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흰옷을 입은 전통은 매우 오래 되었다. 고조선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확인되지 않지만 그 이후에 세워진 부여에서는 흰옷을 즐겨 입었다. 그 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귀족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은 흰옷을 주로 입었다. 백의민족임이 특별히 강조된 것은 일제시대(1910∼1945년), 우리를 지배하고 억압하던 일본인의 옷이 무색 옷(물감을 들인 천으로 지은 옷)이기 때문에 그와는 대조적인 백의를, 항일정신의 상징으로 더욱 강조되었다. 우리 민족은 태양을 숭배하여 태양을 상징하는 흰빛을 좋아한다.
오래전부터 색을 이용한 인류
인류가 색을 이용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고대 유적지를 살펴 보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 될 때부터 색을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프랑스 도르도뉴현에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들 수 있는데 기원전 1만5,000년 전에 그려진 벽화에는 아직까지도 들소, 야생마, 사슴 같은 동물 그림이 그 선명한 색을 자랑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고분에서도 발굴되는 각종 벽화나 그릇들을 보면 다양한 색으로 채색된 수준 높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제조 방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염료는 로마 시대에 타이리안 퍼플 또는 임페리얼 퍼플 등으로 알려졌던 자주색 천연 염료다. 로마시대에 주로 황제나 고급 귀족들의 의복 염색에 사용되었는데 지중해에서 많이 자라는 소라고동의 아가미 샘에서 분비되는 맑은 체액을 원료로 만들었다. 소라고동의 분비액을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시키고 햇빛을 쪼여 주면 몇 차례 색이 바뀌다가 마침내 모직물이나 견직물에 사용할 수 있는 청색이나 자주색의 염료가 만들어진다.
18세기에는 코치닐이라는 붉은색 염료가 사용되었다. 이는 멕시코에서 자라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곤충에서 추출한 것으로, 1kg의 염료를 얻는데 이 곤충 10만 마리를 잡아야 했다고 한다.
식물에 가장많은 천연염료
천연염료는 광물·동물·식물의 영역에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식물에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광물이며, 동물에는 약간 존재한다. 동물염료로는 패자(貝紫), 코치닐류, 오징어먹이 있는데 이들이 전부이다. 광물은 천연산을 그대로 섬유에 고착시키지 않고 조성재료를 사용해 염료로 사용했다. 크롬화합물은 노랑·귤빛·녹색류, 철화합물은 갈색, 타닌 철흑은 검정·회색을 염색한다. 최근에는 안료를 섬유에 고착시키는데 합성수지를 응용하는 간편한 염색법이 개발되어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세계에서 염료로 이용되는 식물은 약 3,000종을 헤아린다. 이들 중 유용한 것은 종자식물과 지의류(포자식물의 한 종류)에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엉거시과의 잇꽃, 마디풀과의 쪽, 콩과의 다목, 꼭두서니과의 치자나무 등이 염료를 채취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식물염료는 현재 로그우드·푸스틱·카테큐·쪽·소방(다목의 목재 속에 있는 붉은 살) 등을 제외하고는 합성염료에 밀려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천연염료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쪽이다. 쪽(Polygonum Indigo)은 쌍떡잎식물로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쪽 잎은 인디고를 지니고 있어 파란 색의 염료로 사용한다.
천연 염료는 과거부터 대량 생산이 어려워 희소가치가 높았다. 따라서 왕이나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염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염료 이외에도 백반과 같은 매염제가 필요했기 때문에 염색 기술은 국가 비밀로 취급됐다. 예를 들어서 로마 시대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염료 공장 밖에서 타이리안 퍼플을 만드는 사람은 사형에 처할 정도였으니 일반인에게 천연 염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염색을 위해 백반을 사용
그런 사정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유한 사람들은 쪽, 치자, 잇꽃, 오가피, 꼭두서니, 모과, 석류, 산수유 등으로 만든 천연 염료로 물들인 옷감을 입을 수 있었다. 왕이나 관료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수입된 비싼 염료로 염색한 화려한 옷으로 그 권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염색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흰색 무명 옷을 입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염색은 염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천연염료에는 식물섬유에 친화력이 없어 물에 녹지 않는 착색물질의 침전을 형성하기 때문에 섬유에 색을 더 잘 입힐 수 있는 백반과 같은 매염제가 있어야만 더 좋은 염색을 할 수 있다. 매염제를 쓰면 착염이 잘되고 염색이 잘 될 뿐만 아니라 매염제의 종류에 따라 다른 색상으로 염색이 가능하다. 즉 식물 염료는 한 가지만으로도 매염제에 따라 여러 가지 색상으로 염색할 수 있는 것이다. 매염제로는 전통적인 천연매염제와 합성 매염제가 있는데 천연 매염제로는 식물을 태운 잿물, 식물의 수피나 탄닌, 사과나 오미자의 과일즙, 금속성분을 포함한 경수,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오줌 등이 있다. 합성 매염제로는 철, 구리, 알루미늄, 주석, 크롬 매염제 등이 있다. 천연매염제는 합성매염제에 비해 매염효과가 약하고 매염제를 만들기 위해 손이 많이 가지만 화학약품에 저항감이 있고 부드러운 색을 낼 때 많이 사용한다.
‘염색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최근 합성염료 염색물의 인체의 유해성, 염색 과정에서 오는 중금속에 의한 폐수처리 등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천연염료에 다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따라 직접 천연염색을 배우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자연의 색이 인공적인 염료로 만든 색에 비해 연하고 선명하지는 않지만 자연을 닮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은 바로 이 천연염료에서 나온 색이다.
정부는 2001년 9월 6일 천연염료로 옷감을 물들이는 염색장(染色匠)을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하고 기능보유자로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의 윤병운 씨와 나주시 다시면의 정관채 씨를 선정했다.
나주는 영산강과 바닷물이 합류한 지리적 환경으로 쪽을 재배하기에 적합하여 일찍부터 쪽염색이 발달하였다. 쪽에서 추출한 염료를 가지고 옷감을 물들이는 쪽염색은 천연염색법 가운데 가장 어렵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나주의 많은 지역에서 쪽염색을 해왔지만 화학염색이 성행하면서 점차 전통이 사라지고 지금은 문평면 명하마을과 다시면 샛골에서 그 맥을 잇고 있다.
무명 옷은 ‘바이오 의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연염료와 무명 옷은 상대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으나 바이오시대를 맞아 공존의 가치를 지닌다. 천연염료는 자연의 색으로 인간에게 잘 어울리며 마음을 편하게 하고, 우리 민족의 상징인 무명 옷은 자연섬유로 만든‘바이오 의류’로 건강에도 매우 좋다. 식물성 섬유는 흡습성이 뛰어나고 촉감이 좋으며 섬유가 질긴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천연염료를 계승·발전시키되 무명 옷도 민족의식 고취차원에서 즐겨 입도록 해야겠다.
요즘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명의 한복은 물감 들인 유색 옷에 밀려 영안실이나 시골의 상가(喪家)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정말로 백의민족인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 주요저서 컴퓨터상품학 | 21세기 정보사냥 | 실리콘밸리 파워 |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 바람 든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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