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곤충과 동물, 그리고 이타성의 진화

관상용으로 널리 사육되는 송사리 과(科)의 구피는 무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정찰에 나선다. 흡혈박쥐는 다른 흡혈박쥐를 살리기 위해 피를 토해 나눠준다. 그리고 꿀벌은 침입자를 막기 위해 침을 쏘고 죽는다. 이는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종의 이타성이다. 사람만이 이타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타성은 꿀벌이나 개미 같이 고도로 진화된 사회적 곤충(Social Insect)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들의 이타성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 이타성의 바탕, 혈연선택

찰스 다윈은 곤충이나 동물의 이타적인 행동을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예외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자연선택이란 동종의 개체 사이에 일어나는 생존경쟁에서 환경에 적응한 개체가 생존, 자손을 남기게 된다는 이론이다.

일례로 기린을 보자. 키가 큰 기린은 높은 나무에 달린 많은 나뭇잎을 먹어 영양상태가 좋아지고, 이에 따라 좀 더 매력적인 개체가 된다. 매력적인 기린은 생식도 활발해서 더 많은 번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키가 작은 기린은 나뭇잎을 많이 따먹지 못해 영양이 부족해지고, 도태 된다. 결국 키가 큰 기린만이 남게 되는 것.

하지만 이 같은 자연선택 이론과 다른 이론도 있다. 바로 혈연선택(Kin Selection) 이론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개체들은 구성원들이 공유한 유전자를 영속시키기 위해 동료에게 이타적 혜택을 베푼다는 것.

혈연선택 이론은 꿀벌이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1964년 영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에 의해 도입됐다. 군집 생활을 하는 곤충이 자신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것은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기회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하지만 혈연선택 이론 역시 지난 2005년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사회생물학의 기초를 세우면서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사회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슨 교수는 사회적 곤충이나 동물은 개체 간 연관성이 낮다고 주장한 것. 그는 “개체들은 독자적으로 생활할 때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면서 “곤충이나 동물의 이타성은 단독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호주 시드니 대학의 허그 박사는 해밀턴과 윌슨의 이론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 조사했다. 방법은 꿀벌, 말벌, 그리고 개미의 개체 간 연관성 여부.

허그 박사는 DNA 지문인식기술과 통계적 기법을 사용해 1억 년 전 이들의 암컷 조상이 일부일처(monogamy) 곤충이었는지, 아니면 일처다부(pologamy) 곤충이었는지 알아보았다.

만약 이들의 암컷 조상이 하나의 수컷과 교미하는 일부일처 곤충이었다면 집단 내 개체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해밀턴의 이론이 옳다는 얘기가 된다. 반면 여러 수컷과 교미하는 일처다부 곤충이라면 윌슨의 이론이 맞게 된다.

연구결과 이들의 암컷 조상은 모두 일부일처 곤충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허그 박사는 “이번 연구로 혈연선택이 사회적 곤충이나 동물이 진화하는데 바탕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최초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 사회성은 유전의 결과

일반적으로 곤충이나 동물이 사회성을 갖게 된 것은 먹이나 영역, 그리고 종족 번식을 둘러싼 경쟁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돼 왔다. 하지만 이는 성장한 곤충이나 동물에게는 들어맞을 수 있지만 어린 곤충이나 동물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

이처럼 곤충이나 동물이 가진 사회성이 본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유전자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나왔다. 실제 최근 들어 유전자가 곤충이나 동물의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쏟아지고 있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에서 수행한 실험은 이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 실험에서는 정반대의 사회성을 가진 두 종류의 쥐를 한 곳에서 지내도록 했다. 하나는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하는 혈통의 쥐,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쥐였다. 특히 이 실험에서는 이제 막 젖을 뗀 새끼들이 이용됐다.

