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시간이 부족하면 도덕적 판단력이나 양심이 흐려지며, 몸이 통증을 견디는 능력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잠을 많이 자면 사망률이 높아진다. 적당한 수면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특유의 수면 형이 있는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 형이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 형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와 함께 사람은 누구나 수면 리듬을 갖고 있는데, 휴일의 긴 낮잠 뒤에 찾아오는 월요병 역시 수면 리듬이 깨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남자는 4시간, 여자는 5시간, 그리고 바보는 6시간 잔다.” 이는 나폴레옹이 잠자는 시간에 대해 한 말이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자지 않고도 전투마다 승전보를 울렸던 나폴레옹의 건강 비결은 10분 정도 눈을 붙이는 토막잠. 나폴레옹은 굵고 짧게 푹 자는 잠을 선호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잠이 우리 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턱대고 잠을 자기보다 자신의 몸에 맞춰 잠자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잠 부족하면 양심 흐려져
미국 시카고 대학의 앨런 레치섀픈 박사는 턴테이블에 실험쥐를 올려놓고 쥐가 잠들려 할 때마다 회전시키는 실험을 했다. 잠자지 못한 쥐는 3주 만에 죽었다. 먹이나 물이 없었을 때보다 불과 3일을 더 살았을 뿐이다. 잠자지 못한 쥐는 체온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떨어져 평소 쉽게 물리쳤던 세균에 감염돼 죽었다. 음식이나 물 못지않게 잠이 생명 유지에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수면 시간은 생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많이 자면 좋지 않다. 캘리포니아 대학 정신과 대니얼 크립케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면 시간이 짧거나 반대로 너무 길면 사망률이 높아진다. 가장 이상적인 수면시간은 6~7시간이며, 4시간 이하로 자거나 8시간 이상 자면 오히려 사망률이 높아진다.
수면시간이 4시간 이하인 사람의 사망률은 7시간인 사람에 비해 남자는 62%, 여자는 60%나 높다. 또한 수면시간이 10시간 이상인 사람도 7시간인 사람에 비해 각각 73%, 92% 높게 나타났다.
수면시간은 건강 외에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잠이 부족하면 도덕적 판단력이나 양심이 흐려지는 것. 미국 메릴랜드 연구소는 26명의 군인들을 대상으로 53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판단력을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군인들은 공통적으로 판단력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도덕적 문제를 전혀 개의치 않고 판단을 내렸다. ‘수면은 피로한 마음의 최상의 약’이라는 명언을 실감하게 하는 연구다.
또한 잠이 부족하면 고통을 더욱 심하게 느끼게 된다. 수면이 방해를 받으면 몸이 통증을 견디는 능력이 떨어져 요통이나 위경련 같은 자발 통증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
실제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팀은 32명의 건강한 여성을 두 그룹으로 나눠 3일 동안 푹 잔 그룹과 도중에 여러 번 깨워 숙면을 방해한 그룹을 비교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 그룹이 숙면을 취한 그룹보다 통증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몸의 치유와 휴식은 편안한 잠자리에서만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면 형에 따른 맞춤 수면 필요
그럼 어떻게 잠을 자는 것이 좋을까. 우선 자신의 수면 형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사람의 수면 형은 ‘올빼미 형’과 ‘종달새 형’이 있다. 올빼미 형은 밤늦게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대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사람이고, 종달새 형은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지만 일찍 자야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올빼미 형은 ‘Fbxl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생체시계가 변했기 때문에 밤에 왕성하게 활동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잠을 못자도 잘 견디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역시 유전자의 차이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체내 시계 유전자인 ‘PER-3’ 두 쌍이 모두 짧은 사람은 잠을 못 자도 잘 견딘다.
반면 두 쌍 모두 긴 사람은 잠을 못자면 견디지 못하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야근을 잘하고 못하고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의 수면 형을 잘 알고 이에 맞춰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수면 형이 무엇인지 파악했으면 생체리듬에 따라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주말에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사람이 있는데 월요병의 원인이 된다.
특히 휴일의 긴 낮잠은 뇌를 멍하게 만든다. 우리 뇌에는 수면 리듬을 담당하는 체내 시계라는 것이 있어 낮과 밤의 리듬을 탄다. 이 리듬에 혼란이 생기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협화음이 생긴다.
체내 시계는 24시간 10분을 주기로 실제 하루보다 약간 길다. 이 차이를 만회하려면 오전 중에 햇볕을 쬐어야 한다. 월요일에 일찍 일어나고 싶다면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햇볕을 쬐는 것이 중요하다. 햇빛에 반응한 체내 시계가 지구의 자전주기에 맞춰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졸리고 피곤한 상태라도 강한 햇볕을 쬐고 나면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는다.
수면 리듬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질 수 있다. 계절 변화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 해가 빨리 뜰수록 잠에서 깨는 시간은 자연히 앞당겨진다.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 내분비선의 수면 호르몬 생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수면 리듬을 갖는다. 하루 종일 활동을 하고 밤이 되면 잠을 자는 리듬을 따르는 것이 몸의 건강에 더없이 중요하다.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면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어 젖혀 몸에 신호를 보내야 한다. 체내 시계를 잘 조절해 깊은 숙면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보약인 셈이다.
글_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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