공복지를 위한 기술은 민간기업에서는 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마땅히 정부 출연연에서 담당해줘야 합니다. 다만 이들 하나하나의 출연연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연구소가 된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러한 목표 하에 내부혁신을 과감히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익을 위한 연구소일수록 세계적으로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연구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국가 대표연구소 1~2개를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산업계보다 한발 앞선 첨단 산업기술을 리딩하는 세계 초일류 연구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첨단 연구시설을 갖추고, 세계 최고의 우수한 인재를 모아, 글로벌 과학기술 인재가 공동 연구개발하는 국제협력의 장이자, 산학연 협력의 플랫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모델이 영국의 러더퍼드 애플턴 연구소입니다. 이 연구소는 자체 인력은 1천200명이나, 외부 연구인력 1만명 이상이 상시 공동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대표 연구소가 육성되어, 과학고나 영재학교 학생들과 같은 우수한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번째로 상기 2가지 방향을 제외하고 모든 출연연은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특화된 연구소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대표적 사례인 독일의 연구개발(R&D) 협회단체인 산업연구협회연합회(AIF)를 연구해 볼 때 입니다. 독일의 AIF는 19개 산업분야의 약 5만1천개 중소기업들이 참여하고, 107개 산업연구협회로 조직화되어 있고, 자체 공동연구소도 57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AIF는 산업계 조직이면서도 또한 연방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의 정부연구개발사업의 집행을 위임받은 대행기능을 수행하고 있지요. 이와 같은 3가지 방향으로 모든 국책연구소를 전면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합니다.“

─ 기업연구소와 달리 정부출연연구기관서 개발한 연구결과물이 상품화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예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결과물이 상품화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현상은 선진국에서도 이미 겪어온 문제 입니다. 이를 일컬어 ‘죽음의 골짜기(Death Valley)’라고 칭하는데, 이는 새로운 기술이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연구개발자들은 대체로 R&D를 딸을 낳아 결혼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딸이 결혼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이혼 당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연구개발자가 민간(사업부문)과 함께 딸을 낳고, 잘 키우는 형태로 발상을 전환하는 것이 요구 됩니다. 이는 함께 낳은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출연연의 연구개발도 민간 산업부문과 함께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3대 로드맵(기술, 시장, 제품)을 함께 협의해 가면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이같은 현상에 대한 개선방향이 있다면.
“앞 질문의 두 번째, 세 번째 사항과 관련된 사항으로 국가 연구개발을 기업, 산업의 수요에 맞는 맞춤형 연구개발 체제로 개편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국가 연구개발체계는 형식적인 실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과거 민간의 연구개발이 잘 조직화되고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주도로 과제를 선정하고 국책연구소에서 추진하는데 민간기업을 형식적으로 참여시키는 형태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자금을 배정하고 기업이 매칭펀드를 내고 참여했으므로, 평가에서도 기업주도형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는 형태였던 것이지요.

따라서 정부자금 나눠 먹기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국가 연구개발과제의 수많은 성공발표에도 불구하고 산업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방식을 탈피하는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민간 기업이 매칭펀드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매칭펀드를 내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즉, 민간산업협의체가 과제를 선정 제안하고, 연구개발 파트너(대학,출연연)를 정하고,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진정한 민간주도형 연구개발 시스템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 과학기술 인재양성과 관련, 귀사가 추진중인 산학협력 프로그램에 대한 현황과 성과에 대해 들려주시지요.
“350여개의 공동개발 과제, 20여개의 Joint Lab 운영을 통해 기술개발을 통한 인재양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3년 1, 2학기에 걸쳐 서울대 공대에 연구개발전략 강좌를 운영함으로써 6시그마 품질경영을 바탕으로 한 기술경영 전반의 지식을 대학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현재 이공계 기피현상이 매우 심각하지 않습니까? 과학기술 기피현상은 국가 미래에도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삼성종합기술원에서는 학생들의 이공계 선호도를 높이고 우수한 인재가 과학기술자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임원들이 모두 나서 전국 과학고와 영재학교를 다니며 순회특강을 하고 있고, 또 용인시내 17개 초등학교와 결연을 맺고 전연구원들이 모두 실험교사로 참여하여 초등학생 과학교실 활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기술에 흥미를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요. 어린 학생들이 실험교육을 통해서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 삼성종기원의 내년 R&D투자규모와 장기적으로 추진할 연구개발과제는 .
“삼성종합기술원은 삼성그룹의 중앙연구소로서 신규사업을 창출하는 Seeds를 발굴하고 전략사업을 일류화 하기 위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10년후 성장엔진을 준비하기 위해 IT, NT, BT, OT, ET 5대 분야를 중심으로 ‘The First, The Best’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2010년까지 5대 분야 각각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 과학 대중화 혹은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국민소득 2만달러 규모에 이르기 이전까지는 어려운 문제라고 하는데, 원장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현은 선택이 아니라 선진한국으로 가기 위한 선결조건 입니다. 어렵다고 포기할 성격의 시대적 화두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사항입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인에 의한 과학기술중심 사회 구현’이 필요 합니다. 세종대왕이 국정 최고책임자였던 15세기는 과학기술강국이었습니다.
지금의 이공계 기피사회에서 과학기술자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회적으로도 존중받는 과학기술강국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세종대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통령이 앞장서서 과학기술중심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대통령이 과학기술자와 직접 현장 접촉을 통해 대화시간을 넓히고, 공무원 임용 등에서 부터 가시적 정책이 뒤따라야 합니다. 또한 ‘기업과 기업인이 존경받는 문화’가 필요 합니다. 액센추어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반기업 정서 세계 1위’ 국가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이공계 출신자의 사회 진출의 터전이 없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공계 기피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영국이 200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반기업 정서 퇴치프로그램’이 좋은 사례입니다. 진정‘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구현해야 이공계 기피현상이 없어질 것입니다.

