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번식력을 박탈한 ‘터미네이터 기술’, 인도인의 만병통치약 ‘터머릭’, 에이즈치료제 ‘HIV바이러스’등이 대표적인 그 예다.
터미네이터 기술(Terminator Technology)은 미국 농무부와 종자회사인 델타앤파인랜드(Delta & Pine Land)가 개발한 기술로‘식물유전자 발현의 조절’이라는 명칭으로 미국 등 세계 각국에 특허 출원됐다. 이는 종자를 1회만 사용할 수 있고 그 종자에서 수확한 곡물의 발아를 정지시켜 종자로 재사용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종자회사 권리보호 ‘터미네이터 기술’
이 기술은 종자회사의 권리보호를 위해 정품의 유통종자가 아니면 발아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로‘터미네이터 기술’이라 명명돼 이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다. 현재 목화, 담배 등 여러 종자 생산에 이 기술이 적용돼 시험 중에 있다. 이 기술은 전통적으로 인정돼 온 ‘자가종자생산의 권리’를 부정하고 일부기업에 실질적인 종자의 독점권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식물의 번식력을 박탈하는‘비윤리적인 기술’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델타앤파인랜드는 1998년 미 농무부와 함께 터미네이터 기술의 원형특허(USP5,723,765)를 미국에서 승인받았으며 이 기술은 그후 몬산토가 인수했다. 몬산토는 이 기술에 관한 또 다른 특허(WO9744465)를 출원했다. 이외에도 현재 12개 이상의 회사와 기관이 종자의 단종 기술에 관한 청구권을 포함한 최소 31개 이상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
최근 몬산토는 터미네이터 기술의 상업화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와 가깝게 연관된 다른 기술로서 작물의 생산량에 치명적인 어떤 유전적 형질의 작동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은 계속하겠다고 밝혀 논란의 소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이 기술은 트레이터기술(Traitor Technology)이라 명명됐는데 이는 종자회사에 특허된 제초제나 비료와 같은 것이 외부에서 화학적 촉매작용을 할 경우에만 식물이 그 본래의 중요한 유전적 특징을 발현하는 기술이다. 즉 이 종자로 경작할 때는 반드시 이 종자회사가 공급하는 화학촉매를 쓰도록 기술적으로 유도, 이를 ‘생물학적 농노제도(Bioserfdom)’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도 만병통치약 ‘티머릭’
터머릭(Turmeric)은 인도사람들의 만병통치약. 뿌리가 오랜지색인 이 식물은 인도가 원산지이며 수천년 동안 염좌, 염증, 국부상처의 치료에 쓰여왔고 인도 전통약재의 주성분이다.
1995년 미 미시시피대 2명의 과학자는 터머릭을 사용해 외부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새롭게 찾아냈다고 신규성을 주장, 미국특허(USP5,401,504)를 받았다. 이 특허의 신청에서 그들은 “터머릭은 인도에서 다양한 염좌와 염증 치료에 전통약재로서 오랫동안 쓰여왔다”라고 인정하며“외부상처의 치료제로는 터머릭의 사용이 연구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인도정부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터머릭이 특허 선행에 앞서 인도에서 상처 치료에 사용되었음이 증명되는 많은 연구논문을 증빙서류로 제출했다. 미 특허청은 인도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이 특허의 모든 청구사항을 기각했다.
