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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그레이엄 벨 간발의 차이로 특허획득

지금으로부터 130년전인 1876년 2월14일 미국 특허청에 비슷한 내용의 특허출원 2건이 거의 동시에 접수됐다.

바로 오늘날 통신혁명을 가져온 전화발명에 관한 특허였다. 이 역사적인 특허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에게 돌아갔다.

특허청은 이 전무후무한 내용의 특허출원 2건을 놓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수시간 차이로 먼저 신청한 벨에게 특허권을 내준 것이다.

그의 발명 특허의 내용은 `공기 중에서의 복잡한 진동인 음성을 고체를 통해 전달할 수 있고, 이 진동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해 전선을 통해 전송하는 장치 - 전화’에 관한 것으로,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진보를 가져다준 혁명적인 내용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특허를 놓친 사람은 이라이서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라는 전문 발명가.

1870년대에 이미 전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레이는 1874년 께 이미 소리를 전류로 바꾸는 ‘바이올린 수신기’를 창안하고, 그 해 5월 금속 진동판으로 이루어진 전자기 수신기를 제작, 특허까지 출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화기로의 개발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모스 신호를 보내 해독하는 전신과 관련한 기술에 치중했고 결국 인류의 위대한 발명가의 자리를 벨에게 넘겨주는 비운의 사나이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 사례는 간발의 차로 엄청난 기회를 놓쳐 버린 극적인 사건으로 꼽히면서도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진보 사례로 회자되곤 한다. 이렇게 시작부터 극적이었던 전화는 그 시작만큼이나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놓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2월 14일은 `전화 발명 130주년’이라는 인류 진보에 기념비적인 날인데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밸런타인데이로 그 의미가 묻혀지고 있어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다.

전화의 진보로 세계는 단일 ‘대화권’

벨에 의해 전류를 이용한 음성 전달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져갔다. 사람들은 더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고 이런 욕구에 따라 진공식 증폭기가 발명됐다.

이런 열망은 곧 대륙간의 통화까지 가능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제트기의 등장이 전세계를 물리적인 거리의 측면에서 지구촌으로 만들었다면 대륙횡단 전화로 대표되는 유선통신은 전 세계를 하나의 단일 ‘대화권’으로 묶어줬다.
또 장거리 통화를 가능케 한 진공관 기술은 초기의 컴퓨터들을 탄생시키는데 중요한 기술적 바탕이 됐다.

1887년 이미 미국에는 15만 대의 전화가 있었으며 영국은 2만6천대, 프랑스에는 9천여대가 보급됐다. 그리고 현재는 지구상에 10억대 이상의 전화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전화로 인해 음성의 전송이 가능해지면서 이것을 계기로 영상의 전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결국 텔레비전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한국, 통신강국으로 `우뚝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통화는 1896년 궁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이뤄졌다. 이어 1902년 3월 한성-인천간 전화가 개설되고 한성전화소에서 전화업무를 개시함으로서 비로소 일반인들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908년 공전식 방식, 1935년 자동식 방식이 도입되는 등 우리나라의 전화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지만 당시 전화기들은 여전히 일제의 행정용과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나라 전화의 역사는 1962년 체신 1호 시리즈가 개발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자석식, 공전식, 자동식 3가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체신1호 전화기들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최초의 국산 전화기로 그 의의가 매우 높다.

발명의미, 발렌타인데이에 묻혀… 한국, 유무선
전화서 `통신강국

1973년 체신1호를 개선한 체신 70호 시리즈가 개발되면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기의 기본을 이루게 됐다. 1981년 국가에서 보급하던 전화기의 구입절차가 개인이 직접 구입하는 자급제로 바뀌면서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과 화려하고 개성화된 전화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전자식 교환기가 개통되면서 전화기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편리한 다기능의 정보통신기기로 탈바꿈했다.

2005년말 현재 국내 일반 유선전화 가입자는 2천300만여명에 달해 `1가구 1전화시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동전화 가입자는 3천800만을 넘어서 올해는 40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1인당 1 이동전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미국에서 촉발된 전화 혁명은 130년 만에 한국을 세계최고의 `통신강국’, `IT강국’으로 만들었다.

`천의 얼굴 전화의 변신

전화는 지난 130년동안 인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유선전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이동통신과 인터넷 전화가 바로 그 변화의 진원지.

이동통신은 1980년대에 처음 등장, 급속히 확산됐다. “전화기를 집에서만 쓰지 말고 밖에서 이동하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동통신은 단말기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이동하면서 `전화’를 사용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통신의 최근 발달 경향은 MP3 플레이어나 카메라 등을 추가하는 하드웨어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비해 인터넷 전화의 발전은 소프트웨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전화는 1995년 이스라텔의 보컬텍(Vocaltec)사가 PC와 PC를 연결해서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음성을 주고받는 전화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특히 랜선을 이용해 음성과 데이터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기존 전화요금에 비해 획기적으로 통신료를 절감할 수 있어 통신시장의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예컨대 인터넷전화 업체인 삼성네트웍스의 경우 기본료 월 2천원, 별도의 시내외 구분없이 3분당 45원에 전국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터넷 전화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기존의 전통적인 일반전화 시장을 잠식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

데이터와 음성이 통합된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감성에 민감한 현대의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수진 기자 popsc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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