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밀항자들은 바로 선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화물선에 채우는 물인 밸러스트 용수 속에 몸을 숨긴 외래 해양생물들이다. 화물선의 경우 화물을 가득 실었을 때 배의 일정 높이까지만 물에 잠기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화물을 싣지 않았거나 적게 실었을 때는 너무 높게 떠올라 중심을 잡기 어렵게 된다. 이 때 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 화물칸 바닥에 채우는 물이 바로 밸러스트 용수다.
중형급 화물선의 경우 화물을 싣지 않고 대양을 횡단하기 위해서는 약 4,000만ℓ(4만 톤)의 물을 채운다. 목적지에 도착해 화물을 선적하게 되면 화물칸 바닥에 있는 물을 펌프로 빼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출발지 항구에서 채웠던 물과 함께 파괴적인 밀항자들인 작은 해양 생물들이 도착지 항구의 바다 속으로 방류된다. 이 밸러스트 용수 속에서는 갤런당 1,000마리가 넘는 해양생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의 서식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해양생물들이 화물선 밀항을 통해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렇게 침입한 외래 해양생물은 그곳의 생태계를 파괴하게 된다. 윌리엄 칼리지의 해양생물학자 제임스 칼튼은 “최소로 추정해도 하루에 5,000종 이상의 해양생물들이 선박의 밸러스트 용수에 실려 다른 바다로 가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농업센터의 생명공학자인 도린 볼더는 밸러스트 용수 내에 있는 작은 해양생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극초단파 장치를 개발 중이다. 이 장치는 고구마를 저온 살균하는데 사용하는 극초단파 기술에 착안한 것으로 1,000ℓ 당 1달러 수준의 비용으로 밸러스트 용수 내의 해양생물을 제거할 수 있다. 물론 배 밑바닥을 긁어내고 살충제를 바르는 기존 방식보다 훨씬 단가가 싸다.
미국에는 이미 쌍각류 조개부터 각종 어류까지 다양한 외래 해양생물이 들어와 있다. 특히 지난 150년 동안 유입된 300종의 외래 해양생물은 샌프란시스코 만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체사피크 만에서는 수백만 마리의 일본산 달팽이들이 토종 갑각류를 먹어버렸다. 또 5대호에서는 북유럽의 가시물벼룩이 문제다. 긴 꼬리와 대량의 알이 낚시 줄에 달라붙어 줄이 엉키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육상과 해상으로 들어오는 외래 생물을 막는데 연간 10억 달러의 비용을 투자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백 종에 달하는 외래 생물들이 새로운 곳에 정착해 번성하고 있다.
극초단파 장치를 개발 중인 볼더는 추가적인 예산확보를 위해 국립해양대기청의 지원과 해안경비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볼더는 이 기술을 사용하면 선박회사들이 1년 내에 외래 해양생물의 이동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외래 해양생물 중 최악의 침입자
종류: 참게
침입경로: 한국과 중국 사이의 서해가 원산지로 1992년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만에 등장했다. 최근에는 미국 동해안에도 나타난다.
피해: 미국 토종 게의 먹이를 빼앗아 먹으며, 굴을 파고 서식하는 습관으로 인해 해안선 지반을 파괴한다.
종류: 얼룩말 홍합
침입경로: 원산지인 유럽에서 1998년 미국 5대호로 유입됐다.
피해: 토종 연체동물의 생활권을 파괴하고 단단한 곳에 달라붙어 서식하는 습성에 따라 각종 용수 파이프를 폐쇄시킨다. 이것을 청소하는데 연간 수 백 만 달러가 들어간다.
종류: 라운드 고비 피시
침입경로: 망둥어의 일종으로 1995년 유럽과 아시아의 컨테이너선에 실려 미국 5대호로 유입됐다.
피해: 상업적 활용도가 높은 어족 자원인 호수 송어의 알과 새끼를 먹어치운다.
종류: 유라시아 농어
침입경로: 1985년에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 슈피리어 호수로 왔다.
피해: 현재 세인트루이스 강에서 제일 흔한 고기인 이 유라시아 농어는 상품 가치가 높은 다른 어종들을 잡아먹고 산다.
극초단파로 외래 해양생물을 없애는 방법
1화물선에 화물을 적재하면서 밸러스트 컨테이너에 있는 밸러스트 용수와 그 속에 든 외래 해양생물을 펌프로 빼내 냉장고만한 크기의 20여개 극초단파 챔버로 보낸다.
2극초단파 빔이 초당 9억1,500만 번 진동하는 전자장을 만들어 물을 가열시킨다. 가열 원리는 이렇다. 물 분자 속의 전하는 전자장에 맞춰 정렬되지만 전자장이 빔의 진동수만큼 매우 빠르게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결국 전하는 매우 빠르게 회전하게 된다. 이 때 물속에서 대전된 나트륨과 염소 이온 역시 전자장과 방향을 맞추려고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빠른 움직임은 마찰열을 발생시키고 물은 섭씨 60°로 가열돼 물속에 있는 모든 생물체를 2분 내에 죽인다. 이는 식품속의 수분을 진동시켜 음식을 가열하는 전자레인지와 동일한 원리다.
3외래 해양생물을 죽인 후 가열된 물은 열교환기로 보내져 밸러스트 컨테이너에서 새로 들어오는 차가운 물을 예열시킨다. 이 과정에서 극초단파로 가열됐던 물은 열을 빼앗긴 뒤 해양으로 방출돼도 해가 없을 정도로 온도가 낮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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