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에 다달은 비행기
두 비행기 모두 반환점에 다다랐다. 그린네미어는 기체를 왼쪽으로 바싹 틀어 옆으로 세운 채 반환점을 돌면서 밴덤의 비행기 그림자가 바깥쪽으로 앞서 나가는 것을 내려다 보았다.“이제 두 번째 엔진으로 힘을 내자”라는 생각으로 그린네미어는 출력을 최대로 높인 채 밴덤이 자기만큼 바짝 선회하지 못하거나 자기 비행기 쪽으로 오지 않기만을 기도하면서 엔진이 잘 버텨주기를 바랬다. 비행기는 잘 견뎌냈고 그린네미어는 1.9초 차이로 결국 우승을 했다.
“정말 흥미진진한 경기였습니다”라고 6개월이 지난 후 그린네미어가 캘리포니아 산클레멘트의 격납고에 놓인 윤기나는 빨간 비행기 옆에 선 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또 일어나게 할 생각이 없어요.” 그는 67세의 나이에 흰 머리와 보조개, 반짝이는 푸른 눈을 한 다부진 모습으로 선량해 보인다. 하지만 그린네미어는 전직 록히드 마틴 시험비행 조종사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CIA의 A-12 정찰기와 뒤이어 나온 SR-71기를 조종했었다. 필자 연배의 많은 젊은이들이 8트랙으로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를 듣고 있었을 때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다까지를 58분만에 비행했다. 그는 1969년 피스톤 엔진 최고 속도 기록을 깼고, 1977년에는 저공 비행 제트 속도 기록을 깼다. 그는 그랜랜드 북부의 한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48시간 동안 정지해 있던 구식 B-29호를 이륙시키려 시도했던 적이 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도 못한 일들을 비행기로 해치우는 것으로 유명해 세계 최고속 비행상을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수상했다.
레노에서는 매년 9월 4일간에 걸쳐 조종사들이 날개를 나란히 한 채 12미터 높이의 목표물 둘레로 경주를 벌이며 비행의 황금기였던 1930년대로 되돌아간다.
통상적으로 경주용 비행기는 4등급으로 나뉜다. 2차 세계대전시의 훈련기로 시속이 370km에 달하는 T-6기와 시속 320km짜리 소형 1인승 비행기 복엽기, 200입방인치짜리 엔진으로 최고 시속 400km를 내는 초소형 맞춤형 비행기 포뮬러 원, 그리고 엔진 출력에 제한이 없는 무제한급 비행기의 4 등급이다. 레노는 지상 몇십미터 상공을 시속 720km로 저공 비행하는 P-51 무스탕을 비롯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였던 전투기들이 엄청난 속도와 소음, 위험을 재현해내는 무제한급 경기로 유명한다.
엄청난 속도·소음의 무제한급
그린네미어는 바로 이 무제한급 경기에서 일곱 차례나 우승을 했는데, 첫 우승이 1965년이었고 마지막은 1977년이었다. 그의 우승기는 고성능으로 개조한 그루먼 F8F-2 베어캣인데, 컨퀘스트 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6,000파운드짜리 비행기는 날개가 2.4미터 가량 깎여 있고 더글러스 스카이레이더기의 대형 프로펠러와 강력한 3,200마력짜리 엔진이 달려 있다. 이 비행기는 현재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언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컨퀘스트 옆에서 그림자에 가리운 채 왜소한 모습으로 놓여있는 520파운드짜리 포뮬러 원 비행기는 네메시스기이다.
