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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18m 범죄현장 조사

스쿠버다이빙이 가능한 수사관들이 수중 범죄현장 조사에 필요한 기초교육을 받았다. 최첨단 기술은 아니다. 다만, 악어의 습격을 조심해야 한다. <편집자주>

플로리마 파나마 해변에서 불과 수마일 떨어진 수중. 스쿠버 장비를 완비하고 수심 18.3미터에 위치한 인공암초까지 잠수해서 내려갔다. 암초에는 각종 물고기와 해조류가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으며 시체를 숨길만한 장소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막 출시된 마네킹 모습
나와 동행한 다이버들 중에는 통신시스템이 완벽하게 구비된 마스크를 착용한 다이버도 있었다. 이들은 육지에서 범죄현장을 조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중 범죄현장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촬영했다. 남성으로 확인된 시체는 청색 잠수복을 입고 있었으며 사지가 암초의 철제빔에 걸려 묶여 있었다. 스쿠버호흡기는 이미 절단되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손가락도 네 개나 잘려나간 상태였다. 그리고 길게 상처자국이 패인 다리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막 출시된 마네킹처럼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록 교육용으로 제작된 가짜 살인 현장이었지만 수사관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이들 수사관들은 물에 잠긴 시체(물론 이처럼 깨끗한 바다보다는 더러운 하수구인 경우가 더 빈번하지만)를 접할 기회가 비교적 많은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 주에서 온 경찰 및 소방관들로서, 현재 플로리다 주립대학 파나마 캠퍼스에서 열리는 수중 범죄현장조사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었다. 총 2주 과정으로 짜여진 이 프로그램에서는 난파선이나 바다로 추락한 비행기 잔해는 물론 거의 모든 수중 물체에 적용 가능한 프로토콜과 최신 수중 기술 등에 관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살인이나 보험사기, 더 나아가 테러 사건 등으로 인해 재판이 열렸을 때, 법정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증거를 입수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발단은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9.11 테러에서 시작됐다. 만약 당시 무너졌던 세계무역센터의 잔해가 허드슨강으로 떨어졌거나,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이 호수가 어딘가에 추락했다면? 아쉽게도 현재 미국 정부는 물속에 잠겨버린 테러현장을 수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참고로 이번 수중범죄현장조사 프로그램의 초기 기금은 2002년 미 국방부에서 지원하였다.

지금 실시 중인 인공암초 현장 조사는 이번 프로그램의 마지막 단계이다. 이 현장은 1975년 발생했던 실제 사건 현장을 재구성한 것으로 수강생들은 이 현장을 기초로 삼아 범죄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모의재판에서 까다로운 변호사들에게 자신들이 준비한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암초와 마네킹에서 수마일 떨어진 물 속에는 이번 사건의 핵심인 난파된 구명보트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 구명보트는 마약거래 운반책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범죄조직 내 배신행위로 누군가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켰던 대상이다. 폭발로 인해 보트는 파나마 항구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으며, 이후 경찰에 사체의 일부를 찾긴 했으나 그 신분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육지와 동일한 수사 진행
보트 수색 작업과는 별도로 학생들은 또한 해안에서 가까운 지점에서 범죄에 사용되었다는 권총을 찾아내야 한다. 이번 수업의 목적은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내부 밀고자의 증언을 뒷받침 할 만한 증거 확보에 있다. 이 밀고자는 최근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형량을 낮추는 조건으로 거의 30년 가까이 미결인 채 남아 있는 살인사건에 관해 증언하기로 한 것이다. 더욱이 밀고자가 증언 직후 살해당했기 때문에 더더욱 증거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더불어 또한 학생들은 밀고자 살인 사건을 기소할 만한 증거도 찾아내야 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수중 범죄 현장도 육지의 범죄현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육지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우선 현장을 폐쇄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금지한다. 그리고 수사관들이 와서 현장을 조사하고 모든 것을 사진이나 비디오로 남겨 놓기 전까지는 무엇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이렇게 철저한 현장보존과 조사를 통해 범인검거에 결정적인 지문이나 DNA 샘플 같은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수중에서는 육지의 상황과는 반대로 인양작업 등으로 인해 현장이 금세 훼손되고 마는 상황이다.

