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s by Jonathan Worth
인도는 붐비고 있다.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뱅갈로아와 미조르를 잇는 도로는 강물이 둑을 타고 넘듯 북적대고, 양방향 교통은 전례없는 교통수단들로 꽉 들어차 매연을 뿜어대는 디젤 트럭과 디젤 버스들, 쇠파이프를 엮어 만든 디젤 트랙터들이 즐비하다. 나무 바퀴를 단 채 밝게 칠한 브라마 소들이 끄는 짐수레도 있고, 등유든 식용유든 불이 붙고 싼 것을 연료로 쓰는 2기통 인력거들도 있다. 발동기 달린 자전거와 일반 자전거,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비틀대는 고물 택시로부터 번지르르한 16기통 메르세데즈 고급승용차까지 온갖 종류의 탈것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싱과 필자가 탄 것 같은 차는 단 한 대 밖에 없었다.
- 다이렉트 드라이브
싱이 이 차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다이렉트 드라이브”라는 엔진의 일부를 그가 재 발명 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발명으로 엔진이 더 깨끗하고 조용하며, 전세계의 내연기관들보다 온도가 낮게 유지되면서도 가솔린은 20퍼센트가 덜 든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저한테 그따위 것에 왜 시간 낭비를 하느냐고 묻습니다”라고 그가 노래하듯 인도식 영어로 외치지만 시끄러운 자동차들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제가 내연기관을 정복했다고요!”
싱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의 이야기는 보잘 것 없는 한 인도 아이가 꿈과 더러운 렌치 한 개만 들고 커다란 아이들에 도전하는 감동적인 인생드라마 같은 요소가 있다. 미 특허국의 시각에서 보면 그가 뭔가 새로운 것을 고안해 낸 게 분명하다. 하지만 미조르 출신의 올챙이 배를 한 철학자 같은 기계공이 정말로 전세계의 모든 자동차업체와 연구소, 열 공학자들이 찾던 혁신적인 엔진 효율을 발견한 것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싱이 발명으로 얻은 거라고는 대통령과 교수, 자동차업체들이 보내온 정중한 거절 편지들 뿐이다. 그는 수만 루피를 빌렸고, 뜬 눈으로 지샌 밤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의 눈동자는 팔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 오른다. 결국 그가 2004년에 힘겹게 얻은 결론이 있다면 자동차를 재발명하는 일이 특허와 개인적 신념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미조르는 인도의 정보기술 중심지인 뱅갈로어 남쪽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지만 70만 명의 주민들 대부분은 기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해왔듯 들일을 하거나 공장에서 일하며 비단을 짜거나 향신료를 종이에 말아 싼다. 마지막 왕이 아직도 스테인드 글라스와 97,000개의 전구들로 장식된 하얀 궁궐에서 산다. 매년 가을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모두가 차문디 언덕으로 순례를 와 태고적부터 타일식 지붕으로 이어진 마을을 돌봐 온 산신에게 기도를 한다. 이곳은 요가와 채식, 흰 전통 복장을 한 맨발의 남자들과 아름다운 색상의 전통의상을 머리부터 드리운 여성들로 유명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소멘더 싱은 괴짜였다. 청바지 복장의 락큰롤 가수에 가죽 재킷을 입은 오토바이 경주 챔피온이자 오토바이 공중 곡예사였던 그는 독학으로 행글라이딩을 배워 미조르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동력 행글라이더를 타고 궁궐과 시가지의 붉은 지붕들 위를 날았다. 대부분의 인도인들처럼 그도 신앙심이 두터워 산신에게 힘을 달라고 빌고 급한 성격을 다스리려고 힌두교 스승이 준 초록색 반지를 끼고 다닌다. 하지만 다른 인도인들과 달리 그는 빠른 속도의 스포츠에 푹 빠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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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D라고 적힌 작은 간판
싱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거칠고 빠른 속도에 탐닉했다. 그런데 열 살 때 크리켓 공에 눈을 맞아 부친을 좇아 공군에 입대할 수 없게 되자 싱은 하늘 대신 지상에서의 빠른 스포츠를 찾았다.
