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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는 한민족이 만든 것인가?

이집트 기자지역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영원한 불가사의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집트에만 이런 피라미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북미와 남미는 물론 중국의 시안지역에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피라미드 배치가 이상하리만치 비슷하다. 오리온 별자리의 배치와 일치하는 것. 이 때문에 외계 생명체에 의한 지구문명 건설과 고대 문명 간 밀접한 교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시안지역의 피라미드는 한민족의 조상인 환국이 건설한 것이며, 이것이 베링 해와 알레스카를 거쳐 북미와 남미로까지 뻗어나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원한 불가사의,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지역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영원한 불가사의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혜를 체현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기는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 많다.

사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대부분은 비교적 규모가 작아서 인력으로 건설이 가능하다.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3대 피라미드의 건설 방법은 아직도 고고학계의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일예로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6m, 밑변 230m, 그리고 면적은 5만2,900㎡다. 230만개의 석재가 사용됐는데, 가장 작은 것은 1톤이고 가장 큰 것은 100톤이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철기도 아닌 청동기를 사용해 부근의 채석장에서 거석을 떼어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거석은 통나무를 이용해 피라미드 건설 현장으로 옮겨졌으며, 그 것을 경사로 위에 놓고 쐐기와 지렛대를 사용해 피라미드 위로 끌어올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거석을 운반하기 위해 경사로를 만드는 것 자체도 거대한 공사일 뿐만 아니라 거석을 운반해 정확한 위치에 놓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집트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대(大) 피라미드를 건설하는데 10만 명의 인원과 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1년 내내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나일 강이 범람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3개월 동안만 건설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매일 10시간씩 일한다고 계산할 경우에도 노동자들은 반드시 매분마다 몇 톤이나 되는 거석을 운반해 실수 없이 피라미드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고대시대의 인력, 물력, 그리고 사회 실정을 감안하면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집트 학자들은 30여 종 이상의 건축방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시 이집트인의 기술과 능력으로는 이 같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피라미드

피라미드와 이집트 간에는 하나의 등식이 만들어지는 게 일반적이고, 이 둘의 관계는 마치 하나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미의 마야문명은 물론 미국 일리노이 주 커호키아에도 인디언들이 만든 피라미드 유적이 남아있다. 물론 아시아에도 있다. 바로 중국 시안(Xian) 지역에 있는 피라미드다.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건축 재료와 건축 방식은 약간씩 다르다. 하지만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 범주에는 모두 포함된다. 용도 측면에서도 단순히 고대 왕족의 무덤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음모론을 만드는 진원이 된다.
대표적인 음모론은 외계 생명체가 지구로 이주해와 지구문명을 건설했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피라미드라는 것. 또한 피라미드는 무덤이 아닌 다른 용도로 만들어졌다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SF 영화인 ‘스타게이트’에서 피라미드는 거대한 외계 우주선의 착륙 플랫폼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외계인들이 지구인 노예를 시켜 피라미드를 건설하도록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난 1976년 바이킹호가 찍은 화성 사진에는 피라미드 형태를 가진 거대 구조물이 있었다고도 한다.

물론 피라미드를 외계 생명체가 건설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피라미드가 고대문명의 공통된 건축 유산이며, 건축 배치 면에서도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이집트 기자지역에 있는 3개 피라미드의 배치는 오리온 별자리의 배치와 유사하며, 여타 지역의 피라미드 역시 이와 비슷하다는 것.

