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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뇌

사랑과 뇌 작용에 관한 과학적 접근

사랑은 마음에 관계되는 것인데, 마음은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 즉 화학물질의 칵테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랑에 빠지면 종종 상식에 어긋나는 강박장애의 행동을 보이곤 하는데, 이 역시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사랑과 강박장애에 비슷한 기전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것도 아닌데 만나서 잠깐 이야기하는 동안 서로 눈이 맞게 된다. 남성과 여성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하나의 인간(이성)이 신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처럼 느껴지고, 초침과 같이 정확하게 운동하던 심장도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다. 이 같은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실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뇌의 활동이라고 하면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뇌라고 하는 물질에서 물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이 생겨난다고 하니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실제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익숙하다. 반면 뇌에 대해서는 별로 친숙하지 못하다. 뇌라는 것을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본 일이 있지만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력은 물론 사랑에 빠지는 것도 사실상 뇌가 하는 일이다. 다만 사랑과 뇌 활동의 메커니즘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마음은 뇌 속 화학물질의 칵테일?

마음을 다루는 학문으로 심리학이 있는데, 19세기 후반까지 심리학은 철학의 한 분야였다. 다시 말해 마음이란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카할의 뉴런학설이 제기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즉 마음을 신경과학의 측면에서 다루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뇌의 발달은 외배엽에서 시작한다. 다세포 생물에서 개체 발생의 초기 단계를 배아라고 하는데, 외배엽은 중배엽 및 내배엽과 함께 배아를 구성한다. 이들로부터 신체의 여러 기관과 장기가 만들어지게 된다.

외배엽의 일부는 두꺼워져 신경판이 되고, 다시 신경판이 접혀서 신경관이 되는데 이것에서 뇌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카할의 뉴런학설이란 뇌를 포함한 신경계의 구성단위는 바로 뉴런이라고 하는 신경세포라는 것이다.

신경세포는 고도로 분화 발전한 세포다. 신호를 발생하고 그것을 다른 세포에 전하는 기능을 갖는다. 말하자면 전자기계의 반도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신경세포는 축삭과 수상돌기라고 하는 두 가지 돌기를 가지고 있다. 축삭은 신호를 내보내는 역할을 하며, 수상돌기는 다른 세포로부터 신호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들 두 가지 돌기를 포함하는 신경세포를 통틀어 뉴런이라고 한다.

축삭 말단을 신경말단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다른 뉴런과 접촉하고 그 접촉부를 시냅스라고 한다. 대뇌피질에는 약 150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500조 개의 시냅스를 이루어 회로망을 만들고 있다.

시냅스에 있어서 신경말단과 신호를 받아들이는 세포, 즉 수용세포 사이에는 시냅스 간격이라는 틈새가 있다.

축삭을 통해 신경말단에 이른 전기적 신호는 시냅스에서 화학적 전달방식으로 바뀌어 수용세포에 전달되는데, 이 같이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을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한다.

뇌 안에는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있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30가지가 넘는다. 수용세포의 기능은 글루타메이트, 가바(GABA)라는 신경전달물질에 따라 자극(흥분)되기도 하고 억제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마음이란 이들 신경전달물질, 즉 ‘화학물질의 칵테일’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주의’에서부터 시작

사랑은 이 도령이 춘향의 그네 타는 모습에 매혹돼 불붙었듯이 ‘주의’라는 행동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는 각성과 주의를 구별한다. 각성이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처음 느끼는 것처럼 사람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 조건이다. 반면 주의란 최소한 인식의 어떤 형태를 돕는 것이며 반사와 의지적 요소를 가진다.

예를 들어 이어폰을 통해 한쪽 귀로 들어오는 소리에 집중할 때 다른 쪽 귀로 들어오는 소리들은 무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 것이다. 따라서 다른 쪽 귀로 들어오는 관심 밖의 소리는 의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주의의 초기 처리과정은 대체로 병렬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활동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처리 단계에서는 병목현상이 나타난다.

사랑은 이도령이 춘향의 그네 타는 모습에 매혹돼 불붙었듯이 ‘주의’라는 행동에서 시작된다.

한 번에 한 가지(또는 소수) 대상만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주의하지 않는 대상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걸러냄으로써 이루어진다.

주의는 병목현상에 이어 집주광선현상이 나타난다. 집주광선현상이란 대상을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기억하기 쉽게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 같은 집주광선현상의 극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주의를 좌우하는 것은 뇌의 어느 부위일까. 아직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가장 유력한 부위는 시상베개핵이다. 이 부위에서 가바(GABA)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병목현상과 집주광선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시상베개핵만으로 주의를 설명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주의라는 행동에는 대뇌피질의 후두엽, 두정엽, 대상회를 포함해 여러 부위가 관계한다는 실험적 보고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뇌의 관계, 특히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하는 화학물질과의 관계를 밝혀보려고 시도한 사람 중 하나는 뉴욕 러저대학의 인류학자인 헬렌 피셔다.



