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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체해부를 대체해갈 가상해부의 실현 가능성?

스위스 베른 대학 의료 연구소의 깊숙한 안쪽 복도 끝에 있는 방사선실의 닫힌 문 밑 틈으로 빛이 비친다. 건물 밖에서는 가로등의 형광불빛을 받으며 영구차 한 대가 시신을 실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오늘밤 이 지역 장의사는 특별 배달을 하고는 과욋돈을 받게 된다. 뒷문을 통해 방사선실에 들어선 그는 푸른 봉지에 두겹으로 싼 시체를 전신 스캐너 투입대에 살며시 내려 놓는다.

이 봉지는 X레이로 쉽게 투과가 되기 때문에 스캔하는 동안 밀봉된 채 둔다. 죽은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방안의 일반 의료진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 죽은 사람의 프라이버시

이 봉지가 없었으면 이 대학의 진단방사선학 연구소에서 무균처리된 깨끗한 연구시설을 사체 연구에 이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거라고 법병리학자인 마이클 탈리가 말한다. 질서정연하고 정확성을 강조하는 스위스의 전통은 사체 검시 업무에까지도 반영된다.

이처럼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성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외부 방문객들이 800년간 꼼꼼하게 잘 보존된 스위스 수도에 기차로 도착하면 기차역 대합실 복도에 줄지어 선 시계들이 마치 한 개의 시계처럼 분침까지 완벽하게 같은 시간을 가르키는 광경을 보게 된다.

이러한 정신으로 베른 법의학 연구소의 탈리와 동료들은 해부가 필요없는 검시법을 완성시키고 있다.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사체를 손상시키지 않는 이 검시법은 사체의 중요한 자료를 콤팩트디스크에 영구적으로 보관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디스크를 가까이에 있는 스위스 은행 지하금고에 보관한다.

탈리는 이 기술을 “버톱시(virtopsy)” 혹은 가상해부라고 부른다. 특히 그의 연구팀은 컴퓨터 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 영상촬영(MRI)의 두 가지 의료 영상 촬영 기술을 이용해 범죄 희생자의 내장 기관을 고해상도의 3차원 영상으로 만들어낸다.

탈리는 이 디지털화된 혈액과 내장기관을 희생자의 텅빈 복제본에 넣는다. 그 결과 완벽한 가상 사체가 형성되어 병리학자는 상처 부위와 전신을 다양한 각도와 깊이에서 볼 수도 있고, 신체 내부를 밖으로 꺼내 볼 수도 있다.

칼로 절개할 필요가 없는 무혈식 접근법의 장점과 더불어 디지털 데이터로 보존된 가상해부 프로젝트의 사체들은 영구보존이 가능하다는 잇점도 있다. “살인 희생자들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라고 탈리가 말한다. 물론 경찰과 병리학자들은 이렇게 사라져가는 증거들을 사진이나 상세한 의학적 보고서로 기록해왔다.

하지만 사진은 2차원이라는 한계가 있고 카메라 각도에 따라 불가피한 왜곡현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의료 보고서도 상당히 주관적인 경우가 많아 신뢰하기 어렵다고 탈리는 말한다.

법정에서 검사측과 변호인측이 참고인으로 병리학자들을 불러다가 검시 보고서를 각자 편의대로 해석하게 하면서 공방을 벌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걸 보면 이런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 증언대에 선 절개된 사체

가뜩이나 양측의 논쟁 내용 이해만으로도 벅차하는 배심원단에게 보기에도 끔찍한 피투성이 검시 사진들이 제시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스위스 사람들은 CSI 같은 드라마에 익숙치가 않습니다”라고 탈리가 지적한다. “정말 큰 문제가 될 수 있죠.”

