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 사원①은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지만 그 주위의 유적들은 아직까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고고학적 보물이다. 항공기 탑재형 합성개구레이더는 지형의 변화를 부각시켜 숨어있는 유적②을 찾아내고, 지면관통레이더 유닛③은 정확한 탐사 장소④를 짚어준다. 상공에서 찍은 고해상도 위성사진⑤을 실제 지형과 연계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320km 상공의 위성에서 바라본 과거의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신세대 고고학자들은 땅을 파헤치는 것보다 대기권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 볼 때 고대 문명의 역사가 더 잘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 고고학자들은 합성개구(合成開口)레이더 등의 첨단 영상기술을 사용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유적을 탐사하고 있다. 합성개구레이더는 지상으로 전파를 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전파를 측정해 2차원 영상으로 복원하는 장비인데, 주로 위성이나 항공기에 장착돼 측량·관측·정찰·자원탐사 등에 필요한 넓은 지역의 고해상도 영상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첨단 영상기술을 이용한 고대 유적 발견으로 고대 문명의 흥망에 관한 기존의 학설이 흔들리고 있다. 실제 고고학자들은 현재의 캄보디아에 위치한 1,000년 전 앙코르가 산업화 시대 이전의 세계 최대 도시였음을 밝혀냈다.
매설된 지뢰만 없다면 링가푸라(Lingapura)는 탐사에 매우 적합한 장소다. 캄보디아 북서부에 위치한 이 골짜기는 유명한 앙코르 제국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집과 관개수로, 그리고 남근상이 있는 1,000여 개 이상의 신전들로 가득한 대도시였다. 하지만 폴 포트와 크메르 루즈가 지난 1970년대 캄보디아에 수백만 발의 지뢰를 매설하면서 누구의 침입도 받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됐다.
1,000년 묵은 탑 위에서 링가푸라를 살피는 데미안 에반스와 빌 새터노에게 지뢰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에반스와 새터노는 레이더, 위성사진, 기타 첨단과학을 이용해 고대 문명의 신비를 벗기려는 신세대 고고학자의 일원이며, 이런 고고학자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들 젊은 선구자들은 캄보디아처럼 매우 위험한 지역뿐만 아니라 이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장소, 그러니까 바다 속이나 울창한 정글, 그리고 땅 속에 매몰된 도시도 탐사한다. 과거에 고고학 연구는 흙더미를 파 헤치는 수작업이었지만 이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그 일을 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같은 새로운 고고학을 우주 고고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주 고고학자들은 고대 문명 전체를 발굴, 불과 몇 년 사이에 산업화 이전 시기를 다룬 역사책을 새로 쓰고 있다. 실제 이곳 캄보디아에서 신세대 고고학자들은 문명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에반스는 불과 32세의 나이지만 시드니 대학의 앙코르 프로젝트 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미 엄청난 지뢰가 깔린 북부 앙코르 지역의 지도를 오스트레일리아의 컴퓨터 스크린 속에 완성해 놓았다.
그는 레이더와 위성사진을 이용해 이곳의 수로와 저수지의 방대한 연결망을 도식화했다. 이를 통해 앙코르가 한때 오늘날의 로스앤젤레스 면적에 필적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는 점을 증명해 냈다. 그의 연구는 15세기 앙코르 문명이 멸망한 이유에 대한 급진적 학설을 뒷받침한다. 현대의 대도시들도 앙코르 문명과 같은 이유로 망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
현재 에반스는 링가푸라 근처의 지도를 작성하고 있다. 그는 목표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인 이 탑에서 지구 상공에 떠 있는 위성의 시야를 최적으로 조절했다.
사람들은 집이나 밭, 사원 등을 지을 때 주변의 식물과 나무들을 바꾸게 된다. 농업을 하거나 삼림을 개간하는 등 고의적인 행동도 있지만 음식 쓰레기나 폐수를 버려 주변의 땅을 비옥하게도 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바뀐 식생은 수 백 년 동안이나 남게 된다.
현재 이 연구팀의 목표는 링가푸라 정착지에 어떤 특이한 식물들이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 식물들은 다른 곳에서는 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고고학자들의 눈에 링가푸라를 확 들어오게 할 식물 표식 말이다.
