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해리스를 피에 굶주린 21세기판 칼리굴라쯤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며 전위적인 레이스카를 디자인한 이 시대의 선구적 엔지니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데이토나 24시 경기나 바하1000 랠리를 통틀어 해리스가 선보인 레이스카 중 현재 구상 중인 작품만큼 기발한 모델은 찾아볼 수 없다. 제한규정이 없어진다고 상상해보자. 모조리 남김없이 말이다. 아무런 제한이 없는 완전한 자유천지라고 말이다.
이제 어떤 기술이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시간도 무제한으로 허용된다. 과연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해리스는 샐러드 접시에 손도 대지 않은 상태이다. 와인 역시 그대로였다. 생각에 빠져버린 해리스는 지금 공기역학장치와 섀시, 엔진옵션, 브레이크시스템 및 기타 설비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들고 있다. 대화영역이 계속 넓어진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말이 뚝 끊겨버렸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평소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해리스에게 있어 이것은 우려할 만한 신호다.
“이거 정말 우습게 돼버리네요.” 농담 반 조소 반 콧방귀를 뀌며 해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 모양이 형편없어지겠는데요.””네? 뭐가 형편없어지는데요?” 나는 반문했다.
인내심 테스트 레이스카
그리고는 이내 우리 모두 홍소를 터뜨렸다. 사실 나로서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해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레스턴씨,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볼 레이스카가 등장한다 이겁니다. 그래서 차량으로부터 전송되는 텔레메트리(telemetry)를 들여다보는 엔지니어 대신 실험실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선수의 신체상태를 모니터하는 거죠. 혈압 담당, 혈액 산화수치 담당, 심박수 담당 박사가 차례차례 포진한다는 얘깁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건 그냥 단순한 자동차레이스가 아닙니다! 제약회사와 의사들 간의 한바탕 전쟁이 될 테니까요!” 20세기의 상당부분에 걸쳐 레이스경기는 자동차산업에 있어 전쟁이 항공 산업에 대해 미친 영향만큼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다시 말해 기술혁신의 시험대 구실을 해준 셈이다. 1911년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를 통해 백미러가 첫선을 보였으며 디스크브레이크는 1950년대 유럽의 도로경기에서 그 실용성이 입증됐다. “레이스를 통해 자동차가 발전한다”는 말이 단순히 선전문구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매주 일요일 르망(Le Mans)의 시케인(chicane; 감속용 장애물)에서부터 본느빌의 소금기 가득한 평지와 미국 포덩크스빌의 메마른 타원형 지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주장은 속속들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신기술을 레이스에 도입하기 시작했고 기업들의 후원 아래 수백만 달러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전례 없는 기술 혁신이 거듭됐다. 하루가 다르게 속도가 향상됐다. 선수들의 사망률도 급증했다. 그 이후로 경기규정은 감속을 최우선순위에 두게 됐다. 이는 대부분 첨단기술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실현됐다.
그 결과 요즘의 레이스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여러 측면에서 일반적인 경제형 차량보다도 낙후된 양상을 보인다. 영국의 공기역학자인 마크 핸드포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은 기술이 퇴보했다고 말합니다.
제한규정 적을때 뛰어난 차 탄생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메르세데스 E클래스 모델의 제품설명서만 슬쩍 보더라도 거기에는 전자식 안정성 조절 장치, 차세대 안티록 브레이크를 포함해 포뮬러1경기에서 사용 금지된 온갖 장비가 즐비하게 나열돼 있습니다. 이런 기술을 곁에 두고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죠. 역동적인 레이스를 보고 싶다면, 기술 혁신을 앞당기고 싶다면 그리고 최첨단 엔지니어링 설비로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싶다면 종이 한 장 분량만 채워도 금세 완벽한 메뉴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모터스포츠의 규정집은 상세한 엔지니어링 해설서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제한규정이 가장 적을 때 가장 뛰어난 레이스카가 탄생했다. 고로 문제의 규정집을 내던져버린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추후의 사태는 모두 어떤 트랙에서 경기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인디(Indy)뿐 아니라 르망, 모나코 경기의 우승 차량을 설계한 바 있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토니 사우스게이트의 말이다. “현실적으로 몇 가지 규칙은 제정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폭이 너무 넓게 디자인되는 통에 트랙을 혼자 다 차지해버리는 것과 같은 촌극이 빚어질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 따라서 차에는 바퀴가 장착돼야 한다. 몇 개가 되든 상관없다. 직선코스와 가파른 곡선코스가 위험천만하게 뒤섞인 르망의 트랙 위에서 2시간을 버틸 수만 있다면 족하다. 크기는? 도시락 통보다는 크고 허머(Hummer)보다 작으면 그만이다.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다음 세 개의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공기역학, 공기역학, 공기역학. “썩 내키진 않지만 중요성 면에서 공기역학이 단연 앞서리라는 예감이 드는군요.” 모터스포츠용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키아 캐미어츠의 말이다. 풍동(風洞)테스트에서 레이스카의 성능을 분석하느라 무수한 시간을 보내본 경험자로서의 소견이다.