미래에는 증언대에 서는 모든 병리학자들이 디스크에 저장된 원본 데이터를 불러와 피를 흘리지 않고도 희생자의 사체를 절개해 배심원단이 잘 볼 수 있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탈리는 예측한다. “핏자국 없이 그래픽만으로 충분합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지난 3년간 탈리는 100회가 넘는 가상해부를 했는데, 매번 가상해부 후에 기존과 같은 실제 해부를 해 발견 사실을 확인했다. 그의 실험적인 기술은 상당히 정확한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법정에 최초의 가상해부 자료가 증거로 등장하려면 최소한 100회 정도의 해부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가상해부는 아직 미완성 단계입니다”라고 탈리가 말한다. 우선 가상해부가 기존 해부방식만큼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까지 가상해부는 내부출혈 탐지나 관통상, 그리고 병리학자가 부득이하게 사체를 절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핏덩어리에 가려 식별해내기가 극히 어려운 골절 등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그가 말한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CT와 MRI 스캔이 상처를 통해 인체내로 유입되어 혈관을 막는 기포인 혈전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이런 증발성 증거는 병리학자가 혈관이나 기관을 들여다 보려고 절개하는 순간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고 탈리는 설명한다. “이 문제는 해결이 너무 어려워 일부에서는 수영장의 물속에서 검시를 해 빠져나가는 기포를 탐지하자”는 제안도 나왔다고 그가 말한다.

이 스캔 방법을 이용하면 숨을 들이 쉬면서 폐로 유입된 물이나 피를 탐지하기가 훨신 용이하다. 이런 법의학적 생사 여부 정보(vital sign)를 통해 병리학자는 희생자가 물에 빠졌을 때 살아있었거나 부상을 입었었는지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확실한 익사사고인지 자동차 사고로 위장한 살인인지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공기와 피, 물 주머니들은 인체 조직을 배경으로 검정과 밝은 흰색, 또는 회색 점들로 CT와 MRI 스캔 사진에 또렷하게 나타난다.

가상해부의 단점은 독극물 중독 진단을 비롯해 감염이나 심장마비 등으로 인한 자연사 진단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살인 사건일 경우 이런 자연사가 아님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탈리가 말한다.

* 온도 낮을수록 핵진동 늦어져

오늘밤 탈리는 시체 보관 주머니에 든 나이 든 여성이 전날 오후 볼보 스포츠 세단의 차축 밑에 끼여 사망했는지 여부를 법의학적으로 알아내야 한다. 볼보 운전자는 사체가 발견된 주차대로 후진하기 전에 후미경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70대로 보이는 이 노인의 나이로 보아 사고 전에 이미 심장마비나 뇌일혈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탈리의 조사팀은 아침 일찍 시체 검시를 시작했다. 사체가 법의학 연구소 2층 검시실에 있는 석조 검시대에 똑바로 뉘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각화 전문가인 우르슐라 벅과 병리학 레지던트인 에민 아가예프가 시체 표면을 따라 버튼 모양의 참조점 표시를 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9가지 각도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그런 다음 머리 위 조명과 슬라이드를 이용해 검은 점들에 번호가 매겨진 격자를 시체에 투시하고 머리 위 빔에 설치된 카메라들을 이용해 컴퓨터로 작동되는 3-D 스캔을 시작했다. 벅과 아가예프는 시체를 뒤집어 전과 같은 과정을 반복한 후 보관함에 시체를 넣어 사설 영구차 편으로 몇 블록 떨어진 이 대학 신경방사선학 연구소에 MRI 스캔을 하도록 보냈다.

자기공명 영상촬영은 1980년에 도입된 이후 의학 진단시 상당히 자주 사용되었다. 강력한 자기장으로 무선전파를 발사해 MRI는 매우 세밀한 3차원 내부 영상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이 과정은 아직도 자동화가 거의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오퍼레이터들은 다양한 인체 조직들로부터 영상을 추출하는 정교한 방법들을 배워야만 한다.

가상해부 프로젝트가 복잡한 이유는 탈리가 냉동시킨 조사용 사체의 낮은 체온을 보정하기 위해 MRI 전문가인 카린 즈위가트가 별도로 조절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온도가 낮을수록 촬영 결과가 엉망이 된다. MRI 장비는 서로 다른 종류의 원자핵들로부터 방출되는 고유한 진동을 해석해 작동을 하는데 스캔하는 물체의 온도가 낮을수록 이런 핵 진동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촬영한 영상은 해상도가 워낙 탁월해서 탈리가 국제회의에서 이 영상들을 보여줄 때마다 방사선학자들이 놀라서 자세히 들여다보곤 한다. “또렷할 뿐만 아니라 펄떡이는 심장도 없고, 순환하는 혈액은 물론 소화 운동도 없어 영상이 흐려지지 않습니다”라고 그가 시체에 관해 말한다.

