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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환경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극한 로봇

지난 2005년 10월 미국 뉴멕시코 주 화이트샌즈 미사일기지. 미 국방부 산하 감마선 연구소에서 고요한 정적을 깨고 비상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연구자의 실수로 감마선 방사물질인 ‘코발트-60’(Co-60) 저장용기가 파손, 핵폭탄이 터졌을 때에나 방출되는 감마선이 대기 중에 노출된 것. 파손된 용기는 작은 후추 통 크기에 불과했지만 여기서 유출된 감마선은 40명의 목숨을 거둬갈 수 있는 양이었다.

국립핵안전연구소(NNSA)의 방사성물질대응팀(RAP)이 즉각 출동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는 없었다. 감마선은 30초 만에 사람을 절명시킬 수 있는데다 특수차단복 마저 뚫어버릴 만큼 강력해서 현장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난감한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샌디아국립연구소가 개발한 ‘M2’(Mighty Mouse) 로봇이다.

높이 1.5m, 무게 272kg의 무선조종 로봇 M2는 원래 폭발물 해체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어디든 갈 수 있는 궤도형 바퀴, 드릴과 드라이버를 갖춘 정밀한 다관절 팔 등을 갖추고 있어 이번 작전의 최적임자로 선택됐다.

특히 사람과 달리 고방사능 지역에서도 50여분 간 정상작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발탁에 절대적 역할을 했다.

결국 M2는 RAP의 기대에 부응해 파손된 용기를 안전한 장소에 밀폐하고 공기정화 스위치를 누름으로서 단 한명의 인명피해 없이 사고를 해결해 냈다.

이처럼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혹독한 환경에서 인간과 같은 고도의 정밀작업을 수행하는 지능형 특수 로봇을 ‘극한 로봇’이라 부른다.

당초 원자력발전소 내 방사능 지역에서의 작업을 위해 개발된 것이 시초였지만 이제는 초정밀 센서와 첨단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전쟁터, 극지, 심해, 우주, 재난·재해 및 테러현장 등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나가고 있다.

극한 로봇의 효시, 원자력 로봇

극한 로봇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원자력 로봇은 원자력발전소 내에서 작업자의 방사능 피폭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1947년경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가 핵물질 제어를 위한 원격제어 로봇 팔을 개발, 사용한 것이 효시로서 원자력 분야는 로봇기술이 산업현장에 적용된 최초의 분야이기도 하다.

이후 컴퓨터와 전자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진 1980년대를 거치면서 현재 원자력로봇은 원전의 감시와 점검, 시설물의 유지보수, 원자로의 해체, 오염된 기기의 교환, 핵연료와 핵폐기물 처리 등 거의 모든 위험지역에서 인간을 대신하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 또는 사용 중인 모델을 중심으로 원자력 로봇의 활약상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원자로 검사로봇을 들 수 있다.

경수로형 원자로의 배관 내부를 검사할 수 있는 ‘수중로봇’과 중수로형 원자로의 핵연료를 교체할 때 중수 누출 및 기기의 상태를 점검하는 ‘이동로봇’으로 구분되는데, 두 모델 모두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의해 개발됐다.

이중 중수로 이동로봇은 열영상 카메라, 육안 감시카메라를 몸체에서 8m 높이까지 올릴 수 있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기 생산을 위해 원자로의 열(熱)로 증기를 만들어내는 증기발생기의 정기검사에도 로봇이 동원된다.

증기발생기 전열관 검사·보수용 로봇이 그것으로 작은 맨홀구멍을 통해 증기발생기 내부로 들어가기 때문에 몸체를 접었다 펼 수 있는 변신형 몸체를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자벌레의 움직임을 모방한 공압식 급수배관 검사로봇을 비롯해 원자로 헤드 및 하부, 제어봉 구동장치(CRDM)의 용접부 등 각종 원전설비 검사로봇들이 원전 내부를 누비고 있다.