그래서 1968년 그는 구태의연한 시행착오식 커리큘럼에 싫증을 느껴 다니던 공과대학을 중퇴하고는 J.E.G. 하우드의 폭주에 관한 교본인 속도와 이에 도달하는 법과 고든 제닝스의 오토바이 지침서를 탐독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사서 경주하는 데 온 열정을 다 바쳤다. 스폰서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는 직접 팀을 구성하고 스피드웰(Speedwell)이라고 불렀는데, 이름에 걸맞게 좋은 성적을 거둬 국내외 대회에서 그는 120 차례 우승을 했다. 또 그가 정비해 준 오토바이들은 각종 대회에서 400회의 우승을 했다.
연이은 우승으로 그는 이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어 이 지역 방언인 카다나어로 최초의 뮤지컬이 제작되었을 때 프로듀서들이 그를 초대손님으로 초빙했다. 그는 먼저 일렉트릭 기타로 엘비스의 “하운드 독”을 연주한 후 간담이 서늘해지는 오토바이 스턴트로 계단과 자동차들을 뛰어넘었다. 1986년 오토바이 사고로 어깨와 목뼈가 부러진 후 싱은 헬멧 대신 렌치를 들고는 정비소를 차렸다. 괜찮은 차가 있고 미조르에서 하루 거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싱의 정비소는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되었다.
그의 정비소에 가려면 미조르 도로를 따라 스피드웰 튠업 센터 앤 가루다 R&D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보일 때까지 가면 된다. 간판 뒤쪽에는 조그만 철재 문과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차 서너 대와 이보다 좀 많은 오토바이들, 그리고 정비공의 작업실로 향하는 낯익은 어두운 입구가 보인다. 싱의 작업실은 일반 주택 기능도 해, 그는 이곳에서 부인과 열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산다. 앞마당에 있는 열대지방 나무 그늘에는 잠자는 개들과 녹슨 자동차 샤시들이 놓여 있다. 그의 조수인 네 아이들이 열린 후드 밑에서 미스테리가 밝혀지는 광경을 들여다 본다.
뒷마당에 있는 싱의 사무실은 기름칠이 된 채 쌓여 있는 차 엔진이나 부품들로부터 베이지색 커튼으로 차단되어 있다. 벽에는 기독교 성자들과 힌두교 신의 그림, 일반 정비공의 작업용 차트들이 빼곡히 붙어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싱의 과거 우승 사진과 신문 기사들 스크랩이 끼어 있다. 한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늘의 승자 싱, 5,000cc짜리 인간 기계.” 잔뜩 널린 사진들에는 평생 늙지 않을 것 같은 검은 눈의 그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숱 많은 검은 머리를 하고 있다. 사진들 밑에 있는 위협적인 포스터에는 공중에서 충돌할 것 같은 두 제트기 사진이 있고, 싱의 좌우명이 담긴 표지판이 붙어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 재떨이 모양의 쇳조각
“이게 문제였죠”라고 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그는 서류와 부품들이 수북히 쌓인 철제 책상 뒤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제 평생 어떤 사업을 시작하든 늘 이게 문제 였었죠.”
연장과 부품, 공책들이 편지와 도표들과 뒤섞인 채 쌓여 있는 이 책상 위에 콤파스의 끝부분 같은 네 개의 축을 관통해 거친 주름이 새겨진 작은 쇳조각을 볼 수 있는데, 집에서 만든 재떨이 모양으로 생겼다. 사실 싱의 문제는 바로 그의 발명품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도 고도의 창의성이 내포되어 있지만 기술적 측면에서는 아주 단순해서 차고에 앉아 연장으로 꾸준히 작업하면 만들 수 있는 장치이다. 이게 바로 싱의 발명에서 핵심이다.
“전 대단한 천재도 아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라서 제 발명은 아주 단순합니다”라고 인정하면서 그는 책상 위의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아이들용 칠판을 꺼낸다. “개념이 비록 단순하긴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려면 엔진의 특성을 결정하는 기화기 내부의 힘과 난기류, 연소에 관해 기본적인 이해를 해야 합니다.”