레노에서 그린네미어에 필적할만한 유일한 기록을 세운 존 샤프는 록히드 스컹크웍스의 첨단복합재료 기술자였는데, 이 작은 비행기 네메시스로 포뮬러 원급 경기에서 9연승을 기록했다. 2000년 은퇴하기 전까지 네메시스는 이 부문의 모든 기록을 깼다. 이 비행기의 성능이 너무 뛰어나 경쟁자들을 늘 이 비행기를 파괴하려 했다. 샤프와 그린네미어는 레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조종사들이다. 두 사람 모두 타고난 경주 조종사들로 비행기를 빨리 모든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고 둘 다 지는 것을 싫어했다. 이제 두 사람은 각자 150마일 떨어진 샌 클레멘트와 모자브의 작업장에서 자체 제작한 최신 비행기에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다. 9월에 이들은 작고 가벼운 첨단 비행기들을 나란히 몰고 5년 전까지만 해도 레노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부문에서 출전해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 부문의 경기는 인기와 기술, 속도면에서 최고의 대회였던 무제한급 군용기 대회를 능가하며 1930년대 이후 처음으로 항공기 대회의 진수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역사로 본 항공기 대회
그린네미어는 작년에 레노에서 가까스로 이긴 것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데, 그가 오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항공기 대회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1920~30년대에는 항공기 대회가 인기가 높아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 있는 전국 항공기 대회에 수십만 명의 관중들을 끌어 모은 지미 두리틀 같은 조종사들이 유명세를 탔다.오늘날의 자동차 경주처럼 이들이 조종한 비행기들은 기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하며 매년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파일런 항공기 대회는 최첨단 스포츠로 온갖 최고 기술들이 선보였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이 스포츠가 중단되고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항공기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1939년 미국의 최고속 전투기들이 시속 300마일의 벽을 돌파했다. 이로부터 불과 5년 후 무스탕과 코사르기들이 이보다 거의 150마일 더 빠른 속도를 기록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이 비행기들은 이미 수만 대가 제작되어 있었다. 피스톤과 프로펠러 기술은 이미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 경주가 재개되었을 때 매력은 이미 퇴조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비행기는 자동차만큼이나 친숙해졌고, 더 이상 넘어설만한 기술적 한계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49년 클리브랜드에서 빌 오덤이 코스 끝에 있는 한 주택에 충돌해 엄마와 아이가 사망하면서 항공기 대회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964년 빌 스테드라는 한 목장주가 레노 외곽 사막에서 이 스포츠를 되살려 냈다. 당시 록히드사에서 조종사로 일하던 그린네미어처럼 기계에 밝은 조종사들은 빠르게 비행하고 수리하는 일을 좋아했는데, 이들은 수리 대상으로 주로 군용기를 선택했다. 사람들의 눈요기감으로 좋기 때문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후 남아도는 군용기가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최고 속도를 냈기 때문이다. 그린네미어의 베어캣은 8,000달러였다. 새 엔진과 연료는 거의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날개를 깎아내고 발동기 커버를 유선형으로 한 후 대형 프로펠러와 냉각 장치를 달고도 비행기의 무게를 대폭 줄였다. 아무도 그에게 근접할 수 없었다.
레노대회 관객 15만명
항공기 대회의 인기가 서서히 되살아나다가 결국 레노에서의 대회에 매년 15만 명의 관객들이 찾게 되었다. 지상 9미터 높이에서 시속 450마일의 속도로 바짝 붙어 굉음을 내며 비행하는 전투기들은 단연 압권이다. 하지만 해를 거듭함에 따라 무제한급 부문의 경쟁 열기가 식으면서 근접 비행을 보기 어려워졌다. 출전 비행기 수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베어캣과 무스탕기만 몇 대 남아 있다. 세계대전 중 제작된 5만 개의 롤스로이스 12기통 멀린 엔진들 중에서 남아있는 건 1,000개도 채 안 된다. 남아있는 무스탕도 골동품으로 값이 100만 달러나 나간다.
