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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사이보그, 그리고 인간의 미래

로봇(Robot)은 힘든 일, 혹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의 힘든 일을 대신시키기 위해 나온 산물이라는 것.

인공두뇌학과 생체조직의 합성어인 사이보그(Cyborg) 역시 우주 같이 낮 설고 험한 곳을 자유로이 여행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존재 이유가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로봇과 사이보그의 지능이 높아지면서 인간에 대한 반란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SF 영화도 이어지고 있다. 과연 로봇과 사이보그, 그리고 인간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자료제공 : 한국산업기술재단


공상과학(SF)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했던 것들이 거의 그대로 현실화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봇이다.

로봇은 이제 SF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영역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의 조립, 용접 등 산업 현장에서 인간의 힘든 일을 대신하는 산업용 로봇은 이미 쓰인지가 오래됐다. 애완용 로봇과 청소 로봇 등 집안일을 돕는 가사 도우미 로봇들도 잇따라 실용화됐다.

이제는 우주 탐사, 심해의 작업, 원자력 발전소 등의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도 로봇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휴먼 로봇 등 각종 첨단 로봇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면 미래에는 SF 소설 및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 로봇의 어원과 아이작 아시모프

SF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로봇의 이미지는 대부분 친근하다. 하지만 로봇이라는 단어 자체는 그다지 좋은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게 아니다.

처음 로봇이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은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 그는 1921년 발표한 ‘로섬의 만능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이라는 희곡에서 처음 로봇이라는 말을 등장시켰다.

로봇(Robot)은 힘든 일, 혹은 강제노동이라는 의미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따온 말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산업용 로봇은 지금도 원래 의미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로봇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저명한 과학자이자 SF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 1920~1992)다. 그는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더불어 현대 SF계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또한 대중적인 과학 저널리스트, 저술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 전 세계인들의 찬사와 주목을 받았다.

그가 과학과 관련된 글을 쓴 것은 무척 방대하지만 특히 ‘로봇 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로봇에 대해서도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로봇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도 여럿 만들어졌는데, 몇 년 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1999), 아이 로봇(I, Robot, 2004) 등이 대표적이다.

아시모프는 1950년에 출간한 책에서 이른바 ‘로봇 헌장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로봇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지킬 경우 스스로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차 인간을 닮은 로봇들이 나와서 미래 사회에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게 됐을 경우 로봇의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이며, 로봇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선구적인 예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사이보그라는 개념은 1960년대 만프레드 클라인즈와 나단 클라인이 고안한 것이다. 이들은 장래에 우주 같이 낯설고 험한 곳을 자유로이 여행하려면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얘기한다.


■ 바이센테니얼 맨과 아이 로봇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바이센테니얼 맨의 처음 장면을 보면 로봇이 자신을 구입한 주인 가족에게 로봇 헌장 3대 원칙을 영상과 함께 알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바이센테니얼 맨의 로봇 앤드류는 인간의 감성을 깨닫고 이해하면서 보다 인간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원작과 영화에서는 내용에 조금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는 법정 투쟁을 통해 자유로운 인간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인간과 로봇 간의 사랑에 주력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 로봇 앤드류는 200년을 사는 만큼 애틋한 감정을 품었던 주인집 작은 딸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손녀와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는 사랑하던 사람들을 자꾸 먼저 떠나보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자신도 죽음을 택한다.

이처럼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이야기는 바로 뒤에 선보인 영화 에이 아이 (A.I. Artificial Intelligence, 2001)에서도 나온다.

고인이 된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구상했던 유작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완성했다 고 해서 화제가 됐던 에이 아이에서는 감정을 지닌 소년 로봇 데이비드가 주인공이다.
데이비드는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둔 부부의 집안에 입양된다. 하지만 아들의 병이 나은 후에는 매정하게 버려져 엄마를 찾아 헤맨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데이비드는 나무 조각 인형으로부터 사람이 된 피노키오를 떠올리며 진짜 인간이 돼 엄마의 사랑을 되찾으려고 하는 등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감성을 애절하게 그렸다. 하지만 피노키오 동화가 너무 원용된 것 등에 대해서는 평단의 비판이 일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개봉된 아이 로봇은 같은 제목의 아시모프 단편소설 시리즈 중 하나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센테니얼 맨이나 에이 아이와는 달리 로봇의 애틋한 감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로봇의 반란을 그리고 있다.

■ 인간과 기계의 결합, 사이보그



로봇과 관련된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가 바로 사이보그(Cyborg)다. 사이보그란 인공두뇌학(Cybernetics)과 생체조직(Organism)의 합성어로서 인간의 조직이나 장기를 기계 및 전자장치 등으로 바꾼 개조인간을 뜻한다.

