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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와 영화, 그리고 대중음악 속에 살아 숨 쉬는 르네 마그리트

광고와 영화, 그리고 대중음악 속에 살아 숨 쉬는 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는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가다. 하지만 그는 여타 작가와는 달랐다.

일반적인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무의식 상태에서 손가는 대로 붓질하며 캔버스를 매우는 자동기술법을 사용한 반면 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했다.

데페이즈망 기법은 사물을 엉뚱한 환경에 배치해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모티브로 한 그의 작품은 많은 대중매체와 대중음악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통신회사의 음악 서비스 광고인 ‘멜론’, 영화 ‘매트릭스’는 마그리트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다. 또한 비틀즈는 마그리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과를 자신들의 상징적 이미지로 사용했다.

지식이 곧 돈이 되는 세상. 창의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창의력이라는 게 뭔가. 예전에 없던 그 어떤 것이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성경에 나온 말대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20세기 초에는 좀 달랐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미술사조가 쏟아져 나왔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과거를 거부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마음이 분출된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던 미술사조 가운데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초현실주의(surrealism)일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극사실주의(hyper-realism)가 시장의 인기를 끌었던 지난해 국내외 미술계에 등장한 작품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특정 사물에 투영해 작가만의 방식으로 묘사한 작품이 많았다.

생명이 다해 사라져 가는 썩은 고기나 과일을 극사실로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한 황순일 작가가 그렇다. 황량한 바닷가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놓고, 그 속에 붉은 꽃을 주로 그려 ‘얼음 작가’로 불렸던 박성민 작가의 작품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작품은 극사실적이면서도 현실을 벗어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초현실주는 꿈의 세계 표현초현실주의의 핵심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중 무의식의 세계, 즉 꿈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주류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캔버스라는 물리적인 대상에 담아내는 사실주의(realism)였다.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현실만을 믿었던 그 시절. 남과 공유하기도 어려운 꿈을 묘사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대목이었을 것이다.

미술사조는 문화 전반에 흐르는 기류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서구에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이상 세계를 꿈꿨다. 프로이트의 사상이 의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고, 초현실주의 역시 미술계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초현실주의는 논리적이거나 이성의 지배를 거부하고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사실주의와 추상예술과는 다른 미술 사조를 형성할 수 있었던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초현실주의 혼자 독자적인 사상과 철학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다. 초현실주의의 기원을 더듬어 가면 입체파에 그 맥이 닿아있다. 강렬한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으면서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느끼는 대로 대상을 분해하고 과학적인 시각으로 대상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상관관계를 두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또한 인간의 심리와 윤리를 지배했던 종교 대신 프로이트의 성적 충동을 의미하는 리비도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외부로 밝히기를 금기시 했던 인간의 숨겨진 욕망도 거침없이 드러내고 상상력을 펼친 것은 당연하다.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는 공간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 놨다. 비현실 세계를 묘사하다 보니 기법도 달라야 했다. 돌이나 사과 등 특정 사물을 캔버스 한 가득 채우거나 돌이 공중에 떠있는 식의 새로운 실험이 계속됐다.

● 데페이즈망 기법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르네 마그리트(Rene Margitte, 1898~1967)를 꼽을 수 있다.

벨기에 출신의 마그리트는 브뤼셀에서 미술공부를 하면서 미래주의·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점차 개성이 넘치는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때로는 만화적인 이미지로 쉽게 접근하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숨겨진 작품 경향은 철학적이면서도 때로는 우울하기도 하다.

중절모를 쓴 남자의 모습에서 얼굴만 뚝 떼 내 옆에 그려놓기도 하고, 여자의 시체를 중앙에 놓고 무표정한 중절모의 사나이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때로는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달걀을 보면서 새를 생각했고, 창문을 보면서 숲을 떠올리는 등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있는 환상을 묘사하는데 노력했다.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작업했던 많은 화가들의 작품 경향과는 달랐다. 많은 화가들은 무의식 상태에서 손가는 대로 붓질하며 캔버스를 매웠던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했다.

반면 마그리트는 새로운 기법을 적용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 데페이즈망 기법이란 사물을 엉뚱한 환경에 배치해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말한다.

일상에 널려있는 사물들이 돌연 의미를 갖고 등장하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적용한 대표작으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있다. 캔버스 가득 거대한 파이프를 그리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말을 곁들였다. 마그리트는 관람객들에게 ‘그럼 이게 파이프가 아니고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작품을 보면서 온갖 상상을 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새로운 자각으로 다가간다. 스스로 갖고 있던 기존의 인식과 그림이 주는 메시지가 충돌하는 순간의 당혹감은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 그림은 창의력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 중 하나다.

