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는 과자를 만드는 밀가루
줄기세포 하면 ‘불로초’ 내지는 ‘만병통치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줄기세포는 어떤 사람에게나 다 있는 지극히 평범한 세포일 뿐이다.
줄기세포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줄기세포가 피부, 혈액, 장기 등 인체의 모든 세포와 조직을 만들어내는 근본이 되는 세포이기 때문이다. 인체의 세포나 조직이 각기 다른 종류의 과자라고 한다면 줄기세포는 그 모든 것의 재료가 되는 밀가루와도 같다는 얘기다.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나눌 수 있는데, 배아줄기세포는 인간의 수정란 발생 초기에만 자연적으로 생긴다.
인간은 수정란, 즉 하나의 세포에서 세포분열을 거쳐 조직과 기관이 만들어지는 다세포 생물이다. 이 분열과정에서 배아줄기세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어떤 장기(臟器)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의 핵심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수정란, 또는 낙태아에서 얻는다는 점 때문에 태아 및 수정란을 인간으로 여기는 종교단체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이미 성체가 된 인간의 장기와 조직이 손상될 경우 이를 보충하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분화 가능성도 크게 줄어들어 간(肝)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는 간세포만 만들어내고, 대장(大腸)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는 대장세포만 만들어내는 등 몇 가지 정해진 세포만 만들어낸다.
그럼 왜 각국의 생명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리는 것일까.
난치병 중에는 심장질환, 혈관질환, 뇌신경질환 등 조직이나 장기 자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것들이 많다. 이 같은 질병은 약물로는 사실상 완치가 어려우며, 증세의 악화를 늦추는 조치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줄기세포를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시킨 다음 손상된 조직 대신 이식시켜 정상적인 조직으로 자라게 하면 이론적으로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더욱 진행되면 암(癌) 등 세포의 이상 증식을 일으키는 줄기세포를 찾아내 제거함으로서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실제 절차에 비하면 엄청나게 간략한 설명이며,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줄기세포 연구의 역사와 현황
줄기세포 연구는 지난 1960년대에 시작됐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셈이다.
지난 1961년. 캐나다의 제임스 틸과 어니스트 맥쿨록 박사팀은 방사선으로 골수가 파괴돼 혈액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쥐에게 정상 골수를 주사함으로서 다양한 혈액세포를 다시 만들게 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이들 혈액세포들이 골수 내의 조혈줄기세포에서 유래된 것임을 증명, 오늘날 골수이식술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이즈음 쥐의 뇌에서 신경세포로 분화되는 신경줄기세포를 발견했다. 그 이전까지 성체의 뇌에서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성될 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1984년 영국의 모린 오웬 박사는 뼈, 연골, 지방, 섬유조직으로 분화 가능한 간엽줄기세포가 골수에 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1995년 미국의 프레드 게이지 박사는 뇌의 해마에서 신경줄기세포를 분리할 수 있으며 이를 다시 뇌에 이식하면 성숙한 신경세포로 분화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현재는 뇌와 골수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장기에서 성체줄기세포를 발견해 낸 상태다.
하지만 줄기세포 연구에서 가장 큰 진보를 이룩한 것은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제임스 톰슨 박사팀이다. 이들은 지난 1998년 인간 배아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고, 이를 배양 및 증식시킴으로서 다른 세포로 분화되거나 죽지 않고 증식만 계속하는 배아줄기세포를 얻는데 성공한다.
실제 톰슨의 줄기세포는 8개월간이나 분열을 한 후에도 제 형태와 기능을 유지했고, 생쥐에게 투여하자 급속히 분화해 인간의 세포와 조직으로 이루어진 테라토마를 만들어 냈다.
테라토마는 피부세포, 근육세포, 신경세포 등 다양한 세포와 조직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종양이다. 이는 인간이 줄기세포를 채취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필요한 만큼 배양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준 사건이었다.
황우석 박사는 바로 이 같은 성과 위에서 무대에 오르게 된다. 황 박사는 지난 2005년 5월 사이언스지를 통해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난자 핵을 제거하고 성인의 체세포를 넣어 만든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획득하는 것으로 일명 체세포 핵치환 기술로 불린다. 물론 이 논문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다.