사이보그라는 개념은 1960년대 만프레드 클라인즈와 나단 클라인이 고안한 것이다. 이들은 장래에 우주 같이 낯설고 험한 곳을 자유로이 여행하려면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얘기한다.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중장년층이 청소년 시절에 열광했던 TV 시리즈 소머즈나 600만 불의 사나이에 나오는 주인공들 역시 사이보그다. 사고로 팔다리와 시력, 그리고 청력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인공 눈과 귀, 그리고 팔다리를 만들어줘서 초인적인 힘과 능력을 지닌 특수요원으로 활약하게 한다는 이야기다.

폴 버호벤이 첫 편을 감독하고 이후 여러 후속 편이 나왔던 영화 로보캅(Robo Cop, 1987) 역시 사이보그 주인공의 활약상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흉포한 범인들의 습격으로 온몸에 치명상을 입고 뇌사 상태에 빠진 한 유능한 경찰관을 티타늄으로 된 신체 등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사이보그 경찰로 변신시켜 범죄 집단을 통쾌하게 무찌른다는 것이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단순하고 식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개봉 당시만 해도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수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이 작품은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이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지사가 된 근육질의 스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을 맡았던 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에서도 주인공은 사이보그다.

인간이 기계와 컴퓨터의 지배를 받는 미래 세상으로부터 인간 저항군의 중심인물을 처단, 혹은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 세계로 급파되는 터미네이터는 임무 수행에 적절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제작된 강력한 사이보그 신체를 지니고 있다.

터미네이터 1편에서는 서로의 임무 수행을 위해 인간과 사이보그가 대결하지만 2편부터는 중요인물의 보호, 혹은 살해를 놓고 사이보그끼리 대결하는 구도로 바뀐다.
지금껏 3편이 나온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에서 두 번째 편, 즉 터미네이터 2-심판의 날 (Terminator 2-Judgment Day, 1991)이 SF나 과학기술 묘사 측면에서 가장 볼만하고 흥미 있다고 생각된다.

■ 로봇과 사이보그, 그리고 인간의 관계

로봇과 사이보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해볼 요소들이 많다. 첫 번째는 머지않은 미래에 기계의 반란으로 인류가 핵 폭발의 참화를 입고 파멸하는 수순을 밟는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관한 것이다.

미래는 과연 예정돼 있는 것인지, 인간의 의지로서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고뇌와 논란 등이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토론되고 심사숙고된다. 예를 들면 인간의 뇌를 닮은 혁신적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기술자에 대한 대응 태도 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기계와 로봇, 컴퓨터가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언급했던 로봇 용어의 원조인 차페크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어느 과학자가 인간의 힘든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 로봇을 만들었는데, 인간에게 절대 복종하리라고 기대했던 로봇이 도리어 어려운 일을 싫어하고 인간에게 반항하다가 결국은 인간을 죽이고 세계를 지배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앞서 거론한 아이 로봇 역시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른바 로봇 헌장 3대 원칙을 어기고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로봇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래에 인간보다 나은 로봇이 출현할 수 있느냐, 혹은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어떤 일이 벌이질 것인가에 대한 우려 등은 로봇이라는 말이 생길 때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숱한 SF 소설, 영화의 주제가 되고 있다.

세 번째는 사이보그의 모습과 기능에 관한 것이다. 터미네이터 2편의 경우 1편과는 반대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인간 편의 수호천사로 분한 사이보그 T101로 나온다. 하지만 이는 생체와 기계조직이 결합된 고전적인 사이보그다. 구형 모델이다 보니 아무래도 상대방보다 힘이 부친다.

반면 기계와 컴퓨터 편에서 인간 저항군의 핵심인물을 처단하려고 파견된 T1000은 온몸이 액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자유자재로 변신을 거듭할 수 있다. 즉 첨단의 신형 사이보그로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

액체 금속으로 만들어져 거의 불멸불사(不滅不死)에 가까운 이 사이보그는 약간 황당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도 주지만 이른바 형상기억 합금을 발전시킨 미래 과학기술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계인 사이보그가 인간의 감성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인간 편의 사이보그 역시 임무수행을 위해서라면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고, 인간들이 왜 우는지 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의 맨 마지막에서 미래의 재앙 원인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용광로에 몸을 던지는 터미네이터가 슬피 우는 사람들에게 ‘이제야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겠다’고 말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나온다.

이는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이른바 밈(Meme)에 의해 인간성을 체득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밈이란 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비(非) 유전적 문화 요소 또는 문화의 전달 단위로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소개된 용어다.

로봇과 사이보그가 앞으로의 영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자못 궁금하고 기대된다.

글_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협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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