공기역학은 엔지니어에게 있어 가장 규제가 엄격한 항목이다. 그러므로 규제가 사라질 경우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날개(wing)를 잘라내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날개란 다운포스(downforce)를 생성해내는 한편 차량 위로 수직의 압력을 가하고 레일 위에서와 다름없는 코너링을 구사하게끔 도와주는 장치가 아닌가? 물론 그러하다.
70년대 1세대 역날개 장착
사실 제1세대의 날개, 정확히 말해 역날개(inverted wing)는 1970년과 1972년 사이 인디 경기에서 랩속도를 시간당 170마일에서 196마일로 대폭 향상시켰다. 하지만 70년대 말 공기역학 연구를 통해 다운포스를 생성해낼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발견됐다.
이른바 지면효과로 알려진 이 방법에서는 차체와 노면 사이에 저압 구간을 형성해 트랙션효과를 배가시킬 수단으로 하부날개(underwing)가 사용된다. 여기서의 하부날개란 차의 섀시 바닥 면에 만들어진 벤추리형 터널을 가리킨다. 지면효과로 인해 기록이 대폭 향상되자 금세 하부날개의 크기와 형태를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됐다. 제한규정만 제정되지 않았더라면 가능한 한 공기를 많이 가두어 최대치의 다운포스를 생성해낼 수 있도록 거대한 터널이 출현했을 것이다. 효율성을 제고할 목적으로 이 터널에는 필요에 따라 포장노면 위로 펼쳐져 마찰을 유도할 “스커트(skirt)”가 부착됐다. 오늘날 포뮬러1경기의 출전 차량은 150mph의 속도에서 2,500파운드 상당의 다운포스를 이끌어낸다. 제한규정만 없다면 이보다 10배에 달하는 다운포스도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얘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면효과 이외에도 트랙션기능을 배가시키기 위해 진공청소기에서와 같은 섹션(suction)을 사용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효과적이죠.” 자동차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셰브롤레 R&D에서 엔지니어로 재직한 바 있는 폴 반 발켄버그의 말이다. 1968년 셰브롤레 R&D에 재직 중이던 발켄버그는 차체를 지면에 밀착시키는 섹션 기능의 팬을 실험용 섀시에 장착했었다. 이와 유사한 시스템이 1970년도 섀퍼럴2J 캔암(Chaparral 2J Can-Am racer) 모델에 사용됐다.
비록 “섹션 차량”이 우승하진 못했지만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진공기술은 즉각 사용 금지되고 말았다. (개념상 유사한 팬을 장착한 레이스카가 1978년도 포뮬러1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바로 금지 조치됐다.)
인간이 감당할수 없는 코너링
섹션 팬은 보조모터나 메인엔진을 통해 동력을 조달받는다. 지면효과와 달리 진공 섹션은 속도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느린 커브 시에도 엄청난 그립(grip) 성능을 발휘한다. 진공기술과 지면효과를 합쳐보자. 그러면 양력 대 항력 비율(lift-over-drag ratio; L/D비율)이 20:1에 달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요즘의 레이스카는 평균 3:1정도를 상회한다.) 또한 터닝 시 현재 3~5에 머무는 G포스(G-force)의 최대치도 금세 두 배, 세 배로까지 증가한다.
이는 곧 엄청난 코너링 속도로 전환되는데 인간의 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육박하게 된다. 3년 전 참가 선수 대부분이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텍사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의 인디 카레이스가 취소된 적이 있다. 당시 주행속도는 235mph에 불과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높은 G포스 때문에 내이의 균형상태가 깨짐으로써 이와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속도가 300mph를 초과해 상승함에 따라 G로드(G-load)가 악화되면서 운전자는 흡사 고속 원심분리기 속에서 잔뜩 늘어난 얼굴 가득 섬뜩한 미소를 짓게 되는 수습 우주비행사과 다름없는 상태에 다다른다.
