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총괄했던 과학기술부가 폐지되고, 교육부과 합쳐져 교육과학기술부가 탄생했다. 하지만 교육과 과학기술 부처의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과학기술 부문의 추동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파퓰러사이언스의 진단이다.
과거 과학기술부 산하에는 26개의 대표적인 이공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있었다. 지금 13개 연구기관은 기초과학을 다룬다는 이유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에, 나머지 13개 기관은 돈 버는 기술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지식경제부 산하에 편재돼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 온 연구기관들은 이처럼 뿔뿔이 흩어져 주무부처의 변방에 머물고 있다. 파퓰러사이언스는 이처럼 위기국면에 처한 연구기관들의 확실한 자리매김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을 가다’라는 시리즈를 신설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을 이끌어가는 연구기관의 연구 목표, 전략, 활동, 그리고 성과를 알려 과학기술 입국의 꿈과 취지를 되살리고자 한다. - 편집자 註
■ 지구에서 우주를 보다
우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우주선을 타고 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머나먼 우주로 나가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함께 우주공학에 대한 다양한 연구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구에서 우주를 보는 것이다. 이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거나 우주비행사를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도 반드시 요구되는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보유한 최대 크기의 천체 망원경은 보현산 천문대의 1.8m급 광학망원경이 전부다. 이는 세계 50위 수준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되고 있는 천체 망원경, 그 중에서도 광학망원경은 대부분 거울을 이용한 반사망원경이다. 일반적인 망원경처럼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를 이용해 직접 우주를 관측하는 것보다 정밀한 오목거울을 이용해 반사되는 우주의 모습을 관측하는 게 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천체 망원경의 크기를 나타내는 기준은 바로 이 거울의 직경이다. 보현산 천문대의 1.8m급 광학망원경은 거울의 직경이 1.8m라는 의미인 것이다. 현재 선진국들이 보유한 광학망원경은 대부분 8~10m급인데, 이는 단일 거울 또는 여러 개를 조합한 거울의 크기가 8~10m에 달한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거울의 지름이 2배 크면, 면적은 4배나 크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보현산 천문대의 광학망원경이 선진국의 광학망원경에 비해 얼마나 작고 낙후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최근 이 같은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해 초대형 프로젝트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바로 거대 광학망원경 개발 프로젝트다.
현재 선진국들은 25~42m급 거대 광학망원경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급증하는 투자비용으로 국제공동사업을 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0m급 이하는 단일국가 단독으로 제작이 가능하지만 거대 광학망원경으로 분류되는 25m급 이상은 제작비용이 1조원에 육박하기 때문에 단독 추진이 어렵다.
사진설명 : 한국천문연구원은 천체 관측 임무 뿐만 아니라 우주감시체계 구축과 과학기술 3호 위성용 탑재체 개발도 추진중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25m급 거대 광학망원경을 제작하는 GMT(Giant Magellan Telescope) 프로젝트. 오는 2009년부터 10년간 총 950억 원의 자금을 투자해 이 프로젝트의 지분 10%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GMT 프로젝트에는 현재 미국 카네기 천문대를 중심으로 스미소니언 천문대, 하버드 대학, 애리조나 대학, 텍사스 오스틴 대학, 그리고 호주 국립대 등이 참여하고 있다.
25m급 거대 광학망원경은 보현산 천문대의 광학망원경과 비교해 약 200배의 성능을 가진다. 또한 지구 궤도를 돌며 수많은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보다도 약 10배 이상의 성능으로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GMT 프로젝트의 지분 10%를 확보하게 되면 총 사용일수의 10%인 연간 30일이나 단독으로 거대 광학망원경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30일간의 사용일수 중 일부를 임대해 주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선진국이 추진 중인 거대 광학망원경 프로젝트는 GMT와 함께 30m급인 TMT(Thirty Meter Telescope), 그리고 42m급인 E-ELT(European Extremely Large Telescope) 등 모두 3개다.
이중 TMT는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이미 참여 국가들이 결정된 상태다. E-ELT 역시 유럽천문대를 중심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11개국이 참여하고 있어 우리나라가 참여할 여지는 없는 상태다.
GMT의 경우 단일 거울로는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8.4m급 거울 7장을 원형으로 배열하는 방식이다. 반면 TMT는 이보다 작은 초소형 육각형 거울 492개를 둥근 거울처럼 배열하며, E-ELT 역시 폭 1.45m의 육각형 거울 906개를 배열하는 방식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사활을 걸고 GMT 프로젝트 참여를 추진하는 것은 거대 광학망원경을 보유함으로써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천문 관측체제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천문연구원은 지난 2001년부터 추진해온 KVN(Korean VLBI Network) 사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돼 GMT와 함께 가동되면 선진국 수준의 전파망원경 및 광학망원경 관측체제가 구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0년 본격 가동에 들어갈 KVN은 서울의 연세 대학교와 울산, 제주 등 3곳에 대형 전파망원경을 설치하고, 이들 3곳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울산·제주를 원형으로 연결한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전파망원경을 운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실 한국천문연구원이 천체 관측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감시체계 구축 및 과학기술 3호 위성의 탑재체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우주감시체계는 지구를 위협하는 각종 우주적 요인들에 대한 감시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지구 전자·전파시설의 오작동을 초래할 수 있는 태양풍 예보는 물론 소행성 충돌 가능성, 그리고 언제라도 지구로 추락할 위험성이 있는 인공위성 감시 등이 주요 목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인공위성의 자력 발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의 로켓이나 인공위성이 우주 궤도의 다른 인공위성이나 폐기된 채 우주를 떠도는 각종 우주 쓰레기에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상태다.
