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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면도날과 과학 문맹 탈출

과학적 설명에 대한 방법론적 원리 중에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국 오컴 마을 출신의 중세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윌리엄이 제기한 것으로 복잡한 설명보다는 단순한 설명이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주로 듣는 충고인 ‘KISS(Keep It Simple Stupid)’, 즉 프로그램을 간단하게 만들라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모든 것을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간단하게 만들되 그 이상으로 간단하게 만들지는 마라”는 아인슈타인의 충고도 있기는 하지만 과학의 대중성, 또는 과학 문맹(文盲)에서의 탈출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오컴의 면도날처럼 귀에 쏙 들어오는 말도 없어 보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의 정책에서 차지하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주제들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줄기세포, 우주항공, 지구온난화는 물론 외국의 기술이 우리 경제에 가하는 위협에 이르기까지 주제도 다양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 정책이 연일 쏟아지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자세를 보입니다. 과학과 기술이라는 주제 자체를 처음부터 외면해 버리는 것이죠.

사실 과학을 하는 것과 과학을 활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보통 사람들까지 과학자의 능력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삶의 필요에 의해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일명 과학적 교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령 신문을 읽다가 초전도체라는 단어와 마주쳤다고 합시다. 그러면 초전도체라는 것이 전기를 손실 없이 전도시키는 물질이라는 것, 이것이 광범위하게 이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극히 낮은 온도에서만 초전도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온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오늘날 재료공학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것만 알면 충분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과학을 충분히 접하지 못했거나 21세기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학교육 자체부터가 그렇습니다.



과학자의 이름과 그 사람의 업적, 그리고 이에 대한 단편적인 이론지식을 묻는 문제를 수없이 풀면서 점차 과학은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이라고 뇌리에 각인이 됩니다. 대학 역시 학생들에게 일상생활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과학 지식마저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 문맹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것은 물론 삶의 아주 풍요로운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특히 시대정신을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당대의 과학 발달에서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시대의 지적 삶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과학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 시대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과학 문맹의 결과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자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각각의 화제를 엄밀한 수학적 틀에 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학기술 관련 지식이나 정보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재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물론 성인에게도 다른 형태로 지식이 전달돼야 합니다.

재미와 흥미, 경이로움과 감탄이 가득한 과학적 교양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죠. 파퓰러사이언스는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 발행되고 있습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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