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영화에서 초능력자들은 소파에 편안히 앉아 두 눈을 부릅뜨는 것만으로 TV를 켜거나 물건을 옮기는 등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현실세계라면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누구나 이 같은 능력을 소유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 백 년 간 그래왔듯이 인류의 이상을 현실화시키려는 혁신적 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첨단’이라는 이름으로 관련기술 개발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든 인간을 초능력자로 변신시키기 위해 개발중인 기술의 핵심은 두뇌의 생체신호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전자신호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가능해지면 인간은 가전기기들은 물론 로봇, 전투기, 자동차 등 전자신호의 인식이 가능한 모든 것들을 생각만으로 제어 및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뇌의 생체신호를 읽는 ‘브레인 칩’
그동안 과학자들은 사람의 두뇌와 기계간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터무니없는 상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왔다. 인간의 뇌는 기계적·인위적 방법으로는 절대로 이해되거나 해석할 수 없는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기술적 측면에선 어느 정도 가능하더라도 ‘인간의 사이보그화’라는 거대한 윤리적 장벽에 부딪쳐 결국에는 좌초될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 무의미한 연구 분야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지 모른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 두뇌와 두뇌의 생체신호처리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인간과 기계의 융합 가능성이 높아졌고, 호기심에 가득 찬 과학자들에 의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중 일부 연구팀들은 이미 프로토타입(시제품) 수준의 실험을 완료된 상태로서 이르면 1~2년 후에는 기초적 단계의 상용기술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듀크대학은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며 주목받고 있는 대표주자의 하나다. 이곳에서는 전신이 마비되는 파킨슨병 환자들을 위해 두뇌의 활동을 탐지할 수 있는 일종의 브레인 칩(brain chip)을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로와이어(microwire)’라고 불리는 이 칩은 사람의 머리카락보다도 얇지만 두뇌에 이식하면 뇌의 생체신호를 측정, 컴퓨터와 연결된 로봇 팔을 움직일 수 있다.
실제로 연구팀은 지난 2003년 붉은 털 원숭이의 뇌에 마이크로와이어를 삽입, 별도의 장소에 있는 50kg짜리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수년 내에 인간이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 팔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원숭이 실험성공에 고무된 연구팀은 팔다리를 잃은 지체 장애자에게 적용 가능한 인공지능 의수족(義手足)의 개발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물론 이 인공 팔로 피아노를 칠 수는 없겠지만 물을 마시는 정도의 간단한 작업은 타인의 도움 없이 수행할 수 있을 전망이다.
뇌파로 조종되는 로봇
유럽의 한 연구진도 듀크 대학과 유사한 방식을 이용, 뇌파로 움직일 수 있는 의수(義手)를 개발 중이다.
파올로 다리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개발한 프로토타입 모델인 ‘사이버 핸드(Cyberhand)’는 첨단센서가 사람의 뇌파 신호를 수신, 의수를 제어하기 때문에 착용자는 마치 자신의 손처럼 자유자재로 의수를 움직일 수 있다.
특히 사이버 핸드의 최대 장점은 실제 손이 느끼는 것과 같은 미세한 감각을 구현해 냈다는 것.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과 손가락 표면을 따라 내장된 압력센서가 손이 물체에 가하는 힘을 미세하게 조절함으로서 기존의 그 어떤 인공 손도 해내지 못했던 감자 칩 잡기까지 가능하다.
‘감각 인터페이스’로 명명된 이 기술은 의수 착용자의 팔 하단부에 무선 송신시스템과 전극(電極), 마이크로프로세서로 구성된 전자 칩을 이식함으로서 구현된다.
바로 이 칩이 중추신경계와 의수 사이를 오가며 사람의 생각을 통역, 의수에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또한 사이버 핸드는 기계적 측면에서도 한층 진일보한 의수로 꼽힌다. 일례로 이 의수에는 손가락마다 별도의 직류(DC)모터를 장착, 다섯 손가락을 제각기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잡고 놓기는 물론 삿대질, 가위 바위 보 등 한층 복잡하고 미묘한 동작까지 가능하다.
각 모터는 테플론을 씌운 케이블을 잡아당기게 되는데, 이 케이블 선은 실제 손가락의 힘줄과 근육 기능을 모방한다.
연구팀의 최종 목표는 사람의 생각을 의수로 보내는 것에 더해 의수가 느낀 감각을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를 통해 사람과 의수 사이에 완벽한 일체감을 부여함으로서 사고로 손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가짜 손이 아닌 진짜 손을 되찾았다는 기분이 들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리오 교수 연구팀은 금명간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핸드의 착용감 테스트에 착수, 감각 인터페이스 성능을 보완해나갈 방침이다.
TV를 보며 화성 탐사로봇을 움직인다
듀크 대학과 다리오 박사가 뇌파 탐지 기술을 사지마비 및 절단 환자들을 위한 첨단 신경망 의술에 접목했다면 미국 미시간대학 연구팀은 이를 로봇 제어에 적용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단순한 팔, 다리가 아니라 직립형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각만으로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 이들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다.