새터노는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는 브로콜리 사이에서 보기 드물게 키 큰 나무들이나 고립돼 자라는 특이한 종의 식물들을 찾고 있다. 그는 우주영상 전문가로 현재 보스턴 대학, 과테말라 정글, 그리고 앨라배마 주 헌츠빌에 있는 NASA의 마샬 우주비행센터를 오가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가 링가푸라의 옛 주거지가 남긴 식물적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면 위성사진을 처리해 옛 도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에반스는 컴퓨터 스크린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거주지를 확인할 수 있다. 새터노는 몇몇 사원 주변의 나무 잎사귀가 울창하다는 점에 주의하면서 이를 매우 좋은 신호로 여겼다.
그들은 탑에서 내려와 사원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사원 건물로부터 반경 9m 이내에만 지뢰가 제거돼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원에 있는 무게 1톤, 높이 2m 짜리 남근상에서 처음으로 멈춰 섰다.
“저거 크기 좀 봐라” 하고 에반스가 농담을 던졌지만 새터노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곳의 식생을 새로운 각도에서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키 크고 밝은 흰색의 나무가 몇몇 사원 주변에서 자라는 것을 보고 흥분했다. 이들의 가이드인 소반은 그 나무의 이름이 스랄라오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는 너무 좋아 믿기지 않았다. 이런 나무라면 위상사진에서도 뚜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새터노는 다음 사원에도 이 나무가 있다며 미소 지었다.
탑 근처의 구내매점 옆에 세운 캠프에서 그는 또 한번 기뻐했다. 다음날 아침 11시경 이코노스 영상 위성이 링가푸라 상공을 통과하면서 스랄라오 나무를 포함한 주변의 경치를 찍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새터노와 에반스는 실험실로 돌아왔다. 이제 진짜 고고학 연구를 시작할 차례였다.
고고학 이론을 흔드는 위성의 힘
우주 고고학은 몇 달마다 한 번씩 기존 고고학 이론들을 뒤흔들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고고학자인 제이슨 우는 이라크에서 3,000년 전의 아시리아 왕국 관개수로 연결망을 연구한 결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부도심들을 발견해 냈다.
또한 하와이 대학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과학자들은 이스터 섬에서 초기 폴리네시아인들이 석상을 옮길 때 사용하던 길을 발견해 냈다. 이 길이 발견되기 전까지 폴리네시아인들이 석상을 이동시킨 방식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새터노 역시 과테말라에서 수 백 채의 건물이 있는 큰 규모의 마야 유적지를 발견해 냈다.
사실 지구 상공을 통한 고고학 연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징집된 고고학자들은 항공기를 타고 유럽 상공을 날다가 어떤 땅에 주변과는 다른 작물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그곳의 땅을 파보니 땅 속에 묻혔던 주거지가 발견됐다.
메소포타미아의 관계체계를 조사하기도 전에 격추당하기는 했지만 영국군 중령 G. A. 비즐리 같은 사람들 때문에 고고학은 큰 발전을 이루었다. 아마추어 고고학 팬이었던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는 미국 중서부에서 푸에블로족의 절벽 주택을, 중미에서 마야 유적지를 발견해 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수 십 년 전에 원격감지기술, 즉 하늘이나 우주에서도 지면을 뚜렷이 보여주는 디지털 센서가 등장하면서 고고학자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됐다.
이 같은 첨단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엄청난 발견이 이루어졌고, 고대 세계에 대한 고고학자들의 이해 폭도 달라졌다. 버밍햄의 앨라배마 대학 고고학자인 사라 파캑은 “첨단기기에 의해 수집된 데이터를 보면 누구나 고대 세계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한다.
원격감지가 가능해 지면서 고고학자들은 갑자기 기술의 진보를 만끽하게 됐다. 특히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작업은 한결 수월해졌으며, 기존 방식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것도 찾게 됐다.
파캑은 23세 때 캠브리지 대학에서 위성 영상에 대해 처음으로 논문을 썼다. 그녀는 지리학과 기타 정보영역에 관한 논문을 살펴보면서 위성 영상을 분석하는 방법을 익혔다. 당시만 해도 위성과 관련한 고고학 책은 없었다. 6년이 지난 현재 그녀가 그런 책을 쓰고 있는데, 그녀의 접근방식이 옳았음이 드러났다.