1996년 수사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추락한 VlauJet기의 잔재를 수거해 한곳에 모아두었던 TV 장면을 떠올려 보자. 다행히 수중고고학을 바탕으로 마련된 최첨단 수사기법에서는 난파현장의 파편들과 인공구조물은, 아무리 미세한 것일지라도, 그 최초 위치를 정확하게 기록해두고 소중하게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플로리다 교육프로그램 개설에 일조한 전직 해군 다이버 마이클 진저는 “지난 수년 동안 수중에서 발견된 증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홀히 보관되거나 잘못 취급되어 증거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라며 “그러나 올바로 취급만 한다면 법정에서 유용한 증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증거물들입니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전체 세 그룹으로 나눠 조를 편성했다. 그 중 내가 동행한 그룹이 탑승한 판툰보트에는 구명보트의 스케치지도를 보여주는 노트북이 갖추어져 있었다. 다른 그룹은 보트 뒤에 달린 어뢰모양의 해저스캐너를 사용해서 그날 일찌감치 지도를 작성했다고 한다. 소리를 방출, 바다 밑바닥에서 반사된 이미지를 이용해 지도를 작성하는 이와 같은 장치들은 크기가 작아,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사용 가능하다. 심지어는 하수구까지도 쉽게 가지고 들어 갈 수 있다. 앞으로 수중 범죄 수사관들은 특히 컴컴한 수중에서 가치를 발하는 HUD형 수중탐지데이터도 자유로이 사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 그룹에서는 비디오레이(VideoRay)라 불리는 원격조정장비(ROV)를 이용해 사건현장에 좀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다. 토스터기 크기의 이 기기에는 비디오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으며 판툰보트에 통제장비와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 원격조정이 가능하다. 보트가 덜컹하고 움직이면 이 기기는 마치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작동을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교관은 차라리 날아간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빠르게 우리에게서 멀어지면서 범죄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순간 우리는 구명보트의 뱃머리를 분명하게 보았다. ROV는 수사관들이 스쿠버다이빙의 위험을 비롯해서 오염된 물, 악어, 기타 위험요소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여주고 시간도 절약해 주기 때문에 초기수사현장조사에 있어 무엇보다 유용한 도구이다. 만약 더러운 연못에 빠진 시체에서 오염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 전문 다이버보다 ROV를 내보내 조사하는 편이 여러 면에서 용이할 것이다. 우리의 VideoRay는 1975년부터 이곳에 좌초된 채로 남아있다는 설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낡아 있는 구명보트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수중조사 중에는 증거물 회수나 현장 측정처럼 직접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작업들이 남아있다. 팀원들과 함께 수중에 내려간 나의 눈에 처음 뜨인 것은 바로 ROV를 통해 보이는 구명보트의 뱃머리였다. 그러나 곧 뱃머리뿐만 아니라 좀더 많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트의 위치는 밀고자의 증언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한때 보트는 멀쩡했으나 폭발로 인해 지금은 미미한 자취만 남아 있는 듯했다. 암초들이 가득한 현장에서 학생들은 비디오와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고 측정 작업에 열중해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장소는 해변에서 가까워 수심이 겨우 무릎 정도에 불과했다. 이곳이 아마도 피투성이로 난장판을 이루었을 보트폭파 사건의 주범을 겨냥, 저격했던 권총이 버려진 장소라고 한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조사를 시작하고 싶었으나 따로 보호복이 필요 없을 정도로 수질이 깨끗하다는 환경청의 확인이 떨어진 후에야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방수 금속탐지기를 사용하여 권총을 찾아냈다. 학생들은 이와 같은 사전 확인 예방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피력했다. 대부분 수사관들이 하수구나 연못을 조사해야하는 상황에서 독소나 하수오염은 주의 깊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시체 발견 장소부터 수사진행
수중 범죄현장에서 물의 흐름은 육지에서 부는 바람과 동일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CSI에서처럼 현장에 떨어져있을지 모르는 머리카락을 발견하기 위해 헤매는 다이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팀이 발견한 권총 같은 증거물들은 봉인된 상자나 봉투 속에 조심스럽게 보관되며, 지문 등을 찾아내는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물의 흐름이 거의 없는 곳에서는 수 주일이 지났다 하더라도 지문 같은 증거를 채취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증거물이 수몰된 자동차 앞좌석의 수납함에서 발견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은 수중에서 찾은 이러한 증거물을 필요한 증거를 채취할 때까지 잘 보관하는 법을 배웠다. 물 속에 잠겼던 권총은 공기와 접하는 순간 재빠르게 녹슬어버려 표면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증거물을 날려버린다. 총알이 발사되었던 흔적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이틀간의 수중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밤에는 상세히 증거를 검토하는 딱딱한 분위기의 법정에서 펼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이들은 촬영한 비디오를 다시 보고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여 지도상에 펼쳐놓는다. 그리고 수집한 증거가 목격자의 증언과 일치하는지 하나하나 검토해 나간다.

물론 학생들로 구성된 세개 팀이 암초지대를 철저하게 조사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놓쳐버린 핵심적인 증거들도 있다. 이들은 시체가 발견된 장소부터 수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암초의 수중 지도 제작도 간과하고 말았다. 암초 지도를 작성하면 시체가 놓인 위치의 물리적 측정을 뒷받침할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다음에 진짜 수사를 진행하면 좀더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몇 번 법정에 나가 증언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방법을 터득하게 되죠.” 진저의 말이다.

마크 쉬로페는 플로리다에 거주하면서 해양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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