그녀는 동료 교수인 아서 아론과 함께 뇌의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에서 복측피개와 미상핵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보상이나 쾌락과 연관이 있는 부위다.

사랑은 곧 강박장애?

사랑은 여러 가지 감정반응을 일으킨다. 도취성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에 극도로 주의를 집중하게 한다. 사랑에 대한 목마름은 거의 조절이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성적 욕구는 방향을 돌릴 수 있다. 억누를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분명 성적 욕구보다 강하다. 실제 성적 욕구가 거부당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자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을 거부당하면 종종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감정이입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사랑에 빠지면 종종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데, ‘눈에 무엇이 씌었다’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행동은 일종의 강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강박관념은 불안장애의 하나로 반복적으로 강제 당하는 생각 또는 충동을 말한다. 세균이나 침, 고름 등에 오염됐다는 생각이나 부지불식간에 남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강박행동은 강박관념에 수반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타난다. 손을 너무 자주 씻는 행동 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을 다짐하기 위해 반복해서 세어보는 행동 같은 것이다.

사랑을 마약중독에 비유하는 학자들도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감정과 행동을 마약중독 때 경험하는 도취감, 그리고 강박적 행동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실제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물질이 뇌에서 유리되고 엔돌핀의 생성이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인생이 장밋빛으로 변하고 활력이 넘쳐나게 된다.

하지만 사랑에 실패하면 금단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역시 마약의 금단증상과 다르지 않아 대단히 고통스럽고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한 강박적 행동이 뒤따르게 된다. 그렇다면 사랑은 일종의 병일까.

애인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면 ‘공의존성’이라는 병적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애인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애인의 요구를 앞질러 짐작하는 것, 자신보다 애인을 더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애인을 돕는데서 꾸며진 자기가치관 등이 대표적인 공의존성 증상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병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학적 변화가 뇌에서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병이라고 한다면 세상이 너무 삭막할 수 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

동물의 짝짓기 습관은 대단히 다양하다. 그 전략은 자손과 유전자의 생존을 극대화하려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생식생물학적 측면에서 보면 암컷과 수컷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물은 같은 종 안에서도 짝짓기 습관이 다르다.

일부 암컷의 경우 짝짓기 상대를 대단히 신중하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암컷에게는 비교적 적은 수의 난자 밖에 없으며, 전 생애를 통해 포태하고 양육할 수 있는 자식의 수도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임신을 하게 되면 출산 여부에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반면 수컷의 경우는 짝짓기 이후 새끼와 암컷에게 거의 봉사하지 않는다. 이 경우 수컷의 장점은 가능한 많은 가임 암컷에게 정자를 퍼뜨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난잡한 교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수컷들은 짝짓기 대상을 놓고 극심한 경쟁을 벌인다. 진화학적 의미로만 본다면 수컷이 떠나면 오히려 다음 세대로 유전자를 더 많이 전할 수 있다. 그 만큼 암컷과 교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동물의 짝짓기에는 일부일처형과 일부다처형(또는 일처다부형)이 있다. 동물이 어떤 짝짓기 전략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복잡한 사회적 행동이 관여하는데, 이들 행동의 조절은 놀라울 정도로 뇌 안의 몇몇 화학물질에 의해 이뤄진다.

일례로 초원 들쥐는 견실한 가족관계를 갖는다. 사회성이 높고 일부일처형이다. 암컷과 수컷은 짝짓기를 한 후 둥지에서 함께 생활한다.

수컷은 암컷을 보호하고 새끼의 양육에 조력한다. 반면 고원 들쥐는 비사회적이고 다접형이다. 암컷과 수컷은 각각 다른 둥지에서 생활하며 수컷은 새끼 양육을 전혀 거들지 않는다.

이 두 종류의 들쥐는 신체적으로나 유전자적으로 매우 흡사해 이들의 생식습관 차이는 생물학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이라고 하는 뇌하수체 호르몬이 생식습관 조절에 밀접하게 관여한다는 것이다.

뇌하수체 호르몬은 뇌의 시상하부라는 곳에서 만들어져 뇌하수체 후엽에서 혈중으로 분비된다.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된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혈액 순환을 따라 신체의 여러 부위에 작용하는데, 뇌에도 이들 호르몬을 수용하는 부위가 여럿 있다.

즉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뇌의 신경말단에서 유리돼 뇌의 여러 부위에 분포하고 있는 시냅스 수용체에 결합, 신경전달물질 내지 조절물질로 작용한다.

이들 수용체의 분포는 초원 들쥐의 뇌와 고원 들쥐의 뇌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의 사랑에서도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이 중요한 역할을 할까. 머지않아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하나의 비논리적 모험이다. 그 인과관계에서 전혀 균형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에 빠진다는 행동을 뇌가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정확한 해답도 아직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신경과학자의 노력으로 결국은 사랑의 신경연관을 이해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아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글_박찬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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