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보호용 덮개 두 개중 첫 번째 것을 먼저 벗기고 펜에 달린 손잡이를 다섯 번 돌린 후 긴장된 눈으로 약물이 주사기로 들어가는 걸 지켜본다. “피부가 옴폭하게 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해. 그래야 바늘이 제대로 깊숙이 들어가거든.” 그가 계속 설명한다. “소리가 날 때까지 버튼을 누른 다음 5초간 그대로 있어. 피부가 계속 옴폭해 있어야지 안 그러면 약물이 내 몸속으로 안 들어와. 바늘은 똑바로 세운 채 빨리 잡아 빼야 돼. 대신 혈관은 건드리면 안돼. 얼마나 아픈데.” 갑자기 발음이 어눌해지는 게 마치 아홉 살짜리 알렉스 같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살을 꼬집고는 기다린다.
“됐어,” 그가 속삭인다. 하지만 차마 못하겠다. “준비 됐다니까.” 그가 재촉한다. 필자가 두툼한 살갗을 뚫고 주사를 놓고는 얼굴을 찌푸리자 칭찬인 듯한 소리가 들린다. “계속 누르고 있어!” 그가 소리친다. 사실은 이렇다. 필자의 동생은 아픈 게 아니라 키가 작을 뿐이다. 렘케 선생님네 4학년 반 남녀 친구들의 97퍼센트가 동생보다 키가 크다. 120㎝가 채 못되는 키에 체중이 25㎏에 불과한 동생의 몸에 주사한 약은 휴마트로우프이다.
실험실서 개발된 호르몬
이 약은 실험실에서 개발된 인간 성장 호르몬제(hGH)로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hGH와 거의 동일하다. hGH는 신장 뿐만 아니라 신장 기능과 지방 분해 및 근육 성장을 조절하는 중요한 호르몬이다. 알렉스의 “키 늘리기” 치료가 시작된 것은 지난 여름 식품의약청이 엘리 릴리사의 유전자 재조합형 hGH인 휴마트로프의 사용 대상을 원인 불명의 이유로 성장이 부진한 아이들에게로까지 확대하면서부터였다.
알렉스처럼 이 아이들은 키가 30㎝나 큰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무시당하지만 이들의 “작은 키”는 유전적인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과감하면서도 논란의 소지가 많은 FDA의 이번 결정으로 최대 157㎝와 145㎝까지 밖에 못 자라는 미국 남자애와 여자애 40만 명이 휴마트로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들은 미국내 최단신 인구의 1.2%를 차지한다. 알렉스의 경우 다른 곳은 아무 이상도 없지만 오직 키가 크도록 하기 위해서 매일 밤마다 hGH 주사를 8년간 맞아야 한다
결합 단백질에 실려 간세포로 전달
보이지 않지만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인간의 성장은 유전자와 호르몬을 비롯해 다른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는 복잡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과정이다. 유전자를 제외하면 성장 호르몬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루에 10~30회 정도 시상하부에서는 성장 호르몬 분비 호르몬을 뇌 하부에 있는 병아리콩만한 뇌하수체로 보낸다. 뇌하수체는 신호를 받을 때마다 소량의 성장 호르몬을 분비한다.
과학자들은 소량의 hGH가 뼈로 전달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호르몬은 대부분 결합 단백질에 실려 간세포내의 수용체로 전달되어 인슐린형 성장 인자 1번(IGF-1)이 분비되도록 한다. 어린 아이들과 10대 청소년들의 뼈 성장을 촉진하는 단백질인 IGF-1은 뼈마디 말단 부위인 성장판이 남자애의 경우 17세, 여자애의 경우 15세 정도가 되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생성된다.
