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에 부쳐진 재판 과정으로 인해 그의 삶은 더욱 신화적으로 각색되었고, 신화를 털어내었을 때의 모습은 가히 처참했다. 갈릴레오를 사상의 자유를 설파한 순교자로 보는 일반적 인식은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그의 견해가 당시 대다수 학자들과 다르다는 것만으로 그를 자유주의자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사에서 갖는 그의 업적까지도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어쩌면 종교재판 과정에서 갈릴레오가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지만 않았어도, 과학적으로 증명해 재판관들을 설득하려고만 했어도 그는 이단으로 낙인찍히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갈릴레오 사건이 무려 360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과학과 종교의 관계도 명확히 해명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갈릴레오 이후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끈임없이 전개되어 도도한 강물을 이루고 있다. 갈릴레오로부터 4세기가 지난 오늘날 과학은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서 사회의 여러 분야들과 수많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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