파캑은 대학원생 시절 NASA의 랜드샛 지구관측 위성에서 찍은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영상을 어다스 이매진(Erdas Imagine)이라는 프로그램에 올렸다. 이 프로그램은 구글 어스와 포토샵이 협력해 지리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이 위성 영상을 분석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나무나 물, 모래 같은 자연물들은 빛의 흡수율과 반사율이 모두 다르다.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그런 점을 이용해 연구자들이 찾는 특정 대상만을 찾아낼 수 있다.
파캑은 기존에 알려진 고고학 유적지에서 얻은 데이터를 이용해 이미 유기물과 인이 많이 있는 지형이 고대 이집트인 집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새 영상을 처리해 이 같은 장소가 분홍색으로 나타나게끔 만들었다.
영상을 분석했을 때 컴퓨터 스크린에는 분홍색 점이 가득했다. 이 영역 전체가 고고학적 유적지일 턱은 없을 것이라고 파캑은 당시 생각했다. 하지만 GPS 수신기를 들고 현장에 가보자 랜드샛 영상에서 분홍색으로 나타났던 곳은 고운 갈색 모래흙의 유적지임이 밝혀졌다. 파캑은 오늘날까지 위성 데이터를 사용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수 백 개의 이집트 유적지를 찾아내고 있다.
NASA의 고고학자들
하지만 파캑의 방법이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의 삼각지에서 통하는 방법이 브라질의 우림지역에서도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탐사하는 지역의 특성에 맞게 원격감지 기술을 개량해야 한다. 위성 영상은 삼각지나 밀림지대 등에서 효과적이다. 하지만 나무가 없는 평야나 사막에서는 레이더가 더욱 효과적이다. 링가푸라처럼 밀림이 우거지지 않은 북부 앙코르에서 데미안 에반스는 항공기의 기체 하부에 장착된 합성개구레이더를 사용했다.
이 레이더는 전천후 레이더로 일반 레이더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레이더는 레이더 파를 지상에 쏘았다가 그 반사파를 수신해 고도의 변화, 토양의 습도 변화, 그 외에 여러 요소들을 여러 가지 밝기로 표시한다. 고고학자들은 이것을 보고 고대 수로와 인간이 만든 유적을 찾을 수 있다.
무선 감지기술은 인기가 좋기 때문에 현재 상당수의 고고학자들은 NASA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일하고 있다. 실제 새터노와 함께 마샬 우주비행센터에서 일하는 고고학자 톰 세버는 NASA의 기술을 이용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세계를 여행한다. 또한 제트추진연구소의 레이더 과학자들은 극히 정밀한 합성개구레이더를 만든 다음 고고학자들과 함께 유적 상공에서 사용해 본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NASA는 지난해 공식적으로 우주 고고학 부서를 발족시켰다(86 페이지의 320km 상공에서 본 과거 참조). 또한 NASA는 전 세계에서 실시되는 7개 프로젝트에 200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했다. NASA로서는 그리 큰돈이 아니지만 예산 부족에 시달리던 고고학자들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됐다. 세버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고대 유적 발굴을 위한 지상전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처럼 고고학자들도 새로운 기술이라고 해서 무작정 수용하지는 않는다. 앙코르에서 그것은 잘 드러나 있다.
한 때 600년이나 번성했던 찬란한 문명이 있었고, 현재 세계 최대의 사원인 앙코르와트와 수 백 개의 작은 사원을 보유한 이 고대 도시는 오랫동안 야심에 가득 찬 많은 고고학자들을 유혹했다.
앙코르에 처음으로 온 고고학자들은 식민지를 운영하기 위해 온 유럽 병사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영국은 타지마할을 보수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도 허겁지겁 앙코르와트를 자랑해 보이려고 했다.
1907년. 아시아 전역에 17개의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던 프랑스 극동학원은 사원 인근의 씨엠립, 앙코르 수로 둑에 전초기지를 세웠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오직 사원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땅과 거기 살던 사람들은 무시했다.
역사학자들은 왜 앙코르 문명이 수 백 년 동안 번영하다가 망해버렸는지를 알기 위해 고심했다. 극동학원의 역사학자들은 앙코르의 지도자들이 보다 정교한 사원을 세우려다 자원을 모두 소진한 끝에 멸망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지난 1992년 UN 평화유지군이 수 십 년간의 전쟁 끝에 열린 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이 때 극동학원은 태국에 있던 크리스토프 포티에를 씨엠립의 전초기지로 보냈다.
