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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전력…외형은 강국, 내용은 '글쎄'

기술력ㆍ경제력ㆍ운용능력 등 3박자 갖춰야

‘첨단 기동군.’ 정부가 구상하는 국군의 미래상이다. 군(軍)을 양 위주에서 정예화ㆍ과학화한다는 게 골자다. 옳은 방향이다.

대부분의 나라들도 군의 과학화와 첨단기술 도입에 열중하고 있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자체 기술개발이든 외국산 무기 수입이든 장비 구입에는 막대한 예산이 지출된다. 과학기술과 경제력에 더해 운용 능력까지 필요하다.

돈과 기술, 경영능력이라는 3박자 없이는 미래형 군으로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에게 과연 그럴 능력이 있을까. -편집자 註

땅에서 고장 난 F-15K 전투기

최근 공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고가 일어났다. 최신예 F-15K 전투기를 지상에서 견인하던 중 전투기의 바퀴 하나가 맨홀에 빠진 것.

사고로 기체가 기울면서 왼쪽 날개가 파손됐다고 한다. 군 당국이 파손 정도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아 피해액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당분간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F-15K가 어떤 전투기인가. 한대 가격이 1,000억원대인 돈 덩어리다. 국내 기술로는 자체 생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능도 우수하다.

현 시점에서 배치된 기종 중에서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전투기다. 우리 공군이 보유한 F-15K는 모두 17대(18대를 도입했지만 지난해 6월 사고로 한 대를 잃었다). 내년까지 22대가 더 들어올 예정이다.

공군이 구상중인 신규 도입 전투기가 ‘F-15K급’으로 명시돼 있다는 점에서 20~40대가 더 수입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 미 공군의 F-15와 우리의 F-15가 맞붙는다면 어느 쪽이 이길까. 전투기의 성능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유리하다.

한국 공군의 F-15K는 F-15시리즈 중 최신형인 미 공군의 F-15E 기종보다도 성능이 향상된 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운용 능력 탓이다.

한국 공군은 최신형 기체를 인도 받은 지 얼마 안 된 반면 미군은 30년 가까이 F-15시리즈를 운용해 온 경험이 있다.

숙달된 운전자와 초보 운전자와의 차이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시간이 흘러 한국이 지상 정비와 부품 수급에서 기체 적응까지 운용 노하우를 습득해도 다른 난제가 수두룩하다.

당장 조종사의 기량을 결정하는 연간 훈련비행 시간이 우리보다 미군이 훨씬 많다.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의 연간 평균 체공시간은 145시간 내외인 데 비해 미군은 252시간에 이른다.

연간 100시간의 훈련 차이는 숙련도 차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나마 북한 공군 조종사의 연간 비행시간이 4~10시간 남짓이라는 외신 보도가 위안을 줄 뿐이다.

우리 조종사들의 기본 자질이 우수해 미군과 훈련시간 차이의 공백을 극복한다고 쳐도 조기경보기 등 ‘인프라’ 차이를 넘기는 어렵다.

공중경보기의 관제 지원, 급유기의 존재가 전투 결과를 가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라는 1982년 6월 베카 계곡 공중전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에게 거둔 85대 1이라는 경이적인 격추 기록은 기종과 조종사 기량의 차이도 차이지만 공중경보기 E-2C의 빈틈없는 관제 덕분이다.

공중경보기와 최신형 전투기의 연계 운용은 돈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공중경보기의 가격도 비싸지만 데이터를 상호 링크하고, 적이 알아채기 어렵게 암호화하며, 긴박한 전투상황에 실시간으로 써먹는 데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구축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냈을까. 미국의 재정 지원과 이스라엘 과학기술의 저력, 수 십 년 간 중동 전투로 다져진 경험이 완벽한 승리를 이끌었다. 과학기술+재력+운용능력의 위력을 말해주는 본보기다.

거꾸로 지상 이동 중에 발생한 F-15K의 사고는 정반대 케이스로 꼽힐 만 하다. ‘실수로 파손된 날개’는 단순히 실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난해 6월 동해상에서 발생한 F-15K 추락 사고의 귀책사유를 따지는 데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날개를 우리 손으로 고칠 수 있느냐는 점이다.

F-15K는 미국 보잉사에서 제작한 완제품이지만 절충 교역 계약에 따라 초기 인도분 8대를 제외한 나머지 32대의 전방동체와 주 날개는 국내 항공기 메이커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제작 납품하는 국산 부품이다.