덧붙여 해외에서는 방사성폐기물처리장에서 고준위 방폐물 운반 로봇, 청소로봇을 사용 중이며 원전 해체 로봇도 개발돼 있는 상태다.

군인에 앞서 전장을 누빈다

9.11테러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테러가 잇따르면서 전투 및 테러방지(폭발물처리) 분야는 이제 원자력을 넘어 극한 로봇의 최대 수요처로 급부상했다.

과거 이 분야의 극한 로봇 활용은 경찰 폭발물 처리반이 애용했던 폭발물탐지(EOD) 로봇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전투능률 향상과 인명피해 최소화에 대한 요구로 인해 지금은 각종 유·무선 센서와 중화기를 장착한 전투형 극한로봇의 개발이 대세다.

그 종류도 단순한 EOD 기능을 넘어 지뢰탐지, 독가스 및 화학물질 탐지는 물론 스나이퍼 탐지로봇, 경계병 로봇, 인질구출 로봇 등으로 특화·세분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민간에서 개발된 모델을 중심으로 보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파병(?)돼 우리에게 낯익은 EOD 로봇 3종을 꼽을 수 있다.

로봇청소기로 유명한 아이로봇의 ‘팩봇’(PackBot), 미국 포스터-밀러의 ‘테일론-EOD’(Talon-Hazmat), 국내기업 유진로봇의 ‘롭해즈’(Robhaz)가 그것이다.

세 모델은 궤도형 바퀴, 레이저 센서, 온도 센서, 냄새 센서, 열적외선 카메라 등을 갖추고 있으며 병사 투입에 앞서 전장 탐사, 위험물 제거, 희생자 위치파악 등의 기능 수행이 가능하다.

중화기를 장착, 전투까지 가능한 전투·수색·탐지·관측용(SWORDS) 모델로는 포스터-밀러의 ‘테일론-SWORDS’, 삼성테크윈의 지능형 경비로봇 ‘SGR-A1’ 등이 있다.

이중 SGR-A1은 고무탄, 최루가스, 실탄 등 단계별로 다양한 공격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으로 원격지에서 조종할 수 있어 자살폭탄 테러로부터 경계병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인사이트테크놀로지의 저격수 탐지로봇 ‘레드아울’(Red Owl), 로보틱FX의 인질구출로봇 ‘네고시에이터 TSR’, 독일 월드컵 경기장의 경비를 섰던 로보워치의 ‘오프로’(OFRO) 등이 전투 및 테러방지용 극한 로봇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 치의 틈도 파고드는 인명구조 로봇

테러나 자연재해, 사고 등 재난현장에서 인명구조 작업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지만 수많은 잔해물 속에서 매몰자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처럼 원활한 수색이 곤란한 재해현장에서 인명구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극한로봇의 활용이 강조되고 있다.

소형화 기술과 이동기술의 발달로 로봇은 구조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고 좁은 틈새를 돌아다니며 생존자의 수색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은 이 같은 재난구조용 극한 로봇에 가장 많은 관심과 투자를 기울이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지난 1995년 한신 대지진, 2004년 니가타현 지진 등 대규모 지진에 의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년전 일본구조시스템연구소가 정부 지원을 받아 레이저 센서, 소리감지 센서, 자세제어 센서 등의 장치들을 장착한 뱀 로봇과 거미 로봇을 개발했으며 이후에도 궤도형, 4족보행형, 지네형 등 다양한 유무선 구조로봇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의 제품들은 CO₂ 센서를 통해 매몰자의 신체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지난 2004년 텐자쿠가 선보인 높이 3.45m, 폭 2.4m, 중량 5톤의 괴물로봇 ‘T-52 Enryu’는 소형화를 지향하던 기존 재난로봇의 개념을 뒤바꾼 혁신적인 모델. 민·관·학계가 총망라되어 개발한 T-52는 자동차를 단번에 들어올릴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잔해물을 걷어내고 인명을 구출해낼 수 있다.

