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간 기대되는 매출만 무려 20조원에 이른다. 무명에 가까운 벤처기업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해낸 일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10년간 200억 달러 매출 기대
지난해 12월 26일 러시아 모스크바부터 놀라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국내의 한 벤처기업 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러시아 전역에 대한 와이브로(WiBro) 사업 허가권을 획득했다는 소식이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홍릉 벤처밸리에 본사를 둔 IT 벤처기업 노드시스템(대표 이금석).
이 회사는 지난해 5월경 러시아의 NBK그룹과 와이브로 사업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를 전담할 현지 합작법인인 노보텔레콤을 50대50의 지분율로 설립한바 있는데, 바로 이 NBK그룹이 이번에 와이브로 사업 허가서를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노드시스템은 곧바로 NBK와 사업 추진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와이브로 장비 및 시스템 공급, 운영체계, 서비스 등 와이브로 사업 전반에 관한 배타적 독점 권리를 획득했다.
러시아 정부와의 계약 당사자는 NBK지만 노드시스템이 NBK가 추진하는 와이브로 사업의 실질적인 주체가 된 것. 노드시스템은 이 권리를 활용, 앞으로 10년간 총 200억 달러(20조원)에 달하는 매출 실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늘구멍을 낙타구멍으로
러시아는 이동통신 가입자만 1억5,000만명에 달하는 세계 3대 통신시장으로 유럽, 미국, 아시아 등지의 기업들이 시장 장악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곳이다.
삼성, KT 등 국내 업체 또한 지난해 6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와이브로를 3세대(3G) 이동통신의 6번째 기술표준으로 채택한 이래 정통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지속적으로 러시아의 문을 두드려왔다.
하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크렘린 궁의 문을 여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군부의 영향력이 막강한 러시아는 주파수 사용허가 등 통신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군 출신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을 움직이지 못한 것.
그런데 이름조차 생소한 한 벤처기업이 아무런 외부 도움 없이 이를 해결해냈다.
노드시스템은 이에 대해 NBK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설명한다. NBK 자체가 신규 통신사업 수행을 위해 군부 및 정치권의 유력인사가 만든 회사여서 군의 전폭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노드시스템의 이금석 대표는 “이번 성과는 와이브로라는 좋은 기술과 NBK를 통해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한 결과”라며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기보다는 바늘구멍 크기였던 와이브로 사업의 창구를 낙타구멍 정도로 넓혀놓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내년 초 시범 서비스 돌입
사실 노드시스템은 와이브로 사업권을 획득했다기보다 이 사업을 추진할 권한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추가로 각 주 정부로부터 서비스 시행 면허를 받아야하고 주파수 임대도 필요하다. 이 작업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될 것은 당연지사.
이에 노드시스템은 자금과 시간 투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시행 면허와 러시아 전역의 2.5기가, 3.5기가, 5.8기가 대역 주파수 사용권을 확보 중인 러시아기업 스타르트텔레콤과 손을 잡았다.
이 회사의 지분 50%를 약 2억 달러에 인수하는 조건으로 노보텔레콤이 관련 권한을 이양받기로 한 것.
이렇게 제반 토대를 닦은 노드시스템은 현재 국내 기업들과 컨소시엄 구축에 나선 상태다. 허가권은 가졌지만 와이브로 같은 대형 사업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굴지의 상장사 및 유력 이동통신사들과 협의에 들어갔으며 이달 중 모든 컨소시엄 구성을 완료할 방침이다.
이후 국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와이브로 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 기본적인 네트워크 설계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내년 초 모스크바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를 실시한 뒤 2009년 내에 본격적인 상용 서비스에 돌입하게 된다.
수신기, 단말기 공급 등 역할 특화
노드시스템은 컨소시엄 구성 단계를 마친 뒤에는 전면에서 물러날 계획이다.
사업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과정은 와이브로 전문가들에게 일임하고 노드시스템은 특화된 부분에서 기여를 하겠다는 것.
지난해 러시아 국민 휴대폰 사업과 관련한 고급 금장 휴대폰 1,500만대 수출 계약 등을 통해 쌓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와이브로 수신기, 휴대폰 등의 장비 공급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여러 개의 점이 모여 하나의 N자를 형성하고 있는 이 회사의 로고에서 알 수 있듯 각 분야 전문가와 전문기업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큰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구심점이 되겠다는 노드시스템의 기업 이념과 일맥상통한다. 러시아 와이브로 사업도 이 같은 마인드가 바탕이 됐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금석 사장은 “러시아의 통신 인프라를 감안할 때 와이브로는 다소 시기상조일 수 있다는 지적처럼 이번 와이브로 사업도 성공을 100% 확신할 수만은 없다”며 “하지만 러시아의 무선통신시장을 선점함으로서 향후 동구권 전 지역에서 한국이 확고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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