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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도 성형을 한다

노래하는 로봇 에버-2...로봇, 인간을 꿈꾸나?

인간에게 유용한 문명의 이기(利器) 대부분은 상상력에 의해 먼저 태어난 후 출현했듯이 로봇도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먼저 태어났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깃털이 떨어지지 않게 하나씩 붙여서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었다. 호메로스와 일리아스에서 재앙의 근원이 되는 상자를 연 판도라는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진흙과 물로 아름다운 여신을 모방해 만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원시적인 개념의 로봇에 포함될 수 있다.
보다 직접적인 로봇 이야기는 갈라티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피그말리온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인데, 그는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 갈라티아를 만든다.

본래 여자를 혐오해 결혼을 포기한 채 독신으로 지내온 피그말리온이었지만 자신의 작품을 짝사랑한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갈라티아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준 덕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마치 인간을 꿈꾸는 로봇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에버-2, 성형 위해 수술대 올라

우리 사회에서 성형수술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금기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열풍’이 됐다. 연예인들이 성형 경력을 자신 있게 공개하고, 남성들도 성형외과에 줄을 선다.

하지만 로봇이 성형수술을 한다고 하면 어떨까. 로봇에게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말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봇 성형을 먼 미래에나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로봇 성형은 지금 이 시각,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에버-2(EveR-2)’.

음악의 신을 뜻하는 ‘뮤즈’라는 별칭을 가진 에버-2는 지난해 11월 개최된 ‘로보월드’ 행사에서 발라드 곡을 부르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에버-2는 이동 중에 목 부위가 파손되면서 데뷔 공연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외모 역시 언니인 에버-1에 비해 떨어졌다. 곱상한 외모의 에버-1은 각종 행사에서 사회를 맡는 등 왕성한 연예활동(?)을 벌이고 있는 반면 에버-2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

이에 따라 에버 자매를 만든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백문홍 박사팀은 에버-2를 성형 수술대에 올리기로 하고, 지난 1월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수술은 올 10월쯤에나 끝날 것으로 보인다.

백 박사는 에버-2의 얼굴에 칼을 대는 이유로 “‘휴보’와 같은 기능 중심의 휴머노이드(humanoid)와 달리 안드로이드(android)는 기능 못지않게 생김새도 중요하다”면서 “이는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드로이드는 남자나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andr’와 같은 종족이나 유사한 것을 나타내는 ‘eides’가 합쳐진 말로 ‘인간을 닮은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견 말이나 행동이 사람과 구별되기 힘든 로봇을 말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 등장하는 래플리칸트(replicant)들이나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인조인간들을 연상하면 된다. 에버-1이나 에버-2가 대표적인 안드로이드다.

반면 휴머노이드는 몸의 구조가 인간과 닮은 로봇이다. 얼굴 생김새보다 체형이 사람과 닮았음을 강조하는 개념인 것이다.

사람처럼 두 팔, 두 다리가 있어서 걸어 다니는 로봇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오준호 교수팀이 개발한 휴보나 혼다의 아시모가 대표적인 휴머노이드다.

백 박사는 “개인적으로 에버-2가 훨씬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그래서 수술에 들어가는 김에 안면 피부도 바꾸고 좀더 친숙한 얼굴을 만들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무리한 행사 일정이 만들어낸 사고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외모를 갖고 있는 에버-2는 전신이 실리콘 재질의 인공 피부로 덮여 있다. 또한 얼굴(23개), 목(3개), 팔(좌우 각 6개), 하체(12개) 등 총 60개의 관절이 있어 언니인 에버-1(35개)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움직임을 보여 줄 수 있다.

특히 에버-2는 13개의 자음과 모음 표현이 가능한 립싱크와 발라드 풍에 맞춘 전신 율동, 대화, 개성 표현, 색상 식별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 팬들과 교감할 수 있는 가수로 활동하도록 설계됐다.

실제 지난해 11월의 데뷔 무대에서도 노래에 맞춰 립싱크를 하는 것은 물론 율동까지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로보월드에서 목이 파손되는 바람에 에버-2는 처음부터 이미지를 구기게 됐다. 신인가수로서는 최악의 데뷔였던 셈이다.

사실 에버-2의 완성 시기는 2006년 12월로 예정돼 있었고, 백 박사팀도 지난해 12월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에버-2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로보월드 2006의 개막식에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관계기관의 압박으로 무리하게 11월 초까지 완성 시점을 앞당겼다는 후문이다.