익살맞은 프랑스 사람인 포티에는 마치 식민지 개척시대에서 튀어나온 탐험가 같았다. 수십년 동안 열대에 머무르면서 살은 갈색으로 그을리고, 카키색 옷을 입고 다니며, 두려움을 모르는 탐험가 말이다. 극동학원은 여전히 유적의 리모델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고 따라서 건축가인 포티에를 보내 유적의 복원을 맡겼다.
그 해 후반 유네스코에서 앙코르와트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포티에를 고용해 이곳의 조사를 맡겼다. 헬리콥터를 타고 캄보디아 상공을 날던 그는 기존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논, 길, 수로의 흔적을 수 백 군데나 발견해 냈다. 그는 앙코르가 단순히 사원만 있는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갖춘 도시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는 여유 시간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하늘에서 점찍어 두었던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초기형 GPS 수신기와 카메라, 노트북, 구식 입체경(조감도 이미지를 합성해 입체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3차원 안경 비슷한 장비) 등을 가지고 과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찾으러 다닌 것.
여기에서 발견된 부식된 홍토나 벽돌담의 잔해, 그리고 깨진 단지 조각을 보고 그는 이곳이 집터임을 알게 돼 입체 사진을 찍었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비치는 종이를 사진 위에 대고 정확히 따라 그렸다. 이 작업은 나중에 지도 제작에 유용하게 쓰였다.
당시 크메르 루즈는 완전히 무장해제된 상태가 아니었다. 포티에가 온 해에 게릴라들이 포티에 캠프에서 불과 몇km 떨어진 장소에서 영국인 지뢰 제거 요원을 납치해 살해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겁 없는 열정으로 앙코르를 좋아하던 포티에는 행운과 무장 경호원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결국 그는 앙코르 중부와 남부 600㎢(지뢰가 잔뜩 매설된 북부는 포티에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해답이 안 나왔다) 면적에 대한 완벽한 지도를 만들고 논문이 통과돼 건축학 학위를 땄다. 그는 이 작업에 6년을 소비했다.
유적 발굴 방법론의 충돌
지난 1996년 포티에가 캄보디아 오지를 여행하고 있을 때 롤랜드 플레처는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재단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고고학자인 플레처는 산업시대 이전 도시를 다룬 책을 보기 위해 시드니 대학에서 왔다. 그는 앙코르를 그린 지도를 보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지도에 나온 앙코르의 주거지역이라는 것이 사원지역에서 조금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논과 주택을 지을 자리도 거의 없다는 것에 주목한 것.
책을 좋아하는 이론가인 플레처는 구겨진 폴로셔츠와 샌들차림을 하고 정신없이 떠들어대기를 좋아한다. 한 친구는 도시화 연구에 대한 그의 기념비적 저작인 ‘주거지 성장의 한계’는 ‘독자들의 인내의 한계’로 개칭해야 한다고 농담까지 한다. 하지만 플레처는 고고학계에서는 드물게 넓은 시각을 갖춘 인물이다.
앙코르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은 그가 알던 다른 초기 도시들의 낮은 인구밀도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다.
어느 날 그가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에서 강연한 후 질문을 받았는데, 한 청중이 1994년에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에서 찍은 앙코르 사진을 본 적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그런 사진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NASA에 전화를 걸었다.
그 사진은 해상도가 30m 정도로 요즘의 위성사진에 비하면 형편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길이가 플레처의 사무실만한 사진은 앙코르 대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전에 위성사진을 본 적이 없던 그는 “마치 이상한 현대미술 같았다”며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색상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그는 그동안 수로라고 생각해오던 동서를 잇는 줄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긴 줄이 지나는 것에 주의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것도 바로 수로였는데, 이 긴 줄은 중부 앙코르를 지나 북부 끝까지 뻗어 있었다.
그는 이것을 보며 가운데에 사원이 있는 앙코르는 역사학자들의 생각보다 더욱 큰 도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후 그는 캄보디아에 갔고, 포티에가 그에게 손으로 직접 그린 남부 앙코르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플레처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그 이듬해 플레처와 포티에는 앙코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늙어가는 프랑스 출신 방랑자와 영국 출신 인텔리 교수와의 기묘한 협력관계였지만 앙코르의 신비를 밝혀내겠다는 목표만큼은 완벽히 일치했다. 다만 그 방법에서는 의견 차이가 있었다.