기묘한 양상을 띠는 것은 운전자만이 아니다. 공기역학 장치에 대한 제한규정이 사라질 경우 또 한 가지 다른 결과가 예상된다. 즉 차량의 모습이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미사일과는 판이하리라는 것이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바퀴는 차체 내부에 배치된다. 조종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면효과와 석션 기술이 폭이 협소한 상태보다는 넓은 상태에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므로 차량의 형태는 크고 네모난 모양으로 낙착될 것이다. “차체의 측면에서 볼 때 섹션 기능에 이상적인 차종은 픽업트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챔프카 시리즈(Champ Car series)의 기술 디렉터인 리 딕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때 차체는 앞에서와 같이 여건에 따라 형태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다. 가령 에어브레이크로 기능할 때는 수직으로 곧추서게끔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컴퓨터로 인해 공기역학기능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직선코스에서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반면 커브 시에는 다운포스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인디 레이싱 리그의 레이스 엔지니어인 디자이너 존 워드의 설명이다.
무제한 레이스와 동력장치
무제한 레이스에 있어 공기역학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동력장치이다. 로켓은 고려해볼 가치가 있으며 핵무기도 응용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특히 역추진 로켓의 경우는 차량의 회전과 정지 동작을 돕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왕 말한 김에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했던 시간변환장치(flux capacitor)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제 진지하게 얘기하건대 소형 가스터빈은 기존의 4스트로크 피스톤 엔진의 자리를 메울 가장 매력적인 대안책이다. 사실 프랫&휘트니(Pratt&Whitney)의 헬리콥터 터빈을 변형하여 장착한 차량이라면 사용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이전인 1967년도와 1968년도에는 인디500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터빈은 최상급의 출력 대비 무게 비율(power-to-weight ratio)을 자랑하며 4스트로크 피스톤 엔진에 비해 크기는 작으면서도 토크 면에서는 앞선다. 또한 차체의 회전을 돕기 위해 스러스트(thrust)의 각도가 조율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단점은 없는가? 스로틀 랙(throttle lag)으로 인해 터빈 기능에 지장이 초래된다. 속도를 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다 다시 속도를 늦추는 과정에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경주용 차량으로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 문제는 결코 해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태여 신경 쓸 필요가 있겠는가? 25년 전만 해도 인디 경주용 엔진의 제작자들은 기이한 연료와 터보차저(turbocharger; 배기터빈과급기)를 사용하여 놀랄 만한 성과를 달성했는데 당시 오펜하우저 엔진으로부터 1,000HP의 마력을 끌어낸 바 있다.
오펜하우저(Offenhauser)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진 피스톤 엔진이다. 오늘날 최상급 연비의 드랙스터(dragster; 드랙레이스용 자동차)에 장착되는 초대형 엔진의 마력은 기록적인 6,000HP에 이른다. (비록 몇 초 동안만 지속되지만 말이다.) 이 엔진의 제작연도 역시 오펜하우저와 엇비슷하다. 요즘의 포뮬러1 경기용 차량은 외부로부터의 유도 없이도 3.0리터당 900HP 즉 리터당 300HP의 마력을 이끌어낸다. “터보차저나 슈퍼차저를 사용할 경우에는 리터당 1,000~1,200HP상당의 마력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혼다의 성능개발부서 부사장인 로버트 클라크의 설명이다.
사용 가능한 최대 마력수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큰 마력을 원하는가가 아니다. 어느 정도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이다. 반 발켄버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첫 번째 난관은 타이어 고무의 열 흡수 능력일 겁니다. 그리고 다음은 고무가 열을 얼마나 오래 견뎌낼 수 있는가겠죠. 세 번째는 트랙이 이런 마찰을 얼마나 오래 버텨낼 수 있는가일 겁니다.” 타이어에 가해지는 하중은 열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운포스로 인해 발생하는 수직 방향의 하중이든 코너링 시 측면 방향에서 발생하는 하중이든 말이다. 이것은 일정 한도까지는 유익하게 작용한다.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사의 아크론 기술센터에서 엔지니어로 재직 중인 데일 해리글에 따르면 이 회사의 인디용 타이어는 180~200도의 온도에서 최고의 그립기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러나 고무의 온도가 이 수준을 초과하게 되면 점차 부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갈라지다 마침내 터져버리고 만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해리글은 “우리 회사에서는 열을 분산시킬 방법을 항상 모색하고 있죠.”라고 덧붙였다.
