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전 세계는 해파리 떼의 습격으로 몸살을 앓았다. 우리나라의 서ㆍ남해안은 물론 미국 동부의 롱아일랜드, 지중해의 스페인, 그리고 남반구의 호주에 이르기까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해파리가 출현한 것.
해파리는 성가신 존재이긴 하지만 사람에게는 별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망 사고까지 보고될 정도로 독성을 가진 해파리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해파리 떼의 출몰은 지구온난화, 물고기 남획, 그리고 환경오염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만일 해파리 급증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지 않을 경우 관광과 어업 등의 산업 활동은 물론 해양 생태계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구촌, 해파리로 몸살
우리나라의 대표적 피서지 가운데 하나인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올 여름 1,000여명이 해파리에 쏘여 치료를 받았다. 남해에서는 어부들이 그물에 끌어 올라오는 해파리 때문에 출어를 포기할 지경이다. 해파리 떼의 급습인 셈이다.
사실 해파리 떼의 출몰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해변에서는 불과 하루 동안 300명이 해파리에 쏘였고, 이 중 11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피해가 극심해지자 바르셀로나 시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해파리 퇴치작전을 벌이고 있다. 현지 관리들은 아직도 해파리와 전쟁을 치르느라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해파리 주의보를 발령하기까지 했다. 수백만 마리의 해파리 떼가 해류를 따라 이탈리아 해안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한 환경부 산하 해양환경보호연구소가 부근지역 주민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당부한 것. 해양환경보호연구소의 실비오 그레코 소장은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에서 해파리 떼가 확인되고 있지만 속수무책인 상황”이라면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더욱 심각한 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얼마 전 필리핀의 세계적 휴양지 세부에서는 올해로 40살을 맞은 한 어부가 해파리에 쏘여 사망하기까지 했다. 몸에 퍼진 해파리 독이 심장 쇼크를 일으켜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는 지난해 3만 명 이상이 해파리에 쏘여 병원 치료를 받았다. 특히 치명적인 독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루칸드지 해파리가 호주 북부의 온수지대를 따라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호주의 대보초 해변, 미국의 와이키키와 버지니아 해변이 해파리로 인해 폐쇄되기도 했다.
해파리의 가공할 독성
해파리는 지구 탄생 초기부터 대양을 떠다니던 고대 생물이다. 몸의 90%이상이 수분으로 이뤄져 있는 해파리는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 중 하나다.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 해파리를 볼 수 있다. 해파리는 원시적인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어 음식을 먹고 배설하는 구멍이 하나다. 주식은 플랑크톤이며 참치나 상어, 거북이 등이 이들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해파리는 아직도 많은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간단한 생명체이지만 이들의 번식과정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해파리의 알들은 바다 바닥에 붙게 되고, 폴립으로 성장한다. 폴립이란 자포동물 성장 단계의 하나로 원통 모양을 하고 있는데, 물속을 떠다니다가 성체로 자라난다.
운동기관이 발달하지 않은 해파리는 물에 떠다니다가 사람의 신체처럼 따뜻한 물체와 부딪치면 촉수에서 보관하던 독액을 자동적으로 뿜어낸다. 실처럼 가늘고 덩굴손처럼 생긴 촉수는 1m 정도까지 뻗어있다.
인체에 피해를 주는 해파리는 현재 10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파리에 쏘일 경우 다양한 증세를 보이는데, 피부 가려움증처럼 비교적 가벼운 것에서부터 심혈관 이상, 호흡 이상 등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경우도 있다.
하와이 주변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블루보틀이나 자이언트 박스 같은 해파리에 접촉할 경우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지중해에 많은 펠라지아 녹티클라는 사람의 체질이나 접촉 정도에 따라 몇 주에서 몇 달, 심지어 1년 넘게 통증이 지속되기도 한다.
