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학연맹(IAU) 총회는 지난달 24일 고전 행성(classical planets)의 범주에서 명왕성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수년간 태양계에서 가장 멀고, 가장 작은 명왕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져 옴에 따라 프라하 IAU 총회가 열리기 이전부터 명왕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바 있다.
망원경 성능개선이 결정적 기여
명왕성이 처음 발견됐을 당시 과학자들은 지구와 거의 같은 크기로 인식했기 때문에 행성의 지위를 부여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허블 천체 망원경이 개발되기 이전인 당시에는 명왕성은 해왕성 너머에 존재하는 혜성과 행성물질로 꽉 들어찬 카이퍼 벨트상의 존재로만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명왕성은 우선 크기가 달보다도 작고 궤도는 불규칙한 타원형이며 운동 패턴이 행성보다는 카이퍼 띠에 속하는 다른 천체들에 더 가깝다는 등 명왕성의 행성 지위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1978년 명왕성 주위에서 나중에 ‘카론’이라고 명명된 위성이 발견되고 이어 추가로 2개의 위성이 발견되면서 명왕성의 지위는 확고해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1990년대 강력한 천체 망원경이 개발되면서 명왕성 주변에서 그에 못지 않은 수 많은 물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마이클 브라운 교수가 명왕성(지름 2,300㎞)과 크기가 비슷한 ‘UB313’을 발견하면서 명왕성의 행성 지위가 본격적인 논란의 대상이 됐다.
브라운 교수가 ‘제나’(Xena)로 명명한 이 천체는 밝기로 미루어 지름이 2,236-3,480㎞쯤 될 것으로 추정됐고 이듬해 독일 본대학과 막스 플랑크 전파천문학 연구소팀은 열방출량 측정을 통해 UB313의 지름이 명왕성보다 700㎞ 큰 3,000㎞라고 주장했다.
행성논란 기폭제 ‘제나’
그러나 허블 망원경의 새로운 관측에 따르면 UB313의 지름은 2.380㎞으로 명왕성보다 약간 크고 메탄 성분 서리층이 표면을 덮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며 학계에서는 이 천체가 명왕성처럼 카이퍼 띠에 속하는 천체일 것으로 보고 있다.
명왕성의 행성 자격 논의는 이번 회의를 통해 행성의 조건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명왕성의 행성 지위 논란의 기폭제가 된 제나는 명왕성과 함께 `‘명왕성 물체(Plutonian objects)’로 구분됐다.
지난달 16일 개막된 이번 회의 초반에는 기존 9개의 행성 이외에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세레스, 카론, 그리고 UB313을 모두 행성으로 인정해 태양계의 행성 수를 12개로 늘리는 방안이 제시된 바 있으나 다수 천문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고전 행성의 수를 줄이고 행성의 조건을 강화하는 수정안이 도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행성 지위를 잃고 `‘왜(倭)행성’으로 격하된데 대해 결정 번복을 촉구하는 청원서 서명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어린이들은 철석같이 믿어온 행성 이름을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1930년 명왕성을 발견한 클라이드 톰보의 미망인 패트리셔 톰보는 “남편이 살았더라도 이런 결정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조금 슬픈 느낌이 들긴 한다”고 말했다.
명왕선 탐사선 지난 1월 이미 출발
톰보 여사는 지난 1997넌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남편이 생전에 이미 명왕성의 행성 지위 논란으로 실망과 좌절감을 갖기도 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그는 훌륭한 과학자였고 사리판단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살았다면 `과학은 발전하는 것이고, 과학자가 되려면 목을 내밀었다가 물리기도 십상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천문학자로 애리조나주 로웰 천문대에 근무하던 시절 명왕성을 발견한 뒤 누려왔던 명예와 관련 직책이 이제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톰보는 명왕성 외에도 몇개의 소행성들을 발견해 아내와 자녀, 손자녀들의 이름을 붙였으며 다른 학자가 발견해 1604 톰보라고 그의 이름을 붙인 소행성도 있다.
톰보의 유해 일부는 오는 2015년 7월14일 명왕성을 근접비행할 뉴 호라이즌스에 실려 지난 1월 지구를 떠났다.
한편 워싱턴 소재 스미소니언 연구소 항공우주박물관에서 `‘행성 탐험’ 전시를 주관하고 있는 제임스 짐벨먼 학예관은 어린이들로부터 가장 작은 태양계 행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들어 왔다면서 앞으로 전시물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지, 지금까지 어린이들이 행성 이름들을 쉽게 외우는데 큰 역할을 해 온 `‘태양계 가족’ 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 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사의 부정적인 반응
한편 월트 디즈니사 대변인은 명왕성과 같은 이름을 가져 어린이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아온 유명한 개 캐릭터와 관련, “플루토는 이 뉴스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플루토가 천문학자를 물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뉴호라이즌스 계획 책임자인 미항공우주국(NASA)의 앨런 스턴 박사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IAU의 결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스턴 박사는 “이는 천문학계의 망신이다. 전세계 1만여명의 천문학자 가운데 이번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424명으로 5%도 안 된다. 이들이 새로 규정한 행성의 정의는 기술적으로 미심쩍은 것”이라며 천문학계가 이번 결정을 번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미 일부 학자들이 IAU의 결정 번복을 촉구하는 청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행성 지위 논란의 불을 지핀 2003 UB313을 발견한 마이클 브라운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는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은 데 대해 기뻐할 사람은 없겠지만 결국은 옳은 일”이라면서도 “오늘부터 나는 아무 행성도 발견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고 씁쓸해 했다.
그는 앞으로 과학 교과서와 도표들이 바뀌긴 하겠지만 이는 학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그러나 교사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순간이 올 것이다. 교사들은 명왕성이 한때는 행성이었다가 이제는 아니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과학에 대해 훨씬 정확한 설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매우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왜행성 정의에 대한 새 논란
그는 그러나 명왕성에 새로 부여된`‘왜행성’의 정의가 “궤도 주변에 다른 천체가 있는 행성도 위성도 아닌 둥근 천체”라는데 대해 “왜행성이라면 수백개나 되며 내가 발견한 것만도 수십개는 된다”며 이런 정의에 따른다면 명왕성의 위성 카론도 왜행성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도 왜행성의 범주에는 이미 해왕성 밖 영역에서 발견된 수십개의 둥근 천체들이 포함될 것이며 앞으로도 수백개가 더 발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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