플레처는 위성 영상과 레이더를 이용, 들어갈 수 없는 북부 앙코르를 탐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포티에는 기존에 자신이 해왔던 것처럼 몸을 사리지 않고 임해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레이더와 위성을 이용해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습도와 식생 변화를 관찰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 포티에는 위성 영상이 일반적인 항공사진보다 조금 나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포티에는 “레이더가 쓸모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면서 “하지만 그 한계는 너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플레처가 본 엔데버호의 사진은 해상도가 형편없었다”면서 “아무 것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NASA가 자신들의 기술력을 과대평가하고 있고, 셔틀 발사 이전에 이루어진 발견 성과도 자신들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포티에는 말했다.
하지만 기술의 힘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엔데버호의 사진을 통해 플레처는 포티에가 5년 동안이나 걸려 알아낸 사실을 단 30분 만에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책상위에서 만든 지도
NASA는 합성개구레이더를 이용해 금성의 구름 밑을 들여다보고 토성의 위성 타이탄의 습곡을 관찰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DC-8에 실린 합성개구레이더로 좀 더 가까운 세계를 관찰할 것이다.
하지만 항공기 탑재형 합성개구레이더(에어SAR)를 사용하려면 최대 10명의 승무원이 항공기에 타야 한다. 더구나 고고학 예산에는 항공기의 운영비가 포함돼 있지 않다. 지난 2000년 NASA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와 합동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지도 제작을 실시했다. 이 때 플레처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NASA에 연락했고, 시드니 대학과 수자원 관리조직인 메콩강위원회를 설득해 앙코르 상공도 촬영할 수 있게 자금지원을 얻어냈다.
그 해 9월 방콕에서 이륙한 항공기는 태국-캄보디아 국경에서 남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앙코르 상공으로 날아갔다. 플레처는 2만6,000㎢의 면적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시드니 대학 고고학과에는 이 같은 장비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나마 이 학과는 전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고고학용 컴퓨터 실험실을 보유한 곳인데도 말이다. 이곳의 연구자들은 지도 제작 소프트웨어 개발을 매우 난감해했다.
그 때 대학 2학년생으로 향후 진로를 탐색 중이던 데미안 에반스가 나섰다. 플레처는 씨엠립으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났을 때 그곳에서 짐꾼으로 일한 적이 있던 에반스를 데려갔다. 플레처의 격려를 받은 에반스는 에어SAR에서 얻은 데이터로 북부 앙코르까지 포함하는 지도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고고학용 컴퓨터 실험실에 가서 소프트웨어와 씨름했다.
제트추진연구소의 레이더 과학자 스콧 헨즐리와의 이메일 교류를 통해 그는 화면상의 알아보기 힘든 데이터를 가지고 이곳의 지형을 다소 흐릿하게나마 나타내주는 흑백 사진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에반스는 들어갈 수 없는 북부 앙코르의 수로와 길에 대한 대략적인 지도를 만들었다.그는 더욱 자세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시드니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에어SAR 자료를 항공사진 및 위성사진과 꼼꼼히 대조했다. 그 결과 그는 작은 사원 터와 해자를 찾을 수 있었다.
에반스는 두 개의 데이터 세트에 나타난 정보만을 분석했다. 그래도 그는 수 천 개의 유적을 더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94개의 사원 터와 수 십 개의 도로와 수로가 있었다. 결국 그는 1,500㎢ 면적의 북부 앙코르 지도를 완성했다. 그는 포티에가 만든 지도보다 2배 이상 더 넓은 지도를 훨씬 짧은 시간 내에 만든 것이다. 그것도 책상 위에서만.
그는 발견한 사항을 논문에 적어 넣고 포티에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오늘날에도 그 논문은 대단한 것이었다. 포티에는 논문의 여백에 이런저런 말들을 엄청 많이 적어 넣었는데, 그 중에는 자기 머리에 총을 쏘는 앙코르인의 그림도 있었다. 그것은 그 논문에 대한 분석을 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에반스는 “그렇게 교정용 붉은 잉크가 많이 들어간 것은 처음 보았다”고 회상했다.