우주감시체계는 우리나라 영공을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각종 첩보위성을 감시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는 국방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은 공군과의 협력을 통해 이 같은 우주감시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천문연구원은 그동안 개발해 온 적외선망원경을 축소해 인공위성에 탑재할 수 있도록 하는 과학기술 3호 위성용 탑재체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 3호 위성용 탑재체는 허블 우주망원경처럼 지구 궤도상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특히 인공위성에 탑재되는 적외선망원경을 지구 방향으로 바꿔 놓으면 야간에도 지구를 감시할 수 있는 첩보위성과 같아지게 된다.
이처럼 한국천문연구원은 조용히 별만 관측하는 연구기관이 아니다. 우주의 탄생 원리와 비밀을 풀어가고, 필요하다면 첩보위성을 감시할 수 있으며, 인공위성에 적외선망원경을 탑재하는 최첨단 연구기관인 것이다.
강재윤 기자 hama9806@sed.co.kr
Q 천문학이 국격(國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A 천문학이 발달한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입니다. 후진국이 천문학에 투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이는 서양의 역사에서도 확인됩니다. 천문학이 발달한 국가는 모두 선진국이 됐으며, 천문학의 발견은 그 시대의 사상을 좌우하기도 했습니다.
동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매년 겨울 중국에 사신을 파견, 중국 황제로부터 받아온 것이 바로 ‘책력’입니다. 책력은 지금의 달력과 유사하지만 여기에는 절기, 기후, 천문현상 등이 모두 기록돼 있습니다.
바로 하늘의 뜻을 받은 황제만이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중국과 대등한 관계였던 고구려는 독자적인 천문 기록을 가졌으며, 조선 세종대에 독자적인 천문 연구를 한 것도 중국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문학의 발달 정도가 바로 국격(國格)인 셈입니다.
Q 우리나라의 천문학 수준은 어느 정도 입니까?
A KVN 사업이 마무리돼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전파천문학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서게 됩니다. 하지만 광학망원경을 이용한 천문학 수준은 매우 낙후된 상태입니다. 일단 우주를 볼 수 있는 대형 광학망원경도 없는 상태에서 천문학 수준을 논하기는 어려운 문제죠.
다른 나라에서 발표된 논문이나 연구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광학망원경의 크기가 우리나라 천문학 수준을 모두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보현산 천문대의 1.8m급 광학망원경은 세계 50위 수준에 불과합니다. 선진국은 이미 이 정도 크기의 광학망원경을 60년 전에 보유했었습니다.
Q GMT 프로젝트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A 미국과 호주 등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GMT 프로젝트는 25m급 거대 광학망원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GMT 외에도 TMT, E-ELT 등 3개 거대 광학망원경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앞으로 20년 내에는 이 정도의 거대 광학망원경 사업이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GMT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20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얘기죠. 하지만 20년 후에는 거대 광학망원경을 이용한 천문학적 발견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우리는 낙오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이보다 작은 8~10m급 대형 광학망원경을 독자적으로 보유한다고 해도 세계 천문학계를 놀라게 할 천문학적 발견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Q GMT가 칠레에 설치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는데.
A 이는 천문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지적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계절풍 지대는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 매우 적고, 계절에 따라 습도가 높기 때문에 천문대를 설치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건조한 사막지대나 고원지대가 최적지라는 얘기죠. 그렇기 때문에 현재 8~10m급 대형 광학망원경은 모두 하와이와 안데스 산맥에 위치해 있습니다.
특히 하와이의 경우는 각 산봉우리마다 천문대 단지가 있어 더 이상 들어설 자리도 없는 실정입니다.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거대 광학망원경이라면 1년 내내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설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Q 최근 공군과 협력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A 우주감시체계 구축과 관련된 분야입니다. 최근 공군도 우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향후 항공우주군 개념을 도입하고 우주병과도 신설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상공을 지나다니는 첩보위성에 대한 감시체계 구축이 필요하고, 이 문제가 한국천문연구원의 소행성 및 인공위성 감시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상호협력을 진행 중입니다.
Q 밴드 활동도 열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A 천문학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가까운 동료들과 밴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블랙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블랙홀 박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래서 ‘블랙홀 박사와 프렌즈’라는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천문 관련 행사뿐 아니라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는 위문공연, 그리고 대전 꿈돌이와 관련된 행사에서도 가끔 연주를 했습니다.
Q 대전 꿈돌이 행사란?
A 지역적인 주제이기는 하지만 대전 엑스포의 마스코트인 꿈돌이가 사람들의 무관심속에서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 꿈돌이를 되살려 대전과 대덕의 마스코트로 활용하고, 정부출연연구소가 밀집된 대덕지역을 국내 과학을 대표하는 테마파크처럼 만들자는 계획의 일환으로 전개하고 있는 게 대전 꿈돌이 행사입니다.
[interview]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 1957년생으로 대전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천문학을 전공했다. 1987년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거대 블랙홀 연구로 천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2년 국립천문대(현 한국천문연구원 전신) 선임연구원으로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책임연구원을 거쳐 지난 2005년 한국천문연구원장에 취임했다. 3년 임기를 마친 후 재공모를 통해 지난 5월 연임이 결정됐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천문학 발전과 관계된 일이라면 어떤 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나서는 부지런함으로 유명하다. 천문학은 한 나라의 국격(國格)이라고 말하는 그는 거대 광학망원경 확보를 위한 GMT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담=정구영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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