백 박사는 “사실 대중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만 보면 에버-2가 훨씬 뛰어나다”면서 “이는 에버-2의 표정이 다양하고 언어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데뷔가 좋지 않았고 외모가 친숙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부각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올해 말 업그레이드된 에버-2가 공개되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언캐니 밸리 현상의 극복이 과제

사람의 경우에도 성형수술은 힘들다. 시술받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부작용의 염려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성형수술에는 일정한 방향이 정해져 있다. 없는 쌍꺼풀을 만들고, 코를 높이고, 네모난 얼굴은 동그랗게 만드는 등 시술의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의 경우는 다르다. 사람들은 안드로이드의 움직임이나 생김새가 인간의 모습에 근접하게 발전해 가면 호감을 갖지만 인간과 너무 비슷하면 오히려 혐오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흡사하면 괜찮지만 어중간하게 비슷했다가는 오히려 반발심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악수를 한 상대방의 손이 의수임을 알아차렸을 때 순간적으로 드는 당혹감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로봇 공학자인 모리 마사히로는 지난 1970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현상을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고 명명했다.



언캐니란 우리말로 ‘섬뜩한’, ‘으스스한’, ‘기괴한’이란 뜻을 갖고 있는 만큼 이상한 골짜기에 들어갔을 때의 무시무시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오준호 교수도 휴보의 몸통에다 아인슈타인의 머리를 접합한 ‘알버트 휴보’를 내놓으면서 언캐니 밸리 현상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오 교수는 그 이상한 인간감정의 골짜기를 극복하기 위해 젊은 사람보다 친근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를 택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언캐니 밸리 현상의 존재가 휴보의 몸통 위에 올릴 인물을 결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백 박사 역시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현상을 알고 있다. 그는 “결국 언캐니 밸리 현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더 인간과 유사하게 만드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한다.

백 박사는 이의 일환으로 에버 시리즈의 대화 능력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그는 “로봇 공학자들을 괴롭히는 언캐니 밸리 현상도 결국 안드로이드와 사람 간의 인터페이스에 관한 문제”라면서 “사람과 좀더 친밀하게 교감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사람의 형상이나 표정도 중요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대화 능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연예인이 갑자기 몇 달간 무대에서 사라지는 경우는 대부분 성형수술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힘들지만 에버-2의 경우는 사실이다.

과연 에버-2는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친숙한 얼굴을 하고 우리의 주위에 나타나 미흡했던 신인 시절을 딛고 최고의 인기 로봇이 될까. 아니면 성형으로도 인기를 만회할 수 없을까.

인간형 로봇 변천사

우리의 사랑을 받아 온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그리고 그 외의 영화속 로봇들

● 1927

마리아 (메트로폴리스)
유혹적이고도 사악한
마리아는 노동계층을 억압하는 인물로 만들어졌다. 그녀는 관능적인 춤을 추어 폭동을 유발하려 하였다.

● 1951

고트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외교관이자 평화를 사랑하는 고트는 적에 해를 가하지 않고 무기를 증발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 1956

로비 (금지된 행성)
드럼통 모양의 가슴을 한 로비는 금지된 행성 외에도 다른
몇 편의 영화와 애덤스 패밀리, 로스터 인 스페이스 등의 TV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 1962

로지 (젯슨스)
로지는 전후 세계가 꿈꾸던 기술을 통해 편해진 세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비전은 여전히 인간을 닮은 로봇에 대한 연구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 1973

건슬링거 (웨스터월드)
이 안드로이드는 성인 테마파크의 연습용 과녁이었다. 그러나 작동 불량으로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진다.

● 1977

C-3PO (스타 워즈)
두뇌는 있으나 완력은 없는 이 안드로이드는 루크, 한, 그리고 3PO의 작지만 용감한 친구 R2-D2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 1984

T-800 (터미네이터)
아놀드가 최초의 킬러본능을 표현했다. 그는 인류의 미래 지도자를 살해하는 임무를 띠고 온 사실상 파괴불가능한 암살 로봇 역을 맡았다.

● 2003

넘버 식스 (배틀스타 갈락티카)
모델 모습을 한 로봇이 등장,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 이중 넘버 식스는 스파이를 유혹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만들어졌다.

김태규 코리아타임스 기자 voc200@korea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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