생산기술은 수리와 정비 기술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이번에 파손된 주 날개를 국내 기술로 수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만일 국내에서 수리가 안 된다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파손 정도가 심각하거나 국내 생산기술이 단순 하청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한항공이 십 수 년 전부터 극동 미 공군이 운용하던 F-15A(F-15K는 F-15A를 대폭 개량해 성능이 훨씬 뛰어나지만 기체 외형은 다른 게 없다)기종을 정비한 적이 있어 어지간한 사고라면 국내 기술진이 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의 항공기술 수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2020년부터 F-16의 성능을 능가하는 전투기를 국내기술로 설계해 생산, 배치한다는 차차기 전투기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단순한 날개 파손 사고의 해결과정이 국내 항공기술의 수준을 다각도로 확인할 수 있는 프리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전력, 과연 세계 6위권일까

선진국 수준의 과학기술과 운영능력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은 나름대로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북한의 남침 위협에 맞서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며 꾸준히 군비를 증강해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개발된 3세대급 이상의 전차를 1,000대 이상 보유하고 있는 나라도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병력 수로는 중국ㆍ미국ㆍ인도ㆍ러시아ㆍ북한에 이어 세계 6위다. 과연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6위권일까.

최근 소개된 군사관련 외신 중에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종합 군사력이 세계 2위라는 기사다.

일본의 국제비즈니스 전문지인 ‘다카라지마’는 3월호에서 세계 200개 국가의 군사력 순위가 미국-한국-영국-중국-인도 순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본의 순위는 22위로 매겼다.

지난해 말에는 독일의 군사전문지가 한국을 세계 3위의 군사강국으로 지목한 적도 있다. 사실이라면 반길만한 일이다. 당장 군사비 지출을 줄여 복지나 기술개발 등 다른 분야로 돌릴 수도 있고, 국제무대에서 발언권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럴까. 병력 수를 기준으로 삼아도 6위권 이상은 힘들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에서는 2위권으로 평가했을까. 한국의 군사력을 과장해 자신들의 재무장을 가속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평가 기준이 언뜻 그럴싸하다.

평가 항목은 모두 여섯 개. 국방예산과 정규군 규모·무기 수출·수입·컴퓨터 보급률·국제분쟁 참여 등이다. 컴퓨터 보급률을 넣어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허점투성이다. 무엇보다 질(質)에 대한 분석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

병력과 무기의 수량이 똑 같아도, 혹은 열세라도 실제 전투력은 더 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적인 열세에도 우위를 점하는 군대에는 과학기술이라는 공통점이 나온다. 가장 저렴한 무기체계의 하나인 박격포를 예로 들어보자.

박격포는 구조가 간단해 월남전에서 월맹 정규군 뿐 아니라 베트콩조차 자체 생산했던 무기다. 소구경 박격포는 보병이 인력으로도 운반할 수 있는 간편하고 원시적인 화력으로 꼽히지만 첨단기술과 돈이 들어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성능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박격포의 통상적인 운용과 전개 방법은 관측장교가 높은 산에 올라가 표적에 대한 좌표를 사격 지휘소에 무선으로 불러주면 각 포에서 수동으로 각도를 조정해 발사하는 방식. 초탄 명중은 드물고 수차례 발사각을 수정해 한발이라도 표적에 맞추면 우수한 성적으로 평가 받는다.

절충교역

외국산 완제품 무기를 사주는 조건으로 한국산 제품의 수출을 보장받는 것.



F-15K 도입 당시 절충교역 액은 70%로 잡혀 있었지만 보잉사가 한국 업체에서 구매하는 부품 총액은 계속 줄어들어 10억 달러에도 못 미치며, 기술 이전도 인색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같은 무기라도 과학이 들어가면 하늘과 땅 차이

미군 수준의 장비를 갖춘 군대의 박격포 운용은 전혀 딴판이다. 포 자체는 동일해도 기계화·자동화를 거쳤기 때문이다.

우선 발사 전에 땅을 팔 필요가 없다. 사격을 할 때 포의 흔들림으로 인한 조준 및 탄착 오차를 줄이기 위해 땅을 파 포판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수고를 해야 하는 우리와 달리 미군의 박격포는 장갑차 안에 탑재돼 기동성과 탄약 운반, 방렬 시간이 빠르다.

측정에서 발사까지도 자동이다. 산 중턱까지 장갑차가 올라가 표적에 레이더 빔을 쏘아 되돌아오는 자료를 그대로 박격포를 탑재한 장갑차에 보내면 탄도계산기가 풍향과 풍속, 심지어 포신의 마모도(닳은 정도)까지 계산해 사격하는 방식이다.

초탄부터 백발백중. 똑 같은 수량의 박격포를 보유하고 있기에 군사관련 연구소 등에서는 대등한 전력으로 평가해도 실제 전투력은 수십 배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스웨덴이 개발해 사용 중인 스트릭스(Strix)란 포탄을 사용하면 박격포의 능력은 수십 배로 증폭된다.

보통 포탄보다 무겁고 긴 스트릭스는 로켓 모터를 부착해 사정거리를 곡사포 수준으로 늘릴 수 있다. 포탄에 내장된 유도장치는 표적을 자동으로 추적한다. 말이 박격포탄이지 미사일과 다름없다.

