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구경거리에 푹 빠져 꼬마 자동차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달리 자동차의 주인들은 장난감 놀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이 값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마땅한 이들은 국내 최초의 ‘모형 수소자동차 경주대회’ 참가자들이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수소(H2)와 산소(O2), 그리고 연료전지로 움직이는 미니 수소자동차다. 사람이 탈 수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실제 수소자동차와 구동원리가 똑같다.
한국수소 및 신에너지학회, 고효율수소사업단 등이 공동 주최한 이번 대회에는 전국 18개 대학에서 총 32개 팀이 참가했다.
승자를 결정하는 핵심기준은 정확한 정지능력. 25m 트랙 위를 달리다가 15m(예선)와 20m(결선) 지점의 라인에 가장 가깝게 정지하는 팀이 이긴다. 단 자동차는 반드시 100% 자체 제작해야 하며, 원격조종으로 정지시키면 안된다.
정지능력 확보를 위해 각 팀들은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2위를 차지한 서울대 PEEL팀은 자동차 바퀴의 지름을 측정, 1회전 당 진행거리를 계산한 후 원하는 거리를 이동하면 제동장치가 작동되는 방식을 채택했다.
전북대 페라리팀의 경우는 타임스위치를 부착해 일정시간이 흐르면 작동이 멈추도록 시스템을 구성했다.
내심 학생들의 실력을 미덥지 않게 생각했던 수소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조차 ‘놀라운 아이디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각 팀들이 선보인 기술들은 뛰어났다.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최우수상을 차지한 주인공은 충남대 정밀응용화학과 학생 4명으로 구성된 ‘수소파워’. 이들은 차량 바퀴에 흰색 십자 선을 그려 넣고 적외선 센서로 회전을 감지하여 진행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탁월한 정지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바퀴는 병마개, 차체는 액자와 폐건축 자재를 재활용하는 등 수소차의 친환경성을 강조했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초대 대회를 성공리에 마친 주최 측은 학생들의 실력이 예상외로 뛰어난 점을 감안, 내년에는 동일 양의 수소연료로 가장 많은 거리를 달리는 팀에게 우승을 주는 등 대회 수준을 좀 더 업그레이드 할 계획이다.
인기 만발 달팽이
이번 대회 최고의 인기주자는 충남대의 ‘청정 달팽이’.
첫 예선전부터 관객은 물론 주최 측, 대회 참가자, 취재진 등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했다.
보는 이가 답답함을 느낄 만큼 느릿느릿 나아가던 것이 15m의 결승점은 물론 25m의 트랙을 모두 지나치고도 5m 가량을 더 나아간 뒤 계단 아래로 다이빙하기 직전에야 강제로 들어 올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결선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심사기준에 의하면 탈락이 마땅한 ‘무한 질주 본능’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예·결선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결승점 근처에 멈추지 않았던 달팽이가 결선 마지막 시도에서 결승선에 거의 정확히 멈춰 섰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멈추고 싶어 멈춘 것이 아니라 우연히 결승선 근처에서 트랙의 벽에 걸리며 멈춰선 것이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 한 번의 성공으로 청정 달팽이는 장려상과 50만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양철승기자 csyang@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