싱은 분필을 들고 연소실과 그가 발명한 실린더 헤드 덮개에 해당하는 사각형과 재떨이 모양의 원형 덮개 를 그린다. 이 덮개에 난 홈은 기화기 내의 공기와 연료가 더 잘 섞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싱은 이 홈이 연소 효율을 더 높여줄 거라고 확신한다.
아이들용 칠판이 새로운 공학적 개념을 설명하기에 너무 단순한 도구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연기관 자체가 그다지 첨단 기술이 아니다.
밀폐된 통에서 피스톤과 막대, 크랭크를 통해 폭발을 일으키는 내연기관의 기본 개념은 1673년 네덜란드 물리학자였던 크리스티앙 호이겐스가 발명한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폐쇄된 실린더에서 화약을 폭발시킨 힘으로 피스톤을 움직여 구동되는 기발한 엔진을 발명해 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액화연료를 이용해 제대로 작동하는 내연기관이 등장한 후 200년이 지나는 동안 스위스 엔지니어 프란시스 아이작 리바즈의 불안정한 4륜 수소 초기 모델(1807년)로부터 칼 벤츠와 고틸리에의 혁신적인 개발로 오늘날과 흡사한 형태의 가솔린 연료 모델(1880년대)을 거쳐 요즈음 볼 수 있는 헨리 포드형 모델(1900년대 초)로 발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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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연기관의 난기류
그 이후 가솔린의 옥탄가가 높아지고 캬부레타가 발명되었지만 일정 기간 동안 기술상의 진전이 없었다. 엔진 개발이 출력 중심에서 연비 중심으로 다시 바뀌었고, 엔지니어들은 열효율을 최대로 높이는 열쇠가 압축 방법에 있음을 알게 되면서 아마추어 수준에 머무르던 자동차 발명이 전세계적인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실린더내의 폭발력으로 크랭크를 돌리는 기본 개념은 사실상 거의 바뀐 게 없다. 그리고 이 기본 개념의 물리적 원리들 중 하나가 난기류이다.
난기류는 내연기관의 연소실 내에서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연료와 공기의 흐름이다. 이런 난기류에 의해 효율적인 엔진 내에서 탄화수소와 산소가 빠르고 격렬하게 결합되는 것이다.
압축된 연료는 정체되고 분리되기 때문에 연소가 된다 하더라도 화력이 약하다. 이는 마치 불붙은 전화번호부 책이 부채질을 해주지 않으면 잘 안 타는 것과 같다. 난기류는 책장을 잘 섞고 부채질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식 고압축 엔진 내부의 폭발 방식이다.
100년 전 난기류는 자동차 엔지니어들에게 구약성서의 혼돈과 같았다. 이 현상은 말이나 수식으로 설명할 수도 없었고, 핀 끄트머리에서 춤추는 천사들처럼 엔지니어들이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이처럼 난해하게 소용돌이치는 입자들을 토마스 무어 경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해리 리카르도라는 케임브리지 학장이 등장했다.
싱처럼 해리 경도 특이한 인물이어서 오토바이에 집착을 보였다. 하지만 1906년도에는 기술이 발달되지 못해 리카르도는 주머니에 두둑히 채운 석탄을 넣어 가동되는 증기엔진을 자신의 자전거에 달아 오토바이를 만들어야 했다. 최초의 자동차 정비공이었던 리카르도는 공기와 연료가 언제 가장 잘 섞이는지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최초로 이 개념을 실험해 보며 팬의 회전 속도 대비 연소율을 측정했는데, 팬의 회전이 빠를수록 연소율이 높았다. 결국 리카르도는 폭발의 열쇠를 찾아냈다.
현대의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난기류를 원하고 수학자들이 카오스를 설명하듯 난기류에 대해 묘사할 수 있다. 이들은 연료와 공기가 잘 뒤섞이며 분자 단위까지 완전 연소될 수 있도록 하고 싶어한다. 연소실 안에서 공기와 연료가 만델브로의 프랙탈 패턴처럼 잔가지를 치며 분해된다고 상상해 보자. 이때 스파크가 발생하면 모든 것이 거대한 프랙탈 퓨즈처럼 연쇄적으로 타들어가게 된다.