해파리와 지중해의 미래
최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해파리와 격전을 치르고 있다. 관리들은 아침마다 해파리 떼가 몰려있는 바다로 나가 바람과 해류를 점검하고, 해변이 해파리 떼의 위협을 받게 될지 조사한다. 이를 통해 해변 폐쇄 조치를 내릴지, 아니면 해변 가까운 곳에서 해파리를 잡아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과거에는 해파리 문제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몇 년에 한 번씩 찾아 왔고, 그것도 며칠 만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 관리들의 고민거리가 됐으며, 매일같이 석간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국립해양과학연구소에서 20년 넘게 해파리를 연구해 온 조셉 마리아 길리 박사는 “최근 몇 년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지중해에 얼마나 많은 해파리가 살고 있는지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속의 해파리는 투명해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해파리가 바람이나 파도에 밀려 해변으로 떠밀려 왔을 때에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지중해에서 해파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지중해에서 해파리 문제가 특히 심각한 것은 어부들이 물고기의 크기에 관계없이 닥치는 대로 잡았기 때문이다. 해파리에게 있어 물고기 수의 감소는 먹이인 플랑크톤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가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포식자인 물고기가 줄어들자 해파리가 활개를 치게 된 것.
게다가 해파리를 식탁에 올리는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지역과는 달리 유럽인들에게 해파리는 경제적인 가치는 물론 식용 재료로서의 가치도 없다.
지중해는 10개가 넘는 나라가 접해 있으며, 경제 활동과 레저 활동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만일 적절한 대책이 취해지지 않는다면 바닷가는 여름철마다 해파리 떼가 점령하는 암울한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해파리와 지구온난화
이처럼 전 세계적인 해파리 급증은 골칫거리와 함께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과학자들은 좀 더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전 세계 바다의 건강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
미국의 국립과학재단(NSF)은 “지구온난화와 물고기 남획 등 인간이 야기한 스트레스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와 어족자원이 풍부했던 어장에서 해파리의 초과 번식을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NSF는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올 가을 발표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호주 해안과 함께 멕시코 만, 하와이, 흑해, 나미비아, 지중해, 한국의 동해, 그리고 양자강 하구가 문제 지역으로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해파리의 개체 수 증가와 지구온난화가 연관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축적된 데이터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또한 특정지역을 놓고 볼 때 해파리 떼 발생은 해마다 들쭉날쭉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해파리의 생태에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고 과학자들은 확신하고 있다.
워싱턴 대학의 제니퍼 퍼셀 박사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바닷물의 수온 상승과 건조한 기후가 해파리의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면서 “실제 대부분의 해파리는 따뜻한 물에서 빠른 속도로 증식한다”고 말했다. 해양 생물학자인 맥스 잰슨 박사 역시 바닷물의 수온 상승이 많은 해파리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지구온난화로 온대 지역의 강수량이 줄어든 것 또한 해파리가 해변으로 접근하기 용이하게 만든 원인으로 지적된다. 길리 박사는 “비가 내릴 경우 육지와 가까운 바다의 염분 농도가 약간 낮아지게 된다”면서 “낮은 염분은 해파리가 해변으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천연장벽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해양학자인 아서 우스터반 박사 역시 지중해의 수온 상승으로 비가 적게 내렸고, 이로 인해 염분 농도가 점점 올라간 것이 해파리 증식에 영향을 줬다고 보고 있다. 염분 상승은 해파리가 살아가는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푸플랑크톤 감소와 환경오염
우스터반 박사는 해파리의 폭발적인 증가 원인이 먹이, 구체적으로는 플랑크톤에 있다고 분석한다. 즉 남획으로 먹이 경쟁자인 물고기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해파리에게 많은 플랑크톤이 돌아가게 됐다는 것.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어획량을 획기적으로 제한하는 것만이 해마다 반복되는 해파리 떼의 습격을 근본적으로 막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스터반 박사는 “지중해 국가들이 그물을 이용해 해파리를 제거하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라며 “결국은 시간 낭비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오염 또한 물속의 산소 농도를 낮추고 바닷물을 탁하게 만들어 해파리에게 이롭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들은 산소가 적은 물을 꺼리 거나 죽게 되지만 해파리들은 낮은 산소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퍼셀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물고기들은 먹이를 잡기 위해 시력을 이용하지만 해파리들은 촉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두워도 포식 활동이 가능하다.
잰슨 박사 역시 연안 오염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자양분이 제공돼 해파리 번식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다만 우스터반 박사는 환경오염이 해파리 급증의 원인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지중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였다. 그리고 몇몇 지역은 특별히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그 같은 이유로 해파리가 급증하게 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해파리 떼의 습격은 지구온난화, 물고기 남획, 그리고 환경오염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병도 서울경제 기자 d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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