이를 위해 현재 연구팀은 특수 뇌파해독장치를 부착한 쥐에게 원격지에서 바퀴벌레처럼 생긴 6족 로봇 ‘렉스(Rhex)’를 조종하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이 기술이 완성될 경우 로봇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지르거나 리모컨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청소, 식사준비, 심부름 등을 시킬 수 있게 된다.
또한 관련기술이 좀 더 확보된다면 안방에서 TV를 보며 화성탐사 로봇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으며, 점심식사를 하면서 전투로봇을 운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도 있다.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인간의 생체신호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뇌에 전자 칩을 이식해야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미래에는 별도의 이식 장치 없이도 뇌세포의 전기신호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전극을 머리 근처의 피부에 붙이는 ‘뇌파 전위 기록술(EEG)’은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방법이다.
하지만 아직 EEG는 앞서 언급된 브레인 칩 이식술에 비해 생체전기신호를 탐지?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 저조하다는 단점이 있다. EEG로 인식할 수 있는 신호가 너무 희미하고 약해 로봇은 물론 인공의족을 조작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非) 이식형 뇌파탐지술은 외과적 수술이 필요 없고 윤리적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이와 관련, 얼마 전 일본의 혼다와 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ATR)의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원격 로봇제어시스템 ‘BMI(Brain Machine Interface)’는 외부에서 뇌의 움직임을 측정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개념의 비(非) 이식형 뇌파탐지술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이 뇌파탐지에 사용한 장비는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fMRI). 이를 이용해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파악, 로봇의 움직임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이미 사람이 fMRI에 누워 가위, 바위, 보 모양의 손짓을 할 때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해독함으로서 원격지에 있는 로봇 팔에 동일한 움직임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정확도 또한 90%로 매우 뛰어났다.
이 기술을 응용할 경우 뇌에서 보내는 신호로 운전이 가능한 중증 장애자용 전동 휠체어 등을 개발할 수 있다.
혼다측은 향후 1년 내에 한층 개선된 2세대 BMI 기술을 자사의 이족보행 로봇인 아시모(Asimo)에 적용해볼 계획이다.
또한 손을 움직이지 않고 생각만으로 로봇을 제어하는 수준으로 이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향후 8~10년 이내에 엄청난 크기의 fMRI를 백과사전 크기로 소형화해 실용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뇌 - 기계 융합장치]
뇌 통신기
미국의 신경학자인 필립 케네디는 신체마비 환자들이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 냈다.
뇌에서 운동 조절을 담당하는 부위인 대뇌 운동피질에 브레인 칩을 삽입해 포착된 전기신호를 소프트웨어 명령어로 변환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장치는 사용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환자들은 다양한 동작에 관해 생각하면서 이것들이 커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며 커서의 움직임을 배워야 한다. 뇌의 신호는 무선송신기를 통해 컴퓨터로 보내지므로 전선이 필요 없다.
시력회복 특수 안경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안과 교수인 마크 휴메이언 박사가 설계한 특이한 모습의 안경 덕분에 시각장애자들이 시력을 일부 회복하고 있다.
인공 망막을 환자의 눈에 삽입한 뒤 두피 내부에 이식한 소형 자기디스크(magnetic disc)와 전선으로 연결한다.
안경을 착용하면 소형 비디오카메라들이 주위의 빛을 모아 전기 자극으로 전환한 다음 무선으로 자기 디스크에 전송하는데, 이것이 이식된 망막을 통해 뇌의 시신경에 전달돼 앞을 볼 수 있다.
아직 제한된 부위만 희미하게 보여줄 뿐이지만 휴메이언 박사는 기술보강을 통해 선명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자식 귀
인공 와우(Cochlear implant)는 귀 뒤쪽의 피부 밑에 이식하는 소형 장치로 전 세계적으로 5만9,000명의 청력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내이에서 음파를 전기 신호로 변환해 신경을 자극한 후 음 신호를 뇌로 전달한다. 인공 와우는 이런 자연스런 과정을 모방한다.
이 장치는 소형 마이크로 칩이 채집한 소리를 전자신호로 변경, 청각 신경을 자극함으로써 뇌에서 소리를 인식하게 한다.
생체공학 인공 의수(義手)
미국의 설비 수리공 제시 설리번은 전깃줄을 만지면서 왼쪽 팔에 심한 화상을 입어 절단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시카고 재활연구소의 토드 쿠이켄 박사가 고안해 낸 인공 의수 덕분에 그는 왼쪽 인공 팔을 생각만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됐다.
쿠이켄은 설리번의 어깨로부터 떼어낸 신경섬유의 끝부분을 가슴 근육에 이식했다.
설리번이 팔을 올리는 생각을 하면 그의 뇌가 신경에 신호를 보내고, 이식된 전자 칩이 이 신호를 인식해 인공 팔을 움직인다.
이 모델은 뇌로 제어되는 의수족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어깨와 팔꿈치, 팔목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특히 착용자가 손의 압력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구본혁기자 nbgk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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