- 강철로 둘러싸인 미스테리
엔지니어들은 연소실 안에서 이런 특이한 형태의 연소가 발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온갖 기술들을 고안해냈다. 이중에는 정교하게 각을 준 연료 분사기와 소용돌이를 발생시키기 위한 돔형 실린더 헤드도 있다. 하지만 100년 전에 리카르도는 연소실 내에서 공기와 연료를 보다 확실하게 섞는 보다 쉬운 방법을 발견했다. 그는 가운데가 돔형이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경사가 진 승마 모자 모양의 연소실을 제작해 올라오는 피스톤의 테두리가 실린더가 헤드의 각이 진 둘레에 가까이 접근하도록 했다. 피스톤이 올라오면 연료가 테투리를 따라 소용돌이치며 중앙으로 흘러 들어와 공기와 섞이면서 점화플러그를 싸고 돈다. 젤리 도넛의 가장자리를 꼬집는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이 개념을 “억누른다”고 표현했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을 “찌그러뜨린다”고 표현한다.
찌그러뜨린다니! 웃음이 절로 나올 명칭에 단순하기 그지없는 아이디어이지만 현재 전세계에서 작동중인 수십억 개의 내연기관들은 모두 이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싱이 오토바이계에 몸담고 있던 30년간 사고판 엔진들도 모두 이에 포함된다.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엔진의 심장부이자 미스테리의 중심부인 연소실에서의 점화력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연료가 폭발력으로 바뀌는데, 과거에는 폭발 효율이 28퍼센트에 불과했었다. 연료의 대부분이 엔진의 열이나 배기가스로 누출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발달 과정에서 자동차업체들은 연료의 효율을 높이려고 온갖 모양의 엔진과 밸브 배열을 시도했었지만 연소실 자체의 표면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던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싱은 엔지니어들이 연소실의 철제 벽 내부에서 발생하는 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연소실은 강철로 둘러싸인 미스테리였다. 엔진 자체는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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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화 플러그까지의 비틀림띠
“오래전부터 저는 엔진을 하나 구해 가장자리에 주름을 만들어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게 하려 했었습니다”라고 싱이 회상한다. “전 이 엔진들을 공장에서 제작한 게 신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 시간에 맞춰 부품을 조립하는 보통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개선의 여지가 상당히 있었던 겁니다.”
싱은 자신이 만든 엔진의 효율성을 가능한 한 최대로 높일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려면 연료가 최고로 압축된 상태에서 완전히 연소되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비공들처럼 그는 최고 압축 한계점에 직면했다. 압력이 이보다 높아지면 불완전 연소된 연료들이 저절로 폭발하는 “노킹” 현상이 발생한다. 그는 점화플러그에서 분사되어 나오는 불길이 실린더 가장자리에 있는 연료에까지 골고루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노킹 현상을 방지하려면 고옥탄가의 가솔린을 사용해야 했지만 인도 같은 나라의 레이서들은 이를 구할 수 없었다. 압축률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이 싱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연료와 공기를 더 잘 혼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야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리카르도의 찌그러뜨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싱은 이전의 다른 튜너들처럼 상승하는 피스톤 헤드가 가능한 한 찌그러뜨린 실린더 가장자리까지 바짝 접근하도록 실린더 헤드를 최대로 찌그러뜨렸다. 하지만 노킹 현상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비틀림 기류로 인한 요동이 너무 심했거나 폭발하는 탄화수소가 비틀림 띠에 갖힌 채 점화플러그에서 발생한 불꽃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압축으로 인해 공기와 연료의 혼합이 정체되기 때문에 비틀림 띠와 스파크 중심부 사이에 소용돌이형 프랙탈 퓨즈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런 직관과 연장을 갖춘 채 싱은 리카르도의 100년 된 개념에 자신만의 작은 흔적을 새겨 넣었다. 