미국 비디오레이의 ‘비디오레이 프로’ 또한 구조의 역할을 물 속으로까지 확장시킨 신 개념 의 구조로봇이다.

수중음파탐지기를 갖춘 이 모델은 한치 앞을 구분할 수 없는 혼탁한 수중에서 신속히 사람을 찾아내 잠수부의 구조능력을 극대화시켜 준다.

이제 땅과 물을 장악한 구조로봇에게 남은 과제는 하늘뿐이다.

우주에서 극지까지 불가능은 없다

우주탐사 로봇은 사실상 극한 로봇 기술의 결정체다. 현존하는 최고, 최강의 기술이 아니면 절대로 명함을 내밀 수 없다.

하루에만 100도 이상을 넘나드는 일교차와 엄청난 자외선 및 가시광선의 피폭, 태풍과도 같은 회오리 등 지구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자로와 전쟁터, 무너진 빌딩 속을 점령한 극한 로봇이 우주라고 가지 못할 리 없다.

실제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인간을 닮은 로봇 우주인 ‘로보너트’(Robonaut), 3년이 넘도록 활동 중인 화성탐사 로봇 스피릿(Spirit)과 오퍼튜니티(Opportunity) 그리고 애슬릿(Athlete), K-10 로버(Rover), 스네이크봇(Snakebot)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로봇을 달이나 화성 등의 우주탐사에 활용해왔다.

나사(NASA)는 지금도 최첨단기술을 동원, 새로운 탐사로봇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지난해 말 화성의 급경사 지대를 탐사하기 위한 골프공 크기의 6족 로봇 ‘이어봇’(Earbot)도 이같은 노력의 산물이다.

나사(NASA)는 앞으로 이어봇을 통해 화성의 정체를 좀더 명확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탐사로봇에 대한 민간분야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곳은 카메기멜론대 로봇공학연구소와 달 탐사로봇 노매드(Nomad)를 공동 개발한 루너코프사. 이 회사의 노매드는 이미 수백km에 이르는 극지(極地)와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인 탐사실험을 성공리에 마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극한 로봇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상용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오는 2025년경에 이르면 전 세계 극한 로봇 시장 규모가 약 220억달러(약 20조6,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NASA도 놀란 생명력

화성탐사로봇 스피릿 & 오퍼튜니티

화성에는 인간이 보낸 두 명의 쌍둥이 과학자 (?)가 살고 있다.
지난 2004년 1월 화성에 착륙한 우주탐사로봇 스피릿(Spirit)과 오퍼튜니티(Opportunity)가 그들이다.

당초 나사(NASA)가 예상한 두 로봇의 수명은 최대 180일. 화성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160℃에 달해 모터나 전자장비의 파손이 일어나고 태양열 전지판에도 먼지가 쌓여 가동전력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다. 단순히 살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귀중한 광물분석 자료와 사진을 지구로 보내주고 있기까지 하다.

물론 역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피릿은 화성 도착과 동시에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지구와의 통신이 두절돼 NASA 관계자의 애를 태웠고, 오퍼튜니티는 모래언덕에 갇혀 빠져 나오는 데만 5주나 걸리기도 했다. 로봇 팔의 모터와 관절, 암석 천공 드릴 등의 파손도 일어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로봇이 예상 수명의 12배 이상을 견뎌내자 NASA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NASA는 부품의 내구성 등을 재조사한 결과 행운이 따른다면 최대 4년까지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NASA는 이들이 끝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최신 스마트 소프트웨어로 업그레이드해 줬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차기 화성탐사 로봇 모델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두 로봇이 너무 장수한 탓에 선물로 받게 된 것. 이제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지구에서의 명령 없이도 스스로 화상을 분석, 필요한 사진을 골라 지구로 보낼 수 있다.

두 로봇이 NASA의 두 번째 예측마저 깨고 4년을 넘겨 화성판 장수만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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