그린네미어가 베어캣으로 했듯 레노에서 우승하기 위해 무스탕기를 개조하려면 추가 비용이 금방 50만 달러를 버리는데, 이런 비용을 들이고도 1년에 딱 이틀간 주말 대회에서에만 비행할 수 있고, 속도를 높일수록 구하기 힘든 25만 달러짜리 엔진을 날려버릴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1등을 한다해도 상금은 16만 달러에 불과하다.과거 기록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20년 동안 코스 1회전 속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2003년 무제한급 부문에 참가한 26대 비행기들의 예선전 기록은 1등과 꼴등 차이가 시속 197마일이었다. 결승전에서조차도 1등과 3등간의 속도차가 시속 40마일이었다.
“이제 무제한급 경기 출전이 가능한 비행기는 두세 대에 불과합니다”라고 샤프가 말한다. “나머지 비행기들은 대회 우승을 노리는 부자들이 개조해 만든 것들이죠. 진짜 P-51 무스탕이 있으면 함부로 몰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모든 게 다 단순히 출력의 문제였을 뿐이죠. 40년간 새로운 기술이랄 만한 건 없었습니다.” “전 그 대회를 ‘신사들의 경주’로 부릅니다”라고 그린네미어가 말한다.
수년간 몇몇 사람들이 맞춤형으로 제작한 무제한급 비행기로 이 부문 경기에 속도감과 활력을 불어넣으려 시도해왔다. 그린네미어는 한때 왜소한 세스나기에 대형 12기통 엔진을 달고 비행해 보려다가 가능성이 낮아 포기했다.
조종사 존 샌드버그는 대폭 개조한 P-51로 비행하다가 1991년 사망했다. 2년 후 버트 루탄의 200만 달러짜리 수제작 비행기 폰드 레이서가 예선전에서 추락해 조종사 릭 브리커트가 사망했다.
할인 가구업계 부호인 개리 레비츠는 무스탕기의 동체와 레어젯의 날개를 결합해 만든 비행기를 조종하다 1999년 레노에서 충돌사고로 화염에 휩싸인 채 숨졌다.
항공계 개척자 버트루탄 등장
그린네미어의 작업실에는 가장 혁신적인 무제한급 비행기인 쇽웨이브가 놓여 있다. 이 비행기는 주문 제작한 동체를 비롯해 2차대전 때 활약한 씨퍼리호의 뭉툭한 외곽 날개판과 F-86 제트기의 꼬리날개, 장거리 폭격기에 동력을 공급하던 5,000마력짜리 대형 28행정 프랫 앤 휘트니 R-4360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쇽웨이브기는 15년 동안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다. 이 비행기를 조립하는 데는 수백만 달러가 필요하지만 1등 상금은 이 금액의 15%에 불과하기 때문에 투자자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대회든 기업의 후원을 받아 이루어지게 마련이지만 무스탕이나 베어캣, 복엽기인 T-6, 혹은 공중전화 박스만한 포뮬러원을 지원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자동차 경주를 통해서는 자동차를 판매한다. “일요일에 대회가 있으면 월요일에 판매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레노 경기장의 일반 관람객들 중 대회에 참가한 기종의 비행기를 살 사람은 없다.
하지만 조용한 항공계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1940~60년대에 걸쳐 세스나와 비치 같은 대기업들이 엄격한 연방항공국의 기준에 맞춰 일반 항공기들을 제작하다보니 모두 모습이 비슷해져 버렸다. 하지만 연방항공국 규정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소유주가 연구나 여가활동 목적으로 비행기의 51% 이상을 직접 제작한 수제작 비행기는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가정용 제품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한 조립형 비행기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제작이 어려웠고 완성 후에도 잘 날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항공계의 개척자인 버트 루탄이 등장했다. 유리 섬유로 덮인 발포형 뼈대를 한 유럽의 고성능 글라이더를 본 그는 이 기술을 이용해 1976년 바리에즈(VariEze)호를 제작했다. 이 비행기는 가볍고 늘씬해 세스나 172기보다 30%가 빠른 시속 180마일로 비행했지만 이전의 조립형 비행기들보다 제작이 훨씬 용이하고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었다. 4년만에 루탄 항공사는 이 모델을 4,500개 판매했다. 현재 배리에즈기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걸려 있고, 복잡한 가정내 수제작 추세가 일반 항공 시장의 가장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탄소섬유로 공기역학 적용
간단히 말하자면 탄소 섬유 덕분에 가볍고 강하면서도 리벳 없이 공기역학상 효율적인 모양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10년간 공장에서 제작되어 정식 등록된 비행기들보다 스포츠용으로 등록된 비행기 수가 많았습니다”라고 라이커밍 비행기 엔진 제작사인 텍스트로 시스템스의 전무 로저 파스코가 말한다.