그는 실린더 가장자리로부터 점화플러그까지 비틀림 띠를 만든 다음 파고 또 파냈다. 첫 번째 통로가 얕게 패여서 금방 탄화수소로 메워져 버리자 그는 홈들을 더 깊게 팠다. “우리는 잔뜩 겁이 났었습니다”라고 그가 분필을 놓고 골드 플레이크 담배를 집어들며 고백했다. “사실상 실린더 헤드까지 유도로를 판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엔진은 금이 가지 않았고 변화가 발생했다. 압축률은 높아졌지만 엔진 소음은 줄어들었다. 연료 소모도 적어진 것 같았다. 주사기와 스톱워치로 측정을 해 본 후 싱은 연료 소모가 10~20퍼센트 줄었음을 알아냈다. “아주 짧은 순간 와전히 바뀌어 버렸던 겁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공회전시 팬의 날개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연소율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 엔진 폭발력의 개선
그는 배기관에 맨손을 갖다 대 보고는 배기가스 온도가 낮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점화플러그를 떼어내 보자 푸른 색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연소실내의 높은 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배기관 안쪽을 훑어보자 뭔가 다른 것이 만져졌는데 바로 불연소된 탄화수소였다. 그의 엔진은 배출가스가 더 적게 나오는 것 같았다. 자동차분야 용어로 말하자면 그의 비틀림띠 통로로 연소가 극대화 돼 점화플러그에서 발생된 엷은 불꽃이 사각지대인 실린더 가장자리까지 퍼져 나가 결국 더 많은 연료들이 팽창 가스로 전환됨으로써 피스톤 작동중에 자발적 연소로 인한 불연소 탄화수소 배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반 용어로 하자면 폭발력이 개선된 것이다.
사실 성능이 너무 많이 향상되어 그는 500rpm에 기어를 4단으로 놓은 채 소달구지와 인력거,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북적대는 시가지를 돌아다녀도 노킹 현상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그의 엔진은 너무 느려 변속기 조작이 거의 필요없는 “직접 구동” 방식이었다.
그의 개조 작업은 오토바이로부터 시작해 2기통과 4기통 엔진, 첫 자동차를 거쳐 결국 자동차 50대 개조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장모에게서 돈을 빌려 최신식 타타 인디카를 구입해 자기가 만든 엔진을 달았다. 그는 이 차를 “직접 구동식”으로 장식하면서 핸들에 접착식 글자들을 붙였다. 그런 다음 주간뉴스 전국지의 필자로 느려터진 1.2리터짜리 피아트 팔리오 자동차를 갖고 있는 바누티를 비롯해 몇몇 고객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았다.
“확실히 차 전체가 변했어요”라고 바누티가 회상한다. “더 날렵했거든요. 3단으로 놓은 채 시속 20킬로미터로 감속해도 노킹이 발생하지 않았고, 가속 페달을 밟으니까 마치 1단에 놓은 것처럼 부드럽게 속도가 높아졌어요.” 그는 자신이 개조한 엔진이 의외로 조용하다는 것도 발견했다. “잠시 정차할 때면 앞창으로 엔진이 계속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전혀 다른 차 같았습니다.” 바누티의 피아트 판매점 정비공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정비공이 별로 크지도 않은 차가 그렇게 탁월한 성능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바누티는 말한다. “그는 연료에 뭘 첨가했냐고 끈질기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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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허와 원형모델 확보
싱은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것 같다. 비록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이 적중했다고 확신했다. 확실히 그의 발명은 독특한 것이어서 싱은 1999년 1월 특허를 출원했고, 2001년 5월 특허청에서는 그에게 6237579번 특허를 발급했다. 그의 발명이 특허청 웹사이트에 게재된 지 두 달 후 제너럴 일렉트릭의 엔지니어들이 부품 시장용으로 거의 똑같은 특허를 출원했다. 그들은 싱처럼 자신들의 발명으로 폭발력이 증가되어 연료 효율이 높아지고 배기가스 방출은 감소된다고 주장했다.
“제 특허가 공개된 후에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이런 생각을 해냈다니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싱이 웃는다. “하지만 그 친구들 디자인이 영 아니던 걸요. 부품을 첨가하는 방식으로는 연소실의 강한 힘을 버텨낼 수 없거든요. 제가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더라면 특허 출원은 고사하고 창피해서 누구한테 얘기도 못했을 겁니다.”