* 시체 3차원이미지 만들어

오늘밤 이 시체가 마지막으로 보내진 곳은 번 대학 진단방사선학 연구소이다. 이곳에서는 시체를 CT 스캐너의 도넛 모양 구멍으로 통과시키면서 스캐너가 연속적으로 X레이 사진을 찍어 시체를 3차원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방사선실의 어둡게 가린 컴퓨터실에서 영상 촬영 연구소 소장인 피터 복이 신경방사선학자인 루카 레몬다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두 사람은 새 비디오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처럼 번갈아 마우스를 클릭하고 드래그하면서 화면에 나온 이미지를 조작하고 있다.

복은 CT 스캐너 위치를 선택해 지워서 여자의 시신이 화면 중앙에 떠 있도록 한다. 그는 천천히 은빛 피부층과 근육, 연결 조직들을 제거해 흰 뼈만 드러나도록 한다. 그는 영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려보다가 잠시 멈춘 채 골절된 늑골과 흉골들, 산산조각난 쇄골과 으깨어진 척추를 살펴본다.

그런 다음 한 층씩 다시 사체를 복원한다. 맨 뼈와 근육 사이까지 작업을 마쳤을 때 여인의 위가 비정상적으로 높이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다시 한 번 손을 멈췄다. 여인의 위는 가운데 부분 둘레로 벨트를 너무 꽉 조인 것처럼 눈에 띄게 움푹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이걸 칼러 사인(collar sign)이라고 합니다”라고 복이 설명한다. “희생자의 위가 폐와 복부내의 다른 기관들을 분리시켜 놓는 큰 근육인 횡경막 틈으로 밀려 올라온 것 같습니다.”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통 복원 작업을 마친 후 복부 부위를 한 번에 5센티미터 간격씩 잘라 보다가 횡경막의 흰 근육에 시커먼 틈이 있는 걸 발견했다. 복은 레몬다에게 조종장치를 넘겼고, 탈리는 이 방사선학자에게 여자의 폐에 피가 유입된 흔적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이전에 MRI 스캔을 하는 동안 탈리는 여자의 근육조직에서 밝은 부위들을 보았었다. 만약 이것이 활동성 출혈이라면 이 여자가 차에 치여 도로에 눌렸을 때 살아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검시 과정에서의 상처로 인해 내부로 피가 스며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피가 기도로 넘어갔다는 게 명확해져야 확실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희생자가 부상을 당했을 때 살아있었음이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레몬다가 폐를 가른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각을 보던 도중 처음으로 흰 반점들이 나타났다. 그가 조직을 차례로 훑어 내려가자 연이어 밝은 반점들이 나타났다. 분명 피가 기도로 넘어간 것이다.

레몬다와 복은 탈리에게 추정 사망 원인을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충돌 부상으로 인한 간접적 흉곽 함몰”이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갈비뼈가 완전히 부서져 숨을 들이쉬지 못해 질식사 한 것이다.

* 분명 유혈이 낭자할 겁니다

다음날 아침 탈리의 상사이자 법의학 연구소장인 리차드 던호퍼가 확인차 기존 방식으로 해부를 할 것이다. “분명 유혈이 낭자할 겁니다”라고 탈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이런 걸 배심원단에 보여 줄 사람은 없을 겁니다.”

