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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 전위예술가 자동차디자인의 세계로

By Jessie Scanlon
Photograph by John B. Carnett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의 마즈다 레이스웨이 라구나세카에서 뒷바퀴가 닳아빠진 V8 다지 다코타 픽업트럭에 올라탄 프랭크 O. 게리는 스키드패드로 차를 몰았다. 날씨는 청명했지만 패드 표면은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으므로 몇 초 후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 고정관념을 타파한 디자인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에 소재한 티타늄 소재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 콘서트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설계사로서 현재 MIT 연구진과 함께 스킵 바버 레이싱 스쿨에서 프로 레이서의 운전요령을 습득하고 있다. 스키드 상태에서의 회복 요령, 발꿈치에서 발가락 부위까지를 이용한 기어의 저속변환, 포뮬러1 선수들의 고급 브레이킹 기술 따위를 말이다.

“공포의 순간이었죠.” 75세의 게리는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러나 그때의 목적은 단지 아드레날린 수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제작이라는 신규 프로젝트 연구를 위한 실험이었다. 현재 게리는 MIT 미디어 랩(Media Lab)의 연구진과 함께 기존 모델과는 판이하게 다른 컨셉트카의 디자인에 참여하고 있다.

미디어 랩의 선진기술과 게리의 전위적 디자인을 접목시킴으로써 자동차 디자인과 성능에 관한 고정관념을 타파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금번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미디어 랩의 스폰서인 제너럴 모터스와도 기술 지원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GM은 자동차 디자인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디자인 면에서 아주 우수한 기업입니다.” MIT의 건축 대학원 및 미디어 랩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윌리엄 미첼 교수의 지적이다. 이번 컨셉트카의 구상은 바로 이곳 미디어 랩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벗어나기란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지상과제죠.” 전자동식 컨버터블 지붕을 장착한 1951년형 르세이버 모델과 같은 초창기 컨셉트카가 GM 최초의 디자인 실장이었던 할리 얼에 의해 소개된 이후 컨셉트카는 자동차업계에서 미래 모델을 제시하는 주요수단이 돼왔다. 그러나 업계의 예시가 항상 들어맞지만은 않았다.

돌이켜 보건대 대담한 디자인의 1956년형 파이어버드II(미래형 전자동식 고속도로용으로 설계된 티타늄 차체의 터빈형 프로토타입)는 지나친 낙관주의로 인해 실패한 경우다. “너무 앞서가게 되면 신빙성을 잃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앞서갈 마음이 없다면 도전하는 의미가 없지 않겠어요?” 최근까지 GM 디자인부서의 부사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금번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웨인 K. 체리의 말이다.

- 0.38밀리 두께 티타늄 판

잭슨 폴록이 물감을 사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면 게리는 건물 벽의 본질을 혁신했다. 그가 빚어낸 곡선의 소용돌이 형태는 20세기 건축기술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한편 제강 및 건설 분야 전체에 걸쳐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유도한 계기가 됐다.

주변 언덕에서 바라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금속의 물결이 넘실대는 형상을 띠고 있다. 좀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물결의 정체가 가볍게 떨리는 0.38밀리미터 두께의 티타늄 판임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미술관이 21세기 최초의 건축물로 거론되고 있다. 이후 게리는 스틸 소재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벽돌 타워 및 구겨진 금속을 사용한 MIT 스테이터센터 설계로 지면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바 있다. 이처럼 새로운 건축자재의 사용은 줄곧 게리 디자인의 트레이드마크이면서 한편으로는 주변의 질타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체인 링크와 합판 소재를 실험적으로 응용했던 초창기 시절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에 대해 게리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죠.”라고 말한 바 있다. 꾸준히 지명도를 높여가던 게리는 1989년 건축부문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준 것은 1997년 빌바오 구겐하임이었다. 게리의 작업은 CATIA(computer-aided three dimensional interactive application; 컴퓨터를 이용한 3차원 인터랙티브 애플리케이션)라는 소프트웨어 툴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1990년 디즈니 콘서트홀을 위한 첫 디자인 작업이 초반부터 어긋나면서 고심하던 와중에 CATIA를 처음 접하게 된다. 오늘날 콘서트홀의 곡선형 벽면을 보노라면 빌바오 구겐하임의 아류작쯤으로 여겨지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처럼 뒤틀린 형상의 구조물은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겨줬다.

설계 당시 게리는 디자인만 담당하고 있었다. 게리의 2차원적 디자인을 상세한 서류 양식으로 전환하는 일은 별도로 고용된 설계사가 맡았다. 게리의 당초 계획을 정확히 담아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류 작성 후 산출된 건축비용은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고 1994년 착공은 지연되고 있었다.

- 엔지니어링상의 조정작업

한편 뒤늦게 합류한 파트너 짐 글림프는 게리의 디자인을 3차원 형상으로 보다 완벽하게 변환시킬 방법을 모색하던 중 CATIA를 발견해냈다.