미조르 도로변의 정비공이 10억 달러짜리 연구개발 부서를 이긴 듯 싶지만 그가 실제로 발명한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작동한 것일까? 싱은 특허와 원형 모델을 확보했다. 이제 남은 건 그의 발명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싱은 수십 통의 편지를 써서 자신이 발명한 점화플러그 사진과 함께 발송했다. 그는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도 편지를 보냈는데 총리 직인이 찍힌 감사 회신을 받았다. “영국인은 확실히 달라요”라고 그가 자랑스레 말한다. “최소한 편지에 답장은 해주니까요.” 그는 인도의 압둘 칼람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썼는데 계속 답장이 오면서 지켜보겠다고 했지만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그는 디어본과 푼, 포드와 타타 모터스 같은 자동차업체에도 편지를 보냈다. 인도의 자동차업체인 타타는 다소 관심을 보이는 듯 했지만 싱은 나중에서야 이것이 정중한 거절임을 깨닫게 되었다. 포드에서는 “행운”을 빈다는 답장을 보냈는데 싱은 이 회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포드는 자사의 웹사이트 fordnewideas.com을 통해서 그의 “제안”을 제출해 보라고 권했지만 싱의 기분만 더 상했을 뿐이었다.
- 발명품 점화 플러그
포드 글로벌 테크놀러지는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1,200명의 혁신가들로부터 얻는데, 학사부터 박사까지 60개국이 넘는 나라들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미시간주 디어본의 과학 연구 실험실이나 독일 아첸의 연구센터 같은 초대형 연구시설들에서 연간 500건의 특허를 출원한다. 싱과 같은 외부인은 웹사이트를 통해 아이디어를 제출하도록 하는데, 매년 5,000건의 제안이 발명가와 연구원, 정비공과 고객들, 그리고 심지어 어린아이들로부터도 접수된다.
하지만 이렇게 대중들에 끼어 제출을 하는 건 싱의 스타일이 아니다. 어쨌든 그는 내연기관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법률적 기권 증서에 동의한 채 평생을 바쳐온 황금 같은 기회를 잘 되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런 보답도 없이 날려버리고 싶진 않았다. 대신 그는 이 회사 사장에게 정식으로 직접 편지를 쓰고는 발명품인 점화플러그 사진을 동봉해 보냈다. 그는 인정을 받고, 선택되어, 정정당당하게 정문으로 초대받고 싶었다. 자신의 발명이 공개 포탈 사이트에서 자주 인용이 되자 싱은 접근 방법을 바꾸었다.
싱은 남은 희망과 열정을 다해 과학자들에게 끈질기게 편지를 썼다. 분명 엔지니어들이 그의 발명의 중요성을 이해할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흠집을 낸 실린더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통찰력은 제공해 주리라 믿었다.
싱은 자기 생각대로 썼기 때문에 그의 편지들은 흥분된 어조에 화려한 수식어구들로 채워진 문서들이었다. 그는 편지에서 연소와 난기류, 제반 상황들에 관한 자신의 이론들을 알록달록한 색깔들로 칠하고 감탄부호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답변은 이보다 간단했다. 내연기관을 정복했다고? 구식 디자인의 엔진에 싸구려 연료를 사용하고, 과학 장비로 평가도 안해 본 데다 낙후된 나라에서 한 실험이라고? 제대로 된 연구개발실에서라면 했을 50만 마일 주행 시험도 안 했고, 개조했다는 엔진중에 기껏해야 도로에서 65,000마일 시험해 본 것 밖에 없지 않는가?
더구나 인도 차 말고 다른 나라 차로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종류의 연료를 넣고 실험을 해 본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동력계에 연결해 출력과 회전력 테스트도 안 해봤다. 그렇다고 싱이 질소와 탄소, 불연소 탄화수소 산화물과 총 연비를 보여주는 공식 분석자료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
계속…
- 테스트 실험은 하늘에 별따기
싱의 발명은 방갈로어-미조르 도로에 즐비한 저효율 엔진과 싸구려 가솔린에는 쓸모가 있었겠지만 대형 자동차 엔진에 적용하려면 현대식으로 개조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개조를 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으리라고 어떻게 싱이 장담할 수 있냐고 과학자들은 반문한다. 싱은 조용하고 낮은 rpm, 푸른 점화플러그와 깨끗한 배기구에 관해 설명했다. “더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죠?”라고 그가 물을 것이다. “세상에 뭘 더 보여줘야 하죠?”