자칭 “수제작 페라리”라는 랭캐어 인터내셔널 같은 회사들에서 정교하고 안정적인 4인승 비행기들을 양산해내고 있는데, 시속 300마일로 미대륙을 단 한 차례의 중간 기착만으로 횡단할 수 있는 이 비행기들은 세스나기에 비해 절반의 비용으로 두 배의 성능을 발휘한다.
조립용 비행기가 아이포드처럼 팔리자 레노 대회의 다른 급 비행기 부문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기회가 감지되면서 레노 항공기 경주 협회 회장인 마이클 휴톤의 표현대로 “일요일엔 경주를, 월요일엔 판매를”이라는 패러다임에 좀 더 근접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나스카 자동차 경주 대회에 적용되는 비즈니스 모델죠.” 랭캐어는 1998년에 최초로 개최된 스포츠급 부문 경주를 후원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회사는 공장에서 제작된 비행기를 출전시켜 우승했다. 대릴 그린네미어도 그해에 레노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나온 신형 비행기를 찾고 있던 터라 랭케어사의 전시용 텐트로 들어가 보았는데, 그곳에는 레거시라는 최신형 2인승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거 한 개 사고 싶은데요”라고 그가 말하자 여직원이 그러라면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기재하라고 했다. 기다리는 것 하고는 거리가 먼 그린네미어가 다른 제안을 했다. “이거로 경기에 출전하면 어떨까요?”
“누구시죠?” 여직원이 물었다.그렇게 해 비행기 경주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랭캐어사는 2000년에 그린네미어에게 첫 비행기를 판매했는데, 그는 샌클레멘토에 있는 작업실에서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이 비행기를 대대적으로 개조중이다. 현재까지 스포츠급의 유일한 제한 요소는 엔진 크기가 최대 650입방인치를 넘으면 안된다는 것과 최소한 5대 이상의 판매 실적이 있는 기종만 출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상 24미터높이 시속 998마일
랭캐어사는 그린네미어에게 비행기를 판매하면서 어떤 사태가 전개될지 알지 못했다. 무제한급 대회의 인기가 한창일 무렵 구형 베어캣은 너무 많이 개조되어서 공중에 제대로 떠 있지도 못했다. 조종실의 온도는 80도를 웃돌아 그린네미어는 손을 식히기 위해 얼음팩을 가슴에 묶은 채 비행을 했다. 1969년 피스톤 엔진으로 신기록을 수립한 후 그린네미어는 여기저기서 모은 부품들로 세계 최초의 개인 소유 F-104스타파이터를 조립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 12년이 걸렸다. 완성된 후 기존 F-104기보다 1톤 정도 가벼워진 이 비행기는 연료도 300갤론을 더 넣을 수 있었고, 붉은색 벨벳 계기반을 갖추었다.