던호퍼가 첫 번째 절개를 하는 동안 시각화 전문가인 벅이 표면 스캔 장비를 용의자의 볼보 차량이 보관되어 있는 경찰서 차고로 가져갈 것이다. 그곳에서 벅은 사체를 스캔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차를 스캔해 컴퓨터로 3차원 영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면 벅과 탈리가 사체와 볼보를 사이버 공간상으로 불러들여 죽은 여자의 상처 부위와 자동차 표면을 맞춰보면서 부상 당시 여자의 위치와 자세를 알아낼 것이다. 탈리가 특히 관심있어 하는 것은 차의 뒷범퍼와 트렁크 덮개가 여자의 무릎 표면 스캔시 나타난 둥근 홈이나 MRI 촬영에서 드러난 허리 부위의 깊은 출혈과 관계가 있는지 여부이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창조된 모델들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라고 탈리가 강조한다. “전혀 손대지 않은 용의차량과 희생자, 그리고 희생자의 상처와 뼈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이용한 겁니다.” 데이터의 일치 정도에 따라 운전자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이렇게 상처와 가해차량을 용이하게 대조해 볼 수 있는 것은 탈리 주도하의 번 대학 법병리학 팀과 쮜리히 경찰의 과학범죄수사대가 협력한 덕분이다. 1995년 번 대학의 던호퍼는 쮜리히의 수석 법의학자인 월터 브뤼쉬웨일러에게 과제를 부과했다. 그는 희생자의 상처와 범행 무기 대조를 기존처럼 한 사진에 다른 사진을 겹쳐보는 것보다 개선된 방법을 원했다.

“그래서 마르셀 생각이 났습니다”라고 브뤼쉬웨일러가 말한다. 쮜리히 교통 수사관인 마르셀 브라운은 새로운 사진 측량 기술을 이미 사고 조사에 적용해 왔었다. 원래 등고선 작성을 위해 개발된 사진 측량 소프트웨어는 정교하게 연속 촬영된 사진들을 3-D 이미지로 변환한다.

원래 브라운은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다중 충돌사고 차량들의 손상부위를 원래대로 재현해 보면서 최초의 충격이 가해진 당시의 정황을 파악했다. 탈리와 공동 작업을 하는 브라운은 희생자의 사체 내외부에서 발견된 상처를 참조해 갑작스런 사망 현장을 재현해 보는 데 이용했다.

* 타살된 3명의 매춘부

번 대학 연구팀과 쮜리히 법과학자들이 공조로 처리했던 흥미로운 사건들 중 한 건이 2003년 7월 법정에 회부되었다. 이것은 쮜리히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명의 매춘부들이 매맞아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경찰이 용의자로 지목한 남자는 세 여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은 인정했지만 자신이 아파트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세 여자가 모두 살아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수사는 한 희생자의 어깨 깊숙이에 난 물린 자국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용의자는 아무도 물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상처에서 나온 DNA 검사 결과 여러 사람들의 DNA가 뒤섞인 것으로 밝혀져 법정에 증거로 제출할 수 없었다. 여자들끼리 서로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쮜리히 경찰에서 다른 여자들의 치아 본을 떠 보았더니 그중 하나가 상처 부위 사진과 아주 비슷하게 맞아 떨어졌다.

한편 탈리의 팀에서는 브라운의 3-D 표면 스캔 기술을 이용해 세 여자의 가상해부를 이미 완료한 상태였다. 이제 본뜬 치아를 2차원 평면 사진과 대조해 보는 차원을 넘어 이가 죽은 여자의 살갗을 어떻게 파고 들었는지 재현할 수 있었다.

최근 어느날 아침 쮜리히 사무실에서 브뤼쉬웨일러는 이 결과들을 컴퓨터로 되돌려 보면서 남자 용의자의 은회색 치아 복제본을 불러내 맞아서 피가 난 희생자의 어깨 부위 가상해부용 스캔 자료와 연결지어 보았다. 앞니가 피부속으로 파고 들기 시작하자 브뤼쉬웨일러는 아래서 보기 모드로 전환했다. “보시다시피 희생자는 아무 반응도 아직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깨무는 동작 밖에는 없죠”라고 그가 설명한다. 하지만 작은 어금니가 뚫고 들어가면서 이가 바깥쪽으로 끌리면서 상처가 넓어진다. “이제 아시겠지만 여자가 깨무는 데 반응을 한 겁니다. 몸을 빼내려 하는 거죠.”이 장면들을 전보다 느리게 다시 재생하면서 브뤼쉬웨일러는 이와 깨물린 자국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 다음 그는 경찰이 처음에 깨문 범인으로 추정했던 죽은 여자의 디지털 치아 모형을 불러냈다. “왼쪽 부위는 일치하지만 각도가 똑같지 않아요”라고 그가 말한다. “여기를 보면 앞니들 사이의 작은 틈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이 용의자의 살인 재판에서 배심원단과 판사가 이런 재현 과정과 이면의 과학적 정확성을 이해해 결국 유죄판결로 이어졌다는 점이라고 브뤼쉬웨일러는 말한다.