과학자들은 싱이 그의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수치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싱이 살고 있는 인도에서는 실험을 하기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우선 비용이 문제다. 가장 기본적인 엔진 테스트 비용만도 25,000루피, 혹은 550달러에다 엔진과 부품, 조수와 연료 비용이 별도로 든다. 아마추어에게는 엄청난 돈이다. 보통 사람의 연간 수입이 250달러인 인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이다.
어떻게 해서 돈을 구한다 해도 인도에서 실험을 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싱은 독일 엔진 테스트 대기업의 발갈로어 자회사인 미코-보쉬에 돈을 지불할테니 반나절만 테스트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간청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다. 인가된 엔진 테스트 시설은 인도 전역에 단 세 곳 밖에 없고, 엔진 제조업체들만이 이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싱은 곧 알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아마추어 발명가가 25,000루피가 있더라도 엔진 제조업체로부터 서면 허가를 받지 않으면 실험장에 들어가 자기 마음대로 낡은 엔진을 시험해 볼 수가 없다.
“전 이 대기업체 사람들이 ‘좋소, 한 번 해 봅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봅시다!’라고 할 줄 알았죠”라고 싱이 말한다. “아니면 적어도 제 돈을 받기라도 할 줄 알았어요.”
제조업체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규정은 분명 수입업체나 제조업체, 인도 정부에서 공개한 엔진 출려과 배기량에 관한 공식 데이터를 개인들이 문제삼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이단아가 나타나기를 원치 않아요”라고 싱이 나지막히 설명한다.
- 문제는 사이드 밸브
사실 2002년 11월에 싱은 한 제조업체로부터 그의 개조 엔진을 실험해보도록 허락을 받았다. 이 제조업체는 브리그스 앤 스트래튼이었고 테스트용 엔진은 149cc짜리 사이드 밸브 2개였다. 싱은 3,000달러를 빌린 후 500마일을 달려 푼에 있는 인도 자동차 연구 협회(ARAI) 실험장에 도착했지만 실험은 계속 연기되었다. 그는 싸구려 호텔에서 초조하게 왔다갔다 하며 담배를 피워 문 채 2주동안 아까운 돈만 날리며 기다렸다. 싱은 혈압이 올라 짙어지는 관자놀이를 기름때가 절은 손가락으로 누른 채 이렇게 말했다. “어떤 때는 잔인한 의지력 테스트 같았습니다.”
결국 그는 엔진들을 가져와 5종 가스 분석기가 달린 벤츠 EC-70 검력기와 벤츠 중량 이용 연료 측정 장치에 연결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1주일 후 결과가 나왔다. ARAI에 따르면 2,000에서 2,800rpm 사이에서 싱의 개조 엔진은 개조되지 않은 동종 엔진에 비해 연료를 10~42퍼센트 적게 소모했지만 이상하게도 회전력이나 출력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가 짐작했듯 엔진 온도도 16도나 낮았다.
이는 대단한 성공처럼 보였다. 주유소의 가솔린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협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는데다, 세계 자동차업체들은 의무적으로 부과된 연비 기준에 맞추면서도 시장에서 요구하는 대형차를 출시하기 위해 온갖 옵션들을 연구하고 있다. 올봄에 GM과 포드는 공동으로 10억 달러를 투자해 이미 유럽에서 대중화된 6단 변속기의 자체 모델을 개발, 연비를 4퍼센트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비해 싱의 발명품은 5배나 높은 연료 절감비를 제공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브리그스 앤 스트래튼은 연비에는 관심이 없고 배기가스 감소를 원했다. 그런데 실험 결과에 의하면 싱의 개조 엔진은 배기가스 배출이 약간 많았다. 암담한 상황이었다. 싱은 유일한 스폰서를 잃었고, 아무 쓸모도 없는 실험에 아까운 돈만 낭비했다.
