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늘날의 밤은 화려함의 결정체다. 아름다운 빛을 내뿜는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온 도시를 감싸며 낮보다 더 아름다운 밤을 만들어내고 있다.
촛불 하나를 모태로 백열등, 형광등, 네온등, 할로겐등으로 진화해온 조명들이 미래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도시를 지배(?)하게 될까.
자료제공: 오스람
빛의 혁명...LED, OLED
조명은 사전적인 의미로 ‘어둠을 빛으로 밝게 비추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만 해도 조명의 역할은 이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재의 조명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기능을 넘어선지 오래다. 특정 대상물을 돋보이게 만들어주거나 외관을 수려하게 해주는 등 장식(decoration)의 기능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인공광원(人工光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백열전구가 그 성공 신화의 첫 장을 넘기고 있을 즈음인 1928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유명 미술 사학자이자 건축 비평가인 발터 리츨러는 “동화 속에서 꿈꿔왔던 것보다 더 동화적인 빛의 경이로움이 미래의 도시를 뒤덮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07년 현재 그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끝없는 진화를 거듭하며 전 세계의 모든 도시를 완전히 장악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조명의 진화는 여기까지가 끝일까. 물론 아니다.
첨단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조명은 리츨러 조차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새로운 변혁의 물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정과 사무실의 실내조명, 빌딩과 다리의 경관조명, 가로등, 간판 등을 넘어 기존의 종이 벽지나 천정 마감재를 대체할 수 있는 ‘발광 벽재’ 등으로까지 용도 확장을 꿈꾸고 있는 것.
조명이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꺼내든 무기는 바로 발광다이오드(LE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노트북, 컴퓨터,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의 디스플레이 패널용 광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LED와 OLED가 조명과 손을 맞잡으며 빛의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세계적인 조명기기 업체인 오스람. 이 기업은 수년 전부터 미래를 선도할 차세대 조명으로서 LED와 OLED에 큰 관심을 갖고 연구개발에 핵심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LED의 경우 이미 자동차용 조명, 경관조명 등을 중심으로 상당한 시장을 창출해 냈으며, 최근에는 일반조명 분야에도 LED의 적용에 나서 신개념 LED 전구인 ‘오스타(Ostar) LED’의 개발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출시를 앞둔 상태다.
여기에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올해 초 코니카 미놀타와 공동으로 OLED 조명의 개발에 돌입하는 등 전 세계 90조원에 달하는 조명기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다국적 업체들의 시장진입이 잇따르고 있다.
고효율 低전력의 친환경 조명
많은 조명 관련기업들이 LED와 OLED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이들은 기존 조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수명과 저전력·고효율의 탁월한 경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비용절감은 물론 에너지 절약 측면에서도 막대한 사회적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에너지 패권’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로 에너지의 가치가 중요해진 현 시점에서 이 같은 메리트는 국가와 일반인 모두에게 무엇보다 강력한 소구력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일례로 LED가 백열등과 형광등을 제치고 보도, 지하철, 기차역 , 비상구 등의 다양한 표지판 조명에 쓰이게 되면 동일한 비용으로 또는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보다 오랜 시간동안 시민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일반 백열등은 조도(照度)가 1와트 당 15루멘, 수명은 1,000시간 정도지만 LED 조명은 와트 당 최대 75루멘의 조도와 6만 시간의 수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과학자들은 와트 당 150루멘의 LED를 시험 중이다)
이 같은 미래는 이미 도로 위에서 첫걸음을 내딛었다. 붉은색 LED가 차량 후미등용 광원으로 빠르게 채용되고 있는 것. 최근에는 고급 차종을 필두로 헤드라이트에도 백색 LED의 도입이 이어지고 있다.
오스람의 마케팅 전략팀장인 울리히 카스트너는 “LED전구는 일반 전구보다 150 밀리세컨드 빠르게 불이 켜진다”며 “이 시간은 급정거한 차량 뒤에 있는 운전자에겐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를 주시하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길에서 더 많은 LED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LED 전구로 만들어진 신호등이 속속 도시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 선구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호세. 이곳은 오래전 900여개의 신호등을 LED로 교체했는데, 이것만으로 연간 신호등 유지관리 비용이 170만 달러에서 16만 달러로 대폭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를 눈여겨본 헝가리 부다페스트도 최근 3만3,000개에 달하는 신호등을 모두 LED로 바꿀 계획을 세우고 지멘스를 주관 사업자로 선정했다.