CATIA는 본래 항공우주공학에 있어 복잡한 곡선을 형상화할 목적으로 프랑스 다소사(Dassault Systimes)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오늘날 자동차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애용되는 반면 디자인 분야에서는 그다지 널리 응용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세부적인 기계 및 엔지니어링상의 조정 작업이 이 프로그램의 본래 용도이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스케치나 이미지 위주의 연구 작업과는 무관하다 할 수 있다. CATIA는 매개변수적인 성격의 시스템이다. 차량의 각 부품을 서로 연계하여 하나의 모델로 탄생시킨다. 디자인상의 수정이 가해지면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기타 구성요소 전체가 일종의 연쇄작용을 통해 자동적으로 조정된다. 예컨대 차체의 폭을 넓히고 나면 액슬의 길이가 늘어나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이 소프트웨어는 일정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갖가지 소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는 시뮬레이션 기능을 구비하고 있다.

한편 게리는 여전히 스케치와 실제 모델을 제작함으로써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점차 건물 형태가 갖춰짐에 따라 이러한 프로토타입은 컴퓨터 자료로 입력되어 CATIA모델로 변환된다. 이를 통해 게리는 디자인뿐 아니라 시공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의 통제력을 부여받게 된다.

각 계약업체에서 밀링머신(milling machine)이나 레이저절단기처럼 컴퓨터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자사의 모든 장비에 CATIA모델을 직접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들 이처럼 첨단기술로 무장한 게리의 도전이 건축에서만큼이나 참신하고 파격적인 신차의 탄생으로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퀴 달린 제2의 빌바오 구겐하임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 허브 없는 바퀴같은 신종개발

신차의 엔지니어링은 MIT 미디어 랩 및 건축 대학원의 학생들과 다소 이질적인 신경생물학 분야의 박사 전공자 한 명으로 구성된 개발팀에서 진행 중이다. 이 팀은 미학적 측면을 넘어 혁신적인 섀시 디자인과 새로운 서스펜션 시스템, 안전벨트의 대체장비 및 허브 없는 바퀴와 같은 신종 설비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GM은 의외라고 여겨질 만한 디자이너들을 자사의 작업에 동참시켜왔다. 1992년 GM은 항공기 분야의 개척자로 알려진 버트 루탄과 함께 개발해낸 무게 1,400파운드짜리 컨셉트카 울트라라이트(Ultralite)를 선보였다. 작년에 소개한 파격적인 알루미늄 소재의 캐딜락16모델 역시 앨코아와의 공조 아래 탄생된 작품이다. 또한 스포티한 스타일의 허머H3T모델도 나이키의 도움으로 제작됐다.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디자이너에게 신차 디자인을 맡기면 백발백중 아주 새로운 결과물을 얻게 되죠.” GM 노스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디자인 디렉터인 프랭크 소시도는 이렇게 설명한다. “건축에 있어 게리가 창조해낸 것은 동적인 형상입니다. 공기역학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자동차 디자이너에게서는 좀처럼 기대할 수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신조어도 탄생하는 거겠죠.”
그동안 시계, 의자, 심지어 문손잡이의 디자인에까지 손을 뻗었던 게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별한 매력을 찾을 수 있노라고 평한다. “자동차란 상당 부분 미국 사회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내포돼 있죠. 또한 나름의 스타일과 상징체계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동차는 매력적인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GM에 있어 이번 프로젝트는 절체절명의 기회이다. 미국의 자동차업계를 대표하는 3사 모두 근래 들어 잇따른 경영수지 악화로 제조공정 합리화를 통한 원가 절감 노력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GM에서 취급하는 도어용 손잡이가 40종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는 5종에 불과하다. 또한 GM은 코벳C6이나 캐딜락 XLR처럼 상이한 모델의 기본 설계를 단일화함으로써 파격적인 디자인이나 엔지니어링 기술의 도입 여지를 줄이고 있다.

- 디자인과 기술의 시험대

더욱이 GM 컨셉트카의 경우 혁신적인 오토노미(Autonomy) 및 후속모델인 하이와이어(Hy-wire)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산라인과 긴밀히 연계되고 있다.

“이제 컨셉트카는 단지 상상속의 미래가 아닌 전략적 메시지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파사디나의 아트센터 디자인 칼리지에서 운송기기 디자인학과의 학과장대리를 맡고 있는 지오프 워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컨셉트카는 새로운 디자인이나 기술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라 할 수 있습니다.” 게리의 작품은 컨셉트카 대열의 일원이 되면서, 실제 생산으로 연계되진 않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이에 대해 워들은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자동차산업에 있어 디자인의 고정관념을 혁파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많은 도움이 요구됩니다. 게리가 이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새로운 구상을 착안하게끔 자극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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