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구의 핵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구 내핵은 온도가 4,400℃에 달하는 금속 액체로 이루어진 두께 1,600km의 외핵이 감싸고 있어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끄떡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열 에너지 시스템은 지구의 핵이 아니라 지각에서 열을 뽑아서 활용한다. 지각은 지구 표면을 감싸고 있는 30km 두께의 바위 층으로 이곳에 있는 고온의 지하수나 열 암(hot rock) 사이를 순환하는 물로부터 열을 빌린다.
지열 발전소의 경우에도 이 같은 지각의 뜨거운 물에서 발생하는 고온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는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전 세계의 지열 에너지 발전 규모는 70억~100억 와트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인류가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0.05%에 불과하며, 지구 자체가 생산하는 44조 와트의 에너지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조차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열 에너지를 많이 활용한다고 지구의 핵이 식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특히 핵의 열은 방사성 원소의 붕괴를 통해 사실상 끊임없이 새로 생성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자연과학과 교수인 폴 리처드 박사는 “지각에서 지열 에너지를 아무리 많이 뽑아 써도 지구의 핵은 식지 않는다”며 “이는 5대호에 얼음조각을 몇 개 빠뜨린다고 호수가 얼어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라고 설명한다.
어쨌든 사람의 힘으로 지구의 내핵이나 외핵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은 꽤 반가운 사실이다. 액체 금속물질이 회전하고 있는 외핵은 지구의 자기장을 생성시켜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해 주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만일 외핵이 정말로 열기를 빼앗겨 식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액체 상태이던 금속이 굳으면서 고체인 내핵과 마찰을 일으켜 종국에는 외핵 전체가 회전력을 잃고 멈춰 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구에 자기장이 사라져 엄청난 에너지를 내포한 우주 방사선들이 지표면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면 지구는 마치 전자레인지 속에 들어있는 음식물과 같은 상태로 변해 그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는 황무지 행성으로 변할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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