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수컷들의 자식 사랑 그리고 영어 교육

제가 아는 어떤 의사 분은 TV를 잘 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TV를 바보상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동물의 왕국’입니다. 그 프로그램만큼 우주의 섭리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하더군요. 저도 어렴풋이 그 분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고양이가 교미를 하거나 원숭이가 짝짓기를 하는 목적은 종(種)을 영속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 것이 사실이라면 암컷과 수컷은 짝짓기에 협조적인 반응을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적개심조차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것은 종이라는 집단보다는 자신의 유전자, 즉 자신의 뿌리인 자손을 영속시키기 위해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최상의 파트너를 골라야 하는데, 이를 위한 암컷과 수컷의 전략은 상이합니다.

사람을 예로 들어보죠. 여성은 난자를 만드는데, 그 안에는 배아가 발달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난자를 일생 동안 350~400개 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암컷이 까다롭게 수컷을 고르고, 많은 퇴짜를 놓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남성은 한 번 사정할 때마다 2~6㎖의 정액을 방출하는데, 1㎖의 정액 속에는 무려 1억 마리의 정자가 들어있습니다. 이처럼 수컷은 매우 작은 이동성 정자를 아주 많이 만들어 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렇다면 암컷과 수컷은 어떻게 새끼를 기를까요. 이론상으로 볼 때 새끼를 기르는 것은 새끼가 생존해 얻는 이익이 새끼를 돌보는 비용보다 클 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비용은 현실적인 것입니다. 새끼를 돌보는 것에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고, 암컷과 수컷은 그 때문에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또 새끼를 돌보다보면 추가적인 생식 기회도 줄어듭니다.

일부 동물은 이 같은 비용을 부담하느니 차라리 한꺼번에 많은 알을 낳는 전략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낳은 알들은 방치를 하더라도 워낙 많은 숫자로 인해 유전자 영속에는 지장을 초래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극진히 새끼를 돌보는 동물이 더 많으며, 특히 새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수컷도 있습니다. 펭귄 수컷은 영하 40℃의 강추위와 시간당 130㎞의 강풍 속에서도 서너 달 굶주린 채 알을 품고, 알에서 새끼가 나오면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도 모이주머니에서 나오는 우유 같은 분비물을 먹입니다. 수컷이 젖을 먹이는 셈이죠. 기러기 수컷 역시 새끼 사랑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을 만큼 희생적입니다.

자녀의 영어 교육을 위해 아내마저 해외로 보내놓고 혼자 고생하는 아버지를 ‘펭귄 아빠’, ‘기러기 아빠’로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연유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펭귄 아빠, 기러기 아빠 축에 끼지도 못하는 아버지들이 더 많습니다. 경제력이 없기 때문인데, 이들의 마음은 자괴감으로 인해 펭귄 아빠나 기러기 아빠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요즘 이명박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에 관심을 갖는 아버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과욕은 금물입니다. 자신의 임기 내에 성과를 보려고 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단계적으로, 그리고 실속 있게 가야합니다. 다만 아무런 대안도 없이 새 정부의 방침을 비난하거나 학벌주의 또는 입시전쟁의 폐단을 명분삼아 경쟁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반대를 위한 반대밖에 없으니까요.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