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연료 피복관은 원자로 내에서 이산화우라늄이 안전하게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고 핵분열 때 발생되는 열을 안전하게 냉각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정용환 연구원이 국산화에 성공한 핵연료 피복관은 외국산에 비해 성능과 안전성이 2배 이상 탁월하고 수입대체를 통해 연간 500억원의 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 피복관’이 이르면 내년부터 국내 기술력으로 생산, 자체 조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 피복관은 기존 외산제품에 비해 월등한 성능과 안전성을 자랑하고 있어 기술기반이 없는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지역 원전 국가들을 대상으로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7월 수상자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영역으로 간주돼 온 핵연료 피복관을 국산화하는데 성공, 현재 시범 생산을 준비 중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정용환 책임연구원으로 결정됐다.
핵연료 피복관은 원자로 내에서 이산화우라늄(UO2)이 안전하게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고 핵분열 때 발생되는 열을 안전하게 냉각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차적인 방호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의 핵심부품 중 하나로 꼽힌다.
정 연구원은 고온·고압의 극한 운전조건에서 수년간 사용해도 안전한 제품 개발을 목표로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연구에 착수, 고성능 지르코늄 합금(HANA 합금)을 소재로 한 핵연료 피복관 개발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이 피복관의 개발로 막대한 수입대체 효과는 물론 해외수출 등을 통해 연간 최소 500억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 연구원은 “10년 전만 해도 국내에는 원자력 소재 개발에 대한 경험과 인프라가 전무해 국산 지르코늄 재료를 개발해낼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핵연료 피복관의 우수성을 인정, 이의 상용화를 위해 국내에 지르코늄 튜브 제조공장 설립을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에는 국내의 한 원자력발전소가 이 피복관을 장전, 원자로 내에서의 최종 검증을 한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상용화가 이루어지면 상당한 수준의 외화절감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원자력 선진국 사이에서 기존 피복관을 대체하기 위한 신형 피복관의 개발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던 상태여서 10~15년에 달하는 기술격차를 극복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연구는 피복관의 소재가 될 합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원자력 선진국들이 발표한 연구논문과 특허 자료를 바탕으로 후보물질을 물색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학계와 국내 다른 연구소들까지 가세해 총 700종에 달하는 합금 실험을 수행한 이후에야 마침내 국내 독자 소유권을 확보한 6종의 최종 후보 합금(HANA)들을 찾아냈다는 게 정 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수년간 합금설계와 제조, 평가시험을 반복하면서 잇따른 좌절과 실패의 쓴맛을 봤다”며 “연구 초기부터 ‘국내 여건상 지속적인 연구가 어려울 것이므로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외부의 회의적 시각에 맞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개발된 핵연료 피복관은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에서 30건에 달하는 특허가 대량 등록돼 있는 상태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이 핵연료 피복관의 우수성을 인정, 이의 상용화를 위해 국내에 지르코늄 튜브 제조공장 설립을 진행 중에 있다.
오는 10월 중에는 국내의 한 원자력발전소에 이 피복관을 장전, 원자로 내에서의 성능을 최종 검증할 예정이다.
정용환 연구원은 “핵연료 피복관은 노르웨이의 할덴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연구용 원자로에서 3년간에 걸쳐 연소시험을 마쳤다”며 “그 결과 기존의 상용 피복관 대비 2배 이상 향상된 성능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내년부터 본격적인 상용화가 이루어지면 상당한 수준의 외화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Back Story] 피복관 시제품 제작 위해 세계 곳곳 찾아다녀
“핵연료 피복관 독자 개발을 위해 세계 곳곳을 찾아 다녔지만 시장잠식을 우려한 해외기업들은 아무도 시제품 개발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2000년의 긴박했던 상황만 떠올리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고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최고 품질의 핵연료 피복관을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을 획득했지만 정작 이 기술을 실제로 적용해 피복관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제조 시설이 국내에 전무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우뚝 선 포스코마저 당시에는 정 연구원의 의뢰에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일반 강관을 만드는 포스코의 기술로는 정 연구원이 원하는 정밀한 피복관을 제대로 구현해내기 어려웠던 것.
정 연구원은 “결국 해외로 눈을 돌려 미국, 유럽, 러시아 등을 전전하며 관련 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하나같이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기존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시제품 제작단계에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던 그에게 행운의 여신이 의외의 곳에서 손을 내밀었다.
기술통제·관리가 유난히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의 스미모토금속공업(SMI)이 그의 의뢰를 받아들인 것. 정 연구원은 이곳을 통해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시제품을 얻을 수 있었다.
정 연구원은 “아마도 SMI는 시제품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향후 이를 한국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제작 의뢰에 응했던 것으로 생각된다”며 “그러나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이 자체 생산을 위한 제조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SMI의 기대는 물거품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글_ 이재철 서울경제 기자 hummi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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