1977년 10월 24일 네바다주 토노파에서 그는 미해군 F-4 팬텀기가 세웠던 세계 최저 고도 고속 비행 기록을 깨뜨리며 3km의 원형 코스를 지상 24미터의 높이에서 평균 시속 998마일로 번개같이 두 바퀴 돌았다. 그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그 당시 그린네미어는 유명한 록히드사 디자이너인 브루스 볼랜드와 함께 일을 했다. 그는 스포츠급 첫 출전을 위해 유체역학에 대한 직감이 뛰어난 젊은 전문가를 한 명 찾아냈다.앤디 치아베타라는 이 청년은 캘리포니아 라구나 해변에서 서핑보드와 스킴보드를 제작하고 있었다. 310마력짜리 6기통 엔진을 장착한 이 비행기는 지상 3km에서 시속 280마일까지 낼 수 있어 빠른 편이기는 했지만 아주 빠른 편은 아니었다. 성격이 급해 규정집이나 제조사 사양을 안들려다 보는 그린네미어는 시속 300마일을 넘으면 불안정해진다는 랭캐어사의 경고도 무시했다.
그린네미어는 개조된 크랭크축과 더 큰 피스톤들을 단 수퍼터보차지 쌍둥이 엔진을 장착하고, 물과 알콜을 혼합한 폭발방지 분사 장치와 기체 냉각용 물 분사 장치도 추가했다. 그는 하트젤 프로펠러사를 설득해 특수제작한 대형 3날형 프로펠러를 제공받았다.
공기저항 30% 냉각장치가 원인
주착륙 바퀴에는 대용량 펌프들을 설치해 바퀴들을 빠르게 접어넣고 문이 밀폐되도록 했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레거시의 보조날개들을 제거함으로써 속도 조절이 불편하게 되었다. 중앙의 조종간은 그가 익숙해져 있는 전투기처럼 좀더 섬세한 조종을 위해 측면에 장착되었다. 전방의 캐노피 경첩은 뒤쪽으로 옮겨져 레버를 당기면 캐노피가 열리면서 비행기로부터 떨어져 나가 그린네미어가 비상탈출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그와 치아베타가 엔진 커버로 한 일은 단연 압권이었다. “비행기 저항의 30%는 냉각장치에서 비롯 됩니다”라고 그린네미어가 말한다. 기존 레거시기에서는 비행기 앞부분에 있는 두 개의 흡입구를 통해 엔진으로 공기가 들어갔다 급히 빠져나가면서 압력이 낮아지게 한다. 그린네미어의 레거시기에서는 흡입구가 훨씬 작고, 작은 날개가 공기를 갈라 일정 분량을 밀폐된 공간에 있는 엔진과 터보차저로 보낸다. 그린네미어는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이전 기록을 완전히 뒤엎고 싶어했다.
그와 치아베타가 작업을 끝냈을 무렵 레거시기는 원래의 무게를 유지하면서도 저항이 훨씬 줄어들어 출력이 500마력에 근접했다. “꼭 재미잇는 자동차 같죠”라고 그가 웃으며 말한다. “겉모양은 일반 레거시기처럼 보이지만 속은 다른 비행기들과 전혀 다릅니다.” 그는 이 비행기로 2002년 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시속 347마일의 공식 기록으로 새로운 대회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가 우승한 시속 328마일의 속도는 무스탕과 씨퍼리기들이 겨루는 무제한급에서도 5위에 해당되었을 것이다. 다음해에 그는 시속 347마일을 기록했고, 그후 접전을 벌이다 실린더가 폭발했지만 별 문제없이 그해에도 우승을 했다. 그는 재고품 실린더를 달고도 릭 밴덤을 2위로 밀어냈다.지금껏 네메시스기로 패한 적이 없었던 존 샤프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느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스포츠급 경기만이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겁니다”라고 모자브 사막에 있는 격납고에 서서 핑크플로이드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채 그가 말한다. 샤프는 이미 직선 비행코스에서 소형 네메시스기로 시속 290마일의 속도를 냈었다.