타이어의 하중 가운데 일부는 하이테크 소재 사용으로 덜어낼 수 있다. 하이테크 소재를 적용함으로써 차량의 무게를 절반까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코너링 시 발생하는 하중은 2배, 3배로 증폭될 수 있으며 속도 역시 급상승하게 되므로 새로운 고무 합성소재 및 축조기술의 도입이 요구된다. 타이어의 폭이 넓을수록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공기 저항력이 이전보다 향상된 트랙션효과나 내구성을 앞지르지 않는 한 말이다. 4륜 구동 형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6륜 구동이나 8륜, 12륜 구동 역시 마찬가지로 쓸모 있지 않겠는가? 차바퀴가 늘어날 경우에는 차체가 무거워지고 복잡해지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바퀴는 애초에 사용 금지된 상태이므로 구태여 비용편익분석을 시도해볼 필요도 없었다.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제한규정이 없다는 전제 하의 미래형 레이스카는 컴프USA(Comp-USA)매장 하나를 통튼 것보다도 단연코 뛰어난 컴퓨팅 파워를 갖출 것이다. “액티브” 서스펜션(10년 전 포뮬러1경기에서 사용 금지된 항목)은 성능의 극대화를 위해 차체 높이를 조정하는 한편 충격흡수용 밸브 및 스프링 레이트(spring rate)는 물론 타이어와 노면의 접촉 각도를 조절한다. “운전자가 요청을 하게 되면 컴퓨터 시스템이 그 내용을 해석해 이행에 착수합니다.” 캐미어츠의 설명이다.
탑승자 안전대책 전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꽉 밟게 되면 컴퓨터는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고도 감속이 최대한 실현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브레이크 및 에어브레이크를 가동하는 한편 섀시를 낮추고 스커트를 작동시킨다.)
반면 운전자가 스로틀을 꽉 밟을 경우에는 컴퓨터 시스템은 타이어의 스핀 현상 없이 가속 수준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컴퓨터는 아주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안전문제는 언제나 중요하다. 벅 로저스와 같은 만화에나 등장할 법한 운전자 보호용 액체 충전형 캡슐은 고사하고 충돌사고 발생시 탑승자의 안전을 제고하기 위해 변변한 해결책 하나 제안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탈출용 좌석(ejection seat)은 어떨까?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작동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거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필요한 만큼 신속하지 못하다고 한다. “레버를 잡아당긴 후 처음 0.3초간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이스트랙 위에서는 0.3초도 긴 시간이라 할 수 있죠.” 인간 효율성 연구소(Human Effectiveness Directorate)의 수석연구원인 테드 녹스의 설명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므로 이에 따라 레이스트랙도 변형될 수 있다. 커브가 심한 곡선코스가 짧은 직선코스와 혼합된 트랙은 차량의 스피드를 제한하는 한편 관중의 흥미도 떨어뜨릴 것이다. 필자와 점심을 함께 했던 정신 나간 과학자 같은 해리스는 경기트랙 상에 위아래가 뒤집힌(upside-down) 형태의 구간이 포함되길 바라고 있다. 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다운포스가 차량의 무게를 초과하는 한 불가능한 얘기다.
이에 대해 레이스트랙 디자이너인 앨런 윌슨은 재미는 있지만 참으로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윌슨에 의하면 인디 경기에서 300mph 정도로 속도가 급상승할 경우 관중이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새로운 종류의 트랙이 시공돼야 한다고 한다. “차가 미끄러질 경우에 대비해 상당한 거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잔디나 자갈보다는 실리콘 기술이 결합된 진흙을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진흙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안전소재이기 때문이죠.” 윌슨은 이렇게 덧붙였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보다도 과중한 G로드 문제와 견주어볼 때 합성 진흙 속으로 차가 미끄러져 들어가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것이다.
