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20년 12월 1일 오전 6시. 사업상 중요한 계약을 따내기 위해 독일로 출장을 온 김대한 부장은 눈꺼풀 위로 밝은 빛을 느끼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호텔 천정 전체에 밝은 흰색 빛의 스크린이 펼쳐져 있다. 빛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천정을 주시한 그는 이내 지난밤 호텔 벨보이의 설명을 떠올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빛 스크린의 정체는 바로 OLED 패널로 만들어진 조명 겸 알람시계다. 신경 거슬리는 전자음도, 방안을 뒤흔드는 쇳소리도 없이 오직 밝은 태양 빛을 내뿜어서 사람을 깨운다. 이른 아침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이 잠을 깨우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마친 그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다시한번 바라본 후 7시경 회사에서 대여해준 BMW 렌터카를 몰고 회의장소로 출발했다.
초행길이라 다소 서둘렀는데, 약속 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하겠다는 우려(?)가 들만큼 차량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도로에 다른 차량이 거의 없었던 탓에 교차로가 다가올 때마다 BMW의 진입을 인식한 LED 신호등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곧바로 통과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파란불을 켜주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를 새삼 음미하던 중 갑자기 차량 앞 유리창에 ‘빙판길 조심’이라는 경고 이미지가 나타났다. 차의 유리창도 문자와 이미지 송출이 가능한 OLED 패널로 제작됐던 것이다.
OLED 앞 유리의 활약은 계속됐다. 문자가 사라지자마자 전방에서 무단횡단을 하고 있던 보행자의 모습이 이미지로 표현된 것. 어둠 속에서도 적외선으로 사물을 탐지하는 나이트비전과 OLED 패널의 합작품이었다.
인도의 경우 가로등이 꺼져있어도 사람이 밟으면 빛을 발하는 OLED 보도블럭에 의해 보행자를 식별할 수 있지만 무단횡단을 할 때에는 이것이 무용지물이 되므로 앞 유리의 경고가 없었다면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도심이 가까워지자 주변 고층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모든 빌딩들은 흰색, 파란색, 붉은색, 녹색 등 형형색색의 LED와 OLED 조명으로 ‘빛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마치 이름 모를 이방인에게 그 자태를 뽐내듯 장관을 연출했다.
또한 각각의 빌딩 위에서 빛을 쏘아 만든 광고 문구를 읽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로 다가왔다.
특히 이 도시의 경우 시청 산하에 ‘빛 오염 방지위원회’를 두고 운전자의 시선을 산란시키는 현란한 빛 광고를 제재하고 있어 주변경관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목적지가 육안으로 보일만큼 지척에 이르면서 내비게이션이 한 빌딩을 지목했다. 이와 동시에 OLED 앞 유리는 그 빌딩 전체를 밝은 빛으로 처리해 보여줬다. 그곳까지 가는 길도 녹색 빛으로 차별화돼 나타났다.
이를 보며 김 부장은 “장님이 아니라면 목적지를 단번에 찾아가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렵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전 8시경 빛들의 안내를 통해 여유 있게 도착한 그를 한 여직원이 회의실로 안내했다. 기다리고 있던 상대 업체 임원들과 인사를 나눈 김 부장은 한 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초고해상도 OLED 디스플레이의 전원을 켰다.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오늘 발표할 주제는 ‘개인별로 맞춤화된 차량용 조명 인테리어 시스템’. 혁신적인 아이템에 상대기업 사장이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프리젠테이션 직후 OLED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한국 본사와 독일을 연결하는 화상회의까지 이어졌다.
결국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모두 마치고 미팅 룸을 나선 김 부장의 손에는 1,000만 달러짜리 계약서가 쥐어져 있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1층 로비로 내려와 자외선 살균기가 부착된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 한잔을 마시며 흥분을 달랜 후에야 다시 BMW의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호텔로 돌아가는 김 부장에게 오늘은 빛으로 깨어나 빛으로 성공을 일군 빛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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