에너지 빈국에 속하는 우리나라 또한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의 주도로 LED 신호등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만 해도 올해 초 관내 15만여개 신호등의 전량 교체를 선언, 4월 현재 4만여개의 개량이 이뤄진 상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자동차와 신호등에 이어 도로 표지판을 포함한 모든 교통안내시스템에 LED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 도로 위의 표지(sign)를 백색 LED로 전환하는 테스트가 추진되고 있으며, 도로를 비추는 LED와 보도블럭에 설치된 LED 빔을 통해 운전자 및 보행자의 안전을 한 차원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도시
이처럼 LED의 경제적 효용성과 광원으로서의 뛰어난 능력이 입증되면서 신생 도시, 신생 빌딩들을 위주로 내부조명과 경관조명에 LED를 채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자신의 빌딩이 좀 더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수많은 고층빌딩 설계자 및 소유자들이 경쟁적으로 LED 조명시스템 설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의 경관도 신속하게 변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LED에 더해 조명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OLED 조명까지 상용화된 미래에는 도시의 야경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열기는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뭄바이 등 조명을 활용해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조명 건축’의 선구자 격인 아시아 국가들에게서 뜨겁게 나타나고 있지만 조명건축의 전통적 강자로 치부되는 유럽지역 또한 적극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아시아는 다양한 컬러의 조명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형태를 선호하고 유럽은 흰색의 단일 조명을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몇몇 LED 경관조명의 성공사례를 들자면 가장 먼저 호텔과 대형 쇼핑센터가 입주해 있는 홍콩의 뉴월드센터(NWC)를 꼽을 수 있다.
이곳에는 LED 램프를 활용, 총천연색을 구현할 수 있는 대형 컬러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는데, 그 크기가 무려 건물 15층에 걸쳐 있어 인근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주거용 빌딩 중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190m 높이의 스웨덴 터닝토르소(Turning Torso) 빌딩 또한 LED조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이 빌딩은 경관조명에 더해 54층 전 층의 복도에 1만4,000개 이상의 LED 조명을 설치하는 등 LED를 실내조명으로 사용해 성공한 케이스로 유명하다.
현재 터닝토르소는 나선형 구조의 독특한 디자인과 LED의 밝고 아름다운 빛이 최적의 조화를 이루는, 야경이 뛰어난 북유럽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스위스 생갈렌(St. Gallen) 지역의 스위스캔톤 슈퍼마켓에도 실내조명으로 1만6,000개의 LED를 사용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 한 점은 슈퍼마켓의 경우 여타 건축물들과 달리 LED 조명의 효과를 하나 더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LED의 밝고 깨끗한 빛이 전시된 상품들을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다이오드는 적외선과 자외선을 모두 방사하지 않으므로 육류, 채소 등 각종 신선제품들을 한층 신선하게 보이도록 해준다. 이는 업계전문가들이 대형 슈퍼마켓과 할인점을 고층빌딩 다음으로 LED의 대량 수요처로 지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스람의 볼프강 렉스 LED 부서장은 “LED는 햇빛과 유사한 파장을 지니고 있어 사무실과 가정에서 사용하면 사람들에게 바이오리듬 부양효과를 줄 수 있다”며 “조명 하나만 바꿔도 낮 시간대에 직원들의 생산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류가 꿈꿔온 궁극의 빛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영역확장에 여념이 없는 LED와 달리 OLED는 아직 조명으로서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그야말로 미래의 조명기술이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GE나 오스람도 일반인들이 OLED 조명을 일상생활에서 목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최소 3년여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OLED는 3년의 기다림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인류가 오랜 시간 꿈꿔왔던 미래 조명의 완결판이다.
전류가 공급되면 스스로 발광하는 유기물질들을 500나노미터(머리카락의 100분의 1) 두께의 초박막 플라스틱 패널 속에 넣어 광원으로 사용하는 OLED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과 적용성, 확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장점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일단 얇고 투명하며 휘어질 수도 있을 만큼 유연하다는 것이 OLED를 조명으로 활용할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 이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OLED 조명은 필요에 따라 어떠한 형태나 크기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조명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전혀 새로운 개념의 조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앞서 기술한 ‘발광 벽재’라는 혁신적 발상도 바로 이같은 특성에 기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GE와 오스람은 이 OLED 벽재가 가장 먼저 벽이나 창문을 위한 장식용 조명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믿고 있다.
발광 벽지, 발광 타일, 발광 보도블럭 등으로 활용 가능한 OLED는 조명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게 된다.
이후 태양과 동일한 스펙트럼을 발산하는 발광 천정, 발광 벽지, 발광 타일, 발광 보도블럭, 투명하고 컬러풀한 칸막이 등으로 용처가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정확한 유기물 분자와 폴리머를 사용, 현존하는 모든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부분도 OLED 조명의 장점으로 꼽힌다.
개발자들은 하나의 패널에 적색, 녹색, 청색의 OLED 층을 함께 놓는 방식으로 백색광을 만들어내는데, OLED들을 픽셀별로 분할된 격자 속에 넣어 단색 빛은 물론 고해상도의 총천연색 동영상 디스플레이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각 업체들은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OLED의 품질과 신뢰성, 빛의 균일함을 실현할 수 있는 생산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향후 OLED 조명 패널의 저비용 대량 생산이 현실화될 경우 전세계 도시 거주자들은 지금까지 꿈꿔 온 어떤 것보다도 멋지고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생활 속 곳곳에서 만끽하게 될 것이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