보다 정확하게 살인 장면을 재현하려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쮜리히 경찰국과 가상해부 프로젝트팀은 과학분야에 상당 규모의 평화유지비를 투입한 스위스군의 도움도 받았다.

스위스는 세계 최고의 평화적인 군사력을 갖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거의 모든 남자들이 예비군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150년간 전쟁을 한 번도 치룬 적이 없다. “우리는 시간과 인력이 있는데다 평화롭기 때문에 연구를 마음놓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스위스 방위국의 수학자인 비트 크누벨이 말한다.

그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탄도학 전문가로 총알과 파편, 주변 기류가 사람의 몸을 어떻게 관통하는지 역학적으로 연구한다. 크누벨이 총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그는 스위스군으로부터 새로운 탄환을 설계해 국제 회의에서 그 탄환이 불필요한 고통을 없애준다는 점을 시연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다.

* 젤라틴소재 뇌와 가짜혈액 주입구

새 탄환이 다리나 팔을 관통해도 기존과 같이 뼈와 혈관에 큰 피해를 가하지 않아 팔, 다리를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크누벨은 시체나 동물 대신 모형 기관들을 이용하기로 했는데, 윤리적인 이유도 일부 작용했다.

“스위스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실험을 안 좋아합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크누벨이 스위스식 감성 때문에 선택한 모형 인체는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큰 단점이 있다. “모든 시체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서로 조금씩 다릅니다”라고 그가 설명한다. “탄환 설계 과정에서 한 가지 변수만 분리해내려면 실험에서 얻은 다른 변수들은 모두 버려야 합니다.”

크누벨의 가짜 인체 기관 모형들은 진짜처럼 부러지고, 튀고, 찢어지지만 보다 일관성이 있다. 그가 사용하는 모형 뼈는 폴리우레탄으로 된 두 층 사이에 젤라틴 층이 샌드위치처럼 싸여 있고 얇은 고무층이 덮여 있다.

두개골은 멜론 모양의 구형으로 되어 있고 젤라틴 소재 뇌와 가짜 혈액을 주입하기 위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 이것들은 치명적인 구타나 총상 재현에 유용했다. 크누벨이 최근 실험을 하던 어느날 던이라는 알프스 지방 마을 외곽의 숲이 우거진 스위스군 훈련장으로 탈리가 찾아와 합류했다.

자동소총을 발사하는 소리 대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은 이곳에 있는 세 개의 탄고 실험용 지하 터널 중 가장 작은 곳으로 들어갔다. 1990년대 초에 이 마을 주민들에게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100, 200, 500미터짜리 터널들은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 사격장이다.

* 뇌조직은 구멍이 생기면 함몰된다

이날 크누벨의 목표는 총알의 강한 소용돌이 기류로 인해 뇌조직이 순간적으로 팽창하는 현상을 연구하고 “희생자”의 뇌로 들어가는 두개골 파편들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먼저 그는 고속 스톱액션 비디오를 이용해 총알이 머리에 닿을 때 두개골과 뇌가 팽창하는 모습을 캡쳐한다. 그런 다음 커다란 글리세린 덩어리 안에 박힌 가짜 합성뼈에 같은 총알을 발사한다. 글리세린의 강도를 꼼꼼하게 측정한 다음 크누벨은 뼈 파편들이 실험 재료를 뚫고 들어간 깊이를 잼으로써 파열되는 뼈 파편들의 에너지를 수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글리세린 비누는 탄환이 연조직을 뚫고 지나갈 때 발생되는 팽창성 제트기류로 인해 형성된 구멍을 유지시켜 주는 장점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실제 뇌조직은 구멍이 생기는 즉시 함몰되어 버린다. “탄도 실험중 발생한 모형 뇌의 구멍은 해부시에 보는 실제 뇌의 상처보다 상당히 큽니다”라고 크누벨이 설명한다.

