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가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만을 선택적으로 살상함으로서 적대국의 인종이나 민족 전체를 지구상에서 말살시킬 수도 있는 ‘유전자 무기(gene weapon)’를 개발 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형 홀로코스트를 재현할지도 모를 유전자 무기는 정말 존재할까.
현실화된 소설 속의 첨단 무기
‘영국인 분자생물학자 존 로 오닐 박사는 사랑스런 아내와 딸을 둔 행복한 가장이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폭탄 테러로 가족 모두를 잃게 된다.
슬픔에 빠져 있던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유전자 조작기술로 범인들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남녀의 유전자에 차이가 있음을 노려 오직 여성만을 공격해 살상하는 바이러스의 개발에 나선 것.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그들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오랜 연구 끝에 바이러스 개발에 성공한 그는 아일랜드, 영국, 리비아에 이를 살포한다. 각각 IRA를 지원한 죄, IRA를 탄압해 테러를 유발한 죄, 그리고 IRA 테러리스트를 훈련시킨 죄였다. 이들 3개국은 바이러스가 살포된 직후 수많은 여성들이 숨지면서 큰 혼란에 휩싸인다.’
이는 공상과학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의 1982년 작 ‘폐결핵(The White Plague)’의 줄거리다. 가상의 상황이기는 해도 이 소설은 특정한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만을 선택적으로 살상하는 일명 ‘유전자 무기(Gene Weapon)’가 등장한 역사상 최초의 문헌이다
그런데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이 소설이 최근 들어 세인들의 입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생명공학기술의 발달로 오닐 박사가 만든 것과 유사한 유전자 무기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가능한 이야기일까. 적어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학계에서도 인간게놈 프로젝트(HGP)를 통해 인간 유전체를 구성하는 30억 쌍의 DNA 염기서열이 해독된 이후 유전자 무기가 소설 속 상상의 산물이 아닌 현실성을 갖춘 무기로 점차 인식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gene therapy)에 쓰이는 유전자 조작 및 재조합 기술을 활용, 인체 내 특정 DNA를 공격하는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등 생화학적 유전자 무기 개발의 기술적 토대가 마련됐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일부 국가들의 경우 이미 비밀리에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상태다.
21세기형 홀로코스트
유전자 무기의 기본 메커니즘은 인체 내의 특정 유전자를 공격, 해당 유전자의 보유자를 살상하는 것이다.
즉 성별이나 눈·머리카락·피부의 색은 물론 인종, 신장, 비만 등 유전자의 차이로 발현되는 신체 특징을 가진 집단은 모두 목표가 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파란 눈의 여성 프랑스인, 비만형 남성 동양인 등 타깃을 정밀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생화학무기, 핵폭탄, 방사능 폭탄, 슈퍼폭탄 등 막강한 파괴력의 대량살상 무기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일견 유전자 무기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계는 유전자 무기가 핵폭탄을 능가하는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며 이의 출현에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왜일까.
영국의료학회의 웨인 나단슨 박사는 “일련의 연구 결과, 최근 각 민족이 지닌 고유한 유전자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이 점에서 유전자 무기는 자칫 21세기형 홀로코스트의 도구로 악용될 개연성이 있다는데 논란의 핵심이 있다”고 설명한다.
적대 세력의 제거, 자원 침탈, 지구촌 패권 장악 등 정치·군사·사회·경제적 목적을 위해 특정 인종이나 민족 전체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시키는 반인류적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설령 유전자 무기 보유자가 이 같은 목적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더라도 이들의 적대 세력이 체감하는 불안감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이 위험천만한 유전자 무기의 개발을 공식 천명한 나라는 없다. 하지만 많은 군사 및 유전학 전문가들은 미국, 이스라엘 등 몇몇 국가들을 의심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이들의 유전자 무기 개발 정황이 다수 포착된 탓이다.
일례로 지난 1998년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는 생화학무기 연구에 정통한 이스라엘의 한 연구소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아랍인의 DNA에만 작용하는 생물학적 유전자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 무기가 인간베타디펜신(HBD) 단백질을 이용해 아랍인 특유의 유전자를 공격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으며, 공기나 식수원에 살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기술은 흑인 차별정책을 펼쳤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연구되다가 극비리에 이스라엘로 넘겨진 것이며, 이에 대한 비밀 보고서가 미국 펜타곤에도 전달됐다고 전했다.
불안에 사로잡힌 아랍권과 러시아
미국의 경우에도 지난 2000년 신보수주의자인 네오콘들이 주축이 된 미국 신세기 프로젝트(PNAC)가 ‘미국 방위 재건(Rebuilding America's Defence)’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간의 특정 유전자형만을 공격하는 무기의 출현을 예고한 뒤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폴 월포위츠,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등 대표적 강경파들은 펜타곤에 유전자 무기 연구에 대해 심사숙고해 볼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디슨 유전자(The Edison Gene)’의 저자이자 정치평론가인 톰 하트먼은 “유전자 무기에 주목해온 네오콘이 정권을 잡은 뒤 비밀리에 기술개발에 나섰을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며 “러시아와 아랍권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불안감을 표명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5월 러시아는 갑자기 환자의 치료·진단과 같은 정상적 의료 목적을 제외한 자국민의 혈액, 머리카락 등 모든 생체 물질의 해외 반출 금지법을 제정했다. 법 제정의 목적에 대한 설명 없이 이루어진 조치였다. 이를 놓고 현지 언론들은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유전자 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발표가 있기 몇 주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S)의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모종의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 러시아로부터 생체물질을 제공받는 서방기관 중 일부가 유전자 무기 개발 시설로 보인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하버드대 보건대학원(HSPH), 미국국제보건연맹(AIHA), 미 법무부 산하 환경·자연자원국(ENRD), 스웨덴 카로린스카 의학연구소, 인도 게놈연구소 등 5개소를 FSS의 의심을 산 기관으로 지목했다.
또한 같은 해 10월에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미르 페이잘 장군이 한 군사무기 관련 국제세미나에서 “이스라엘과 공조한 미국이 유전자 무기 개발을 위해 자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국민들의 인간 유전자은행을 설립하려 한다”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군사적 활용의 가이드라인 필요
물론 이 모두는 글자그대로 정황 증거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 같은 무기의 개발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아랍권과 러시아도 구체적이고 신뢰성 있는 증거를 제시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유전자 무기는 로스웰 사건, 51구역, 하프(HAARP) 등과 같은 음모론의 소재일 뿐이며 아랍권과 러시아의 피해의식의 발로에 불과한 것일까.
미국의 유명 음모론 연구가인 제프 렌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음모론 소재들은 막연한 추정에 근거하지만 유전자 무기는 현실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민간우주여행선,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현실화될 기술적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하트먼 또한 “유전자 무기와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논점은 머지않은 미래에 유전자 무기 제조가 가능해진다는 것, 그리고 바로 이 때 인류는 홀로코스트의 악령과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유전자 기술의 윤리적 문제에 더해 군사적 활용과 관련해서도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노력을 시작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