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에겐스타인 레오폴드샤펜 마을의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창문 밖을 내다보고는 세계 최대의 맥주 통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톤짜리 맥주 통처럼 생긴 그 물건은 근처 칼스루흐 시로 이송 중이던 초대형 분광계였다.
유럽과 미국의 협력 실험인 ‘KATRIN’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이 거대 분광계는 중성미자의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중성미자란 우주에 풍부하게 존재하지만 파악하기가 어려운 일명 '유령 입자(ghost particle)'다.
이 분광계를 제작한 곳은 설치 장소에서 200마일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덩치가 커서 고속도로 운송이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2개월에 걸쳐 다뉴브 강에서 흑해로, 그리고 지중해를 지나 지브랄터 해협을 통과했다.
이어 영국 해협 북쪽과 라인 강을 거슬러 올라가 에겐스타인 레오폴드샤펜으로, 그리고 다시 육로를 통해 칼스루흐로 운반됐다.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들을 감지하게 될 기계치고는 매우 느긋한 여행이었던 셈이다.
거대한 분광계를 실은 평상형 트레일러가 좁은 마을 길을 통과하고 있는 가운데, 기술자 마티아스 키쉬너가 원격 제어기로 진행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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