기자지역에는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모두 3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이 3개의 피라미드를 연결해 보면 일직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마지막 피라미드는 약 10° 정도 기울어져 연결된다. 이전부터 일부 학자들은 3개 피라미드의 배치가 오리온 별자리의 배치와 유사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집트 지역의 피라미드에서만 이 같은 배치가 이뤄졌다면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잉카문명의 피라미드와 중국 시안지역의 피라미드에서도 이 같은 배치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피라미드는 외계 생명체로부터 동일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거나 인류의 고대문명은 현대 고고학이 추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한 교류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고대국가 환국의 존재 여부

중국 시안지역의 피라미드 역시 이집트 기자지역의 피라미드와 같은 배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고대문명간의 밀접한 교류 가능성을 반증한다. 시안지역의 피라미드 축조 연대는 이집트보다 오래됐는데, 일부에서는 이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은 바로 한(韓)민족의 고대국가인 환국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국내 역사학계에서 정설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환단고기에 따르면 한민족은 중국 본토와 몽골지역에서 거대한 고대국가를 세웠으며,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현재의 한반도에 머물게 됐다고 한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한민족은 중국본토와 몽골지역을 아우르는 ‘환국’이라는 고대국가 설립의 주역이다.

또한 고구려 역시 한반도 지역에 머물렀던 국가가 아니라 중국 본토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환국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국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시각이 많다. 즉 한민족은 환국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인데, 이는 아리아족의 이주 역사와 비교되기도 한다.

아리아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살다가 동서남북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들은 인도를 침략해 인도를 지배하게 됐으며, 유럽으로 흘러들어가 게르만·라틴·슬라브족에 융화됐다. 또한 터키 지역 사람들도 아리아인의 후예며, 유럽 원주민인 켈트족 역시 아리아인의 한 갈래다.

이처럼 환국도 원래 한 민족이었다가 캄차카 반도 쪽의 민족은 아메리카로 건너가 인디언의 조상이 되고,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간 민족은 수메르인의 직접적인 조상이 됐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흉노와 돌궐의 조상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환국 말기에 보낸 3,000명의 사람들 중 일부는 반고를 따라 떨어져 나가 묘족의 조상이 됐고, 환웅을 따른 사람들은 한민족이 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시안지역에 있는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은 바로 한민족의 고대국가인 환국이라는 설은 이 같은 배경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환국이 피라미드의 원조(?)

시안지역의 피라미드는 중국의 고대 왕릉처럼 흙으로 덮여 있다. 하지만 흙무덤만으로 사각뿔 형태를 수 천 년 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흙무덤 아래에는 석조 건축물 형태의 피라미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은 이들 흙무덤에 나무를 심어 놓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발굴조사는 진행하지 않거나 발굴을 하더라도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중국은 시안지역의 피라미드가 자신들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이들 피라미드는 중국 고대국가의 왕릉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중국 민족의 문화유산이라면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 등록을 서둘러야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거의 없는 상태다.

반면 국내 민간 사학자들은 이들 피라미드가 중국의 황화문명 형성 이전에 건설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건축시기가 황화문명 이전이라면 중국 민족이 건설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증거다. 중국이 지난 1970년대 이후 피라미드 발굴을 중단하고 외부에 공개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이 같은 시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피라미드에서 동이족의 유물이 발견되자 이에 대한 공개를 봉쇄하고, 오히려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역사의 중국 편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중국은 시안의 피라미드가 자신들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홍보를 전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의문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바탕으로 국내 음모론자들은 한민족의 조상인 고대국가 환국이 처음으로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을 건설했고, 이 문명의 영향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건설됐을 뿐만 아니라 북미지역과 남미지역의 피라미드 건설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이집트 지역에서 시작된 피라미드 건축이 북미와 남미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피라미드 건축이 중국 본토와 연결된 베링 해와 알래스카를 거쳐 북미와 남미지역으로 전파됐다는 주장이 지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구려의 석조 건축물에 남아있는 피라미드의 흔적도 이 같은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음모론자들은 피라미드는 고구려의 전형적인 왕릉 형태며, 이는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왕릉의 예에서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고구려의 장군총, 무용총 등 각종 왕릉은 석조 건축물의 외부를 흙으로 덮은 형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지나친 국수주의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즉 시안지역의 피라미드는 한나라 시대의 고분이며, 이 무덤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주인이 알려져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무엇이 진실인지는 좀 더 많은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재윤 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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