“문제는 그게 사이드 밸브였다는 점입니다”라고 35세의 포르쉐 튜닝 전문가이자 오레곤주 포틀랜드 소재 렌스포츠 시스템스 소유주인 스티브 와이너가 설명한다. “1950년대 이후 이런 걸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잔디깎이에도 안 쓰죠. 효율이 너무 낮고 배기가스도 많이 방출하거든요.”
계속…
- 주름띠 헤드 실린더
와이너의 말에 따르면 싱이 자신의 엔진 성능을 입증하려면 표준 엔진으로 과학적인 A:B 테스트를 했어야 했다. “주로 사용되는 고효율 엔진과 5종 가스 분석기로 먼저 실험을 한 다음 엔진의 실린더 헤드를 개조된 것으로 교체하고 다시 실험을 한 후 결과를 직접 비교하는 겁니다. 배기가스 방출은 같으면서 연비가 증가한다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걸 발견해낼 수만 있다면 미국이나 유럽 어디에서 유효하든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싱이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입증해 보여주고 싶어도 테스트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아이들 분필로도 그려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사실이라 그는 더욱 미칠 지경이다. 그는 손가락에 낀 초록색 반지를 빙빙 돌려대다가는 얼굴을 감싸 쥔다. “이 빌어먹을 나라 같으니”라고 그가 말을 내뱉는다. “힌두교 축제에는 다들 수백만 달러씩 써대면서 위대한 발명가가 간단한 엔진 테스트 한 번 받으려면...”
싱의 말끝이 흐려지며 텅빈 차고의 텁텁한 열기 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자리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특허 서류와 거절 편지들 위에 팔꿈치를 걸치고 있다. 5년 전 싱은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지역의 유명인사로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지쳐보인다. 그는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편지를 썼고, 자신의 대의명분에 관심을 가질 만한 신들에게 모두 기도를 했다. 현재 그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다.
소멘더 싱의 삶을 다룬 영화에서는 전화가 울린다. 주요 자동차업체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그의 편지들 중 한 통을 받아 특허를 검토한 후 거래를 할 준비가 되었다. 싱의 아이디어는 컴퓨터와 첨단장비들을 갖춘 세계적인 실험실에서 테스트되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클립보드를 바라보고, 싱은 천재의 영에를 얻으며 자신의 주름띠 실린더 헤드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돈을 받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싱은 호화롭게 차려 입은 아내와 딸을 그의 직접 구동 원형 차에 태우고 조용하고 시원하게 금으로 도금된 차고가 딸린 대저택으로 향한다. 세상은 공평하고 바르다. 감동적인 순간이다. 영화관의 불이 켜진다.
- 평생 처음찾은 후원자
현실로 돌아오면 싱과 필자가 작은 사무실의 이글거리는 열기 속에 그냥 앉아 있다. 멈춰버린 선풍기 아래로 파리들이 한가하게 맴돌며 날고 있다. 개가 마당을 가로질러 차고 바닥의 시원한 새 그늘로 자리를 옮긴다. 하루가 지나도 이와 똑같을 것이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전화가 울린다. 타타 모터스에서 온 전화다. 영국 로버사에 자동차를 공급하는 35억 달러 규모의 인도 자동차업체인 이 회사에서 그의 편지들 중 한 통을 받았던 것이다. 타타사의 엔지니어들은 그의 특허를 보고 동봉한 점화플러그 사진을 조사한 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약 그가 5년간의 비밀 준수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 푼에 있는 실험실에서 적절한 검력계로 그가 발명한 엔진을 테스트 해보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금전적 보상에 대한 약속은 없었다. 하지만 평생 처음으로 싱의 꿈은 후원자를 찾은 것 같았다. 그가 발명한 주름띠 실린더헤드가 효과가 있을지, 연료가 과연 절감될지, 배기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거나 실린더 헤드에 금이 가게 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싱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거절 편지 더미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개조된 주름띠 오토바이 위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환호성이라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싱은 지난 수년간 기대와 실망을 수도 없이 반복해 이젠 섣불리 기뻐하지 않고 조심스런 태도를 보인다. 그는 전화기를 조용히 내려 놓더니 가만히 앉아 앞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손을 뻗어 담배를 집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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