이날 탈리가 할 일은 더 간단해 크누벨의 머리 모형에 가발을 얹고 “처형하듯이” 총알을 발사하면 됐다. 탈리는 끈끈이 테이프로 머리카락에서 탄흔을 수집하는 게 나을지 머리를 밀고 머리가죽을 조사하는 게 나을지 결정을 하고 싶어 한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실험 발사를 했더니 산산조각난 두개골 파편이 맞은편 벽까지 날아가고 뇌가 흘러 바닥에 떨어지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사실 이런 경우가 실험중에 종종 있어요”라고 탈리가 말한다. “유럽에서는 이를 뇌적출이라고 합니다.” 그는 화약으로 얼룩진 가발과 두개골을 나중에 분석하려고 떼어낸 다음 인조 뇌 재료들을 쓰레기통에 넣어 둔다.

이런 실험들은 학문적으로는 흥미도 있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런 스위스식 법의학적 접근법으로 미국에서 발생하는 온갖 끔찍한 살인사건 수사를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미국에서 1년간 일해 본 탈리는 미국의 병리학자들이 이곳에서처럼 실험적인 기법을 연구하고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할 필요가 거의 없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볼티모어 같은 도시의 의료진들은 제가 한 달 동안 볼 살인사건을 아마 1주일만에 다 볼 겁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이런 사건을 줄여보자. 번 대학 법의학 연구소에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10명의 병리학자들은 인구 150만 명의 스위스 남서부 지방을 담당하는데 연간 500건의 검시를 하는데, 이들 중 10~20건이 자살건이다.

발티모어 소재 매릴랜드 의료 검시청에도 이와 비슷한 14명의 풀타임 병리학자들이 근무한다. 하지만 유사한 점은 그것 뿐이다. 인구가 500만 명이나 되는 주를 담당하는 발티모어의 의료진들은 연간 평균 4,100건의 검시를 하는데, 이중 500~600건이 자살건이다.

* 가상해부 실제해부 대체

더구나 스위스의 6개 법의학 연구소들은 모두 국고 지원이 잘 되어 있는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 반면 미국 의료진들의 사무실은 예산이 빠듯한 시나 구, 또는 주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가상해부를 하려면 최소한 100만 달러가 넘는 MRI 장비와 50만 달러 가량 하는 CT 스캐너, 10만 달러가 넘는 3-D 표면 스캔 장치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의료진들이 엑스레이 장비만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워싱턴 디씨 소재 육군 병리학 연구소 특별 수사 의료팀 부팀장인 윌리엄 로드리게스가 말한다. “당분간은 이런 초고가 기술이 엄청난 사치품으로 여겨질 겁니다.”

반면 대규모 사상자 처리의 필요성을 느낀 미국방성에서는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델라웨어 도버 공군 기지에 있는 대규모 시체 공시장에 가상해부 시설들을 짓는 데 관심을 보여왔다고 로드리게스는 말한다. “기술상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이 기법은 보다 짧은 시간에, 소수의 병리학자들이 더 많은 사체를 스캔하는 방법이 되었습니다”라고 그가 설명한다.

이미 국방부 의료진들은 공항에서 수화물을 검색하는 것과 유사한 컨베이어 벨트식 스캐너를 이용해 병사들의 시체로부터 총알과 파편, 불발탄을 찾아낸다. “시체들이 기계를 통과하면 뼈의 구조를 보고 어떤 중상을 입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라고 로드리게스가 말한다. “탈리 박사의 연구가 좀 더 진척되면 이런 작업을 훨씬 자세하게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아마 스위스에 있는 동안 이런 역할을 할 겁니다”라며 앞으로 전세계의 다른 곳에서 사후 시체 검시에 사용될 기술을 연구하고 완성하는 기회를 갖게 된 데 대해 탈리가 말한다. 그는 가상해부가 궁극적으로 병리학자들의 집도를 안내하고 내부 조직을 절개 전과 같은 상태로 보존해 줌으로써 해부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여줄 거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검시”라는 말이 “자기 눈으로 직접 본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것이라 가상해부가 병리학자들의 실제 해부를 완전히 대체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해부의 절대적인 표준으로 계속 남아있게 될 겁니다”라고 탈리가 말한다.

** 본지 편집자문위원인 제시카 스나이더 삭스는 본지의 범죄 기사 칼럼 개척자이자 ‘시체’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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