깨끗한 종이 한 장과 좀더 큰 엔진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린네미어처럼 조립용 비행기를 구입하는 대신 샤프는 직접 비행기를 디자인해 원하는 사람에게 엔진과 프로펠러, 기술자문을 포함해 129,000달러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의 새 비행기 명칭인 네메시스 NXT는 기존 네메시스 모델처럼 날렵하지만 훨씬 더 강한 구조로 되어 있다. 통통한 타원형 날개와 뒤쪽으로 날카롭게 마무리된 날개끝 부분, 상어같은 동체 모두가 풍동과 컴퓨터상의 유체역학 모델링을 통해 세심하게 다듬어진 것들이다. “알루미늄으로는 절대 이런 비행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샤프는 잘 다듬어진 대리석처럼 매끈한 날개 위에 놓인 부드러운 사포지를 손으로 훑는다. 덩치가 크고 소년같은 표정의 그는 짧은 회색 머리에이에는 보철을 하고 있고 목소리가 부드럽다. “군용기들의 웅장한 소리와 모습을 결코 잊진 못하겠지만 이제 기술 경쟁인데다 발전 속도도 무척 빠릅니다.”
샤프는 오랫동안 공기역학 전문가로 잘 알려져 왔다. 어렸을 때부터 조립자동차 경주를 해온 그는 치과의사가 될 생각이었지만 1972년 한 경주용 글라이더에 푹 빠지게 되었다. “수년 동안 복합재가 사용된 곳은 이 분야 뿐이었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전 그 부드럽고 반짝이는 질감에 매료됐습니다.” 그는 록히드사에 취직해 복합재를 사용한 “비밀” 프로그램들을 연구했고, 중고 포뮬러원 경주용 비행기를 구입해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F-1기들은 모두 1950년대 기술로 제작된 것들이라서 저항을 줄이기 위해 날개가 얇았다고 그가 말한다. 현실을 인식하게 된 샤프는 몇 년 후 비행기를 팔고 새로운 날개 모양을 찾아 NASA로 가서 네메시스를 제작했다.
현존하는 최고속 비행기 네메시스
언뜻 보기에 이상할지 몰라도 그는 양력이 높아 효율성이 뛰어난 두꺼운 날개를 택해 저항의 주요 요인인 양력을 줄일 수 있게 날개를 위로 향하도록 개조했다. 그런 식으로 네메시스는 현존하는 최고속 비행기가 되었다. 현재 네메시스 NXT는 하루후면 페인트칠이 말라 몇주 후에는 비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네메시스를 원형으로 해 개발을 했습니다”라고 샤프가 말한다. 날개가 타원형으로 뒤로 굽어 있어서 기류가 날개 부위와 날개 끝 부분에서 모두 똑바로 흐른다. 날카로운 “창모양 날개 끝”이 저항을 줄여준다. 네메시스처럼 이 비행기의 날개도 동체쪽은 통통하고 끝으로 갈수록 얇아진다. “캠버 모양이 혁신적이죠”라고 샤프가 말한다. “대부분의 날개들은 눈물방울 모양이지만 NXT 날개에서 가장 두꺼운 지점은 날개 앞쪽언저리보다 60% 정도 뒤로 처져 기류가 착 달라붙습니다. 대릴의 레거시기 노출 부위들은 시속 280마일에 맞게 설계되었습니다. 이 비행기는 그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항상 엔진을 재고로 갖고 있다 그에게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NXT의 경주용 엔진은 결코 재고품이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라이코밍사는 샤프에게 특수 엔진을, 하트젤사에서는 프로펠러를, 가민사에서는 4만 달러 상당의 기술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의 후원 때문에 항공기 경주를 위해 샤프가 더욱 노력을 하게 된다. “저희가 볼 때 조립용 항공기 시장은 성장할 겁니다”라고 라이커밍사의 로저 파스코는 말한다. “우리 엔지니어들이 기술을 최대한 테스트해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경주 대회에 관한 대화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파스코가 하는 말들은 항공기 경주계에서는 혁신적인 것들이다. 그린네미어는 콘티넨탈 엔진을 사용하고, 샤프는 라이커밍 엔진을 사용한다.
