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인 에릭 홀랜더와 심리학자인 제니퍼 바츠는 인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흡입하면 자폐증으로 인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차단하며, 반복적이고 편집증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줄어든다는 것.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혈액 내 옥시토신 수치가 낮은데, 이 때문에 사교적 기술이 서투르다. 이 연구는 미국에서 이 질병을 앓고 있는 150명당 1명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대인공포증을 앓고 있는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연구에서 홀랜더와 바츠는 자폐증을 앓는 성인들에게 “그 소년은 가게에 갔다”와 같은 평범한 내용을 담은 문장을 듣도록 했다. 2주 전에 정맥으로 옥시토신을 주입받은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기쁜지, 무관심한지, 화가 났거나 슬픈지 더 잘 구분해냈다. 바츠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은 옥시토신을 투여한 환자들이 지나친 접촉 등 반복적인 행동을 덜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같은 발견을 통해 절실하게 필요한 새로운 자폐증 치료법을 개발해낼 수 있다. 항우울제나 비타민, 정신요법과 행동교정 등 현재 주로 사용되는 치료법들은 효과가 미미하다.
홀랜더와 바츠의 연구는 임신한 여성의 감정 변화에 옥시토신이 하는 역할을 밝혀낸 최근의 연구 사례들 중 하나다. 이 호르몬은 인체 내를 순환하면서 자궁을 수축시키고 모유가 잘 나오도록 자극한다. 연구원들은 옥시토신이 정서 발달과 유대감 형성에도 어느 정도 관여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사회적 유대감을 향상시키는 호르몬의 성능은 설치류의 일종인 흑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 잘 기록돼 있다.
지난 1994년 에모리 대학의 과학자인 래리 영은 반사회적인 산악지대의 흑쥐들이 사회적 활동이 보다 활발한 들쥐들에 비해 사회적 유대감과 관련 있는 뇌 부위에서 옥시토신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영이 들쥐들의 옥시토신 수용체를 차단하자 들쥐들도 흑쥐들처럼 비우호적이고 사회적 활동이 위축됐다.
영의 작업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기반이 됐다. 독일 로스톡 대학의 정신과 의사인 그레고르 돔스는 인조 옥시토신을 자폐증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에게 투여한 후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린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옥시토신 연구 참가자들은 눈의 표정만 본 채 감정을 인식할 수 있었다. 옥시토신을 투여한 참가자들은 가짜 약을 투여한 참가자들보다 이런 인식력이 우수했다. 돔스는 이 호르몬이 자폐증 환자들에게도 유사한 효과가 있을지 검증할 계획이다.
하지만 옥시토신 처방전이 발급되려면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구원들은 더 많은 자료를 축적해야 하며, 초기 실험에서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호르몬 투여 실험도 해야 한다.
시나이 대학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6주간의 임상실험에 20명의 환자를 등록시켜 그 결과를 2년 내에 발표할 계획이다. 이 연구가 성공하면 규모가 훨씬 더 큰 연구가 뒤따를 것이다.
영은 “지금은 옥시토신의 극히 부분적인 효과만을 보고 있을 뿐”이라면서 “가능성이 많아 상당히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