미국은 스트릭스를 발전시킨 시스템의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박격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공중에서 3개의 자탄(子彈)으로 분리된 후 낙하산에 매달려 내려오면서 목표물을 찾아내 공격하는 시스템이다. 타격 목표를 찾지 못했다면 낙하산을 탄 채 땅에 내려와 지뢰로 변한다.

단순한 지뢰가 아니라 센서로 탐지를 계속해 탱크나 장갑차, 차량이 접근하면 적군와 아군 여부를 식별한 다음 미사일을 발사하는 기능을 갖춘 지뢰다. 대규모 기갑부대를 만나도 이런 박격포 몇 문이면 대처가 가능하다.

승패를 좌우할 이 같은 정밀유도 폭탄은 군사력 비교에 감안되지 않는다. 지능형 포탄으로 무장해 전력이 훨씬 앞서도 수량에서 뒤진다면 군사력 비교에서는 ‘열세’로 판정될 뿐이다.

물론 구식병기를 갖고 첨단 무기를 제압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게 1999년 유고슬라비아 공습 때 세르비아가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인 F-117을 격추시킨 사건.
레이더에도 포착되지도 않고 설계와 기체의 합금과 도료까지 극비여서 미국이 다른 나라에는 제공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만 보유하는 기체를 떨어뜨린 무기는 확실하지 않다.

소련제 SA-3 지대공 미사일에서 SA-6 휴대공 미사일, 심지어 기관포라는 설이 있지만 공통점은 1960년대 기술로 개발된 낙후무기라는 점이다.

세르비아군의 비결은 첩보활동. 미군기지 부근에 침투한 스파이가 F-117의 발진과 예상 공격 루트까지 미리 알려줘 사전에 대비한 덕분이다.

장비가 열세라도 운용(정보도 운용의 개념에 포함된다)에 따라 고가 장비 이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례다.

베카 계곡 전투

1982년 6월 8일부터 이스라엘의 시리아군 대공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전투.

시리아는 4차 중동전 이후 조종사들을 집중 훈련시킨 데다 최신예기인 미그-23뿐 아니라 최고 속도 마하 3를 내는 미그-25기까지 보유해 이스라엘과 공중전을 벼르고 있었지만 사흘간 치러진 전투 결과는 참패중의 참패였다.

이스라엘의 F-15와 F-16은 단 한대의 손실도 없이 제공권을 장악했다. 시리아 전투기들의 이동 상황을 공중경보기를 통해 손금 보듯 알고 있었던 덕분이다.

85:1이라는 격추 기록 중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한대도 지상공격용으로 쓰인 F-4팬텀이었다. 공중전 기준으로 85:0이라는 스코어는 중동 각국이 무기 도입선을 소련에서 미국으로 선회하는 결과를 낳았다.

동구권 군사장비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아니라 구(舊) 소련의 몰락을 예고한 전투로도 평가된다.









레이더에도 걸리지 않는 미국의 F-117 전폭기. 지난 1999년 유고 공습 때 세르비아는 1960년대 장비로 F-117을 격추시킨 바 있다.

정예화 추진 한국군, 과연 어디로 갈까

세계 최강인 미군도 돈과 기술에 운용능력 확보라는 3박자를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다. 총병력 143만명 중 50만명을 차지하는 미 육군의 사단 수는 10개에 불과하다.

해군과 공군, 해병대, 영국군의 지원을 받았지만 미 육군은 단지 1개 사단으로 이라크 전쟁을 치렀다. 그만큼 정예화 했다는 얘기다.

미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디지털 사단(Digital Division)’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중이다.

병사 개개인과 탱크, 지휘소에 이르기까지 인공위성에서 보내주는 전장의 전투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디지털 사단은 미래전의 양상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68만명 규모의 병력을 2020년까지 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육군의 사단 수도 47개에서 20여개로 줄어든다.

북한이 117만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데도 감축에 나서는 것은 정예화로 이전보다 강한 전력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단순 비교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질적 분석에 따른 전력 비교를 중시하기 시작한 셈이다.

문제는 돈이다. ‘지금까지 몰라서 대규모 병력을 안고 온 게 아니라 사람이 가장 싸게 먹히는 전력이기 때문이었다’라는 국방부 관계자의 말처럼 인력 감축에는 예산이 들어간다.

더욱이 신형 탱크나 장갑차, 이지스함, 차기 전투기, 공중경보기 등 장비 도입을 늘릴 예정이어서 예산 지출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체에서 사람을 구조조정하거나 최신 전산설비를 설치할 때 돈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 기술이 필요한 분야, 즉 군 장비 개발과 생산이 순조롭다고 가정해도 경제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희망사항으로 그치고 말 가능성이 없지 않다.

설령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도 운용능력 확보라는 산이 남는다. F-15K 전투기 사고는 이를 대변하고 있다.

권홍우 서울경제 편집위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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