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일부 영화는 곤충의 유전자 조작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기도 한다. 즉 특정 임무를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곤충을 만들어 내지만 생식이 불가능하도록 프로그램 됐음에도 살아남아 결국 사람을 닮아가는 괴물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곤충은 인류의 경쟁자라기보다는 스승에 가깝다. 바로 이들의 능력을 모방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제공:한국산업기술재단
흔히 ‘벌레’라고도 지칭하는 곤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동물계 내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존재다.
분류상 절지동물 문(門)의 곤충 강(綱)이라고 지칭하기 때문에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 문의 포유 강과는 다른 계통이지만 동물 진화 계통상 상위에 속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동물들 약 100만종 가운데 75% 이상을 곤충류가 차지할 정도로 이들은 다양한 종으로 분화와 진화를 거듭해 왔다.
더구나 곤충이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인간이나 포유동물보다 훨씬 오래 전인 고생대 데본기, 즉 지금으로부터 약 3억5,000만 년 전이다.
지구상에 공룡이 출현한 것은 이보다 훨씬 뒤인 중생대 초기다. 또한 공룡은 중생대 종반인 6,500만 년 전 무렵에 모두 멸종하고 말았지만 곤충들은 오랜 세월동안 놀라운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여러 SF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거대한 곤충이 주인공 혹은 주요 배역으로 나오거나 인류와 곤충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 많다.
이는 아마도 곤충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감안, 곤충을 미래 인류의 경쟁자로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 많은 과학자들은 환경오염이나 소행성 충돌과 같은 커다란 재앙, 혹은 기타 이유들로 인해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가 대부분 멸종하고 만다면 다음은 곤충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인 바퀴벌레는 방사능에 견디는 능력이 사람의 수십 배 이상이라고 한다.
현재 대규모 핵전쟁의 위협은 줄어들었지만 핵폭발의 폐허 이후에도 생존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종이 곤충인 바퀴벌레인 셈이다.
거대 곤충과의 전쟁 그린 SF영화 많아
거대한 곤충, 혹은 인류와 곤충의 전쟁을 주제로 한 SF영화는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폴 버호벤 감독의 스타쉽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1997)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사람은 바로 현대 SF계의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버트 하인라인(1912~1988)이다.
스타쉽 트루퍼스는 미래의 지구에서 인류가 태양계 밖의 외계 행성에 존재하는 거대한 곤충군단들로부터 커다란 위협을 받는데,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이들 곤충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다. 물론 이 와중에서 군에 입대해 싸우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애환이 함께 곁들여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청년 쟈니 리코는 나라와 인류를 위한 애국심보다는 우주함대 사관학교에 진학한 여자 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구방위군의 보병에 지원, 입대한다.
또한 리코를 짝사랑하던 여학생 역시 그를 따라 입대, 외계의 곤충군단에 맞서 싸우게 된다.
리코는 훈련 중 자신의 실수로 동료가 사망하는 사고로 겪으며 한때 포기할 생각을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외계 곤충군단의 공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참상을 목격하고 다시 지구방위군 대원이 되어 이들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군 복무를 마친 ‘시민’과 그렇지 못한 ‘국민’과의 차별을 당연시하는 등 군국주의 색채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후에 리코의 중대장이 되어 전투에 참가하는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 역시 수업 중 여러 차례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가 하면 영화의 마지막 역시 군 입대를 독려하는 ‘공익광고’가 클로즈업되면서 마무리된다.
어쨌든 외계 행성의 거대 곤충 모습은 여러 가지로 주목할 만하며, 이들과 인류방위군과의 전투는 끔찍한 장면들이 너무 많아 상당수가 편집 과정에서 삭제될 정도였다고 한다.
외계의 곤충군단도 계급과 임무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고 역할이 분담돼 있는데, 얼핏 큰 거미처럼 생긴 전투보병 버그는 날카로운 다리로 인간의 몸을 찌르고 사지를 자르는 것이 주요 공격 수단이다.
거대한 딱정벌레를 닮은 탱크 버그는 입에서 불을 내뿜는 등 막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고, 하늘을 나는 척후병 역할의 버그는 인간 병사를 납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우두머리 격의 곤충이 독특한데, 비곗덩어리 같은 몸에 눈을 여럿 달고 있는 흉측한 모습이지만 인간의 두뇌를 파먹어서인지 고도의 지능을 갖추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전투병 버그들을 치밀하게 지휘, 조종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훈련 교관 출신의 인류방위군 사병이 우두머리 버그를 첨단무기가 아닌 ‘원시적인’ 방법으로 사로잡는 것은 나름대로 암시하는 바가 있다고 보여 진다.
곤충이 환경 수호자로 묘사되기도
거대한 곤충이 등장하는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작품으로는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 ナウシカ;1984)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히트작들로 잘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1941~ )다.
