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공: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언젠가 필자는 지도교수의 방에서 무전기만한 휴대폰을 본 적이 있다. 바로 모토로라의 다이나텍(DynaTAC) 8000X 모델이다.
사실 세계 최초의 휴대폰은 다이나텍이다. 15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1983년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다이나텍은 무게가 약 1.3kg, 배터리는 10시간 충전해서 30분 정도 통화할 수 있었다. 가격도 무려 4,000달러에 달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모델은 다이나텍 8000X. 다이나텍의 후속 모델로 무게는 배터리를 포함해 771g이었고, 통화시간은 2시간 정도였다. 가격도 240만원 수준으로 그 당시 소형차 한 대 값이었다. 지금 보면 거의 골동품 수준이지만 당시 그것은 통신정책 전공자인 지도교수의 둘도 없는 학습 자료였던 셈이다.
다이나텍과 거의 동시에 나온 노키아의 모비라(Mobira)는 자동차 전용으로 분류된다. 크기가 라디오만 하고 무게도 너무 나가 이에 따른 압박으로 휴대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휴대폰을 휴대하기에는 버거운 시절이었다. 1980년대 말 속칭 삐삐(페이저)를 허리에 차고 다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휴대폰은 거의 혁명에 가깝다.
문화까지 바꾼 휴대폰
몇 년 전 네덜란드에서 학생들이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두 손을 핸들에 의지한 채 작은 키패드를 두드려 대며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요, 문화의 차이다.
휴대폰은 통화방식을 바꾸고 문화까지도 바꿨다. 문자메시지 이메일과 동영상을 보내고, 뉴스를 받아보며, 텔레비전·음악·사진·게임을 즐기는 세상이 됐다. 또한 은행 결제는 물론 휴대폰으로 대통령을 뽑고, 노동자를 위치 추적하며, 집회에 사람도 모은다.
휴대폰은 통신 수단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창출하는 도구로도 어필한다. 명품의 브랜드를 걸치면서 과시용으로 팔리기도 하는 것. 이처럼 휴대폰이 단지 통신 수단의 범위를 넘어 다양한 기능들이 덧붙여지고 콘텐츠가 개발되면서 기업들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 가고 있다.
이미 휴대폰은 붙박이 전화의 숫자를 추월한 지 오래다. 동네사람들이 이장 댁의 전화를 빌려 쓰던 시대가 불과 40~50년 전이다. 이젠 거의 수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디자인과 기능도 갈수록 세련되며, 크기와 무게 역시 경박단소화 하고 있다.
스타텍과 아이폰 2.0
휴대폰의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것은 1996년에 선보인 모토로라의 스타텍(StarTAC)일 것이다. 플립형으로 개발된 이 휴대폰은 이전까지 디자인을 소홀히 했던 업계의 관심을 돌리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2002년에 나온 블랙 베리폰은 이메일 기술과 엄지 키보드로 휴대폰의 기능을 크게 확대했다. 그리고 2007년 애플사가 선보인 아이폰은 터치스크린을 기본 입력 방식으로 채택하고, 매킨토시 운영시스템을 차용해 기능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게다가 애플이 막아 놓은 애플리케이션 제한을 불법 ‘탈옥(jailbreaking)’해 쓰면 그 기능성은 가히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조만간 아이폰 2.0이 3세대 모바일 기술을 탑재하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것이 오늘날 휴대폰의 진화 상황이다.
콘텐츠가 관건
휴대폰 기술이 어디로 갈 것인지, 그 기능이 다른 기술들과 어떻게 상호 소통할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가속이 붙을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속에 채워질 콘텐츠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하고 생활의 중심이 돼 가는 휴대폰은 현대인에게 텔레비전 이상의 위력을 지닌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인의 통신비 지출액이 몇 배나 많다고 한다. 기기 구입비가 주는 부담이 크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콘텐츠 이용에 따르는 부담 또한 상당할 것이다.
게다가 휴대폰의 콘텐츠가 상업적 방식으로만 굴러간다면 공익개념은 앞으로 실종될 수도 있다. 인터넷처럼 시민이 개입해 콘텐츠를 개발하고 응용해 무료로 교환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휴대폰 기술의 미래는 밝다. 응용 가능성도 무한하다. 하지만 내용이 부실하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지 못할 때 그 기술은 반쪽일 수밖에 없다.
글_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suk_lee@mail.utexas.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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