그 이후에는 성장 호르몬이 계속해 신진대사를 관장하면서 지방 분해와 근육 형성을 돕지만 사춘기 이후 10년마다 hGH의 분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 따라서 별 문제없이 “과다 성장”을 하는 10대 아이는 맥주와 햄버거가 바로 장내에서 흡수되는 30대까지도 키가 자란다. 1971년 버클리대 화학자인 조화리가 성장 호르몬 분자를 합성해 내면서 생물공학의 돌파구가 열린 후 1985년 FDA에서 인공 성장 호르몬을 성장 호르몬 결핍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대부분 시체에서 추출
이 약이 개발되기 전에는 성장 호르몬 치료제가 희귀했는데, 대부분 죽은 사람의 시체에서 추출해야 했다. 이 호르몬들은 대체로 합법적으로 추출되기도 했지만 공급업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병리학자들이 사망자 가족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추출해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공급량이 부족해 hGH는 성장 호르몬 분비량이 극히 적은 아이들 치료에만 국한되었다. 1963년부터 1985년 사이 미국에서 7천700명의 환자들이 이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이들 중 26명이 크루즈 펠트병(CJD)으로 사망했는데 광우병과 유사한 이 뇌질환이 60년대와 70년대에 보급된 뇌하수체 호르몬 일부를 감염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FDA는 1985년 초 CJD로 첫 사망자 2명이 발생하면서 성장 호르몬 사용을 금지시켰다가 그해 말 인공 호르몬 사용을 승인했다. 갑자기 성장 호르몬 공급이 확대되며 안전하고 가격도 낮아지자 처방이 간편해지면서 사용량과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 한때 소인증 치료 용도로만 처방되었던 약품이 1988년이 되자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연간 수익으로 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마의 150센티미터
당시 열한 살이었던 필자는 성장 호르몬 보조치료 대상자였다. 태어날 당시만 해도 신장이 하위 5%에 속했었지만 다섯 살이 되면서 “성장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해 열한 살이 되자 하위 1%선을 맴돌았다. 혈액검사 결과 필자의 성장 호르몬 분비 수치는 “최저 필요량”에도 미치지 못했다. “성장 호르몬제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라고 예일대 소아내분비학자인 윌리엄 탬보래인이 부모님께 말했다. 주사 생각만 해도 필자는 겁에 질렸다. “난쟁이라도 좋아요! 중요한 건 겉이 아니라 내면이잖아요!”
필자가 항변했다. “절대로 매일 주사 맞지 않을 거예요.”좀 더 조사해 본 결과 필자의 갑상선의 기능이 부실했는데, 통상 갑상선 부전증이라고 알려진 병이었다. 탬보래인은 필자가 평생동안 먹어야 하는 알약을 처방해 줬고, 이 약을 복용하자 성장 속도가 즉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마의 150㎝를 넘기는 힘들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바로 이 때문에 대부분의 키 작은 아이들이 작은 키의 원인을 유전적 확률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제니야 키가 더 크고 싶니?” 탬보래인이 필자의 성장 차트와 엑스레이 사진, 그리고 엄마, 아빠를 번갈아 보면서 필자에게 묻던 기억이 난다. 필자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15억달러시장 20만명이 혜택
“글쎄, 그럼 다른 부모를 선택했어야지.” 부모 격리치료의 장점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그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제 26세가 된 필자의 키는 정말 고맙게도 152.5㎝이다. 필자가 성장 호르몬 치료를 시도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이 약품의 시장 규모는 15억 달러로 커져 20만 명의 아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고, 필자의 동생 알렉스를 포함해 수많은 아이들이 hGH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알기 위해 의사들을 찾고 있다.
엄마가 전화를 해 알렉스가 성장 호르몬 결핍증이라 곧 주사 치료를 받게 될 거라고 했을 때 필자는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다.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그마한 온몸에 공포를 느꼈던 필자는 이제 과잉방어증이 생긴 큰 누나로서 남동생의 자유로운 어린 시절이 그같은 스트레스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아 위험할 수도 있는 치료로 인해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과연 키가 작은 게 그렇게 심각한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끔찍한 질병일까?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필자는 엄마의 목소리에 정신을 되차렸다.
“다음주에 간호사들이 와서 주사 놓는 방법을 알려줄 거야”라고 엄마가 말한다.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맨해튼 이스트 사이드 상부 지역 아래서 6번 기차가 삑 소리를 내자 알렉스의 나이키 운동화가 바닥에서 7~8㎝ 떨어진 채 흔들린다. 필자의 동생은 성격이 명랑해 전형적인 둥근 얼굴의 성장 호르몬 결핍증 환자애들과는 달라 보인다.
밤에 주사를 맞은지 2주째
지금은 조용하지만 그것도 입에 과자가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기차가 정류장에 정차하자 알렉스가 끈적끈적한 작은 손으로 필자의 손을 잡는다. “미안.”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가는 동안 동생이 정중하게 말한다. 책을 보고 있던 한 중년 아줌마가 놀라서 올려다 본다. “저런, 너 우리 유치원생 아이보다도 훨씬 더 예의가 바르구나”라고 그녀가 말한다.