만약 미국정부가 이 특허와 관련, 인도를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 더욱 강력한 특허보호를 요청했었더라면 인도에서의 터머릭 사용은 불법화됐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선진국에 의해 증가하는 자연자원의 약탈이 문제시 되고 있으나 후진국의 경우 이들 자원의 이용에 대한 문서화된 확실한 근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당할 수 밖에 없다. 제3세계 지역공동체들은 이미 시장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그들의 전통적 자원에의 접근이 어려워지는데 대한 희생자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샘플 제공자는 혜택없어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바이러스가 유래된 곳은 아프리카. 이에 따라 케냐 또는 서아프리카 초원의 HIV보균자들은 서양 연구자들의 샘플 채취대상이 되고 있다. 백신을 만들 수 있는 면역의 근원과 이 천형을 막을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찾으려면 보균자들의 혈액, 타액, 다른 세포 형태의 유전자 샘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HIV를 처음 발견한 파리 파스퇴르연구소는 1991년 미국특허(USP5,019,510)를 받았다. 이 특허에는 HIV바이러스-1의 변종들도 포함됐는데 이 연구소는“백신을 만드는 항원과 바이러스의 항체를 검출하는데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이 HIV-1종은 1986년 가봉 혈액기증자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아프리카 보균자로부터 얻어진 HIV관련 특허는 여러개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증자로부터 특허에 대한 동의를 받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세포들이 채집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 배양되는데 샘플을 제공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 연구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 이들 특허에 대한 논점이 제기된다.
에이즈연구는 제약산업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분야이며 최신 치료법의 이윤율이 유통이전에 70%에 이른다. 오늘날 HIV보균자의 절반이상이 아프리카에 살고있지만 최신 치료법의 비용은 이 대륙 주민의 연평균 소득의 30배에 달해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특허를 소유한 기업들은 결국 아프리카의 HIV기증자들을 희생양으로 하여 선진국 시장을 대상으로 횡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요 의학연구가 상업적인 목표에 의해 수행되고 지배되는 한 계속되어질 한 예에 불과하다.
물질특허가 산업을 주도한다
바이오시대는 물질특허가 산업을 주도하게 된다. 미생물을 비롯한 생명체에 대한 특허인정은 1980년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그 시발점이 됐다. 1971년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미생물학자 아난다 차크라비티(Ananda Chakrabarty)는 미 특허청에 유전자조작 미생물을 특허 출원했다. 이 미생물은 원유 분해능력을 갖춘 새로운 박테리아로 해양오염을 제거하는 유용성을 갖추고 있었다. 미 특허청은 특허법 하에서“생물은 특허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특허출원을 거부했다. 이에 불복한 그는 특허법원에 항소해 3대 2의 결정으로 승소했다. 이에 미 특허청은 연방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1980년 5대 4의 근소한 차이로 차크라바티의 손을 들어주면서 유명한 판례를 남겼다. “태양 아래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특허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그 판례이다.
BT와 관련한 발명은 특허 보호대상이 이제 미생물에서 유전자, DNA 단편 및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모노클로날 항체, 안티센스, 벡터, 융합세포, DNA 칩 등 대부분의 BT관련 발명이 세계 주요국에서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선진국과 BT 특허출원 추이를 비교해 보면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출원 건수 자체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낮을(미국특허 등록기준으로 0.7%)뿐만 아니라 특허출원도 선진국은 제약업체들이, 우리나라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주도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특허기술의 산업화에 크게 뒤져 있다.
바이오시대의 국제적 세력재편
게다가 우리나라는 1985년부터 2003년까지 등록특허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기업과 대학간(산-학), 기업과 공공기관간(산-연) 공동연구가 각각 1건, 7건으로 저조해 특허기술의 산업화에 큰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국의 산-학연구 1,070건·산-연연구 11건, 일본의 산-학연구 13건·산-연연구 43건, 캐나다 산-학 24건·산-연 13건 등과 비교해 볼 때 상당한 공동연구의 취약성을 보인다는 것이 특허정보원의 분석이다.
‘물질특허’가 지배하는 바이오시대에는 정보시대 보다도 바이오기술에 의한 빈부격차가 더욱 커지고 바이오선진국에 대한 바이오후진국의 예속도 더욱 확대되고 깊어 질 전망이다. 이것이 바이오시대가 가져오게 될 국제적인 세력재편이며 이 경쟁에서 낙오되면 자기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자원도 지키지 못해 바이오 신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는 경고이다. 바이오시대에 예견되는 부작용 중의 하나로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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