포티에에게 의견을 묻자 이만한 넓이의 지도라면 이제 북부 앙코르에 대해 더 많은 분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이 같은 지도 제작은 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였다. 하지만 그의 피부 빛은 점점 검붉어져가고 있었다.
앙코르의 새 지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에반스는 지난해 국립과학아카데미 연구저널에 실린 지도 설명 논문의 주 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다만 앙코르 프로젝트 연구자들은 도굴꾼들이 이 유적지를 습격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완벽한 해상도의 지도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에반스의 논문은 앙코르 멸망에 대한 자극적 이론들을 뒷받침해 주는 첫 번째 증거였다. 그는 사원에 초점을 맞추던 기존의 이론을 부정하는 대신 앙코르 주변 지형에 진짜 정답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앙코르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땅을 개간하고, 나무를 베었으며, 수로와 복잡한 관개체계를 건설했다. 포티에는 지난 가을 이 논문에 공저자로 참가했다.
포티에도 이미 1999년 플레처와 함께 앙코르 멸망 원인을 탐사할 때부터 이 같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레이더와 위성 영상을 통한 발견은 이 같은 주장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했으며, 100여 년 간의 앙코르 고고학 연구를 뿌리부터 동요시켰다.
앞으로의 전망
캄보디아의 건기인 매년 1월이 되면 오스트레일리아의 고고학자들이 에반스와 포티에가 만든 지도에 나온 것과 자신들의 원격 감지기가 찾아낸 것들을 발굴 및 확인하러 캄보디아에 온다.
앙코르 프로젝트에는 이제 고식물학자,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전문가, 베트남 전쟁 참전 미군 조종사 등도 참가한다. 이 조종사는 고고학자들을 초경량 항공기에 태우고 상공에서 유적지를 보여준다. 요즘은 다큐멘터리 제작진들도 앙코르의 수로 기반 문명을 취재하기 위해 과학자들을 따라다닌다.
플레처가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을 때는 포티에가 10여명의 젊은 앵글로 색슨 학자들을 노련하게 감독한다. 며칠 동안 현장에서 일한 다음 술을 마실 때마다 불어식 영어 발음으로 “그야 당연하지!”를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말이다.
극동학원에서 나오는 길 아래쪽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프로젝트 본부로 쓰일 건물을 수리하고 있다. 이 건물에는 동물가죽과 촌스러운 그림이 장식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세련된 프랑스풍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새터노는 파퓰러사이언스 기자가 링가푸라를 방문하고 나서 몇 주 후 마샬 우주비행센터로 갔다. 탐사대상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얻은 그와 톰 세버는 이코노스 위성으로 앙코르를 촬영하기로 했다. 그들은 올 여름 그 작업을 할 것이고, 내년 겨울에는 앙코르를 찾아 에반스와 발견 내용을 확인해 볼 것이다.
그 동안 제트추진연구소의 연구자들은 합성개구레이더를 손보느라 바빴다. 최신형 모델인 지오SAR은 가장 뛰어났다. 에어SAR을 조작하려면 8~10명의 인원이 필요한데, 지오SAR은 작은 걸프스트림 제트기에도 장착된다. 그리고 해상도가 에어SAR의 4배에 달한다.
레이더의 대역도 길어 레이더 파가 삼림의 나뭇잎을 관통하고 지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에반스는 “알려진 성능대로 움직여준다면 가히 혁명적일 것”이라며 희망에 가득 차 있다. 플레처는 지오SAR이 북부 앙코르에서 더 많이 쓰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그는 에어SAR의 비행을 위해 정부의 허락을 기다리거나 민간회사에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는 일단 여건만 갖춰지면 지오SAR을 미얀마, 스리랑카, 베트남 상공에서도 사용해서 앙코르에서 얻은 성과와 비교해 보고 싶어 한다.
동남아시아에는 앙코르 외에도 광범위하고 인구밀도가 낮은 도시가 여럿 있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다른 도시들도 자연을 난개발한 끝에 멸망한 것일까.
우주 고고학을 통한 고대 문명의 재발견 다음 작업은 훨씬 광범위할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도시화가 슬럼화를 촉진시킴에 따라 개발 전문가들은 대도시의 유지 방법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플레처는 최근 현대 대도시에서 앙코르와 같은 형태의 거주지 부활을 보고 있다. 그는 원격감지 작업을 통해 현대 대도시의 지속가능 전략, 적어도 앙코르처럼 되지 않을 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앙코르 같은 대도시가 멸망했다고 해서 현대의 대도시들까지 반드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그러려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야 하겠지만.