알렉스가 밤에 주사를 맞기 시작한지 2주쯤 됐다. 그전 같았으면 잘 몰라서 그의 나이를 어리게 보는 이런 일에 눈살을 찌푸렸겠지만 오늘은 의연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대답한다. “전 아홉 살이예요. 휴마트로프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요!” 동생이 말한다. 그 약이 알렉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 다시 깨닫게 된다. 그는 키가 크고 싶어한다. 6남매중의 막내인 그는 식구들의 주의를 끄는 방법과 키가 작은 자신이 어떻게 취급받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키 큰 아이들이 주도권을 잡는 학교에서 그의 독특한 개성은 좀처럼 눈길을 끌지 못한다.
중학교 시절 불균형 가시화
“모두가 내면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기분은 좋아요”라고 알렉스는 말한다. “하지만 제가 가장 작은 게 아니라 가장 컸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점심 때 옆에 앉는 사람이나 새 친구들이 많아지고 반 친구들도 저보고 꼬마 에버렛이라고 더 이상 놀리지 않을 테니까요. 축구 골키퍼도 잘 해낼 거에요. 180㎝쯤 됐으면 좋겠어요.”연구 결과에 의하면 키작은 아이들의 절반은 놀림을 당하고 3/4은 실제 나이보다 어린 취급을 받지만 이때가 어정쩡한 시기임을 알고 있다고 한다. 10살 정도부터는 학년과 신장간의 격차가 급속히 벌어지면서 보통 사람들도 생각만 하면 몸서리를 치는 중학교 시절의 온갖 괴롭힘에 시달린다.
이때가 되면 가족들도 아이의 불균형이 가시적으로 뚜렷이 드러나면서 성장 문제를 의식하고 걱정하기 시작한다. 필자가 5학년이었을 때 남자애들은 복도에서 무릎으로 기어 필자를 따라오면서 “난쟁이 잡기 놀이”를 했고, 거친 여자애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놀려댔다. “넌 너무 작아서 들여다보려면 현미경이 필요해.” 하지만 필자를 동정하기 전에 반 친구였던 켈리(사정상 이름은 바꾸었음)를 생각해 보자.
키가 175㎝로 필자보다 60㎝나 더 컸던 그 애는 5학년치고는 거인이었다.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키 작은 남자애의 경험과 키 큰 여자애의 경험을 비교하는 게 적절할 듯 싶어 이 예를 든다.) 켈리는 사춘기 내내 너무 심하게 시달려 18세 때 폭식증에 걸렸다. 그러다가 체중이 55㎏ 정도로 떨어지면서 병원에 입원했다. “그렇게 하면 키가 작아지고 더 매력적으로 될 거라고 생각했었어”라고 그녀가 최근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 “거의 죽을 뻔했지.”
에스테로겐 치료자 유산율 높아
여자애가 키가 너무 크면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여겨 1950년대에는 의사들이 키 큰 여자애들에게 성장억제제인 에스트로겐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다량으로 사용하면 이 호르몬은 연골성장을 촉진시키면서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게 해 성장이 좀 더 빨리 멈춘다. 켈리의 경우에 치료도 논의되기는 했지만 의사들은 그녀의 뼈 발달 상태로 보아 180㎝ 이상 자라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정확한 예측이었다. 그녀는 현재 5학년 때보다 키가 2.5㎝ 밖에 안 자랐다. 그리고 비록 정상적으로 장기간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없지만 에스테로겐 치료를 받은 키 큰 여자애들은 유산율과 자궁내막증, 불임과 난소암 발병율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작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소아내분비학자들 중 1/3이 지난 5년간 최소한 1회 이상 이 치료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테로겐 치료의 부작용에 관해 알게 되자 알렉스를 hGH로 치료하는 게 더 걱정이 되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
어느 정도 조사를 한 후 필자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예일 대학의 뉴 헤븐 아동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 알렉스의 소아내분비학 담당의인 마이론 제넬 박사를 만났다. 흰 머리에 흰색 가운을 걸친 제넬은 전형적인 구식 의사의 모습으로 작고 검은 왕진 가방을 든 채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의사를 연상시켰다. 필자는 우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거 마셔도 키 자라는 데 이상 없겠죠?”라고 농담을 던지자 “이미 걱정하기엔 늦은 걸”이라고 그가 맞장구를 쳤다.
