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구적인 관점에서 제기된 문제는 결코 아니다. 올해 유가가 배럴당 40달러에 이를 만큼 거의 기록적인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가운데 로얄 더치/셸 그룹에서는 자사의 비축량을 45억 배럴 수준으로 감축했다. 시중 주유소에서 소비자들은 석유 부족 사태에 대한 우려로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있는 반면 과학 및 경제학계에서는 “확인매장량” 즉 복원비용이 수익을 초과하기 전에 현실적으로 시추할 수 있는 석유량을 놓고 합의를 도출하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5월 이탈리아의 에너지회사인 에니(Eni)에 재직 중인 경제학자 레오나르도 모제리가 사이언스지의 기고문을 통해 “석유 고갈론”을 과장된 거짓말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논쟁에 불을 댕겼다.
석유정점연구회(ASPO)는 이 문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대변한다. 유럽의 과학자들로 결성된 이 협회에서는 중국과 같은 개도국으로부터의 수요 증가에 따라 석유의 최대생산량이 전 세계적으로 2008년경 정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라크에서 산출될 석유가 전부 한 병에 들어간다고 칠 경우 도합 4잔에 나눠 담을 수 있는데 그중 1잔씩이 매년 소비된다고 볼 수 있죠.” 물리학자이자 ASPO 회장인 헬 알레클렛의 설명이다. “석유가 발견된 이후로 우리는 9병을 소비해온 셈입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9병 내지 10병을 보관 중이지요. 그렇다면 잔존량이 얼마나 될까요? 일부에서는 5~6병으로까지 추산하고 있지만 저희는 3병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모제리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은 남아있는 잔의 개수가 사실상 무한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미국 석유 연구소의 수석경제연구원인 존 펠미는 석유생산량이 정점에 도달하기까지 아직 요원하므로 실질적인 제반 목적을 감안해서라도 석유의 잔존량이 무한대인 것처럼 치부하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석유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1800년대부터 고갈에 대한 우려는 늘 존재해왔습니다.” 펠미의 설명이다. 일례로 1880년대 스탠더드(Standard Oil)사의 임원 중에는 자사의 비축량이 곧 바닥날 거라는 우려 때문에주식을 모두 팔아치운 사람도 있었다. 또한 1970년대 비영리 연구기관인 로마 클럽(Club of Rome)에서는 2003년도에 석유생산이 정점에 다다를 것이라고 발표한 적도 있었다. 물론 후에 오산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됐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논쟁을 종결시킬 단초를 찾는다면 아마도 최신 석유 복원 기술이 그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령 새로운 지진조사기법은 다양한 주파수의 음파를 지하 수천 미터까지 송신한다.
반사된 신호는 지상에 배치한 마이크를 통해 녹음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석유매장이 예상되는 열점이 3차원 영상으로 모델링된다. 그간의 조사내용을 토대로 현재 4차원 영상화가 가능해졌으며 이로써 액체 흐름에 대한 저속 시뮬레이션 제작이 현실화됐다.업계 역시 기존 유전에서 석유를 더 뽑아낼 방도를 모색 중이다. 수직으로만 움직이던 기존의 딱딱한 드릴에 비해 수평 착공이 가능해진 탄력적인 코일형 튜브의 드릴이 그 한 예이다. 이러한 신기술의 도입으로 현재 35%에 머물고 있는 기존 유전의 석유 산출율이 50~60%대로 곧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생명공학 역시 검은 황금의 샘이 넘쳐흐르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앨버타 대학의 과학자들은 복원이 어려운 점성의 석유를 희석시킴으로써 보다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만들 유기체를 연구 중이다. “기술로 인해 석유 생산의 정점 시기가 점점 더 지연되는 셈이죠.” 슐룸버거(Schlumberger Limited)의 유전기술부문 부사장인 사티쉬 파이의 말이다. 그러나 정말 이것만으로 충분할지는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수 있으리라.
재료과학
미래 신소재 ‘메탈 러버’ 탄생
인공근육, 스마트의류, 형태 변용형 비행기 날개 등 실현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에 위치한 나노소닉사의 화학자들 손에서 탄생한 밀리미터 두께의 반짝이는 신소재는 어떤 충격도 견뎌낼 수 있다. 비틀거나 두 배 길이로 잡아 늘려보라. 아니면 200 온도에서 튀겨 내거나 비행기 연료 속에 던져 보라. 어떤 상황에서도 이 물질은 변형되지 않는다. 충격을 가하게 되면 금세 고무처럼 원래 형태로 돌아오는데 일반 금속과 같은 전기 전도성은 항상 변함이 없다. 나노소닉사의 나노 복합소재 개발 책임자인 제니퍼 호이트 랠리는 “다른 소재라면 이런 경우 전도성을 상실하기 마련이다.”라고 부연한다. 이 물질이 바로 메탈러버(Metal Rubber)이며 나노소닉사에 따르면 특유의 속성으로 인해 재료화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고 한다. 그 결과 현재 나노소닉 본사의 작은 사무실에는 인공근육에서부터 스마트 의류, 형태 변용형 비행기 날개에 이르기까지 각종 분야에서 메탈러버를 시험해보려는 정부기관 및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들로부터의 전화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나노소닉사는 가로 세로 12인치짜리 샘플 수요를 충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실정이다. 이 샘플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사흘간 맞춤형 로봇의 작업이 투입돼야 한다. 나노기술의 결정체인 메탈러버의 제조가 분자단위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의 속도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정전기성 자기조립이라 불리는 제조공정에는 우선 수용액이 담긴 두 개의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에는 각각 양전하를 띤 금속 이온과 음전하를 띤 탄력적 중합체가 채워져 있다. 로봇이 (유리와 같은)하전 기체를 두 용기에 번갈아 담근다. 이 과정에서 양 전하로 단단히 결합된 분자 층이 탄탄하고 질서정연한 형태로 서서히 형성된다. 이제 기체를 제거하고 나면 생성된 메탈러버를 볼 수 있다.1년쯤 후에는 투자자들의 폭발적 관심 속에서 메탈러버의 상용화가 시작될지 모른다. 형태 변용형 비행기 날개나 센서형 로봇 글로브도 머지않아 등장하겠지만 메탈러버는 우선 보다 단순하고 실용적인 용도로 첫선을 보이게 될 것이다. 가령 유연한 회로나 전선으로 탈바꿈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가전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고장 염려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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