적응연습으로 내성 키우기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 ‘조종사 보호부서’의 팀리더 빌 앨버리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G는 혈압 수치 22mmHg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5~5 1/2 G 정도에 다다르면 대부분 안압이 제로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시야가 좁아지죠. 그리고는 의식을 잃게 됩니다. G-LOC(gravity-induced loss of consciousness; 중력으로 인한 의식 상실)현상은 체력훈련이나 적응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 내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적응연습이란 신체의 주요 근육에 단단히 힘을 주는 한편 숨을 가쁘게 쉬는 방식을 말합니다. 비행기 조종사의 경우 혈액이 머리로부터 하체로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도록 특수 제작된 공기를 채운 비행복(G-suit)을 착용한 상태에서 훈련을 거듭함으로써 9G 수준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됩니다.
신형 리벨 G멀티플러스 비행복(Libelle G-Multiplus flight suit)을 시험 착용한 조종사의 경우 기존 비행복의 압축공기장치보다 보호력이 우수한 4개의 액체 열주(列柱) 덕분에 12G까지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격렬한 코스로 이루어진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가장 심한 G로드를 경험한다. 1950년대 우주비행선용 의약품 개발의 선구자인 존 P. 스탭은 로켓슬레드(rocket sled)에서 40G 정도를 버텼다. 그리고 인디 카레이서의 경우는 충돌 후 회복을 돕기 위해 마사지를 받은 것 이외에 별다른 수고를 하지 않고도 100G 이상의 충격을 이겨낸다. 그러나 G로드가 지속적으로 가해질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미래의 운전자가 차세대 항중력 비행복을 착용하고 최첨단 의약품을 복용한 후 거기다 유전자조작기술까지 동원한 끝에 10~15G 정도를 감당하게 된다 치더라도 운전대를 돌릴 만한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헛소리만 지껄인 게 아닌가? 해리스도 이런 사실을 수긍했다. “어려운 문제죠.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차는 첫 경기에 출전하기도 전에 운전자가 가속 및 코너링, 브레이킹 상태에서 의식을 잃는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이 됐습니다.” 와인을 홀짝이던 그는 싱긋 웃어보였다. “이게 문제가 되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말이죠. 하여간 규정이라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로봇 레이스카 활성화의 관건
레이스카 엔지니어들의 이상향에는 방화복을 벗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영상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꿈꾸는 대상은 운전대 뒤에 앉아있을 프리마돈나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세상 그 자체이다. 레이싱 시뮬레이션을 제작한 키아 캐미어츠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운전자는 당신의 친구가 아닙니다. 그가 [세계 챔피언인] 마이클 슈마허가 아닌 이상 하는 일이라곤 차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게 전부니까요.” 그렇다면 엔지니어들은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를 무릎 꿇게 한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의 자동차 버전이라도 만들려는 심산일까? 컴퓨터는 이미 자동차 역학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령 센서가 타이어의 미끄러짐 현상을 감지해내면 이 문제는 운전자의 도움 없이도 자체적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총체적인 컴퓨터의 컨트롤 기능은 어떨까? “레이싱은 체스처럼 명쾌하지 못합니다.” 칩 가나시 레이싱(Chip Ganassi Racing)의 짐 해밀턴은 이렇게 설명했다. 딥블루는 정적인 반면 레이스 경기에는 유동적 변수가 무수히 도사리고 있다. 트랙 위의 경쟁 차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연료 적재량(차체의 중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부터 습도(차량의 파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변수가 말이다.
최근 개최된 다파의 그랜드 챌린지(DARPA Grand Challenge) 무인차 경주대회는 그 적절한 사례이다. 정교한 센서와 GPS시스템이 장착됐음에도 불구하고 출전 로봇 중 절반 이상이 출발점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대다수 차량이 미처 감지하지 못한 장애물에 걸려 전복됐으며 탑재된 컴퓨터는 물체를 “보고” 반응하는 사람의 본능적 행동능력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여러 개의 알고리즘을 작동시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동시에 작동하도록 유도하는 게 관건이죠.” 칼텍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데이브 반 고흐의 설명이다.
이와 같은 기술상의 한계 때문에 로봇을 이용한 모터스포츠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반 고흐의 총평이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말이다. “속도를 향상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죠. 게다가 로봇차가 30mph의 속도로 트랙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꽤나 따분한 노릇이죠.” 반면에 인간의 자기 보존 욕구를 레이스경기에서 배제해나가다 보면 미리 의도하진 않았다 치더라도 흥미진진한 결과와 대면하게 될지 모른다.
이에 대해 캐미어츠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따금 멋진 전복 장면이 연출될 겁니다. 특히 출전 차의 운영체제가(operating system)가 윈도우일 경우에는 말이죠.”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