필자는 가방에 손을 넣어 조사 자료들을 꺼냈다. 성장 과정에 관한 도표들과 역사적인 시간대, 그리고 연구 논문들로 꽉 찬 “리스크”라는 폴더였다. “위험 요인에 대해 저희 가족이 걱정하는 게 당연한 거죠?”라고 물어보면서 그가 필자를 안심시켜 주고 알렉스의 치료가 안전하다고 말해주길 기대했지만 제넬의 대답은 의외였다. “솔직히 우리도 장기적인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더 걱정이 되죠”라고 그가 말한다. “우리는 성장을 촉진하는 호르몬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것들까지 촉진하는 일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IGF-1은 세포배양시 악성종양을 발생시키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점은 필자도 알고 있다.
IGF-1수치 높으면 종양발생 가능
인간 혈청에 관한 다양한 연구 결과 IGF-1수치가 높아지면 심장이나 전립선, 결장암에 걸릴 확률이 높고, 종양 표본들이 인접한 정상 세포들보다 더 많은 IGF-1 수용체를 보유하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량의 IGF-1이 악성 종양 발생의 직접적 원인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떤 다른 위험 요소와 연관이 있을 뿐인지 아직 알려진 바는 없지만 성장 호르몬이 간과 세포들을 자극해 IGF-1을 생성해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제넬은 알렉스의 IGF 수치를 3개월마다 검사해 정상적인 범위내에 있는지 확인할 거라고 말한다. “이론상으로 그의 성장 인자를 허용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면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필자는 질문 항목들을 훑어보고 고조되는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타자기를 두드리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왜 알렉스가 이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이번에도 그의 대답에 필자는 깜짝 놀랐다.
알렉스가 치료를 받기에 적합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가 전혀 다른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성장 호르몬이 전혀 생성되지 않는 아이들은 증상이 뚜렷하기 때문에 쉽게 식별해 낼 수 있어요”라고 그가 말한다. “반대로 성장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아이들도 쉽게 식별해 낼 수 있죠. 하지만 댁의 동생처럼 성장 호르몬이 약간 분비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은 아이들을 구별해 내기가 가장 힘듭니다.” 그는 알렉스의 IGF-1 수치가 낮고 키도 점차 최단신 인구 1%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성장 호르몬이 분비는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2시간동안 30분 간격 채혈
“알렉스는 애매한 경우라 그가 호르몬 치료를 꼭 받아야만 할지 뭐라고 얘기하기가 힘들군요”라고 그가 말을 잇는다. “솔직히 당분간 기다리면서 정보를 좀 수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가족분들이 그렇게 결정을 내린신 것 같고 알렉스 본인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이것만 봐도 성장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지 잘 알 수 있다. 단순한 혈액 검사만으로는 hGH 수치를 측정할 수 없다. 혈액 내에서 호르몬의 수치는 기복이 심해 혈액 검사를 할 때마다 수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의사들은 뇌하수체를 자극해 성장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인공 약품을 환자에게 주사하는 성장 호르몬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이용한다. 약품이 주입된 후 간호사들이 환자의 혈액을 2시간 동안 30분 간격으로 채취해 뇌하수체의 활동이 최고조에 달할 때를 포착한다. “이것은 인위적인 검사들입니다”라고 제넬이 말한다. “이들 중 어떤 검사로도 정상적인 상태의 아이들에게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낼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인위적인 자극을 가하면 뇌하수체에서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죠.”제넬이 동생의 검사 결과를 보여준다. 알렉스의 호르몬 분비 수치는 0.11에서 9.9ng/㎖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정상적인 호르몬 분비 수치를 최소 10 으로 여기고 있지만 예일대 아동 병원에서는 7 이상으로 본다.예일대 병원 기준으로 보면 알렉스는 정상인 셈이다. 필자의 부모는 몇 가지 기준으로 볼 때 알렉스가 성장 호르몬 결핍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두 분 다 알렉스가 치료를 못 받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필자의 동생은 실험 대상인 셈이다.