실험결과 혈통이 다른 쥐들은 사회적 성향에서 본질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에 참여한 게릿 라비스 교수는 “다른 쥐와 떼 지어 사는 것을 좋아하는 혈통에서 태어난 쥐는 다른 쥐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며 “그것이 바로 핵심”이라고 말했다. 사교성이 좋은 혈통에서 태어난 쥐는 다른 쥐와 어울리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이 쥐는 상대방 쥐를 찾는데 활동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다른 쥐와 마주칠 확률이 높은 곳을 주로 찾아가는 반면 혼자 떨어져 있던 경험이 있는 장소는 기피했다는 것. 결국 이 실험에서는 쥐들의 사회성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물론 어린 쥐들이 성장해 번식능력을 갖추게 될 쯤에는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고 성(性)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끼 쥐의 사회성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번 연구결과는 인간의 사회성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울증이나 편집증, 자폐증을 치료하는 약물 개발에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사회성을 뛰어넘는 이타성

쥐들은 단순히 어울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호혜적 이타성(reciprocal altruism)을 갖고 있다는 것도 클라우디아 루트와 마이클 타보스키의 실험으로 확인됐다. 과거 다른 쥐로부터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 쥐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쥐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쥐를 도우려 한다는 것.

이 실험에서는 쥐가 먹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다른 쥐가 막대기를 당겨주는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했다. 그리고 과거에 도움을 받았던 쥐와 도움을 받지 않았던 쥐의 두 개 집단으로 나누었다. 실험결과 과거에 도움을 받았던 쥐는 다른 쥐가 먹이를 얻는데 도움을 주는 경향이 강했다. 다른 동물들이 친척이 아닌 다른 개체와 협력하게 된 것도 이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이뤄진 진화의 결과로 추측된다.

‘나를 도우면 너를 돕겠다’는 식의 직접 호혜주의(direct reciprocity)가 있다는 것은 오래 전 발견됐지만 사람 이외의 동물에서 호혜적 이타성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동물에서 호혜적 이타성이 확인됨에 따라 인간이 가진 호혜적 이타성 또한 경험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직접 호혜주의는 동일한 개체와 반복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때 나타난다. 도움을 주기 위해 상대방을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호혜적 이타성에는 이 같은 과정이 없다. 과거에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 쥐들은 상대방이 누군지 상관하지 않고 다른 개체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 이타성이 만들어진 과정

그렇다면 개미, 꿀벌, 그리고 말벌 같은 사회적 곤충의 이타성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이는 수만 마리가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질서 있는 사회를 유지하는 초유기체의 형성 과정과도 맥이 닿아 있다.

코넬 대학과 애리조나 주립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초유기체는 궁극적으로 그룹 간 경쟁의 결과로서 나타났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중첩 줄다리기 이론’(nested tug of war theory)이다. 이 이론은 두 개의 줄다리기 이론이 서로 맞물려 있다. 하나는 그룹 내 경쟁인 집단 내부의 줄다리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룹 간 경쟁인 집단 사이의 줄다리기다.

집단 내부의 줄다리기를 통해 초유기체가 형성되는 첫 단계는 각 개체들이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최대로 하는데 달려 있다. 이렇게 해서 그룹 내부의 개체 간 경쟁이 감소하면 초기의 집단은 점차 커지고 더욱 조직화돼 결국에는 응집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같이 조직화된 사회는 해가 지날수록 덜 조직화된 사회에 비해 더 많은 후손을 생산하게 된다. 그 결과 이 같은 행동을 결정하는 유전자나 대립 유전자는 더 빠른 속도로 증식하게 된다.

또 다른 줄다리기는 한 집단이 발생하면 동시에 같은 종의 다른 집단 사이에서 차별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두 집단 사이의 경쟁은 진화과정을 강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첩 줄다리기 이론은 다른 곤충이나 동물 사회의 진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 또한 세포의 집합이나 박테리아 공생체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침팬지 역시 인간과 같은 이타성을 가졌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막스프랑크 연구소의 펠릭스 바르네켄과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에서 침팬지가 유전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동족에 대해 보상을 바라지 않고 도움을 준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연구 성과는 곤충이나 동물의 이타성이 인간의 이타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타성이 진화해온 뿌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병도 서울경제 기자 do@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