그린네미어의 비행기는 랭캐어사로부터 구할 수 있지만 샤프는 직접 제작한다. 경쟁이 혁신을 불러오고, 혁신을 통해 비행 속도가 향상된다. 랭캐어사가 시장성을 높이 보고 있는 경주용 조립형 비행기 분야의 다른 레거시 제작자들은 그린네미어와 치아베타가 개조한 제품들을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다. “레노에서 우리한테 비행기들을 판매해왔습니다”라고 랭캐어사의 판매 매니저인 김 로렌젠이 말한다.
대형 군용기들과 한판대결
1~2년 내로 샤프가 판매한 NXT 조립용 비행기들 중 최소한 두 대가 완성되어 대회에 출전할 것이다. 혁신과 경쟁, 제작업체의 참여로 곧 온갖 소형 스포츠급 조립 비행기들이 2차 세계대전 모델의 대형 군용기들 뒤를 바짝 추격하고 시속 400마일의 속도로 일반 항공기들처럼 미대륙을 논스톱으로 횡단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달중 레노에서 대형 군용기들과 우선 한 판 대결을 벌여야 한다. 샤프는 다시 얕잡아보는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대릴과 앤디가 군용기들로 멋진 일을 해내긴 했죠. 하지만 우리 페라리에 비하면 코베트 정도죠.” 옆에서 듣고 있던 그린네미어가 눈빛을 반짝이며 웃는다. 치아베타가 기체 구조를 정밀하게 조정하며 엔진을 개조하고 있다. “제가 만약 당신이라면 투자할 대상을 신중하게 고를 겁니다”라고 그린네미어가 말한다.
레노 항공기대회 우승목표… 프로펠러 비행기로 초음속 도전
데이빗 로즈는 올해 레노 대회에서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요란한 굉음을 내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어한다. 그는 이번에 몰고 출전할 비행기가 수동 조작 프로펠러 비행기로는 최초로 음속을 돌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소음만 클 뿐 실제적인 이득은 없어 아무도 이런 시도를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얻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라고 강한 눈빛을 한 67세의 로즈가 말한다. “몇 년 전에 이미 했어야 하지만 하지 않고 내버려 둔 일들 중 하나일 뿐이죠.”하지만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1950년대에 미공군에서는 제트 엔진 동력에 프로펠러로 추진되는 XF-84H라는 전투기로 시험 비행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굉음이 너무나 커서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까지 했다. 출력도 이보다 작고 프로펠러 크기도 훨씬 소형인 로즈의 비행기 레니게이드는 조금 조용하기는 하겠지만 만만찮은 소음을 낼 것으로 보인다. 4개의 프로펠러 끝이 각자 초음속으로 회전하고 요란한 1,700마력짜리 엔진 때문에 “혼이 빠질 정도로 시끄러울 것”이라고 공기역학 과학자인 바나비 웨인팬이 말한다.
프로펠러 추진형 비행기가 음속에 도달하려면 육중한 엔진을 작은 기체에 어떻게 장착할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로즈는 비행기 동체가 엔진의 엄청난 회전력으로 뒤틀려버려 분해해야만 했다. 그는 기체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단거리 카레이서들이 사용하는 크롬 합금 관들로 둘레를 두른 신형 동체를 설계했다. “시속 300마일로 충돌해도 괜찮을 겁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물론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이런 고강도 경량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 가장 큰 기술적 문제는 레니게이드의 작은 날개로 엔진의 회전력을 조절하는 일이다. 이륙할 때처럼 저속으로 비행하는 도중 엔진의 회전 속도가 높아지면 기체를 조종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로즈는 올 가을 레니게이드를 몰고 레노 대회의 무제한급 부문에서 우승해 유망한 스폰서로부터 현재 1,200마력짜리 엔진을 1,700마력짜리로 업그레이드 하는 데 필요한 15만 달러를 지원받을 계획이다. 모든 게 계획대로 잘 된다면 내년 여름쯤 그는 마하 1 속도를 내는 프로펠러 추진형 비행기를 조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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