위성을 이용한 고대 유적의 발굴
초미세 분광위성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대 유적들을 발굴하고 있다
이집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농사를 짓는 땅에 있는 고대 유적을 무슨 수로 발견할 것인가. 앨라배마 대학의 고고학자인 사라 파캑은 초미세 분광위성의 영상을 사용한다. 이 위성은 다양한 파장으로 사진을 찍는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 파캑은 데이터를 정리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유기물과 인이 많이 나오는 지역을 발견하고, 그 곳에 가 발굴 작업을 시작한다.
제1단계: NASA의 애스터 위성은 15가지 파장으로 지구의 영상을 촬영한다. 파캑은 이 자료를 처리해 밭은 적색, 도시는 청색, 고대 유적은 녹색으로 나오도록 한다.
제2단계: 영상을 확대하면 붉은 밭 속에 미세한 녹색 언덕이 보인다. 흰색 사각형은 하수처리 시설이다.
제3단계: 파캑은 퀵버드 위성이 찍은 가시광선 영상을 이용해 갈색 밭의 왼쪽에 있는 파묻힌 벽을 찾아냈다.
제4단계: 지상의 발굴 작업 결과 이 유적은 기원전 600년 고대 도시 텔 티빌라의 성벽임이 확인됐다.
320km 상공에서 본 과거
NASA의 고고학 프로그램은 전 세계 11개 지역의 7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 목적을 소개 한다
1. 유타 블러프
푸에블로족의 선조들은 정교한 도로망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 도로 중 상당수는 발견되지 않았다.
2. 에콰도르의 퀴토 북동부
거친 지형과 빽빽한 우림 탓에 잉카 문명 유적들은 아직도 찾기 힘들다.
3. 벨리즈 캐러콜
이곳은 최대 규모의 마야 유적지이지만 밀림 탓에 정확한 규모는 모른다.
4. 사하라 사막
이 프로젝트는 사막에서 고대의 배수 설비와 마른 호수를 찾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5. 요르단의 페트라
이곳의 유적들은 세계에서 가장 황량한 지역을 탐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형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6. 캄보디아의 메콩 델타
지도 제작을 통해 서기 1,000년경 동남아시아에 거대한 문명이 탄생한 원인을 밝힐 예정이다.
불멸의 사원 앙코르와트(와트는 크메르어로 사원이라는 뜻)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고학자들을 매혹시켜 왔다. 하지만 이 유적도 캄보디아에 있던, 한때 강력했던 대도시 역사 중 극히 일부만을 전해줄 뿐이다
요즘의 기준에서 보자면 앙코르 중심에 위치한 사원 구획(아래 사진)은 도심부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개수로로 물이 공급되는, 작은 논이 있는 부도심(작은 사진)에 살았다.
앙코르는 도심부 지역 외에도 엄청난 면적을 가진 대도시였다. 지난 10년간 레이더 영상(그림2)을 통해 고대 수로 연결망(그림1)은 지뢰가 잔뜩 매설된 북부로 수km나 뻗어 있음이 밝혀졌다. 고고학자들은 앙코르야 말로 산업화 시대 이전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였음을 알게 됐다.
실제 12~13세기경의 최전성기에는 1,036㎢의 땅에 50만 명의 사람이 살았다. 산업화 시대 이전 두 번째로 큰 도시는 과테말라의 티칼(면적 142㎢)이다. 당시 유럽 대도시들의 인구는 고작 수 만 명에 불과했다.
앙코르 면적 대부분은 부도심의 거주 지구였으며 이곳에는 주택, 논, 작은 사원 등이 있었다. 수로와 저수지 체계가 잘 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도시의 성장이 가능했다.
수로는 상품을 운반하는 효과적인 교통로 역할을 했다. 저수지는 예측 불가능한 몬순기후 때문에 음료수와 농업용수를 의존하는 이 지역에 매우 중요한 물 공급원이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로 중 일부는 아직도 볼 수 있으며(옆 사진), 그 중에는 현대 캄보디아인들이 개선해 쓰는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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