167.5㎝이하 CEO 3% 불과
그날 밤 저녁 식사중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알렉스의 검사 결과가 우편으로 도착한 날 얘기를 꺼내셨다. 낮은 수치에 깜짝 놀라 두 분 다 알렉스의 성장 호르몬 분비가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성장 호르몬 분비량 측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다. “내가 엄마지 과학자는 아니잖니”라고 어머니가 말한다. “그런 건 알 필요가 없어.” 약물 사용은 안 하는 게 안전할 거라고 필자가 말한다. “아직 생각을 바꾸기에 늦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도 부모님은 치료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휴마트로프 치료를 받기 시작한 후 알렉스의 자신감을 한층 높아졌다. 부모님에겐 알렉스를 실망시킬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알렉스의 키가 지금처럼 작은 채로 지속되면 전문 직업을 구하거나 배우자를 만날 기회가 줄어들까봐 걱정이 된다고 부모님이 얘기하셨다. 물론 우리 부모만 이런 걱정을 하는 건 아니다. 사실 연구 결과를 조금만 훑어 봐도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 대학의 최근 조사결과에 의하면 신장이 2.5㎝ 더 클수록 연간 789달러를 더 받는다고 한다.
따라서 키가 180㎝인 사람은 162.5㎝인 사람보다 평균 5,523달러의 연봉을 더 받게 된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의하면 포춘지 선정 500명의 CEO들 중 신장이 167.5㎝ 이하인 사람은 3%에 불과했고, 180㎝ 이상이 절반을 넘었다. 미국인들 중 180㎝ 이상인 사람은 20% 밖에 안 된다. 하지만 문제가 그처럼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고 버팔로 대학 정신과 및 소아과 부교수인 데이빗 샌드버그 박사는 말한다.
치료 중도 포기율 58%
샌드버그의 연구에 의하면 키가 작은 아이들이 놀림을 당하고 나이보다 어린 취급을 받지만 5~6㎝ 더 커진다고 해서 삶의 질이 달라지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한다. “우리 삶은 너무 복잡해서 단 한 가지 요인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라고 샌드버그는 말한다. 휴마트로프 제조사인 엘리 릴리의 임상실험에서 이 약물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2.5~3㎝ 더 자랐다. 실험 대상 아이들 중 62%는 성인이 되었을 때 도달하리라 예상했던 키보다 5㎝ 이상 자랐고 31%는 10㎝ 이상 자랐다.
이 결과만 보면 호르몬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165㎝까지 밖에 못 자랄 알렉스가 175㎝까지 자랄 수 있게 된다는 얘기이다. 캐나다 맥길 대학 소아학부장인 하베이 궤다 박사는 높은 실험 중도 포기율을 지적하면서 호르몬 치료 연구에 문제를 제기한다. 엘리 릴리 연구에서 가짜 약물 치료 환자 28%와 성장 호르몬 치료 환자 42%만이 실험을 끝마쳤다고 그는 지적한다. 실험에 끝까지 참여한 사람들은 아마도 가장 큰 효과를 본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고 그가 말한다.
1㎝ 키우는데 1만달러 소요
“키가 작은 아이들은 신체장애가 있고 비정상적이어서 온갖 문제가 있기 때문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라고 궤다는 말한다. 그는 휴마트로프를 왜소증 아이들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한 FDA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정상적인 키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도 없고, 키가 작아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호소하는 아이에게 성장 호르몬을 사용한다고 해서 어떤 혜택이 있으리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키가 몇 센티미터 더 크려고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제게 입증해 보세요.” 금전적으로만 따져 봐도 성장 호르몬 결핍 아이의 키를 1㎝ 키우는 데 1만달러가 소요되고 특이한 왜소증에 걸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2만2천~4만3천달러가 소요된다.