─ 수험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타개할 장기적인 묘책이 있다면.
“이공계 기피현상과 맞물려 과학기술 중시사회 구현을 위해서는 상기와 같은 단기적 대응 뿐 아니라 장기적인 시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첫째, 초등학교 때부터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사례로는 ‘프로젝트 2061’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미 80년대부터 이공계 기피현상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85년 지구에 접근했던 헬리혜성이 다시 돌아오는 2061년까지 국가의 과학을 진흥시킨다는 계획 아래 미국과학발전협회(AAAS) 프로젝트 2061’을 출범하여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과학, 수학, 기술에 대한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실질적인 과학(공학) 인재양성 교육체계로 바꾸어야 합니다. 과학인재의 양성은 두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우수한 상위인재의 발굴 및 육성입니다. 한 사람이 수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에, 과학기술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입니다.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조사에 의하면 학업능력이 가장 높은 그룹의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한국은 5.7%로, 최고 순위를 차지하는 핀란드(18%)의 3분의 1이고, 일본의 9.9%, OECD 평균인 9.5% 에도 못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평준화의 함정에 빠져있는 교육체제를 탈피하고 우수한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현재 있는 전국의 과학고와 영재학교을 더욱 내실화하고, 이러한 영재교육 체제를 확산,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연구중심대학을 중점 육성하고, 글로벌 R&D 리더로 연구소를 육성하는 등 연구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공학도의 최저역량 기준(Minimum Guideline)을 세계적 수준으로 설정하여 글로벌 수준의 역량을 갖춘 경쟁력 있는 엔지니어를 양성할 수 있도록 공학교육 전반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미 공대의 95%가 공학교육인증제도(ABET)에 참여하고 있으며, 공무원 및 기업의 인재채용시 선발 자격요건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든 공학교육이 공학교육인증(ABEEK) 체제로 바뀌어 맞춤식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첨단과학기술이 국가 경제산업에 근간을 이루는 현 시대에 과학기술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시지요.
“다른 누가 아닌 과학기술인에 의한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국민소득 2만달러로 가기 위한 마지막 보루 입니다.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과학기술인 들이 이를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시대적 책무를 느끼고, 소명의식, 주인의식을 가지고 국가의 경제와 산업을 리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학기술인의 위상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인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과학기술 연구와 개발에 매진할 때, 존경받는 과학기술인, 연구개발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미래의 과학자 혹은 과학기술계에 몸담고있는 ‘파퓰러사이언스’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21세기는 기술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기술경쟁력은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 입니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 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과학기술인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 입니다. 그러나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의 조류에 휩쓸리거나 의기소침해질 필요가 없음을 알 것입니다.

미래 과학자가 될 우리 청소년들이 주역이 될 세상은 지금이 아니라, 10~20년 후의 세상 입니다. 그리고 10~20년 후의 세상은 반드시 창조적 지식근로자인 과학기술이야 말로 가장 유망하고 인기 있는 직업군이 될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눈앞의 시대조류에 흔들리기 보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품고, 향후 국가의 운명을 짊어질 과학기술인으로서 소명의식을 가져주기 바랍니다.
박훈기자 hpark@sedaily.com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1963년) /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1967년) / 전경련 국제경영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1984년) /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1989년)

경력
現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삼성전관 대표이사 /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장 / 그룹 비서실 경영관리1팀장 / 삼성전기 생산기술본부장 / 삼성전기 연구소장 / 삼성전자 마케팅실장 / 삼성전자 입사

상훈
기술경영인상·CTO부문수상 / 3.1 문화상 기술상 부문 / 대한민국기술대상 금상 / 과학기술진흥유공자 선정-과학기술훈장 혁신장 2등급 / 뉴미디어 기술대상·광통신모듈 / 우수개발 전자부품 컨테스트 대상 / 최고 경영자상·가치혁신부문 / IR52장영실상 3회 수상 / 한국품질대상 대통령상 / 경영혁신대상 최고경영대상 / 올해의 최우수 기업상 / 대한민국과학상 석탑산업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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