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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물 폭파는 폭약 아닌 중력의 힘

최근 들어 폭약을 이용해 대형 건물을 해체시키는 구조물 해체공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구조물 해체공법의 핵심은 기둥, 보, 벽 같이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물을 파괴시켜 순식간에 건물을 주저앉히는 것이다. 폭약으로 지지물을 없애면 건물은 불균형 상태가 돼 자체 중력에 의해 넘어지면서 붕괴된다. 폭약이 아니라 중력으로 건물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구조물 해체공법이 등장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비용이다. 5층 이상의 건물은 기계적 방식으로 해체하는 것보다 구조물 해체공법을 쓰는 것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구조물 해체 공법에는 그 자리에 구조물을 주저 앉히는 단층붕괴공법, 일정한 방향으로 구조물 전체를 한꺼번에 쓰러뜨리는 전도공법, 그리고 원형 경기장처럼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붕괴시키는 내파공법 등이 있다.

“쾅~ 쾅~ 우르릉!”, “발파 성공!” 지난해 4월 18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강원도 영월 화력발전소가 구조물 해체공법으로 완전 해체됐다. 폭파 팀은 화력발전소 1, 2호기와 60m 굴뚝에 총 900곳의 구멍을 뚫어 1,090개의 다이너마이트(중량 200kg)를 장착했다. 앞쪽에 위치한 5층짜리 건물을 위에서 아래로 폭삭 주저앉힌 다음 굴뚝과 8층 건물을 5층 건물이 무너진 곳으로 기울여 쓰러뜨렸다. 건물이 수 초 내에 눈에서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구조물 해체공법 적용 늘어

최근 들어 이처럼 노후화된 대형 건물을 폭약을 이용해 해체시키는 구조물 해체공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처음 의도대로 폭파시키기란 쉽지 않다. 영월 화력발전소도 8층 건물 폭파 과정에서 폭약이 터지지 않아 2차 시도를 거친 후에야 해체에 성공했다. 어떻게 거대한 건물을 이처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을까. 구조물 해체공법의 핵심은 기둥, 보, 벽 같이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물을 파괴시켜 건물을 주저앉히는 것이다. 폭약으로 지지물을 없애면 건물은 불균형 상태가 돼 자체 중력에 의해 넘어지면서 붕괴된다. 즉 폭약이 아니라 중력으로 건물을 파괴하는 것.

구조물 해체공법은 준비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부서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실제 남산 외인 아파트의 경우 발파 준비부터 발파까지 40일이나 소요됐지만 순식간에 건물이 파괴됐다.

실제 사례를 들어 과정을 알아보자. 지난 1994년 11월 남산 외인 아파트의 해체 과정은 여러 가지 복잡한 단계를 거쳤다. 우선 건축 당시 설계도를 검토하면서 아파트 건축 구조를 파악하고 붕괴 공법을 선정해야 한다.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히는 ‘단층붕괴공법’과 일정한 방향으로 구조물 전체를 한꺼번에 쓰러뜨리는 ‘전도공법’, 원형 경기장처럼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붕괴시키는 ‘내파공법’ 등 4~5가지 방법이 있다. 남산 외인 아파트는 단층붕괴공법으로 해체됐다.

붕괴공법이 결정되면 주변 시설물의 안전성을 검토해야 한다. 주변 건물이 폭파 때 생기는 땅의 진동을 견뎌야 하고, 소음이 기준 요건을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공사의 진동 허용치인 초당 0.5cm가 남산 외인 아파트 해체에도 적용됐다. 또한 소음은 사람이 통증을 느끼는 140데시벨(dB) 이하로 책정됐다.

건물이 붕괴되면서 분진과 함께 튀어나오는 조각난 돌조각의 안전성도 검토해야 한다. 이 같은 허용치와 발파 공법, 폭약 위치 선택 등을 모두 고려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시한다.

내장재 제거 후 폭약 설치

여기서 아무 문제가 없으면 본격적으로 아파트 내장재 제거에 들어간다. 아파트 내의 배관재, 창호재, 천장재, 아스타일, 철재, 알루미늄 새시, 석면, 유리섬유 등 건물 내부의 폐자재를 모두 뜯어내고 건물 껍데기만 남긴다. 내장재가 모두 제거되면 건물의 기둥 곳곳에 3~4cm 지름의 구멍을 뚫고 폭약을 설치한다. 하지만 모든 층에 폭약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부분에만 설치한다.

16층 규모인 남산 외인 아파트 A동에는 1층, 2층, 6층, 10층, 14층에 폭약을 설치했다. 사전 설계에 의해 2,261개의 구멍을 뚫고 총 367kg의 폭약을 넣었다. 폭약의 양은 기둥 두께가 40cm일 때 70~90g, 60cm일 때 140~200g을 쓴다.



폭약은 동시에 터지는 것이 아니라 공법에 따라 순차적으로 터진다. 남산 외인 아파트 두개 동을 13개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이 0.5초 간격으로 터지도록 전기 뇌관을 설치했다. 폭약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폭파 시차를 잘 조절하면 소음과 진동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건물 주변에 방호막을 설치한다. 폭파되는 순간 발생하는 폭풍압이나 날아가는 돌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본격 발파 전에는 시험 발파로 성공 여부를 점검한다. 이어 버튼을 누르면 건물은 순식간에 파괴된다.

준비는 오래 걸리지만 부서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발파에 성공하면 곧바로 해체물을 잘게 부숴 재활용 자재를 반출한다. 남산 외인 아파트는 발파 준비부터 발파까지 40일이 소요됐으며, 발파 후 해체물을 잘게 부수고 반출하는데 130일이나 소요됐다. 이 같은 복잡한 단계를 거쳐 16층과 17층 2개동은 사라졌고, 멋진 남산 전경이 제 모습을 되찾게 됐다.

구조물 해체공법이 등장한 이유

이처럼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물 해체공법이 등장한 배경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구조물 해체공법이 경제적으로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계적 방식으로 구조물을 파괴하면서 철거할 경우 분진과 소음이 장기화된다. 장비 대여와 인건비를 계산하면 5층 이상의 건물은 직접 해체하는 것보다 구조물 해체공법을 쓰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

구조물 해체공법이 가장 먼저 실시된 곳은 미국이다. CDI(Controlled Demolition International)가 1947년 구조물 폭파작업에 처음으로 성공했으며 이후 영국, 스웨덴, 일본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 최근 중국에서는 연간 약 3,000동의 노후 건물에 대해 구조물 해체공법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한화가 서울에 위치한 3층짜리 군 시설을 구조물 해체공법으로 해체시킨 뒤 지난 2004년 말까지 총 40동의 건물에 적용됐다. 지난 2005년 우리나라의 구조물 해체시장 규모는 3억8,700만 달러로 미국의 35억8,300만 달러, 일본의 83억3,300만 달러, 영국의 12억1,300만 달러에 비해 상당히 작다.

하지만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잠재적 해체대상 건물이 2010년 이후 약 890만호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기준 1조5,000억 원의 구조물 해체시장이 2016년에는 5조8,000억 원, 2026년에는 11조8,000억 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망이 매우 밝다는 뜻이다.

반면 이 분야의 전문가는 국내에 거의 없다. 현재 국내 건물의 해체는 외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구조물 해체공법은 건축, 토목은 물론 폭약, 안전공학 등 다방면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글_ 서현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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