2006년 8월에는 일본의 다카하시 가즈토시와 야마나카 신야 연구팀이 생쥐의 배아와 성체 의 섬유모세포 배양을 통해 체세포 유래 다능성(多能性) 줄기세포(iPS)를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iPS는 배아줄기세포처럼 대다수의 세포로 분화 가능한 줄기세포를 말한다.
10월에는 영국 과학자들이 제대혈의 줄기세포를 사용해 최초로 인공 간세포를 만들었으며, 2007년 1월에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공동연구팀이 양수에서 새로운 종류의 줄기세포를 발견해 낸다. 이 줄기세포들은 윤리적 논쟁에 시달리는 배아줄기세포의 대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해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 연구팀은 붉은 털 원숭이 난자 1만5,000개로 오랜 기간에 걸친 실험을 통해 원숭이 체세포 복제 배아를 만들어 줄기세포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지난 2005년 황 교수가 주장한 방식과 원리상으로는 유사한 방법이며, 원숭이는 인간과 대단히 유사한 영장류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iPS로 윤리적 논란 억제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와서는 줄기세포에 얽힌 윤리적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소식들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인간의 난자나 배아 없이 체세포를 사용해 다능성 줄기세포를 얻어냄으로서 논쟁의 소지를 크게 줄인 것이다.
지난 2007년 11월 20일.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만든 제임스 톰슨 교수팀은 사이언스지를 통해 복제 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섬유모세포에 4가지 유전자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체세포 유래 다능성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톰슨 교수는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사용해 세포 분화에 관여하는 유전자 4개를 섬유모세포에 주입하자 세포들이 배아줄기세포처럼 분화하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만들어진 세포들은 배아줄기세포가 가진 기능을 거의 모두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배아줄기세포는 어떤 장기로도 분화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의 핵심이 되고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이용해 지금까지 8개의 새로운 줄기세포를 만들었으며, 이 가운데 일부 세포들은 배양을 시작한 지 22주째 계속 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도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이 피부세포에 레트로 바이러스를 이용해 4가지 유전자를 집어넣고 한 달간 배양한 결과 인간 줄기세포와 같은 기능을 가진 체세포 유래 다능성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다능성 줄기세포를 넣은 실험용 쥐 중 20%는 레트로 바이러스 때문에 줄기세포의 분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돼 암이 발병했다. 따라서 이 연구팀은 발암 확률이 적은 간세포, 또는 위세포를 사용해 다능성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도전,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대학 미래생명공학연구소의 박세필 교수팀, 건국대 동물생명공학과의 조쌍구 교수팀이 생쥐의 체세포로부터 다능성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해 국내 특허 및 국제 특허를 출원했다. 이로서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3번째로 체세포 유래 다능성 줄기세포를 얻어낸 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팀은 미·일 연구진과 같은 유전자를 주입했지만 기존에 비해 획득율이 최대 9배나 우수한 방법을 이용, 앞으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상용화 연구에서 한 발 앞서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박 교수팀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위험성이 있는 바이러스 대신 인체에 무해한 생분해성 나노입자를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유전자 운반체로 사용하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지난 2월 18일 발표했다.
앞으로의 전망 및 문제
일반인들은 줄기세포 연구가 단시일 내에 모든 병을 고쳐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환상을 실현하려면 앞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기술적,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 진행된 거의 모든 줄기세포 연구는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을 탐구했을 뿐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과자의 예를 들자면 밀을 빻아 밀가루를 얻어내는 법을 간신히 익힌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밀가루를 얻었다고 과자를 얻은 것이 아니듯이 줄기세포를 얻어내는 것과 그것을 인체에 안전하게 이식시켜 원하는 장기로 분화, 난치병을 치료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또한 인간을 상대로 하는 새로운 치료법을 확립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기초연구, 임상 전 시험,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받아야 한다. 하지만 충분한 기술적 기반이 갖추어진 상태에서조차 이 같은 절차에는 보통 10년 이상의 시간과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된다. 게다가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실용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줄기세포 치료법은 환자 개인의 상태에 맞춰진 맞춤형 치료이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동네 병원에서 감기나 인플루엔자를 치료하는 식의 대량 보급형 기성 치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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