마그리트는 작품을 통해 ‘이것은’ 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도 그 자체로는 파이프를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파이프 그림은 담배를 피울 수 없기에 파이프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는 마그리트의 논리는 관습적인 인식에서 탈피할 때만 대상에 진정한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현실적인 판타지로의 여행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 기법과 아울러 이미지에 문장을 가미해 이미지와 언어의 조합을 시도했다. 텍스트에 머물러 있었던 언어와 회화가 맞물리면서 단순한 감상을 넘어 이해를 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 작품으로는 ‘이미지들의 배반’, ‘폭로의 알파벳’, ‘꿈의 해석’ 등이 있다.

마그리트는 1923년 친구인 므장스(E.L.T. Mesens)에게 보낸 편지에서 “순수형식은 지고 회화여 영원하라”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는 환상에 불과했던 어떤 이미지를 묘사하기 위한 작가의 열망이 담겨있는 듯하다.

막스 에른스트에게 영감을 받은 그는 시각적 공격보다는 의미를 부수려는 결연한 의지에 부합한다. 벌거벗은 여인의 몸을 가로질러 공격적인 남성의 실루엣이 나타나게 만든 ‘거인의 시대’는 폭력에 대한 변론으로 해석되는 작품인데, 이 같은 폭력이 주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여전히 부르주아 계급의 도덕적 순응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나게 함으로써 자신만의 사실성을 만들어 내려 했다.

사람의 팔을 매달아 놓은 것 같은 기둥을 폭풍우가 치는 바다에 떠 있는 배 위에 올려놓은 ‘우상의 탄생’이나 마네킹처럼 생긴 목 없는 사람을 황량한 강가에 세워놓은 ‘강에 사는 사람들’ 등은 비현실적인 판타지로의 여행에 관람객을 초대한다.

그의 작품은 때로 음산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천재의 형상’은 석고상 같은 얼굴에 볼과 눈을 파 내 뒷면에 있는 나무가 보이도록 묘사했다. 이 작품은 천재는 일부만 온전하고, 부분적으로는 속이 다 드러나며, 보통 생각하는 천재성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감긴 눈은 죽은 사람의 얼굴을 의미한다.

●대중매체 속의 마그리트

대중에게 마그리트가 친근한 이유 중 하나는 광고나 영화 등 대중매체에 그의 사상을 차용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광고를 보자. 그의 이력을 보면 광고와 작품의 연관성을 짚어낼 수 있다. 마그리트는 브뤼셀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벽지공장의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광고 이미지 스케치를 한 적이 있다. 이 경력은 후에 그의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광고 속 이미지에 마그리트의 철학이 숨 쉬는 것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통신회사의 음악 서비스인 ‘멜론’이 대표적이다.

잘 익어 탐스러운 멜론에 이어폰을 꽂아놓고, 그 옆에는 커다란 초콜릿 덩어리 위에 ‘초콜릿’이라는 예명을 가진 핸드폰을 올려 놓는다. 그런 후 이것은 초콜릿이 아니라고 말하는 광고가 그 것이다.

보기에는 먹는 멜론이지만 보이는 것만으로 멜론을 정의 내릴 수 없다는 이 광고는 마그리트의 사상을 잘 반영한 광고라고 할 수 있다.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은 작품의 줄거리와 모티브를 빛과 어두움이 이중적으로 공존하는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으며, 마그리트의 동명 작품으로 표지를 디자인했다.

영화에도 마그리트는 살아있다. 실제 ‘매트릭스’에는 복제된 스미스 요원과 네오의 결투장면이 있는데, 이는 마그리트의 대표작 ‘골콘다’에서 아이디어를 갖고 온 것이다.

골콘다는 건물을 배경으로 중절모에 정장차림의 남자들이 같은 모습을 하고 둥둥 떠다닌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복제된 스미스 요원들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또 다른 환상의 세계라는 줄거리를 갖고 있는 영화 매트릭스는 마그리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래리 워쇼스키와 앤디 워쇼스키 감독은 밝힌 바 있다.

● 대중음악 속의 마크리트

대중음악 속에도 마그리트는 숨 쉬고 있다. 마그리트의 열렬한 팬이었던 비틀즈의 리더 폴 메카트니는 마그리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과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비틀즈의 창조적 음악 스타일을 나타내는 로고로 선정하고, 음반에 항상 사과를 대표 이미지로 쓴 것. 이후에는 ‘애플 레코드’라는 음반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상식의 틀을 깨는 마그리트의 예술적 도전은 언제나 새롭고 매혹적이다.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화법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그의 예술세계는 인간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기성과 현실의 경직된 질서를 정확하고 세밀한 이미지로 뒤집고 꼬집는다. 그리고 회화적 묘사를 통해 현실을 비평한다.

창의성에 목말라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 마그리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조금만 세상을 뒤집어 보자. 그러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것이니….”

장선화 서울경제 기자 indi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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