이 영화는 일본의 월간 만화잡지에 같은 이름으로 연재된 것을 원작으로 세계야생생물기금의 후원을 받아 제작됐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자연과의 교감이나 문명 비판론적 시각 등 하야오 감독 특유의 작품세계와 문제의식이 잘 담겨져 있기도 하다.
세계대전 규모의 큰 전쟁이 일어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지구는 크게 황폐해지고 인간의 삶은 큰 위기에 처한다.
부해(腐海)라고 부르는 광활한 곰팡이 숲은 지속적으로 확장되면서 유독가스를 내뿜고, 돌연변이로 인해 거대해진 곤충 오무(王蟲)가 부해 숲에 살면서 인간을 위협한다.
바람계곡의 사람들은 유독가스를 날려 주는 바람 덕분에 평화롭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그곳의 공주 나우시카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소녀.
그녀는 새로운 전쟁 위협의 와중에서 오무와 부해 숲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애쓴다는 것이 영화의 주 내용이다.
부해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본 나우시카는 인간에게는 매우 유해한 것처럼 보이는 부해가 사실은 오염된 지구의 물과 토양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있으며, 거대 곤충 오무는 그런 부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부해가 해로운 것이 아니라 전쟁과 환경 파괴를 일삼는 탐욕스런 인간이 바로 쓰레기와 같은 존재며, 인간을 위협하는 곤충 오무의 무리 역시 지구 환경의 수호자라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곤충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 경고
거대한 곤충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인간과 곤충집단의 치열한 싸움을 그린 영화로 미믹(Mimic;1997)이 있다.
그리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지는 못했지만 이 SF영화는 나름대로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병원균을 옮기는 바퀴벌레를 소탕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흰개미와 사마귀의 유전자를 조작·합성해 바퀴벌레의 천적인 새로운 종을 창조해 낸다.
이 새로운 곤충은 생식이 불가능하도록 조작돼 바퀴벌레를 퇴치한 후에는 스스로 멸종하도록 계획된다.
하지만 이들이 살아남아 번식할 뿐 아니라 사람을 닮아 가는 괴물로 변하면서 도리어 사람을 공격하는 천적이 된다는 다소 끔찍하면서도 경고적인 내용이다.
플라이(The Fly;1986)는 인간과 곤충이 대결하는 구도의 내용은 아니지만 파리라는 곤충이 영화의 제목이다.
공간이동장치 제작 실험을 하던 과학자가 실수로 인해 점차 파리를 닮은 괴물로 변해간다는 이야기인데, 다른 동물이 아닌 곤충과 인간의 유전자가 뒤섞이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며 무엇인가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곤충들은 지금까지 SF영화뿐만 아니라 아동물 등 다양한 분야의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의 주요 소재가 되어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SF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곤충들이 과거에 실제 존재했다는 것이다.
조의 아파트(Joe's Apartment;1996)라는 영화에서는 바퀴벌레들이 주인공인 인간과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등 매우 친근하면서도 코믹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에 무서운 흉계를 지닌 세입자에 젊은 집주인 부부가 힘들게 맞서 싸우는 내용의 영화 퍼시픽 하이츠(Pacific Heights;1990)에서는 본래의 이미지대로 혐오스럽고 끔찍함을 나타내는 도구로서 바퀴벌레가 대거 등장하기도 한다.
곤충들 중에서도 개미와 꿀벌과 같이 사회성을 지니고 집단생활을 하는 종들은 인간 못지않은 사회조직 체계나 문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제작한 벅스 라이프(A Bug's Life;1998)는 개미집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코믹하고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드림웍스 제작의 개미(Antz;1998) 역시 온가족이 재미있게 볼만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거대 곤충, 과거에 실재로 존재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의 하나는 SF영화에서나 나오는 거대한 곤충들이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억4,500만 년 전에서 2억8,000만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에는 참새만한 하루살이, 고양이만한 바퀴벌레 등 지금보다 훨씬 몸집이 큰 곤충들이 있었음을 화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특히 메가네우라(Meganeura)라는 곤충은 생김새로 볼 때 잠자리의 조상으로 볼 수 있겠지만 날개폭이 70cm가 넘는 거대한 잠자리로 영화 속의 거대 곤충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기에 곤충들의 몸집이 이처럼 커질 수 있었던 것은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은 35% 정도로서 곤충들에게 더 큰 에너지를 불어 넣었을 뿐 아니라 무거워진 공기 밀도 덕에 비행이 더욱 쉬웠기 때문이다.
역시 산소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중생대 쥐라기의 지층 일부에서도 거대 곤충들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곤충들은 인간과 경쟁자일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스승이기도 하다. 자연과 동물의 뛰어난 능력을 모방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이른바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에서도 파리, 나비, 딱정벌레, 바퀴벌레, 꿀벌, 개미 등 각종 곤충은 중요한 소재로서 인간이 배워야 할 대상이다. 앞으로도 영화에서 곤충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질지 흥미있게 지켜볼 일이다.
글_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