현재 우리 부모가 가입한 보험회사 앤뎀 블루 크로스 앤 블루 쉴드사에서는 알렉스의 치료비 지급에 동의했지만 모든 아이들이 보험 혜택을 받거나 치료를 권유해 줄만한 소아내분비학 전문의 진찰을 받을 형편이 되지는 않는다. hGH의 혜택을 받을 사람들이 이미 선택받은 삶을 누리고 있는 부유한 미국계 백인 남성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 치료를 받은 환자들 중 여자애는 2명당 1명, 남자애는 5명당 1명 꼴이다. 이 수치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보다 키가 작음으로 인해 더 차별을 당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만성 신부전증에 효과
3개월마다 하는 알렉스의 검사가 있은 지 1주일 후에 필자는 예일대학에 다시 왔는데 이번에는 8년전 마지막 진찰 약속을 한 뒤로 보지 못했던 필자의 소아내분비학 담당의사인 탬보래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현재 예일대 소아내분비학과장은 이상 왜소증 치료제로 휴마트로프 사용을 승인한 데 찬성했는데 이 때문에 그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우리는 구내식당에서 만났는데 무료검진을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도 그가 필자의 목을 짚어보며 진찰을 했다. “갑상선이 정상이네요”라고 그가 말해 준다. 탬보래인은 이 약이 성장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는 아이들 치료에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에 사용 승인에 찬성했다고 말한다. 유전질환인 터너증후군에 걸린 아이들과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들, 그리고 신장질환인 만성신부전증에 걸린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 hGH는 질병 자체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질병으로 인해 야기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증상, 즉 왜소증을 치료하는 것이다. 하지만 ISS에 걸린 아이들의 경우 이 질병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애매하다. 필자는 알렉스 건을 탬보래인에게 보여주면서 가족들의 치료 결정 동기와 불확실한 진단에 관한 우려를 설명했다. 알렉스가 가능한 한 모든 혜택을 받고 제대로 된 삶을 살도록 하게 하고 싶지만 약물 치료의 불확실한 효과와 원인불명의 왜소증에 걸린 알렉스에게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피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알렉스가 선생님 아들이라면 hGH 치료를 받으시겠어요?”라고 필자가 물었다. 탬보래인은 뒤로 기대앉아 대답을 하려고 잠시 뜸을 들인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안 할 겁니다. 나도 풋볼 예비학교에 다닐 때 작고 특이한 애였지만 잘 버텨냈고 나름대로 교훈도 얻었죠”라고 그가 말환다. 그는 현재 167.5㎝이다. “모든 증상을 보니 알렉스는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의 키까지 자랄 것 같습니다.”
왕성한 식욕, 성장통 증가
11월 초 알렉스를 데리고 예일대학에 첫 검진을 받으러 갈 셈이다. 지금까지 오후 9시면 니켈로디언 광고가 나오는 시간에 늘 주사를 놓아왔는데, 우리 가족들은 벌써 알렉스의 신체에 변화가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근육이 눈에 띄게 발달하고 바지가 갑자기 짧아졌다. 대기실에서 의사에게 할 말을 몇 가지 급히 적었다. 알렉스의 식욕이 전례없이 왕성해졌고, 성장통이 심해졌으며 머리카락이 마르고 부석부석해졌기 때문이다. 신장과 체중을 재는 데 이용되는 이 방은 여러 가지 신진대사상의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 그린 그림들로 벽이 도배되어 있다. “이전”이라는 라벨이 붙 은한 그림에는 슬픈 표정의 비쩍 마른 인물이, “이후”라는 라벨이 붙은 다른 그림에는 키가 더 크고 훨씬 행복해 보이는 마른 인물이 각각 그려져 있었다.
알렉스는 그림 왼쪽에 서서 등을 벽으로 향한 채 “이후” 모습에 대한 기대로 씩 웃었다. 간호사가 알렉스의 차트에 뭐라고 쓴 뒤 우리를 검사실로 안내했다. 알렉스는 초조한 표정이었는데 우리가 7~8㎝는 자랐을 거라고 장담하면서도 집에서 알렉스의 키를 재지 말라는 심리학자의 충고에 따라 아직 키를 재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24.8㎝네요”라고 제넬이 알려준다. “3개월만에 3.5㎝나 자란걸요.” “세상에” 일년에 15㎝가 자라리라고 예상했던 어머니가 놀라서 말했다. “겨우 그정도예요?” 알렉스가 묻는다. 그렇게 주사를 맞았는데 겨우 1인치 조금 더 자랐다구요?”
정말 무모한 실험인가
제넬이 시험 결과를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이건 긍정적인 결과란다”라고 그가 알렉스에게 말하고는 어머니에게 돌아선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치료 덕분으로 돌리기에는 아직 이릅니다.”사실 알렉스의 치료 결과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1년에 2만달러나 지불하면서도 아무 보장도 없다. 어떤 아이는 평균 키로 자라는 반면 또 다른 아이는 결코 최단신 1% 인구층을 벗어나지 못한다. 필자는 아직도 건강한 아이를 놓고 왜 이런 무모한 실험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몇 센티미터 더 자란다 해도 정확히 치료 때문인지도 모르고 알 수 없는 위험도 감수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인 결과를 찾고 있다. 그래서 진찰실을 나오면서 가족들 모두가 알렉스의 치료가 효과를 볼 거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해본다. 3개월 후 2월 초쯤 되어 알렉스의 다음번 공식 검사결과가 도착하면 보다 확신하게 될 것이다. 알렉스는 현재 치료를 시작했던 6개월 전보다 6㎝가 자라 12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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