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물질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존재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암흑물질의 중력 작용은 확실히 관측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엇인가 무거운 질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타날 수 없는 중력현상이 우주에서 감지된다는 것.
가장 먼저 암흑물질의 존재가 대두된 것은 우리 은하가 회전하는 속도에 대한 관측에 의해서다. 우리 은하는 나선모양의 팔에 별들이 밀집해 있고, 그 나선 팔이 풍차처럼 회전하고 있다.
보이는 대로만 하자면 별, 즉 물질이 밀집한 은하 중심부일수록 별들의 회전속도가 빠르고 별들이 드문드문 성기게 존재하는 은하 바깥쪽의 회전속도는 이보다 훨씬 느려야 한다. 하지만 실제 관측결과 나선 팔의 회전속도는 은하 중심부에서부터 거리에 따라 일정하게 반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균일한 편이며 약간의 차이만 보이는 정도다.
최근에는 중력렌즈현상을 이용해 암흑물질의 분포까지 정밀하게 알아내고 있다. 중력렌즈현상은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원리를 발표한 후 이를 검증하기 위해 처음 이용된 방법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지구에서 관측되고 있는 별빛이 태양 같은 천체 옆을 지날 때 태양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 빛의 경로가 휘게 된다. 1919년 개기일식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태양 옆을 지나쳐 온 별빛이 태양 옆을 지나지 않을 때 관측했을 때보다 옆으로 치우쳐 있음을(즉 별빛의 경로가 휘어졌음을) 확인함으로써 상대성 원리를 검증했다.
암흑물질 역시 암흑물질 자체는 볼 수 없지만 별빛이 휘는 것을 관측함으로써 지구와 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떤 질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암흑물질의 후보는 여러 가지가 꼽혀왔다. 알려져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천체부터 발견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입자까지 ‘잃어버린 질량’의 정체를 설명하려는 가설은 다양하게 병립하고 있다. 동시에 아직은 어떤 암흑물질 후보가 진짜 우주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인지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암흑물질이 실제로 무엇이고 어떤 특성을 갖느냐 하는 사실은 우리 우주에서 별과 은하, 은하단 등이 형성된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암흑물질의 정체는 이후 물리학과 우주론에 대한 이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등대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은 암흑물질의 후보로 가장 먼저 지구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관측이 잘 안 되는 천체를 떠올렸다. 태양 같은 항성이 아니라 지구와 같은 행성처럼 빛나지 않는 천체들을 가리킨다.
행성의 경우는 항성과 비교해 질량이 너무나 미미하지만 태양보다 질량이 10배쯤 작아 빛을 내지 못하는 갈색 왜성, 별들이 내부의 연료를 다 태우고 난 뒤 운명의 끝에 처하는 백색 왜성이나 중성자성, 블랙홀 등은 밝게 빛나지는 않지만 고밀도의 천체들이어서 상당한 질량을 차지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별들이 밀집한 은하의 원반 부분이 아니라 외각 부분(헤일로)에 이처럼 고밀도의 천체들이 다수 분포해 있다면 잃어버린 질량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고밀도의 천체들을 ‘고밀도 헤일로 물질’ 즉 마초라고 부른다. 또는 마초를 포함해 암흑물질의 정체가 결국은 양성자나 중성자 같은 일반적인 입자, 즉 바리온 입자라는 점에서 이 같은 후보를 ‘바리온 암흑물질(Baryon dark matte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의 관측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초는 암흑물질의 정체는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빅뱅 직후 오늘날과 같은 원소가 합성될 수 있는 조건을 따져보면 바리온 암흑물질의 양은 기껏해야 전체 우주의 5%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암흑물질의 탐색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입자의 발견을 의미하게 됐다. 새로운 입자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지만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중성미자라는 입자가 관측되고 미소하나마 질량이 있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밝혀지면서 한때 중성미자가 유력한 암흑물질의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중성미자 역시 암흑물질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현재 물리학자들이 가장 유력시하고 있는 암흑물질 후보는 윔프, 즉 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고밀도 입자다. 수소보다 100배쯤 무거운 입자여서 운동속도가 느리고, 다른 입자들과는 드물게만 상호작용을 한다.
초대칭입자인 ‘뉴트랄리노’가 이에 속한다. 오는 6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지상 최대의 입자가속기인 거대강입자충돌기(LHC)의 가동을 앞두고 있어 암흑물질의 정체가 규명될지 모른다는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초대칭입자란 관측된 모든 기본 입자들과 짝을 이루는 입자들을 의미하는데, 지금까지 가속기 실험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초대칭입자가 LHC에서 처음 관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초대칭입자가 발견되고 질량을 비롯한 특성들이 규명될 경우 뉴트랄리노와 같은 초대칭입자가 ‘잃어버린 질량’을 차지하고 있을 것인지 밝혀낼 수 있다.
바리온 암흑물질을 제외한 암흑물질 후보들은 질량과 운동속도에 따라 ‘뜨거운 암흑물질’과 ‘차가운 암흑물질’로 부르기도 한다.
중성미자처럼 질량이 아주 가벼워 거의 광속에 가깝게 운동하는 입자를 뜨거운 암흑물질(hot dark matter), 윔프처럼 질량이 무거워 느리게 운동하는 입자를 차가운 암흑물질(cold 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그 중간적 성질을 가진 따뜻한 암흑물질(warm dark matter)도 있다.
반면 신 교수가 창안한 BEC 암흑물질은 질량만 따지면 가장 가볍지만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앞의 세 가지 물질과는 다른 종류로 구분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